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가조들녘을 가로질러 바람소리내니,짙은산고수장의 문향이 감싼다.

- 언제 : 2011.12.25(일) 10:40~18:30
- 얼마나: 2011.12.25 12:50~16:30
- 날 씨 : 맑음
- 몇 명: 3명(with wife & sun)
- 어떻게 : 자가SUV 이용
▷수승대-가섭암지-강남사지 석조여래입상-상림리 석조관음입상-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2011년 동지 즈음하여 여러 가지 변화가 뒤따른다.2012년 임진년 흑룡의 시대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개인적으로는 인사이동으로 대우증권 동래지점에서 부산지점으로 발령이 났다.발령이 나는 당일날 눈치를 챌 정도로 마음의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다소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막상 이동을 하고 보니 그런대로 적응이 되는 느낌이다.

크리스마스 전날인 어제는 독서클럽 회원들과 만나 책이야기와 세상사는 이야기로 밤늦게 노닐다가 돌아와서 오늘아침은늦게일어났다.날씨가 무척 쌀쌀하다.일요일임에도 등교하는 딸을 제외하고 나머지 가족들이 거창의 문화유산답사에 나서기로 하였다.

거창하면 양민학살사건과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 10계명 정도가 떠오르지만,산이 높고 물이 맑아 빼어난 산수풍광과 경상우도의 문향으로 선비정신이 살아 숨쉬는 전통문화의 고장이다.그동안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수승대와 가섭암지를 넣고 기타 석조불상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거창의 가조는 들녘이 참 넓다.주변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백두산 천지와 유사
하다고 하여 가조온천은 "백두산 천지 가조온천"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슬로건이
공교롭게도 참 잘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그 들녘을 가로질로 차를 타고 수승대로
향한다.멀리 덕유의 산그리메는 하얀 눈으로 덮혀있다.

 


거창에 도착하니 1시 가까이되었다.우선 수승대를 먼저 관람하였다.
키큰 보호수 너머 관수루가 나온다.관수루 안쪽에 구연서원이 있다.
관수란 물을 관찰한다는 의미다."물을 보는데(觀水)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의 흐름을 봐야 한다.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한 말을 인용한 누각이다.군자의 학문은 이와 같아야 한다는 의미다.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맹자의 진심장(盡心章)에 나오는 구절이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순리대로 전진하라는 가르침이다.

 

비단 학문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이와 같은 이치를 인용해서 적용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나 같은 증권회사 직원도 시황의 흐름을 이렇게 분석 할 필요가 있고,
무릇 흐름이 있는 민심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관수가 필요할 것이다.

 

흘러가는 것이 물 뿐인가? 세월도 그러하니...

 

그 옛날 저 누각에 올라 시회詩會를 열었을 선비들을 회상해본다.

 


구연서원龜淵書院으로 들어가니 우측에 거북이 비석이 셋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비석에
산고수장이 적혀있다.산은 높고 물은 유유(悠悠)히 흐른다는 뜻으로, 군자(君子)의
덕이 높고 끝없음을 산의 우뚝 솟음과 큰 냇물의 흐름에 비유(比喩譬喩)한 말이겠지만
서원의 크기에 비교할 때 너무 크게 만들어 조화롭지 못한 인상이다.

 

거창은 거창(?)한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인자와 군자의 영원한 덕을 뜻하는 산고수장이 더 높다.

 

 

 

 

관수루 밖으로 나오니 거북이 모습의 바위(龜淵臺)인 수승대가 나온다.
영남 제일의 동천(天)에 거북이 연못(龜淵)에 놓인 바위는 흡사 거북이 모습 그대로인데
상당히 많은 글자들이 새겨져 빈곳이 없을 정도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였던 이곳은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들을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
이라는 뜻으로 '수송대()'라 불렸다. 수송대(愁送臺)는 ‘시름을 보낸다’는 뜻이다.



사지가 될 수도 있으니 어찌 근심이 없었겠는가?그렇지만후기가야연맹의맹주인
대가야가 신라에 위협을 느낄 당시 백제로 구원병을 요청하는 사신이 지나가던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퇴계 이황이 이곳의 풍경을 예찬하는 시를
한 수 읊은 뒤부터 수승대()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한다.
그때는 1543년 봄날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황의 개명시와 갈천 임훈()의 화답시가 전한다.

 

수승대라는 한자 글 아래에 신권愼權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분은 조선 중종때의 요수 신권
을 말한다.구연서원 맞은편에 요수정이 있다.


 

수승이라 새로이 이름을 바꾸노니(搜勝名新換)
봄을 만난 경치 퍽 아름답구나(逢春景益佳)
머언 숲 속의 꽃들은 방긋거리고(遠林花欲動)
그늘 진 골짜기엔 아직 흰 눈이 잠겼네(陰壑雪猶埋)
먼 곳에서 수승대를 그윽이 바라보니(未寓搜尋眼)
오로지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 더하기만 하구나(惟增想像懷)
언젠가는 한 두루미의 술을 가지고(他年一樽酒)
큰 붓 들어 단애의 아름다움을 그려볼까 하노라(巨筆寫雲崖)

 

 

 

 

 

 

시를 지은 후 너럭바위에 붓을 씻었던 장소는 여전히 물이 흐른다.
홍교형식의 다리를 지나니 맞은편에 요수정樂水亭이 있다.
요수정에서 바라보니 수승대,구연서원과 계류가 한눈에 보이니 이곳이
관수를 하기에 최고의 장소다.

