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산행기는 2007년 11월 1일 "월간등산" 창간호에 8페이지(64페이지~71페이지)가 실렸습니다.

일본 북알프스▲창검처럼치솟은 3000M 암봉군에서 설레임과 어설픔 사이에서 헤매다.


- 언제 : 2007.9.22(토) 11:55AM~9.25(화) 11:30AM
- 얼마나: 2007.9.23 05:00~15:00 (10시간), 9.24 05:00~17:00(12시간)
- 날 씨 : 구름 많고 가끔 이슬비 혹은 보슬비 내렸으나 산행 내내 날씨 호조
- 몇명: 15명
- 어떻게 : 부산 산정산악회 동행
▷카미고지(上高地) 버스터미널-요꼬(橫尾)산장-덴쿠하라(天狗原)분기-미나미다께(南岳 3,032.7M)-
미나미다께산장(南岳小室) 1박-長谷川피크(2,841M)-기타호다카다께(北
穂高岳3,106M)-오꾸호다카다께
(奧穂高岳 3,190M)-마에호다카다께(前穂高岳 3,090.2M)-마에호다카사와(前穂高沢)-다께사와(岳沢)-

카미고지(上高地) 버스터미널
- 개인산행횟수ː 2007-13[W산행기록-173 P산
행기록-315/T660]
- 테마: 해외산행
- 산높이:오꾸호다카다께(奧穂高岳 3,190M)
- 난이도ː★★★★★(저의 호감도는 각자 판단 바람)

- 사진 87장 내재


나와 일본의 첫 접근은 아마도 고등학교 제2외국어를 배운 시점인 것 같다.이후 학원에서 일본어를 조금 더 배우게 되면서 카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雪國)","이즈노 오도리꼬("伊豆の踊子),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라쇼몽(羅生門)"을 읽었던 기억이난다.

등산과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5대륙 최고봉등정을 처음한 "내 청춘 산에 걸고"의 우에무라 나오미와 이노우에야스시의"빙벽"소설이 생각난다.

일본에 대해서 그리 많이는 알지 못하지만 부뚜막에 숯검정 칠 정도는 알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정작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번도 가보지는 못했다.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본인과 만날 기회가 없다보니 어설픈 일본어실력조차 한참 뒷걸음질을 친 상태에서 일본의 북알프스를 가게되었다.


'일본의 지붕'이라 불리는 북알프스는 자연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북알프스에서도 최고봉인 호타카다케(穗高岳·3190m)를 비롯해 야리가다케(槍ヶ岳·3180m), 가미코지(上高地·1523m)등이 있는 이곳은 일본 근대등산의 발상지라 할 수 있다.그 중 가미코지는 북알프스의 등산로 입구에 해당된다.기타(北)알프스는 나가노(長野),도야마(富山),기후(岐阜) 등 일본 혼슈(本州) 중앙 3개 현에 걸쳐있고 정식이름은 츄부산악국립공원(中部山岳国立公園)이다. 해발 3,000m 이상의 산봉우리가 연이어져 유럽의 알프스를 닮았다 해서 북알프스로 더 알려져 있는데 3,000M급의 산만 26개로 선교, 산악활동을 하던 월터 웨스턴이라는 선교사에 의해 이름이 붙여졌다

실제로 가 본 일본의 산은 한국의 2,000M 이내의 산과 비교할 때 규모에서 예상보다는 훨씬 험하고 높았으며,그외 여러 가지 문화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산이 높아서 일본인은 오후 3시까지 하산해서 저녁 6시에 잠자리에 드는 것을 당연하는데 비해서 한국인들은 이른 시간에 출발해서 느긋하게 하산하기 때문에 산장 직원들이 걱정을 많이 하는 눈치였는데 우리가 당초의 계획을 변경하여 좀더 난이도 높은 코스를 선택한 것을 들은 일본 등산객이 가미코지의 나이 지긋한 관리인에게 연락하는 바람에 우리의 가이드가 거짓 해명을 하는 모습을 볼때 일본인의 눈에는 한국인들이 무모하게 보였을 것이다.실제 산행을 하고보니 무모했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반대방향에서 오는 사람과 엇갈릴 때는 “오하이요 고자이마스(아침인사)곤니치와(점심인사),곤방와(저녁인사)”를 지겹도록 들었다.3,000M 높이에서 숨이 차서 헐떡거릴때 이런 인사를 들을 때는 오히려 겁이 날 지경이었다.상대방이 인사를 하는데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제발 인사를 생략해주었으면 바랄 정도로 일본인 등산객들은 철저하게 인사를 먼저 하며 다가왔다.

