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구룡폭 세존봉▲글로 다할 수 없고 그림으로 얻을 수 없다.

 

- 언제 : 2008.6.6 (금) 21:00~2008.6.9(월) 02:00
- 얼마나: 2008.6.7 11:30~18:30(7시간)
- 날 씨 : 대체로 맑음
- 몇명: 45명
- 어떻게 : 부산 솔뫼산악회 동행
▷ 오선암-목란관-삼록수-관폭정-구룡폭-세존봉-전망대-철사다리-합수목폭-동석-법기암터
- 개인산행횟수ː 2008-19[W산행기록-198 P산행기록-338/T688]
- 테마: 명산산행
- 산높이:

世尊峰(세존봉)

1,160m
-가져간 책: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 하,시와 에세이로 금강산 맛있게 보기,산정무한
- 호감도ː★★★★★

  



아! 금수강산 금강산,자연이 한반도에 내린 선물.
 

꿈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금강산을 직접 접해보고 왔다.실제 가보니 꿈꾸었던 것보다,상상 했던 것 보다 더 아름다웠다.아름다움의 극치,지상세계에서 볼 수 있는 천상세계,산이면 어찌 다 같은 산이며 물이면 어찌 다 같은 물이겠느냐? 뾰족하거든 곱지나 말거나 험준하거든 기특하지나 말것을...어느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미의 결정체.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악미
풀과 나무와 바위가 조화된 계곡미
아늑하고 온화한 호수미
금강산의 절경을 동해에 옮겨놓은 해양미
멀리 동서남북을 볼수 있는 전망미
신비와 감탄과 황홀감과 장쾌함으로 저도 모르게 ‘야’하는 감흥미
울창한 수림과 특수식물을 보게 되는 수림미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을 보여주는 건축조각미
세상의 아름다운 색깔들의 집결채인 색채미
금강산의 바람과 구름과 안개가 이루어내는 풍운 조화미』



이렇게 금강산의 10대미를 이야기한다.


 

우주를 빚은 손이 그 너머 그곳에 금강을 일궈놓았다.
 


중국 북송의 문인 소동파는 원생고려국,일견금강산願生高麗國,一見金剛山이라고 하여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했고, 스웨덴 국왕 아돌프 구스타프는 1926년에 "하느님께서 천지 창조하신 6일중에서 마지막 하루는 오직 금강산을 만드는데 보내셨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극찬도 부족할 지경이다.그래서 "서부진 화부득書不盡 畵不得"이라고 하여 "글로 다할 수 없고 그림으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직접 육안으로 보니 현실이며 실재인데 내가 꿈속에서도 본적이 없고 내가 상상한 것을 뛰어 넘어 함부로 상상한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단 한번 경험하고 골수 금강예찬론자가 되어 버린 나 자신을 느낀다.



죽기전에 꼭 가보라고 특히 구룡폭을 지나 세존봉에서 중첩되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연봉들의 파노라마를 꼭 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도 금강산을 가보지 않고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이승에 이미 천상세계를 만들어 놓았는데 하늘에서 천상세계를 찾는냐고 한 소리 들을 것 같은 곳...
 


그곳이 금강산이다.금강산은 지난 겨울 남측 금강산 건봉사 절을 찾으면서 남측과도 가깝게 있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동해 바다와도 가깝게 놓여있다.


뒤늦게 금강산을 보게 된 것은 다행이다.아마도 빨리 보았다면 다른 산들이 얼마나 초라하게 보였을까? 이집트 여행은 나중에 하라는 말 그대로 좋은 것은 조금 나중에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금강(金剛)은 바즈라(Vajra)라는 범어를 한자로 의역한 것이다. 당나라 때의 스님인 징관(澄觀)은 동해 가까운 곳에 금강이라는 산이 있는데, 위 아래 및 사방의 산 사이에 흐르는 물과 모래 중에 금이 있어서 멀리서 보면 금처럼 보인다고 했다. 또한 금강산은 담무갈보살(법기보살이라고도 번역한다.)과 관련이 있다.



