불암산,수락산▲이사무애(理事無碍)로산(山)의 이판과 사판을 두루 본다.
- 언제 : 2008.4.12 (토) 07:00~24:30
- 얼마나: 2008.3.29 12:05~17:05(5시간)
- 날 씨 : 하늘에 구름 있었으나 대체로 맑음
- 몇명: 37명
- 어떻게 : 부산 강산에산악회 동행
▷불암사-불암산-덕능고개-수락산-수락산장-내원암-금류폭-옥류폭-수락유원지
- 개인산행횟수ː 2008-14[W산행기록-193 P산행기록-335/T680]
- 테마: 풍류산행
- 산높이:불암산507m,수락산638m
-가져간 책: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그래도, 후회는 없다 Lost on Everest : searching for Mallory & Irvine
- 호감도ː★★★★
세상사는 선택의 연속이다.특히 나처럼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고 그기에 순응하는 선택을 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판단이다.현대에 와서도 신(身)언(言)서(書)판(判)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시 판(判)이다.
판단을 할 때 이판과 사판 어느 한쪽에 지우치지 않고 걸림없이 내리는 판단이 이사무애(理事無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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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12:39
부산에서 서울에 있는 산까지 당일치기로 산행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세월 좋아졌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평소보다 한시간 정도 빠른 7시에 출발하여 산행들머리인 불암산의 "천보산 불암사"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였다.
5시간을 버스에서 읽은 책은 "조용헌의 사주명리학이야기"였다.강호동양학에서 구성하는 3대과목은 사주,풍수,
한의학이고, 이것은 천지인 삼재사상(三才思想)의 골격에 해당된다.책을 보면 사주,관상,점,주역등의 고수들과
역사들이 펼쳐지는데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서 5시간이 잠을 잔 듯 후딱 지나 버렸다.
문사철(文史哲)을 문사수(聞思修)하되,유교의 처사,불교의 거사,도교의 술사를 망라하여 총체적으로 다양한 이판의
세계는, 사판만 횡횡하는 현대의 세계에서 더욱 필요한 판(判)의 세계이다.
북한은 북방수(北方水)에 해당하고 소련의 백곰은 차가운 얼음물에 살아서 이 또한 물이고,중국의 용 또한 물과
관련이 있는데,소련,중국,북한의 물들이 모두 합쳐져서 홍수되어 남으로 밀려온 것이 6.25이다.대전은 큰 들판이라서
물이 그냥 통과하고,전주 광주도 마찬가지이고,대구는 큰 언덕이라서 물이 막혔고,울산,마산은 산이라서 물이
건너지 못했고,부산은 불가마라서 불로 물을 막을수 있다고 했던가?
나는 양(陽)의 기운이 상당히 강하여 다이나믹하게 펄펄 끓는 "불가마산?(=釜山)"에 산다.
Hi SEUOL(하이 서울), Dynamic BUSAN(다이나믹 부산), Fly INCHEON(플라이 인천), It's DAEJEON(잇츠 대전),
Your Partner GWANGJU(유어 파트너 광주), Colorful DAEGU(컬러풀 대구), ULSAN for you(울산 포 유)
여기에서 부산은 다이나믹이다.역동적이라는 의미다.부산은 아시아에 붙은 극동의 한반도가 남성성기처럼
돌출되어 있는데 거의 귀두에 해당될 만큼 가장 앞쪽에 위치한다.여기가 불가마이며 다이나믹이라면
양(陽)이 어느 정도 이겠는가?
양(陽)의 극한 가까이 있는 곳이다.부산에 바다가 없었다면 벌써 힘을 잃었을 것이다.
여기에 사는 나의 머리는 가끔 음(陰)의 기운으로 식혀주어야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방위로는 북방수(北方水)
이니 북(北)으로 가는 방법이고,다른 하나는 물이 있는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 것-觀音"이다.
부산에서 서울은 북이니 방향이 맞고 불암산을 거쳐 수락산은 물 떨어지는 곳이니 제대로 찾아가는 것이다.
불암사 절로 들어가서 조금 진행하다가 우측 산길로 오르면 된다.바위는 비결을 감추어 놓았는지 뭔가 신비가
느껴지고 수도에 사는 풀은 깔끔하게 머리를 땋았는데 산에 사는 촌놈이 서울와서 별별것이 다 눈을 휘둥그레하게 한다.
회백색 바위의 단단한 지혜,짙은 초록 소나무의 절개,연분홍 화사한 진달래의 홍염살 가득한 애교 엔터테인먼트
가 이 산을 덮고 있다.
12:40~12:53
산을 조금 오르자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의 유격기지가 나타난다.공비의 굴이라면 아지트라는 용어를 사용했겠지만
여기서는 "유격기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 굴의 내막을 알아본다.
1950년 6월 25일 북괴군의 불법남침이 개시되자 육사1,2기 생도들은 포천과 태릉일대에서 적의 서울
진입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던 중 상부의 명에 의하여 철수, 한강 이남에서 지연전을 전개하였다. <호랑이>라는
유격대를 편성하여 불암산 일대의 동굴들을 유격기지로 삼아 불암사 윤용문 주지스님과 석천암 김한구 주지스님의
지원 하에 1950. 6. 29.부터 서울 수복 1주일 전인 9, 21.까지 적의 후방을 교린하는 유격작전을 전개하였다.