또 하나,“오키오츠케테(조심하세요)”는 물론이고 경사도가 가파르고 낙석이 잦은 일본의 산 특징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름길이 우선이 되었겠지만 올라 오는 사람을 위해서 내려오는 사람이 멈춰 서서 길을 양보하는 것도 철저하게 지키는 모습을 보았다.

밟히는 것은 거의 돌이기 때문에 “라쿠세키(낙석)”의 의미는 알고 가는 것이 좋겠고,가능하다면 헬멧을 준비하는 것도 좋을것같다.

한국인들은 등정의 기쁨을 일행과 함께 즐겁게 나누고 싶어 하고 스스로 어려움을 찾아서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한 반면,일본인들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각자 산을 감상하며 자연과 동화되려는 문화가 강하였다.

일본인은 산에서 거의 한줄로 다니는 반면에 한국사람은 같이 산행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횡으로 길을 넓게 쓰는 것이 특징이고 일본인들은 그다지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일본의 산장은 오후2시나 늦어도 4시까지 도착할 수 있게 하고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젖은 옷은 건조실이 있어서 이용하면 좋고,표고가 높아서 술을 마시면 빨리 취하기때문에숙취는 고산증의 증상과 비슷하기 때문에 과음은 금물이다.

이번 산행에서 3,000M 가까운 곳에서 산행할 때 머리가 약간 어질하고,약간의 두통을 느꼈는데 아마도 그것이 고소증세였던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의 산행문화가 크게 다르지만 서로서로 조금씩 알아가며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끼며 우리도 이제 너무나 빠르게 걸어서 빨리 도착하는데 있어 자부심을 느끼는 속도전에서 벗어나 자연에 동화하는 산행문화가 좀더 확산되기를 바란다.산행은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올림픽 종목에도 없는 등산을 굳이 경쟁지향으로 만들어 우리가 1등이다.우리는 이정도의 난코스를 다녀왔다고 자랑하려거든 처음부터 마라톤이나 철인 3종경기 같은 경쟁하기 좋은 좋은 종목을 권한다.등산은 무상의 행위 그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인에게 혹은 한국인에게 우리는 이만큼 난코스를 훌륭하게 해내었다고 자랑하며 떠드는 것은 어느 일본인의 낮은 혼잣말처럼 아직 산행문화에서 미개함을 과시하는 것이고,일본의 산에 가서까지 "한일 감정"을 내세우는 것은 너무나 졸렬한 행위이기 때문이다.우리에겐 "등산은 경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멀리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남명선생님의 좋은 가르침이 있지않은가?



(노란색:원래의 계획 , 분홍색:일행의 답사코스, 초록색:나의 답사 코스)


2007.9.22(토)14:30~17:28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나고야 공항으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가미코지 근처
히라노유(平の湯)의 숙박지인 "노자와 민수꾸[노자와민박]"로 향했다.버스의 운전
기사는 우측에 있고,차는 왼쪽길을 다닌다.책은 우리는 왼쪽으로 넘기는 구조인데
일본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한문책처럼 우측으로 넘기는 구조이다.이렇게 사소한 것
들부터 차이가 난다.

히라노유로 가는 도중 버스내에서 일정에 쫓겨 도시락을 먹으며 차창 너머로 "나고야의
태양(?)"이 지는 일몰이 볼 만했다.