금강산에 법기봉이 있고 법기암터도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법기보살이 그의 1만 2천 권속들과 함께 항상 머물면서 설법을 하는 곳이라고 하는 기록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그곳이 실제로 우리 나라의 금강산을 지칭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외에도 기달이나 열반(涅槃), 중향성(衆香城) 등의 이름 역시 불교에서 비롯한 명칭이다. 이것은 금강산에 수많은 절과 암자가 들어서고 수행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산 이름 자체가 불교적 색채를 띤 것이 유행하게 되고, 나아가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어 통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화엄경에서 "바다 한가운데 금강산이라는 곳이 있어 법기보살이 1만2천 무리를 거느리고 상주하고 있다"고 하여 금강산 1만2천봉이라는 말이 나왔다.

 

사념捨念의 평화로운 마음속에 설레는 마음과 호기심은 간직하고

6월6일 정축일丁丑日로 백호대살인 현충일날,오전에 서점에 가서 금강산 관련 책을 구입하여
읽고 저녁 9시에 부산을 출발하여 밤새 버스를 타고 6월7일 해뜰 무렵에
화진포 아산휴게소에 도착하였다.

이렇게 기가 센날 출발하였지만 쓸데 없는 걱정은 하지 않는
사념의 단계에 든 마음은 가뿐하였다.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닌 마음이 만들어내는 조화를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체득하는 것은 다른데 6월5일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시세를
대하는 순간의 내 자신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 마음으로 금강산을 찾는다.


화진포에서 해외 여행에 준하는 수속을 밟은 후 버스를 타고 통일전망대와 감호 그리고

구선봉을 지나 금강산 특구 온정각에 도착하였다.

 

최근 며칠간 비가 왔는데 현지에 도착해보니 구름이 조금 걸려있고
약한 박무도 있지만 날씨가 참 좋은 편이다.

 

 

 

 

 

장대한 폭포와 옥빛의 물이 아른거리는 담이 이어지는 구룡폭 코스

 

산행출발지점은 오선암 바위가 있는 목란각 근처였다.다섯 원님이 신선놀음을 하였다는
이 바위는
장마때 폭우에 휩쓸리는 바람에 뒤집혀서 편편한 모습이 아닌
원뿔형태로 변해 버렸다.


이곳이 구룡연 코스 들머리에 해당되는데 북측의 음식점 목란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북한 혹은 북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북측"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금 들어가면 아주 멋진 기암들이 계곡을 따라 우뚝 서있는데 이곳이
일명 회상대라고 하는
앙지대로 너럭바위가 전망대 구실을 한다.
너럭바위엔 많은 글들이 적혀있는데 다소 두꺼운 글씨로

멋지게 "앙지대"가 보이고 앙지대 글씨 좌측에 세로로 김하종金夏鍾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김하종은 단원 김홍도의 충직한 추종자로 1991년 뉴욕 소더비 경매전에서
풍악도권 58폭이 출품된바가 있는
분이고, 하단에 긍원肯圓이라는 두글자가 제법 굵은 글씨로
씌어져 있다.긍원은 단원 김홍도의 아들로 김양기
金良驥의 아호이다.

 

 

 

 

 

 

신록 우거진 계곡을 따라 가다보면 금강문이 나온다.금강문 바위벽에는 붉은 한글
글씨 왼쪽
아래에 금강문이라고 세로로 써놓고,옥류동,구룡폭으로 가는 관문이라는
의미로 옥룡관玉龍關 글씨가
가로로 씌어져 있다.

 

 

 

 

 

 

 

 

계곡을 돌자 갑자기 훤해지며 옥류담이 나온다.숨이 멎을 듯한 완벽한 동양화의 모습이다.
뒤로는 세존봉과 천화대의 뾰족한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멋을 내고 산자락 사이 계곡의 물은
옥빛이며 그 앞으로 신선들이 춤추며 놀았다는 무대바위가 있다.

 

 

 

 

 

 

 

 

 

 

 

나는 예전에 평양미대 교수인 김영식 북측화가의 그림을 본적이 있다.그분이 그린 금강산
옥류동의 그림은
주제가 밝고 미래지향적이며 형상이 명백하고 단정하였으며 또한 조형성이 있고
생동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런 느낌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옥빛의 물빛 때문이었는데 설마 물빛이 저럴까 했는데
실제로 옥류담의 물빛은
옥빛이었다.옥류담이라는 이름값 그대로이다.

