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정암사,구인사)북방형 인간은 유학(留學)이 아니라,유학(遊學)이다.

- 언제 : 2009.12.25(금)~26(토)
- 얼마나: 2009.12.25 08:40~26 15:00
- 날 씨 : 눈비 조금
- 몇 명: 2명(I & D)
- 어떻게 : 자가용 이용

▷정암사-만항재-

- 테마: 문화유산 답사
- 호감도ː★★★★

 

 


 

북방형인간,남방형인간이라는 글을 접해 본적이 있는데 시간이 오래되어 어디에서 본 적이 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을 되집어 보면 북쪽은 보통 추운 지방이라서 시베리아 나무들처럼 단단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이다.날씨가 추워서 나이테가 촘촘해서 톱으로도 잘 베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반대로 남쪽의 나왕 같은 나무는 일년에도 엄청 빠른 속도로 자라서 나이테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빠른 시간에 자라기 때문에 나무의 단단함은 시베리아 나무 보다는 약할 것으로 판단된다.

 

사람도 자연의 영향을 받아서 마찬가지 관점으로 보면 된다.더운지방의 남방형 인간은 뭐든지 크다.코도 크고 입술도 두툼하고 눈도 황소 눈처럼 크다.반대로 추운지방의 북방형인간은 눈도 실눈이고,입술도 얇으며 콧구멍도 적다.단순하게 생각하여도 그 추운 지방에서 북풍한설 몰아치는데 콧구멍이 커서 좋을 것은 없기 때문이다.이런 연유로 유추해보면 성性적인 개념까지 확장해보면 조선 시대를 비롯하여 과거에 평양기생이 유명한 이유를 알겠다.북쪽의 추위 때문에 단단하고 적은 명기名器가 명기名妓를 탄생하게 한 이유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특질을 간파하여 "남남북녀"라고 한지도 모른다.금강산을 가보니 그곳 여자들은 정말 고전적 미인들이 많았는데 반대로 남자는 야위고 검은 피부에 볼품이 없었다.우리나라의 경우 북방형인간의 장점과 남방형 인간의 장점을 합친 최고의 몸을 보여주는 사람이 메이저리그의 박찬호로 보면 된다.얼굴을 보면 큼직큼직해서 남방형 인간의 특질을 잘 보여주는 반면 그의 다리를 보면 누구보다 튼튼해서 북방형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그래서 그럴까? 그의 고향은 북쪽도 남쪽도 아닌 공주출신으로 알고 있다.북방형인간과 남방형인간의 장점을 모두 가진 케이스이다.

 

남녀를 떠나 보통 남방형인간의 장점을 보면 따뜻한 지방에 있기 때문에 여유가 있으며 배려심도 많은 편이다.그런 반면에 다소 게으른 편이다.북방형 인간의 경우는 성격적으로 다소 모질지만 상대적으로 부지런한 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아마도 내가 태생적으로 까칠한 남자인 이유는 나의 DNA에 북방형인간의 특징이 더 강한지 모른다.

 

나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허황옥은 남방세력과 북방세력이 힘을 합친 경우로 해석 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우리집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나와 딸은 역마살이 있는지 자주 돌아다니는 기마민족 성격의 유목민이라는 북방형인간이라면, 한편 나의 집사람과 아들은 그 반대다.좀처럼 집을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편으로 농사를 짓고 한 곳에 정착을 하는 성격의 남방형인간이다.최근 아들을 보면 겨울엔 왠만하면 움직이지 않고 비축한 에너지를 조금씩 소비하는 겨울잠을 자는 곰과 같다.그렇지만 한편 이해되는 것은 고2에서 고3으로 올라가는 시점인데 매일같이 새벽 1시에 집으로 들어오는 상황이라서 단 며칠간 푹 쉬는 것을 두고,아무리 황금연휴라지만 내가 밖으로 끌고 나갈 명분이 부족한 것이다.2009년 기축년을 보내면서 함께 여행을 가자는 나의 제안은 여러반대에 부딪혀 결국 나와 딸만 또 길을 나서게 되었다.

 

북방형인간은 유학(留學)이 아니라,유학(遊學)이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학은 留學이 아니라
遊學이다.머무르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놀면서 배우는 종족이다.인간은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이다.유학은 Playing and Studying Abroad여야한다.놀기가 자율적 신장의
극대치라면 공부는 타율적 부과의 극대치이다.앉아서 공부하는 것 보다는 뛰면서 노는 것이 더
적성에 맞다면 당신도 나의 과科이다.노자는 "억지로 무엇을 하려는 자는 놓칠 것이다 (執者
敗之)"라고 했다.움직이면서 노는 것은 억지로 무엇을 하려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13:30
해를 넘기는 시점만 되면 나는 다소 의미있는 겨울여행을 떠나는 편이다.작년엔 진도를
다녀왔었는데 올해는 강원도로 방향을 잡았다.

