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옛 절터)관리부실이 오히려 폐사지의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곳
- 언제 : 2011.11.20(일) 09:00~15:00
- 얼마나: 2011.11.20 09:50~13:30
- 날 씨 : 맑음
- 몇 명: 2명(with wife)
- 어떻게 : 자가SUV 이용
▷홍법사-운흥사지-망해사지-청송사지-영축사지
올해는 겨울이 너무 늦다.특히 부산은 아직 늦가을이다.사실 가을만큼 드라마틱한 계절이 있을까?
가을은 풍요나 결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결실이 끝나면 낙엽으로 대변되는 상실의 계절이기도 하다.그 허허로운 마음을 잘 나타내는 장소가 있으니 그곳이 폐사지다.고즈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장소로서 옛 절터는 딱이다.그렇지만 가끔 폐사지에서 석등이나 탑 혹은 금강석 같은 석물이 고갱이로 남아 있는 곳이면 천년세월의 무게와 상관없이 "화려한 폐사지"로 급변한다.
그러한 쓸쓸한 폐사지의 느낌과 화려한 폐사지의 오고감을 드라마틱하게 느끼기 위하여 오늘 본격적인 추위가 오기 전에 울산의 폐사지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폐사지의 쓸쓸한 느낌을 갖기 위하여 폐사지 가는 길에 있는 화려한 홍법사를 찾았다.오늘 홍법사는 체육행사를 하느라고 상당히 활발하였다.예정된 반전이라는 것을 계획했음에도 폐사지를 찾은 순간그 반전된 고요의 쓸쓸함은 배가되었다.
울산의 폐사지는 삼국유사와 관련이 깊다.오늘 찾은 곳은 산 깊은 곳에 정녕 폐사지의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꽃같은 곳의 운흥사터,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앉은 석조부도가 화려한 폐사지의 모습을 보여 준 망해사터,지금 바로 여기보다 아름다운 곳 그 어디랴를 보여준 청송사터,무너진 탑을 바라보며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았던 영축사터를 둘러보았다.
하룻만에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그래서 옷을 좀더 챙겨입고 폐사지 유람에 나섰다.
가는길에 잠시 들런 홍법사는 대부분의 불사가 마무리되어 화려한 자태를 뽐냈다.
운동회가 열리어 다소 어수선하여 잠시 예경하고 바로 폐사지로 향한다.
운흥사지는 겨우 차한대가 다닐만큼 좁은 산길을 꼬불꼬불 오른다.경사도가 제법 있어서
다소간의 스릴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시적사를 먼저 찾았다.시적사 대웅보전 위로 낮달이 떠 있다.시적사는 그 이름을 화엄경의 한 구절에서 따 왔다는데 새길수록 의미가 깊다.
"遇緣卽施 인연을 만나면 곧 베풀고 離緣卽寂 인연을 여의면(다하면) 곧 고요하라"를 의미한다.
이곳 시적사엔 운흥사 부도浮屠 2기가 화려한 팔작지붕의 대웅전 앞에 놓여있다.부도는
석종형으로 조선시대 것이라고 한다.부도의 지대석은 없고 인당초 무늬 받침돌과 연화대좌위에
세워져 있으나 누구의 부도인지 알수가 없다.
시적사에서 700M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반계마을이 나오고 이후 운흥사지가 나온다.
운흥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옹촌면 고연리 산 175
운흥사는 사명대사도 이곳에서 활동했다고 한다.운흥사가 간행한 총 19종의 불서 중 경판 15종은
현재 통도사가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계곡을 건너 높다란 축대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들어가니 한눈에도 상당한 규모의 절터가 나온다.
철저히 깨어지고 부서져 이제 이곳에 남은 석물은 석조밖에 없다.
몇그루의 감나무 아래로 억새풀만이 햇볕에 반짝이며 쓸쓸함을 배가 시킨다.