 

05:17
이미 어둔 시각에 "노자와민박"에 도착하여 우선 민박집 2층에 있는 작은 온천에서 피로를
풀며 내일의 장도를 준비한다.그리고 산행일정이 당초의 계획과 달리 일행 중 몇몇의 제안
으로 거의 준 종주개념으로 바뀐다.

밤새 코고는 소리에 잠을 못이루고 뒤척였다.2시간 남짓 잠을 잔 것 같다.일행 중 누구처럼
머리가 벽에 기대든지,바닥에 닿기만 하면 바로 잠을 잠을 자고 5분내로 코를 고는 분을
존경한다.나는 너무 예민한 남자인가 보다.

새벽 4시30분에 기상하여 다시 한번 2층의 작은 온천에서 샤워를 하고,"히라노유" 버스
정류장에서 가미코지로 가는 셔틀버스를 갈아탔다.가미코지는 자연보호를 위해 저공해
셔틀버스만 운행하고 일반 승용차를 비롯하여 다른차들은 통행이 제한된다.자연을 보호
하려는 일본의 노력이 돋보인다.히라노유 주차장에서는 산위로 운무가 자욱하다.

 

05:50
가미코지에 도착해보니 점점 날이 밝아졌는데 가미코지로 오는 버스안에서 우리의 산행계획
을 들은 일본등산객이 가미코지 등산관계자에게 신고하여 우리의 여행가이드가 불려가 해명
을하고 돌아왔다.오늘 가는 코스가 힘들긴 힘든가보다.오전 7시 30분 이전엔 식사제공이
어려워 오늘 우리에게 지급된 것은 주먹밥 3개이다.김 속에 밥알이있고 그속에 매실짱아찌
2개정도가 든 주먹밥이다.

가미고지는(上高地)는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이라는 소설의 무대가 된 곳이 아닌가?헌신적
인 남편과의 러브스토리는 기독교도들에겐 좋은이야기거리가 된지 오래고,가끔 빙점의
다양한인간과 다양한사랑이 떠오르는데 내가 이곳 가미코지에 있다니....

드디어 산행대장의 결정이 내려졌다.일단 출발해서 운행속도를 고려해서 원래 계힉대로
갈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계획인 야리께다께까지 갈것인지를 판단한다고 하며 계획을
유동적으로 바꾸었다.계획은 계획이로되 정해지지 않은 계획이다.그렇다면 오늘밤은
당초의 계획인 오꾸호다카다께산장에서 숙박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세심하게 따져보지 않고 개념도 수준의 간이지도를 들고 속도전을 부추기는 몇몇 사람들
속에서 나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정확한 거리와 시간을 모르는 상황이니 가타부타
따질 수도 없는 형편이다.중간 탈출로가 있어서 약간의 안심을 하지만 내심 한편으로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레임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06:03
여하튼 시간단축을 위해 힘차게 출발했지만 내심 은근히 걱정이 따른다.3000M고지의 예측
불허의 날씨에 대비하여 아이젠,동계용바지,동계용자켓,낙석을 대비한 헬멧..게다가 중장비
DSLR카메라에 18~200MM 줌렌즈,물2리터를 넣으니 배낭무게가12.7KG다.

300M정도 진입하자마자 그 유명한 갓빠바시((河童橋)다.가미코치의 상징이며 더 없이
좋은 전망대로 가미코치를 대표하는 모든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하나로 응축한 곳이다.
다리에 서서 상류를 바라보면, 니시호타카다케(西穂高岳), 오쿠호타카다케(奥穂高岳),
마에호타카다케(前穂高岳),묘진다케(明神岳)가 3000m의 위용을 자랑하고 하류를 보면
약간의 연기를 뿜어내는 야케다케(焼岳)가 보인다.

더불어, 훌륭한 전망이 여기에 응축되어 있다.이강을 따라 위로 가면강의 수원(水原)
인 야리가타케(槍ヶ岳)를 다다를 것이다.잠시 다리에 올라 주변을 살피며 상념에 젖은
사이 일행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뭐가 그리 급한지..도대체 무엇을보러 여기까지
왔는지 알수가없다.하기야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갓빠바시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 아닌가?게다가 산행은 첫 출발부터 시간에 쫒기는 1박2일짜리 "해병대 지옥훈련"
을 닮았다.

