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dingEssay


[양산시립박물관과 북정리고분군]


자전거전용도로를 이용하여 낙동강변을 달리다
호포대교 아래 양산천을 따라 올라갑니다.

양산종합운동장을 지나 우측으로 난 양산천 지류인
신기강변로를 따라 자전거전용도로 끝까지 오릅니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끝나면 일반차도를 따라
약간의 업힐구간을 지나면 양산시립박물관이 나옵니다.


  




양산시립박물관과 양산문화원은 길을 중간에 두고 붙어 있습니다.
좌측은 양산문화원이고 우측은 양산시립박물관입니다.


양산시립박물관 관람은 무료입니다.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니 
관계자여러분들이 인사를 하는데
저의 몸을 수색하는 듯한 눈빛과 마주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자전거 헬멧에 변색 안경(썬글래스)과 복면을 했으니 
아마도 배달의 민족 종사자 쯤으로 오해를 했을 것입니다. 







박물관에서 김서현 징군과 만명부인 초상화를 대합니다.
김서현 장군은 김유신장군의 부친입니다.


조선말기 민화풍으로 그동안 가락김씨양산종친회 재실인
취선재에서 보관해 왔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종이에 채색하여 무인부부()를 그렸습니다.
양산 부부묘 근처 
사당()에 있던 이 그림은 1958년 태풍으로
사당이 훼손되었을 때 한 무속인이 수습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뒤 1970년 무렵 취선재에 보관하다가
2016년부터 양산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양산 지산리 부부상(梁山芝山里夫婦像)으로 소개된 그림인데
인물 좌측에 한자로 
누구인지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서현과 만명은 중매도 서지 않고 선을 넘었는데(野合,야합,사통) 야합열전에 따르면
서현이 만노군(현 
충북 진천군태수로 떠날 때가 되어서야 만명의 아버지인 숙흘종
(신라 진흥왕眞興王의 동생)에게 들켜서 별채에 갇혔지만 결국 둘은 몰래 빠져나와
만노군으로 
사랑의 도피를 해 결혼했습니다.서현이 32살,만명이 22살때입니다. 


진골정통인 만명과 대원신통인 서현의 정상적인 결혼은 처음부터 어려웠다고 봅니다.



아무튼 공주급인 여자 왕자급인 남자가 눈이 맞아서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점 때문에 
서동 설화에 관한 가설 중에는 이 사건이 남자의 출신만 가야에서 백제로 와전되어
노래 서동요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서현과 만명의 사랑에 대해서 화랑세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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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서현()이 길에서 갈문왕() 입종()의 아들인 숙흘종()의 딸
만명(
)을 보고, 마음 속으로 좋아하여 눈짓으로 꾀어, 중매도 없이 결합하였다.
서현이 만노군(
:충북 진천) 대수[:태수()]가 되어 (만명과) 함께 떠나려 하니,
숙흘종(
)이 그제야 딸이 서현과 야합()한 것을 알고 미워하여 다른 집에 가두고
사람을 시켜 지켰다. (그런데) 갑자기 벼락이 (그집) 문간을 때려 지키는 사람이 놀라
혼란스러워지자 만명(
)이 들창문으로 빠져 나왔다.
드디어 서현과 함께 만노군(
)으로 갔다.





대단한 러브스토리입니다.인물열전을 공부하다보면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김유신 장군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아버지 김서현장군도 보통사람은 아닙니다.

김서현은 신라시대 양주총관이었습니다.양주는 지금의 양산입니다.


다시 박물관을 둘러봅니다.

청자 매병도 보입니다.



광주 안씨에 대해서 나오는데 임진왜란 시기 전공을 세운 다섯분을 기려
일문오충(一門五忠)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한 가문에서 5명의 충신이 나왔다는 의미입니다.


왜병이 선조25년 임진 4월14일에 왜병이 부산포를 침범했다는 소식을 듣고 
양산군수 조영규는 동래성으로 가고 양산사람 안근은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모친이 광주안씨여서 모친으로부터 광주안씨는 양반이라는
소리를 워낙 많이 듣고 자라서 남다른 느낌입니다. 




양산 금조총金鳥塚 출토 금귀걸이입니다.금조총은 부부총(夫婦塚)보다 약간 아래에 있습니다.
고리 곳곳에 금알갱이로 무늬를 정교하게 수놓은 한쌍의 호화로운 귀걸이입니다.





부부총(夫婦塚)은 1920년 일제에 의해 발굴ㆍ조사돼 국보급 금동관과 구슬, 토기, 순금귀걸이, 화로 등
800여 점이 도쿄박물관에 보관돼 있습니다.

부부총은 양산 출신으로 삼국을 통일한 신라 김유신 장군 부친인 서현 장군과 모친인 만명 부인 묘로
추정하고 있지만 문헌 자료로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제가 사는 주변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일본은 우리나라에게, 우리가문에게, 우리지역에게 
너무나도 많은 피해를 끼친 나라입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북정리北亭里고분군으로 갑니다.
양산시립박물관 뒤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아주 기분좋은 산책로와 만나고 곧 고분군들이 보입니다.




북정리 고분군과 한옥 뒤로 신기리고분군도 보입니다.

고분이 몇개 안되어 보이는데 원래 고분 50여 기가
삼성동 남쪽 약 10만 ㎡의 산기슭 경사면에 있었다고 합니다.

봉토(
)가 거의 깎여 보이지 않는 것도 있고
지금까지 정식으로 학술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부분의 고분들은 도굴, 파괴되었다고 하여 안타까움을 더하게 됩니다.



막상 근처에 가보면 고분의 크기가 상당합니다.




요즘같이 낙엽지는 만추의 가을엔 폐사지나 고분군을 찾아가는 것이 최고입니다.
가을의 쓸쓸한 기운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배가시켜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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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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