운흥사지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태양빛이 만들어내는 가을색 완연한
그 느낌이 오히려 화려한 느낌이 들었다.남은 유물이 없어서 오히려 폐사지 느낌이 충실했다.
망해사지는 폐사지이지만 망해사지 석조부도 아래에 망해사가 다시 중건되어 있다.
이렇게 절터는 죽었다 살아나는 곳이 상당히 많다.망해사지석조부도[ 望海寺址石造浮屠 ]는 통일신라 시대의 부도이다.
동부도와 서부도가 있고 오른쪽에 무너져 몇개 남지 않은 탑의 흔적이 있었다.망해사지 승탑으로 불리우는 이 2기의 부도는 신라시대 조각수법에서 다소 특징없이 섬세한
모습이 엿보이나 우아함과 단아함을 잃지 않았다고 평가 받는다.망해사지는 처용설화와 관련있는 절터로 신라 헌강왕(875년~885년)때 세워졌다고 하며
여기서 보면 아득히 처용암이 있는 바다가 보인다고 한다.망해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 산 16-3
청송사지는 3층석탑이 있다.절터의 유물로 보아 신라때 창건되었고 폐사된 시기는
조선 중기 혹은 조선후기로 본다.현재의 청송마을 전체가 청송사터였다고 하니 매우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청송사지삼층석탑은 보물 제382호로 지정된 것으로,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2년 보수할 때 상층 기단에서 청동제사리함과 청동여래입상, 유리구슬 16점,
수정곡옥(水晶曲玉), 관옥(管玉) 등 3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다.부도 3기 중 조선시대 부도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근처에 청송사지 부도밭이 있다.
청송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 산107-4청송사지 삼층석탑 뒤로 난 길로 가면 산길을 따라 문수산의 문수사로 이어진다.
대형 버스가 들어 갈 정도로 길은 어느정도 잘 닦여있으나 일반 승용차로 가는 것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다만 어떻게 이런 곳에 이렇게 길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곳이다.청송사지 근처 율리에 또다른 폐사지 영축사지가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는 영축사의 자리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영축사는 신라 31대 신문왕 3년(683)에 매에 쫓기던 꿩이 관청 근처의
우물에서 새끼를 감싸고 있었는데, 재상 충원공이 이를 보고 왕에게 알려 지어졌다고 한다.
굴정역(屈井驛) 관아를 옮기고 그곳에 절을 세운 것이라 한다.좀더 상세한 내용을 알아보니 이렇게 씌여져 있다.
《사중고기(寺中古記)》에 의하면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692) 영순 2년에 재상 충원이
장산국의 온정(溫井)에서 목욕하였다. 서울로 돌아갈 때 굴정역(屈井驛:屈火)에 이르러 잠간 쉬었더니,
홀연히 한 사람이 매를 놓아 꿩을 쫓자 꿩이 날아 금악(金岳)을 넘어 간 곳이 묘연해졌다.
방울소리를 듣고 찾아가 굴정현(屈井縣) 관가 북쪽 우물가에 이르렀다. 매는 나무 위에 앉아 있고
꿩은 우물 안에 있는데, 물이 피빛 같았다. 꿩은 두 날개를 벌려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있고, 매도 또한
측은한 모습을 하고 있어 감히 잡지 못하였다. 공이 이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감동한 바 있어
그 땅을 점쳐 보았더니, 가히 절을 세울 만한 곳이라고 하였다. 공이 서울로 돌아와 왕에게 고해
현청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 절을 세워 영축사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현재 두개의 석탑만 남아 있을 뿐 절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관리도 거의 안된 모습이라
더욱 애잔한 곳이다.텃밭경작을 금지하는 경고판에도 아랑곳없이 작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영축사지 3층석탑은 쓰러져 통곡하는 형상의 모습이다.동탑과 서탑 모두 쓰러진 상태 그대로이다.
한켠에 귀부도 보인다.
울산지역에는 유일한 거북이 조각상이라고 하지만 그 대접은 너무나 푸대접이다.공명을 피하던 연회와 문수점(緣會逃名 文殊岾)도 이색적인 전설이다.