갓파(河童)는 일본 요괴의 하나이다.물에 사는 괴물로 인간에게 접골술(接骨術)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예전에 드라마에 나왔던 영구, 칠뜨기와 더불어 울나라를 대표하는
바보인 호섭이와 헤어스타일이 매우 닮았고 등에는 거북이처럼 등껍질이 있다. 오이와 떡,
그리고 씨름을 좋아하며 4~5세 정도의 어린아이의 크기이지만 힘이 대단해서 강가를
지나는 말이나 사람을 끌고 물로 들어갈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06:28~31
내심 일단 동행하다가 힘들면 나의 체력에 맞는 B코스를자체 개발하기로하고
서서히 워밍업을 해보지만 전일 잠을 설친것 때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뒤로쳐진다.
서서히 묘진다께가 눈에 들어오고 산세는 점차 가파라지고 물빛은 더욱 푸르다.

 

 

 

06:37
묘진관에 도착했다.여기서 일행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고,나도 주먹밥을 꺼내어 먹는다.
서너입 배어 문 순간 감당하기 힘든 새콤함이 밀려온다.말로만 듣던 우매보시는 순간 주먹
밥 먹기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동안 일식은 양식이나 중식에 비해서 기름기가
덜해서 담백하기 때문에 내 입에 맞는 줄 착각하고 살았다.

우에무라 나오미는 에스키모와 친해지기 위하여 피가 흐르는 비릿내 나는 물개 살점을
먹었는데....스스로 용기를 북돋우고 다시 한번 베어 물었더니 내머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내몸은 강하게 거부한다.이로써 식사는 끝났다.

 


07:02~24
계속 강을 옆에 끼고 넓은 평탄한 길을 걷는다.점차 묘진다께와 마에호다까다께가 위용을
드러낸다.

 

 

 

07:28
다음 도착지는 평화롭고 서정적인 도꾸사와였다.색색의 텐트들이 쳐져있고 한쪽에서는
일본 등산객들이 간단한 맨손체조를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소설 「빙벽」의 무대가 된
도쿠사와(徳沢)이다.

 

08:02~11
산허리를 돌며 계속 강을 따라 오른다.산길은 점차 좁아지며 아직은 돌들이 많이 밟혀지지
않는다.

 

 

 

08:20
요꼬산장에 도착해보니 일행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여기서 나는 5만분의 1의
북알프스 지도 한 장을 800엔을 주고 구입했다.중간에서 탈출하려면 무엇보다
상세한 지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지도가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다.원래의 계획
이라면 여기에서 좌측으로 다리를 건너 오꾸호다카다께(奧穂高岳 3,190M)로
향했을터인데...

소설 <빙점>의 제목으로 상징되는 빙점의 의미는 `냉혹한 마음의 어느 지점'이다.

본시 착한사람도 어느 순간에서는 죄를 짓는 순간이 오는데, 마음이 차가워지는
그 순간을"빙점"이라고 아야꼬는 정의를 한것이다.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에
나오는 다양한 사랑 중에서 "알 수 없는 요꼬의 아가페적인 사랑"이 나오는데
요꼬와 이름이 같은 이곳 요꼬산장에서 나는 지도를 얻었으니 그 과분한 행운에
아이러니를 느끼며 내 마음은 점차 "중간 탈출"이라는 "빙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요꼬(橫尾)산장의 위치가 가미코지와 야리게다께 중간위치이니 마음의 저울질
장소로도 안성마춤이다.어느쪽이든 11Km거리다.

 

08:33~41
저 숲너머 산을 보라지..요세미테가 여기도 있었군.점차 산세가 험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요꼬산장을 지나면서 거짓말 같이 산길을 완만했던 경사도를 높이며
가파라진다.

 

 

 

09:00~26
물빛에 비친 세상도 이렇게 감동적인데 다들 쏜살같이 달아난다.나도 힘을 내어
야리사와(槍沢
)롯지까지는 그런대로 속력을 높여보았다.