 

요수정에서 원각사 방향의 길에 놓인 박석이 아름답다.참 마음에 든다.
박석을 지나니 얼음을 지치는 겨울아이들의 모습이 나에게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수승대에서 가까운 "부뚜막"이라는 식당에서 육개장으로 늦은식사를 하고 금원산 휴양림
으로 향한다.이곳에 가섭암지가 있다.金猿山은 금빛 원숭이 산이니 원숭이 띠 아들에게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냐고 농담을 했다.

 

 

 

 


휴양림 안으로 들어가니 입장료와 주차비를 받는다.휴양림은 얼음세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고무 호스에 물을 흘려 추운 날씨에 그대로 얼게하였는데,한번쯤은 볼만해도 두 번은
보기 싫은 느낌이었다.


 

가섭암지 조금 못미쳐 엄청난 바위가 보인다.일명 문門바위로 지재미골 입구에 위치한다.
가섭암 일주문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단일바위로는 가장 크다고 하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108계단 오르니 점점 계단길이 좁아지며 동굴같은 장소가 나온다.
그곳 오른쪽에 삼존불이 새겨져있다.

 

 

 

 

한눈에도 고려의 마애불이다.삼존 중앙의 물방울 문양이 눈에 익었다.
눈이 부신다.물방울 무늬 위쪽으로 빗물이 마애불을 훼손하지 않도록
처마처럼 길을 양갈래로 펼쳤다.그래서 그럴까? 고려시대 작품이 아니라
불과 며칠전에 조성한 것처럼 깨끗하다.

 

아미타부처님은 물방울 무늬의 중심선과 안정감을 취할 수 있도록 두손을 벌려
들었다.전체적으로 보아도 참으로 독특한 양식이다.상당히 모던한 느낌이 든다.

 

이곳은 가섭의 이름을 가졌다.가섭하면 생각나는 염화시중의 미소..

 

拈華示衆의 微笑(염화시중의 미소)라는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영산(靈山)에서 범왕(梵王)이 석가(釋迦)에게 설법(說法)을 청하며 연꽃을 바치자,
석가(釋迦)가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으나, 가섭(迦葉) 만은 참뜻을 깨닫고
미소(微笑)를 지었다.


이것을 보시고 석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 미묘법문(微妙法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이 있으니, 이를 마하가섭에게 전하노라."
하셨다.

정법안장 (正法眼藏 :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한 덕)
열반묘심 (涅槃妙心 : 번뇌와 미망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는 마음)
실상무상 (實相無相 : 생멸(生滅)계를 떠난 불변의 진리)
미묘법문 (微妙法門 : 진리를 깨닫는 마음)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심심상인(心心相印)
등이 염화시중의 미소와 같은 의미를 갖는 말이다.

 

인간의 말과 문자는 그 자체가 불완전성을 내포한다. 사람의 마음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과 글은 없다.



석가는 범왕(梵王)이 설법(說法)을 청하며 연꽃을 바친 의미를 단지 연꽃을 들어보임
으로써 대중에게 전달하려 하였고 그 참뜻을 알아차린 이는 단지 가섭 뿐이었다.


 

부처님이 가섭에게 연꽃 한 송이를 들었던 밀밀의(密密意)는 무엇이였을까?


 

이곳에선 죽비소리도 공명이 있어서 더욱 매섭게 느껴질 장소다.
아미타부처님 양옆의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옷의 장식이 흡사 탑의 풍경처럼
장식되어 있는 점도 눈에 들어온다.연꽃은 불꽃느낌이 들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맛이 난다.

 

두광은 따로 되어있지만 광배는 전체적으로 표현 한점과 아미타부처님의 좌대는
凸형으로 흔히 보기 어려운 양식이다.이러한 점 때문에 모던한 느낌이 난 것이다.
빗물 방지용 갓은 심플하면서도 삿갓을 닮았다.

 

삼존불 우측에 조성기라하여 명문이 새겨져있는데 전혀 알아 볼 수가 없다.



또 이곳에 있던 3층탑은 위천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옮겨 놓았으나
세 차례나 도둑을 맞는 바람에 지금은 거창 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있다고 한다.

 

굴에서 밖으로 나오니 삼존불에 심취했던 이유 때문인지
바위 사이로 보이는 나무들이 불꽃처럼 느껴진다.


 

가섭암지를 나와 4KM정도 나오니 감남사지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석불로 고려 숙종때까지 강남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부처님은 강남불이라고 한다.얼굴은 마멸되어 분간하기 어렵다.


 

부처님 뒤로 현성산이 보인다.


 

 

 

 

 

 

 

그 다음 찾은 곳은 상림리 석조관음입상이다.이곳도 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다.
아들이 멀리서 보더니 삼등신이면 고려시대 작품이라고 한다.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토속적이고 못 생긴 불상은 고려시대 작품이란다.고려전기는 화려하지만 몇점
전하는 것이 없다는 부연설명까지 한다.

 

가까이 가서 안내판을 보니 역시 고려시대 작품이다.오른손에는 정병을 왼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갓을 머리에 인 양평리 석조여래입상이다.
8세기 통일신라 전승기 양식으로 5등신의 다소 섬세한 느낌이 난다.

 


짧고 굵은 목에는 윤회의 인과를 뜻하는 삼도三道를 선으로 새겼고,
어깨 양쪽으로 대의가 걸쳐져 있다.

 

거창은 석조 입상들이 많았고 전반적으로 후덕한 토속적인 느낌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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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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