동 유격대는 네 차례의 전투를 감행하여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납북되어 가던 주민 100여명을 구출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거두고 마지막 전투에서 중상을 당한 강원기 생도를 제외하고 전원이 계급도 군번도
없이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내막을 알고나니 진달래가 유난히 붉게 보이고 소나무는 장렬하게 산화하는 육사 생도들의 나라위한 절개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13:00~13:12
이후 불암산을 오르는 길은 쉽지 않았다.다행히 자일을 잡고 오를 수 있는 행운이 있어서 불암산 정상으로
오를 수 있었다.불암산 정상 바로 아래에서 조망을 구경하고 불암산 정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 조금 더 내려간다.
대슬랩에서는 기본적인 암벽훈련을 하고 있고,바위와 진달래의 앙상불이 미녀와 야수만큼이나 이질적인 듯 잘 어울린다.
불암산 정상이 잘 보이는 곳,양지 바른 바위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이제 수락산으로 향한다.
14:26~15:04
불암산과 수락산의 경계이며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 덕능고개가 있다.지도를 보니 좌측 아래에 "당고개역"이
보인다.아마도 옛날엔 이곳에 당집이 있었던 모양이다.지도 우측을 보니 "덕절"로 알려진 흥국사가 보이고
그 아래에 덕릉(德陵)이 있다.
덕릉은 덕흥대원군의 묘을 말한다.대원군은 임금의 아버지로서 결과적으로 조선시대 3명이 있었다.덕흥대원군은
조선 중종의 아들이자 선조의 아버지이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원군의 무덤은 "묘"이지 "릉"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선조가 백성들에게 암암리에 술과 밥을 사 먹이며 여론조작을 통한 이름바꾸기에 성공한 케이스인데,
여하튼 지금은 근처 고개 이름까지 "덕재","덕고개","당고개"도 아닌 "덕능고개"로 불리워지니 선조의 약은 꾀가
이 시대에도 통하고 있다.
"덕능고개"를 지나마 마자 산불 흔적이 보이지만 이내 바위,소나무,진달래의 삼색즐거움을 안긴다.
15:08~15:51
수락산 능선에 올라서니 군부대 너머 불암산이 문필봉처럼 뾰족하게 모습을 보이고, 수락산 정상으로 갈수록
바위전시장 처럼 기기묘묘한 바위를 선보인다.여기서 보니 건너편 북한산과 도봉산의 산그리메가 뚜렷하다.
15:54~16:14
서울 산님의 지도를 받아 숨은 코끼리도 보고,배낭바위도 보고 철모바위도 본다.수락산 주봉에 올라 안내문을
보니 "태조 이성계가 수락산의 기암 괴석이 모두 서울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하여 수락산(水落山)을 서울의
수호산(守護山)이라고 했다"고 한다.그런데 어떻게 된일인지는 몰라도 내가 볼때 바위는 반대로 보는 것 같다.
코끼리 조차 보는 곳은 서울 반대쪽이다.
김장호의 "한국명산기"에도 "수락산은 사실, 한양 발치에 놓였으면서도 묘하게 그런 반골(反骨-김시습을 의미)
을 숨겨주기 알맞은 형국으로,한양쪽으로다가 등을 대어 돌아 앉아 있었던 것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16:36~16:54
수락산 주봉을 내려와 수락산장으로 내려왔다.조금 더 내려오니 내원암이 나온다.
사실 수락산을 이야기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시습이다.김시습은 조선조 5백년사에 기록될 만한 최고의 천재다.
그는 태어난 지 겨우 8개월만에 글을 깨우쳤고 세살 때부터 시를 짓기 시작했는데 다섯살 때는 나라를 짊어질 기둥감
으로 온나라의 기대를 한몸에 받기도 했다.
이미 3세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
라는 시를 읊었다
삼각산(북한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쿠데타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이라 하고 전국으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김시습의 흔적은
많지만 기록적으로 남아 있는 곳은 한국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는 경주 금오산에서 지었고,설악산 오세암에서는
"심현담 주해(十玄談 註解)"의 기록을 만해 한용운이 찾아내고,그리고 이곳 수락산 내원암에 기거한 흔적이 있다.
수락산은 서울에 놓였으면서도 서을에 등을 지고 돌아 앉은 형국이다.묏줄기는 대개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리지만
수락산은 동쪽으로 굽어있다.수락산의 어원이 된 "물 떨어지는 산"의 이름은 바로 금류폭,은류폭,옥류폭인데
이것또한 동쪽으로 흐른다.
그래서 그럴까? 생육신 반골 김시습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도 이해가 된다.서울에서 볼 때 숨기 좋은 곳이고
등을 돌려 않은 곳이다.
16:55~17:05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사판(事判)의 대가이면서 이판(理判)에도 관심이 깊었다.
삼성의 각종인사 및 이상의 고위 인사에 대하여 사주와 관상을 중시한 것은 유명하다.
그래서 유달리 배신자가 적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병철 회장의 이판과 사판으로 치밀하게 검토한 후 결정한
심모원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본다.
이병철 회장 별세 후 그 다음은 이판을 조금 소홀히 한 것 같다.
삼성을 위해서 김용철 변호사 같은 내부고발자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측면은 이병철 회장 사후 이판에 대한 관심이 줄었거나
이판의 "박제현" 같은 재사는 더 이상 없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김용철 변호사 주장에 따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기자회견을 여러번 연 곳은 공교롭게도
"수락산성당"이다.
금류동천의 글씨가 호방하다.금류폭포 맞은 편의 바위산도 상당히 위압적이고
아래에서 올려다 본 금류폭포도 대단하다.
수락유원지 근처 음식점 마당에서 하산주를 하고 오후 7시가 넘어 부산으로 돌아왔다.
부산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읽은 책은 "그래도, 후회는 없다 Lost on Everest : searching for Mallory & Irvine"였다.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조지 리 맬러리"의 다큐멘터리인데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엔
너무 흥미진진한 기록이다.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를 넘긴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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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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