 

 

 

 

 

 

 

09:46~56
점차 산세가 험악해진다.나무도 바위도 돌도 이젠 적의 창처럼 나를 노려 보는 듯하다.

 

 

 

 

 

10:23
야리사와(槍沢) 캠프지로 들어서니 형형색색의 텐드들이 즐비하게 쳐져있고 점차 웅장한
계곡이 공룡의 내장 속 같다.앞으로 나아가도 그 자리 같은 규모에 압도되어 속력은 점차
더 뒤쳐진다.여기서 산행대장에게 중간탈출의 나의 의중을 슬쩍 떠 넘긴다.

 

 

 

 

 

 

 

위를 쳐다보니 운무에 가려 창처럼 생긴 야리께다께가 보이지 앉는다.야리께다께가 보이면
사진찍을 욕심에서라도 가게 될터인데 운무에가려 보이지 않으니 더힘들어진다.

그러는 사이 덴쿠하라에 도착했다.덴구(天狗)도일본을 대표하는 요괴로서 현재는
붉은얼굴과 큰코의 인간같은 형상으로 굳어졌지만 중세이전에는 조류(까마귀)형상으로
처음 알려졌다고 한다.

기록상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이 일본서기(634년)이니 꽤 오랜 역사를 지닌 요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요괴들이 대개 어떤 동물에서 연유한 것과 달리 덴구는 그 실체를 알기
어려우며 종교적인 색채마저 지니고 있다. 신통력을 지녀 사람을 홀려 병에 들게 하고
승려나 성인(聖人)으로 변신하여 수행이 얕은 승려를 놀리기도 하며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병적으로 깔끔을 떤다는것이 특징이다.

중세 이후에는 수행이 부족하고 거만한 승려가 죽은 뒤 덴구로 부활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존재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덴구의 행동을 보면 불교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강한데 현재
일본에서는 승려들의 수행을 강조하려고 천태종의 승려들이 지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강장(金鋼丈)과 태도(太刀)를 지니고 다니고 손,발톱이 길며 높은 게다짝을 신고
다닌다고 하며 이유없이 행방불명되는 사람들을 모두 이 덴구의 소행으로 여겨왔다고
한다.

덴쿠하라(天狗原)에서는 무엇이 없어졌을까하고 살펴보니 물소리는 나는데 물이 보이지
않는다.덴쿠하라(天狗原)는 제법 큰 바위와 돌로 이루어진 너덜지대인데 그 아래로
보이지 않는 물이 흐른다.

 

 


12:00
나는 여기서 중간탈출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도저히 현재의 몸 상태로는 따라 갈수가 없는
상황이고 만약 팀들이 잠을 잔다면 산행대장이 얼핏 언급한 미나미다께산장이 될 것이다.

여기서 내가 좌측을 길을 간다면 위에서도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고 미나미다께산장
으로 곧장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다만 내가 가는길은 미나미다께산장까지 점심식사를 사
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가진 것은 초컬릿을 포함한 약간의 비상행동식 뿐이다.
물은 떨어졌지만 운무 가득한 날씨라 견딜만하다.

구하라(天狗原)에서 나도 보이지 않는 덴쿠가 되었다.아래를 내려다보니 너덜지대로
내가 올라 온 계곡이 아스라하고 내가 가는 
길 반대편에서도 사람들이 간간이 내려온다.

 

 

 

12:30
산 위쪽은 여전히 운무에 가려있고 야리께다께로 가는길은 순탄하지 않은 인생길처럼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12:46
힘겹게 언덕을 넘어서고 나니 작은 호수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덴쿠이께(
天狗池)이다.
물이 고여있어 식수로는 마땅치 않아 실망이다.게다가 비까지 내린다.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숨가쁜 산행을 이어가는데 경사도가 너무 가파르다.능선을 따라 빙 둘러가는 것이 아닌
바로 직등이기 때문에 가파른 것은 어느정도 예견했지만 너무 심하다.