 

 

 

 

 

 

 

 

 

 

 

옥류동을 벗어나자마자 곧 연주담이 나온다.두 개의 못이 연이어 붙어 있어 연주담이라고 하는데
이곳도 물빛이 짙은 옥빛이다.

 

 

 

 

조금 더 들어가니 또 하나의 폭포가 나오는데 비봉폭포이다.139M의 이 폭포는 폭포 상단이
봉황의 머리로 보이고 중간 부분이 몸통 같은데 세존봉 벼랑을 타고 내리고 있다.
곧이어 춤추는 봉황의 
모습인 무봉폭포가 나온다.

 

 

 

 

 

 

 

 

 

드디어 사진이나 TV화면에서 눈에 익었던 구룡폭포의 물 찧는 소리가 들리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명폭이다.

폭포의 길이는 74M로 새하얀 화강암에 하얀물줄기는 기품면에서 최고이다.

최치원은

 


천길 흰 비단을 드리웠는가. 千丈白練 천장백련
만 섬 진주알을 뿌리었는가. 萬斛眞珠 만곡진주

라고 노래했고,



시인 조운은


"사람이 몇 생을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전화해야 금강의 물이 되나"라고 노래했다.

신선의 붓놀림인가? 구룡폭의 하얀 물줄기가 시원스럽다.


구룡각이라는 관폭정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도시락이 눈에 익었다.발열도시락이다.
2,300원에서 5,000원 하는 도시락이 10,400원이란다.조금 과하게 받는 느낌이다.

구룡연 우측에 김규진의 미륵불이 보인다.구룡연의 깊이가 13M이며
"불"자 마지막 획을 길게 내리 뻗은 것이 13미터이다.


해강 김규진은 금강산을 캔버스처럼 사용하여 여러곳에 글을 남겼으며,삼신산 쌍계사의
글씨도
그의 글씨다.


구룡폭 위로는 상팔담이 있으나 세존봉으로 가야하는 나는 상팔담의
단 한 개의 담만 멀리서 볼 수 
있었다.

 

 

 

 

본격 가파른 산행은 구룡폭을 지나 세존봉으로 가는길

 

 

구룡폭 이후 세존봉을 가는 길은 경사도가 상당히 가파랐다.머리 위로는 천화대가 보이고
사자목으로 오르는 산길은 너무 좁고 가파라서 상당한 정체가 뒤따랐다.


금강산 산행은 특성상 모두 함께 가야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5시간 코스가
후미에 쳐지는 사람을
기다리는 대기 시간 때문에 7시간이 소요되는 색다른 경험이다.

 

 

휴대폰은 금지되기 때문에 모든 신경은 산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데 쏟을 수 있어 좋았다.

 

 

 

 

 

 

 

 

 

 

 

사자목을 지나 이제 숨을 좀 돌릴까 했는데 수직 사다리가 나온다.사다리의 부식상태로 보아 확보물에
대한 믿음이 좀 처럼 가지 않아 더욱 위태로운 마음을 갖게 만든다.

 

사자목을 지난 후 휴식을 취하면서 북측 안내조장은 이곳 외금강 물은 음기가 강하여
몸에서 기가 빠져나간다고
이곳의 물은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는 내금강의 물을 마시고 여자들은 외금강의 물을 마시면 좋다고 한다.

온정각의 금강온천도 탕을 일정한 주기에 맞추어 남탕과 여탕을 바꾼다고 한다.

 

 

 

 

 

세존봉은 금강산 최고의 조망 전망대

 

 

고도를 높일수록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처럼 뾰족뾰족한 연봉들이 중첩되어 달린다.
금강전도를 보면 가장 뒤쪽에 최고봉인 비로봉이 있고 좌측은 내금강 우측은 외금강임을 알 수 있다.

 

겸재 정선은 그림과 주역에 능해서 정선의 그림을 보면 전체적으로 보면 둥근 원인데 이것을 무극을
의미하고,
우측은 양의 기운이 가득한 바위산의 겨울 개골산을 그렸고,중간엔 만폭동을 배꼽처럼 그렸으며,

좌측은 음의 기운이 가득한 숲을 그렸으니 전체적으로 태극의 모습이다.