 

날씨는 춥지만 도로사정은 좋은 편이었다.그렇지만 부산에서 강원도 정선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오후에 정암사에 도착하였다.강원 남부지역 최고봉인 함백산(1573m) 서북쪽
자락에 남한강 최상류에 물줄기 하나가 시작되는 산골짜기에 천년고찰 정암사(淨岩寺)가
있다.


 

신라의 고승 자장이 만년에 창건(645년)하고 입적까지 한 절로 자장 스님은 당나라에
유학갔다 돌아온 분으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들여와 여러 절에 나누어 모셨는데,
현존하는 적멸보궁이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영월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이다.그동안 통도사,봉정암,상원사,법흥사는 이미 다녀왔지만 단 한곳,
정암사가 빠져있었다.그래서 이번에 가장 먼저 목적지를 정암사로 선택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정암사에 발을 들여다 놓은 순간 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적멸보궁을 알현하게
되는 영광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입구에 주차를 하고 일주문을 바라보니 태백산 정암사라고 한자로 적혀있다.
뫼 산(山)자의 글씨 조형이 상당히 멋있어서 좌측을 보니 탄허스님의 글씨다.


 

역시 탄허스님의 소탈하면서도 멋스러운 글씨가 일품이다.소탈한 멋과 멋스러움이
함께 하는 이 글씨는 선禪과 교敎의 어우러짐이 함께하는 경지에 다다렀음을 의미한다.
원래 탄허스님은 책을 좋아하는 교종의 성향이었는데 이분이 선종을 중시하는
조계종의 상원사의 한암스님의 상좌스님으로 가면서 그의 깨달음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아담한 산사 마당을 가로질러 눈이 녹은 물이 빛을 발하는 극락교 다리를 지나
적멸궁으로 향한다.상당히 아담하면서도 경건한 마음을 자아내는 곳이다.
다리를 지나니 주목 한그루가 길을 막는데 자장스님의 지팡이었다는 주목이
한그루 있다.


 

스님의 진신사리는 적멸궁 뒤 천의봉 자락 높직한 언덕에 사리를 모신 수마노탑
(국보 410호)이 있다고 한다.마노로 만든 탑인데 수마노탑이라고 하여 탑도 수컷과 암컷이
있다는 소린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자장스님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마노석으로 쌓았다는 탑인데, 동해 용왕이 돌의 물길
운반을 도왔다 해서 앞에 수(水) 자가 붙었다고 하니 의문은 풀렸다.



눈이 얼어있어서 다소 미끄러웠지만 그리 높은 곳이 아니라서 곧 수마노탑과 마주한다.
오랜 세월이 흘렀겠지만 탑의 상태는 좋은 편이다.그래서 기록을 보니 여러번 해체
복원한 모양이다.지금 탑은 1995년 다시 해체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요사채인 육화정사를 비롯한 사찰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차를 몰아 조심스럽게 만항재로 향한다.응달진 곳이지만 눈이 잘 치워져 있어서 다행이다.
만항재에 올라보니 그 고개길의 통행이 자유로운 이유를 알았다.체인이 감긴 중장비 한 대가
눈에 들어온다.

 


만항재는 해발 1330M로 정선·태백·영월 땅이 갈리는 곳으로 고개 정상엔 휴게소가 있다.
내가 알기로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만항재는 차를 끌고 올라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여기서 차를 주차하고 가벼운 트레킹에 나서지만 시절이 겨울이다보니 야생화를 비롯한
볼거리는 별로 없다.다만 일직선으로 쭉쭉 뻗은 나무들과 함백산 정상까지 호쾌한 전망은
볼만하다.

 

청령포를 가는 도중 다하누(多韓牛)촌에서 한우로 늦은 식사를 하고,폐광지인 고한을
지난다.아직도 이곳의 물은 폐광의 흔적이 역력하다.고한이 한자로는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느낌은 높고 추운 곳(高寒)이다.

 

청령포에 도착해보니 오후 4시 인데도 불구하고 어두 컴컴하다.비까지 내린다.
청령포의 나무들은 나루터에서 볼때 중심은 키가 커고 좌우로 나무들의 키가 낮아진다.
그래서 처음 보았을 때는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지금보니 뭔가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16:38~16:55
이곳 청령포의 압권은 감압곡류로 흘러나가는 물길과 이곳의 소나무들이다.

 


단종의 절명소리를 들었다는 관음송(觀音松)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곳의 소나무는
한꺼번에 여러 소나무들을 보는 것이 좋다.노산대에 올라 강의 흐름과 이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았을 단종을 떠 올려보고 내려오면 다시 마주치는 소나무 숲은
흡사 경주의 삼릉이나 선덕여왕 왕릉이 있는 곳의 소나무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12.26 08:06~10:00
겨울의 해는 생각보다 짧았다.소백산 구인사 근처에서 강과 산이 보이는 곳에서
일박을 하고 눈을 떠보니 여명이 밝아온다.