 

13:20
빙하공원(氷河公園)이 나온다.여태까지 일본에 빙하가 있는 줄은 몰랐다.검은 빛을 띠지만
제법 두텁다.너덜지대를 따라 한사람이 먼저 오르고 있다.

 

 

 

14:52~15:12
비가 그쳤다가 다시 내리는 상황이 반복된다.너덜지대의 바위는 더욱 커지고 경사도는 눈물
이 날 정도로 가파라서 이곳으로 탈출한 어리석음에 한탄한다. 그기에 일본어로 위험하다는
페인트글씨와 함께 나타나는 철 사다리에 현기증이 난다.나중에 알았지만 고소증세였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오르면 정상일거라는 예측이 12번 정도 틀린 다음에야 제대로 된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18:07
팻말엔 내가 왔던 덴쿠하라가 큼직하게 씌여져있고 그아래에 "오쯔까레사마
(수고했습니다.)"와 미나미다께 꼬야(산장)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는 내용이었다.
하마터면 야호를 부를 뻔했다.


미나미다께(南岳 3,032.7M)가 나타났다.말뚝 이정표가 달랑 하나 있었고 짙은 운무에
조망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아쉬웠다.20여분 걸어서
미나미다께 꼬야(산장)에 들어가 맥주
한캔을 사서 숨가쁘게 들이켰다.갈증이 사라지면서 정신이 들었는데 지도를 펼쳐놓고 시간
계산을 여러번 해 본 결과 일행들은 아마도 1시간 정도 뒤에 올 것이라는 예측이 들었다.

지도 상의 거리는 내가 훨씬 짧은 코스지만 경사도가 너무 가파라서 내가 많이 휴식을
한 것을 감안했다.

그리고 휴식을 좀 취한 후 산장 뒤편 언덕으로 올라 일몰을 보기로 했다.높은 곳에서 보면
일행이 오는 것도 보일터이니...언덕을 오르기 전 팻말에 주의사항이 적혀있는데 여기에서
기타호다카다께(北穂高岳3,106M)까지는 "다이기렛또[두부를 자른 듯이 깍아지른 절벽을
의미"라서 오후 2시 이후엔 운행을 중지하라는 것 이었다.전부 돌과 바위로 이어져 있어
경사가 가파른 지역에서는 낙석사고가 심심찮게 나타난다는 내용이었다.

언덕에 올라보니 너무나 멋진 광경을 보여준다.바람의 지휘에 따라 구름이 춤을 춘다.
그리고 운무가 잠시 걷히며 보여주는
기타호다카다께(北穂高岳)방향의 경사도는 상상
초월이다.

 

 

 


40여분 지나자 일행의 선두그룹이 나타나고 30여분 더 지나서 모두 산장에 도착했다.
저간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더니 결론은 미나미다께산장에서 1박을 하는 것으로 결론은
났지만 산장 측에서 예약을 안했다고 난색을 표한다.가이드의 손을 비는 노력으로 작은
방 하나를 겨우 빌렸다.

다음날 아침식사는 해줄수 없지만 오늘 저녁식사는 산장 측에서 해준다.하루종일 10시간
걷고 아침에 먹은 주먹밥 한 개의 1/3을 먹은 이후 밤 7시30분에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잠을 자기 위해 일행이 가져 온 소주와 라면을 먹으며 일본어를 잘하는 영국인과 일본
등산객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중간에 화장실을 갔다오며 일본인끼리 나누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한국사람들이 정말 대단하지만, 아직 산악문화에 대해서는 미개(未開)한
구석이 있고,아마도 국민성이 빨라서 곧 좋아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앞에서는 대단하다고 치켜세우기만 하드니 속마음은 그랬나 보다.한국사람들이 일본에
와서 일본사람들 앞에서 "한국의 산은 가장 아름답고, 8,000급 히말라야 봉우리 14개를
오른 사람이 사람이 3사람이나 된다"고 떠벌렸으니.... 맞는 말이라도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는 말이다.자연에 동화되려는 노력보다는 등산의 숭고한 정신을 모두 망각
하고 한갖 스포츠로 격하시킨 미개함이 같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다.