 

위는 양의 기운이 가득한 남성의 심벌 같은 비로봉이 있으며 아래는 여성의 음문 같은
장안사 앞 비홍교
다리 아래로 노골적으로 물이 흐른다.

 

제시를 보더라도 중간에 "사이 간間"자를 중심으로 1-2-4-4...식으로 글이 배열되어 있음도
주역에 근거한 것이다

 


각설하고,철사다리를 다 오른 후 좌측으로 돌아보니 세존봉과 세존봉전망대에서 조망을 즐기는
등산객들이 보인다.


능선에 서니 채하능선과 집선봉능선이 눈을 휘둥그레하게 하고 장군성을 따라 백두 대간
끝머리에 비로봉은
구름에 가려있다.

 

관음연봉과 만물상등 뾰족한 연봉들이 중첩되어 달리는 모습에 감탄을 연발한다.
이곳이 골기 가득한 금강산의
진면목이다.

하산길 철사다리는 족히 150M도 넘는 것 같은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곤욕을 치룰 것 같다.
동석동 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뒤처진 후미를 기다리는데 남측 아주머니 한분이 북측 안내조장에게
잘 생겼다며 총각예찬을 했더니 북측 총각 남성 안내조장의 말이 달변이다.


"어무이. 쓴 살구와 익은 살구 중에 어느거이 맛있습네까? "
"익은 살구가 맛있지요."
"총각은 쓴살구고 아저씨는 익은 살굽니다."
"그러니 총각보다 아저씨가 좋지요."

 억압적인 사회 체제속에 살다보니 그 해소책으로 유머감각은 더 뛰어나다는

책의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금강산에 가면 통일이 보인다.

 

 

 

 

 

 

 

 

 

 

 

 

 

하산길은 동석동 계곡으로 내려와 금강미인송의 환영을 받는다.

 

집선연봉을 올려다 보며 동석동계곡의 물을 그냥 마시며 한참을 동석(흔들바위)에서 휴식을 취한 후
동석동을 빠져나온다.


날머리에 있는 금강미인송이 햇볕을 받아 더욱 늘씬한 자태를 뽐낸다.

 

 

금강미인송은 절개가 곧고 강함을 암시한다.단종 복위에 실패하여 처형장을 끌려가며 부른 조선의 사육신
성삼문은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하니 봉래산 제일봉의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 하리라"
라고 노래했다.봉래산은 금강산의 여름 이름이다.

 

 

 

첫날 산행을 하고보니 금강산이 상당히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고,
세존봉 정상석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인상에 깊이 남았으며 또한 좋았다.

다만 한가지 흠이라면 북측의 선전구호를 새긴 "글발"들이 너무 많아

남측의 우리와 다른 관념을 가진 듯하여 아쉬웠다.

 

 

북측의 일반 주민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안내원이나 판매원과는
대면 할 기회가 있었는데
먼저 말을 걸어와서 내심 놀라기도 했고 기뻤다.

 

오늘의 산행은 이것으로 마치며 내일은 천선대와 만물상 그리고 삼일포로 향하는 일정이 잡혀있다.

 

 

 

 

 

 

 

 

 

 

 

 

 

 

 

泰山在後天無北(태산재후천무북)
大海當前地盡東(대해당전지진동)
橋下東西南北路(교하동서남북로)
杖頭一萬二千峰(장두일만이천봉)

금강산
태산이 뒤에 있어 북쪽 하늘 가리고
큰 바다 앞에 이르니 동쪽 땅이 다하네.
다리 밑으로 길은 동서남북인데.
지팡이 머리 위로는 일만이천봉이라

 

(필사)

 

松松栢栢岩岩廻 송송백백암암회

山山水水處處奇 산산수수처처기
소나무 소나무 잣나무 잣나무 바위 바위를 돌아보니
산 산 물 물 가는 곳마다 신기하구나

-김삿갓(김병연 1807~1863)

 

https://youtu.be/oJGZNsdyF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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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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