高僧<緣會>, 嘗隱居<靈鷲>, 每讀《蓮經》, 修普賢觀行. 庭池常有蓮數朵, 四時不萎.(今<靈鷲寺>
<龍藏殿>是<緣會>舊居.) 國主<元聖王>聞其瑞異, 欲徵拜爲國師. 師聞之, 乃棄庵而遁, 行跨西嶺嵓間,
有一老叟今爾耕, 問「師奚適」, 曰: 「吾聞邦家濫聽, 縻我以爵, 故避之爾.」 叟聽曰: 「於此可賈,
何勞遠售? 師之謂賣名無厭乎!」 <會>謂其慢己, 不聽遂行數里許. 溪邊遇一媼, 問「師何往」, 答如初.
媼曰: 「前遇人乎?」 曰: 「有一老叟侮予之甚, 慍且來矣.」 媼曰: 「文殊大聖也. 夫言之不聽何?」 <會>
聞卽驚悚, 遽還翁所, 扣顙陳悔曰: 「聖者之言, 敢不聞命乎! 今且還矣, 溪邊媼彼何人斯?」 叟曰:
「<辯才天女>也.」 言訖遂隱. 乃還庵中, 俄有天使齎詔徵之, <會>知業已當受, 乃應詔赴闕, 封爲國師.
(《僧傳》云: 「<憲安王>封爲二朝王師, 號<照>, <咸通>四年卒.」 與<元聖>年代相左, 未知孰是.)
師之感老叟處, 因名<文殊岾>, 見女處曰<阿尼岾>. 讚曰: 倚市難藏久陸沉, 囊錐旣露括難禁.
自緣庭下靑蓮誤, 不是雲山固未深.고명한 중 연회는 일찍이 영취산에 숨어 살면서 매양'법화경'을 읽고 '보현관'
을 공부 하였다. 뜰의 못에는 언제나 연꽃 몇 떨기가 나서 사시로 시들지
않았다. 원성왕이 그 상서로운 이적을 듣고 그를 불러 國師로 삼으려 했더니
스님이 이 말을 듣고 그만 암자를 버리고 달아 나다가 서쪽 고개 바위틈을
건너 가려 하는데 한 늙은이가 밭을 갈다가"스님은 어디로 가시오?"하고
물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들어매 나라에서 잘못알고 벼슬로서 나를 구속
하려 하므로 이 곳을 피하는 길이오."하니 늙은이가 듣고 말하기를 "여기서
팔 일이지 수고스럽게 멀리 가서 팔 것 있소? 스님이야말로 이름 팔기를
좋아하는구려!" 하니 연회가 자기를 조롱하는 줄로만 여기고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몇 리를 더 가 냇가에서 한 노파를 만났더니 스님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으므로 처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노파가 말하기를 "여기 오기 전에 누구 만났는가?" 하였다.
그는 대답하기를 "웬 늙은이가 나를 매우 모욕하므로 화가 나서 왔소"했더니
노파가 말하기를 "그는 문수보살이요. 그 말씀을 왜 듣지 않았소?" 하였다.
연회가 놀랍고 송구스러워 늙은이가 있던 데로 급히 돌아 가서 이마를 조아리고
후회하여 말하기를 "보살님의 말씀을 어찌 거역하오리까! 지금 되 돌아왔지만
냇가의 노파는 그 누구신지요?"하니 늙은이가 말하기를 "변재천녀로다."하고
말을 마치자 그만 사라졌다.
연회는 도로 암자를 돌아 왔더니조금 뒤에 척사가 조서를 받들고 와서 불렀다.
연회가 꼭 받아야 될 것임을 알고 곧 조서에 응하여 대궐로 갔더니
국사로 봉하였다.연회가 늙은 노인에게 감응하던 곳을 문수점(文殊岾)이라
이름을 짓고 여인을 만나곳을 아니점(阿尼岾)이라 불렀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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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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