작은방 하나에 속칭 칼잠을 자는데 "11시밖에 안되었다"는 누군가의 큰 목소리에 잠이
깨어 버렸다.(1박)

............
05:39~05:44


이후 잠이 오지 않아서 2시간을 뜬눈으로 보낸 후 가까스로 잠이들었는데
이번엔 새벽 4시에 기상하라며 떠든다.모두가 다 잠을 자는 산장에서 부스럭거리고 말을
하는데 기본적인 예의 부족에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다.주의를 줘도
목소리는 더 크다.왜 우리는 계속 이래야만 하는가? 개탄스럽다.

아침 식사 없이 오전 5시에 산행을 시작한다.비올 확율 50%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날씨가
좋다.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데 태양은 보이지 않는다.구름에 가렸기 때문이다.

 

 

 

 

 

 

 

 

05:57~06:02
빤히 쳐다보이는
기타호다카다께(北穂高岳3,106M)는 경사도가 가파라서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어제 밤에 만약에 이길을 걸었다면 하고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06:52
앞서가는 일행이 개미처럼 보이고 상당히 가파른 산길에 다리가 후덜거릴 지경이다.


07:53
서서히 고도를 높여나가니 처음엔 보이지 않던 야리께다께의 창검같은 봉우리가 미나미
다께 위로 삐죽 고개를 내민다.북알프스의 마터호른답다.

 

 

 

 

 

 

 

 

 

 

 

 

08:54
실로 어렵게
기타호다카다께(北穂高岳) 산장에 도착하여 일본컵라면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내 입맛에만 맞지 않는줄 알았는데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대부분이 나처럼 1/3정도만 먹고
모두 버린다.여기에서 물2리터 400엔어치를구입했다.

 

 

09:31
이후 다시 내리막이다.좌측아래는
가라사와(涸沢ヒュッテ)가 보인다.

 

 

 

 

 

 

 


 

10:55
드디어 오꾸호다카다께(奧穂高岳) 산장이 보인다.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첫날 숙박을 할 곳
이었다.오꾸호다카다께산장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경이다.식사를 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이후에는 식사를 할 장소가 없다.오후 4시 이후나 되어야 식사를 할 곳이
생긴다.그래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자고 하니,일행 중 하는 말이 "배가 부르면 잘 걷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라도 식사를 하고 떠나려고 하니,시간을 염두에 두어 빨리 출발하자고 재촉한다.
오늘 먹은 식사는 사발면이 아닌 말그대로 컵라면(우리나라 컵라면 보다도 크기가 작다)
달랑 하나 먹었을 뿐인데...

순간적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그런게 어딧냐?"고 했더니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다.다들 빨치산의 실력을 갖추었다.여하튼 계속 이야기하고 요구해서
빵과 우유 하나씩 배당하고 먼저 떠난 사람의 몫은 가이드배낭에넣어갔다.
나는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고 마지막 힘을 내어보기로 했다.

 

 

12:14
오꾸호다카다께(奧穂高岳 3,190M) 정상에 올라보니 미리 온 일행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집처럼 생긴 신사옆까지 올라서 찍고있다. 일본에는 현재 약 10여만 개소의
신사가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신사라는 건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대 일본인들은 큰
나무나 산 혹은 큰 바위 등을 가미가 깃들어 있는 신성한 지역으로 생각했다. 가령 원시적
신사의 형태는 히모로기(神籬) 혹은 이와사카(磐境)라고 불리웠다. 여기서 히모로기란
신성지역에 상록수를 심고 거기다 울타리를 두른 장소를 말하며, 이와사카란 큰 돌을
세워 원형 혹은 방형으로 두른 곳을 가리킨다. 이것이 발전되어 오늘날과 같은 신사의
형태가 된 것이다.