 

아직 햇볕이 들지 않는 구인사 일주문에 서니 "일심(一心)이 상청정(常淸淨)하면
처처(處處)에 연화개(蓮華開)니라."라는 글귀가 보인다.이 법어는 천태종의
소의경전(所衣經典)인 실상묘법연화경의 일곱에 담겨있는 진리를 가장 잘 표현 한
말로 1945년 구인사를 창건한 천태종 중창조인 상월원각 대조사(속명 박준동, 1911∼1974)
의 어록이라고 한다.최동순교수는 상월스님이 태어난 것은 1911년 이 아닌 1922년
이라고 주장하지만 공식적인 탄생년도는 1911년이다.

 

일심一心을 "마음을 한결같이"로 해석하면 "마음을 한결같이 깨끗이 닦으면,세상 모든 곳에
연꽃이 핀다-부처의 세계가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일주문에 들기도 전에 법문 한귀절을 보고 그대로 주욱 올라가면 마지막에 대조사전이
나온다.이 분에 대한 기록은 "처처에 백련 피우리라"는 상월조사의 구인사 창건기라는
책에 잘 나와있다.

 

천태종의 중창조로 명명되기는 했지만, 천태종은 사실상 40여년전 상월원각 대조사에 의해
창종되다시피 한 종단이다. 길지 않은 역사인데도 신도의 수가 무려 200여만 명으로 오랜
전통을 가진 조계종, 태고종과 함께 한국 불교 ‘3대 종단’으로 꼽힌다. 신자 30여만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신자가 있는 사찰인 부산의 삼광사도 천태종 소속이다.



사실상 조계종에 이어 2대 종단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교계의 정설이다.짧은 시간
안에 교세를 신장시켜 한국의 주류종단에 편입시킨 경이로운 능력을 발휘했다.

 

상월 스님은 6·25 직후 현재 구인사가 있는 소백산 골짜기에서 초막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초기엔 <천수경> 독송과 천수다리 주송이든 궁궁강강을 부르거나
관세음보살을 칭명하는 수행을 했다고 한다.

 



홀로 수행하기보다는 대중적으로 기도하면서 주송해 힘을 얻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
이다. 천태종의 특징은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하향성에 있다고 최교수는 설파한다.

 

상월원각대조사(1911∼1974)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참선 수행하는 주경야선의
새 종풍을 세웠다.상월대조사는 어려운 시기에 참된 자아의 참된 삶의 구현, 참된 사회의
실현을 위해 대중불교의 구현, 생활불교의 실천,애국불교의 건립이라는 새로운 불교운동을
폈다.



상월원각대조사에 의해 중흥된 천태사상과 정신은 최근 중국으로 역수출의 길을 열어
관심을 모은다.이는 1400여년 전 중국의 천태지자 대사가 천태일승의 진리를 천명하고
고려 대각국사 의천이 중국의 천태교관을 수입, 선·교종을 통합고교계의 새기풍을 일으킨
뒤 다시 중국으로 사상을 역수출하는 길을 튼 것이다.



중국 정부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중국대륙의 정신적인 통일을 위해 불교사상에 관심을
보이던 중 특히 한국불교 천태종의 ‘애국불교’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구인사 대조사전은 대목장 신응수씨의 작품이다.그의 말 “그동안 수없이 많은 문화재 건축
을 해왔지만 구인사 대조사전이야말로 생애 최고의 대표작이 될 수 있게 심혈을 기울였다”
고 토로한 대조사전은 7포 내 11포의 3층 다포집으로 전체를 못 하나 쓰지않고 나무로
짜맞추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멋과 아름다움은 지붕 추녀의 부드러운 곡선이나, 기둥과의 조화,
처마 등의 곡선미에서 볼 수 있듯 유려한 선(線)에서 나옵니다. 날렵하면서도 우아한 곡선은,
그러나 어떻게 만들겠다고만 해서 그러한 선이 나오는게 아닙니다. 한옥은 몇십년 미리
알아서 선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경험과 정성이 중요한 것이겠죠.”

 

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大木匠) 신응수씨(59)는 최근 자신있게 이러한 선을 표현한다고
자부했다.

 

목조건물로는 최고 높이인 27m의 3층 다포집인데 근간을 이루는 목재부터 우리나라 것만
을 사용했는데 최고의 목재로 알려진 태백산 300백년된 적송(赤松) 50만재가 들어갔다고
한다.


 

내가 이 추운날 구인사 대조사전을 찾은 이유는 이러하다.이런 명품의 건물을 내 생애
몇 번이나 보겠는가?그런면에서 나는 행운아다.조금 떨어져서 보니 금사사 미륵전 만큼이나
돋보인다.다만 금산사 미륵전이 넓은 마다의 한가운데에 있다면 구인사 대조사전은
뒤에 산이 있어서 웅장한 느낌보다는 아담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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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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