종교별 신도수의 비율은 불교가 48.2%, 신토[神道:자연숭배,조상숭배를 기본으로 하는
일본의 고유종교로, 神社를 중심으로 발달한 神社神道가 주류]가 51.2%를 차지하여
일본의 양대 종교가 되고 있고, 신,구교를 합친 그리스도교는겨우 0.6%를 차지한다.

나도 기념용 사진 한 장을 부탁했더니 모두 저기에 올랐으니,위로 올라가라고 한다.나는
그냥 아래서 찍어달라고 하였다.내가 신토[神道]의 신자는 아니지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무엇보다 신(神)이 거주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특정 종교를
떠나 높은 산엔 그만한 정기(精氣)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우리가 매년 무사안녕을 위해
산신제를 지내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도 같은 개념의 의식은 있는 법이니...일본의 산이지만
내가 경험하는 이산은 이미 일본의산,한국의산이라는이분법적인 소유개념을 떠나
자연과 하나되어 내 인생의 큰 경험으로 내 것이 될 것이다.

바로 아래에 호다까진쟈(穂高神社)라고 적혀있다.호다까다께(穂高岳)는 앞쪽(마에,前),
서쪽(니시,西),북쪽(기타,北)과 깊고 그윽한 중간(오꾸,奧)에 4개가 있다.호다까의 중심에
위치한 오꾸호다카다께(奧穂高岳 3,190M)는가장높으며일본에서는3위의높이다.

자연숭배와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하늘의 음성을 들으려는 인간의 의식이 이곳에
신사(神社)를 두게 되었을 것이다.

 

 

 

12:31
하산할 곳을 쳐다보니 마에호다카다께(前穂高岳 3,090.2M)의 산까지 능선과 산기슭을
횡단하여 그분기점에서 아래로 능선을 타고 곧장 하산하는데 그 경사도가 눈으로 보기
에는 오금이 저릴정도다.

 

 

14:11~59
막상 분기점에서 하산해보니 그리 두렵지 않는 경사도로 내려 올 수 있다.큰산은 큰산이다.
빤히 쳐다보이면 통상 두시간 거리다.산 아래에서는 버스기사가 이미 3시부터 대기하고
있다고 전화가 와서 가이드가 전화로 사정을 설명하면서 빌고 있다.첫 단추가 유동적인
계획이 되어 그 여파가 나비효과가 되어 이번 산행에서 여러번 김재훈가이드가 고생을
한다.

묵묵히 자신의 소리없이 유창한 일본어로 자심의 소임을 거뜬하게 해내는 덕분에 사고
없이 올 수 있었다.일본인에게 기분 나쁜 강짜의 내용을 번역을 부탁해도 상당히 순화시켜
부드럽게 일본인이 기분 나쁘지 않게 해주는 배려가 돋보인다.그 민감한 배려를 모르는
한국인 일행들의 목소리는 더 높아진다.

 

 

 

 

17:08
거의 다 내려온 다께사와(岳沢)산장에서 다시 두시간을 걸어 첫출발지인 가미코지까지
내려왔다.내려오는 도중에 한가로이 강가에서 노는 원숭이를 보았고,다시보는 갓빠바시
(河童橋)에서 보는 연봉과 강이 그리 아름다울 수 없다.오늘은 12시간을 걸었다.온종일
컵라면 약간과 빵과 우유 하나로 산행을 마쳤으며 이틀동안 3,000M급산 예닐곱개를
오르내렸는데도 무사산행을 마치게 된 날씨에 감사할 따름이다.계속해서 돌길을걸었기
때문에 발바닥은 따끔거릴정도이다.돌이 많은 지형이기 때문에 트레킹화,경등산화보다는
발바닥 창이 두꺼운 중등산화를 권한다.

 

 

거의 6시가 다되어 가미코지를 출발하여 히라노유를 거쳐 숙박지인 노자와민수꾸에서
맡겨 둔 짐을 찾아 다시 나고야로 돌아왔다.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탐험이 아니라고
하지만,내심 속도전의 탐험보다는 자연과 동화되는 자연의 일부가 되는 산행이 더 많아
지기를 기원한다.

당분간 해외산행은 다니지 않을 계획이다.이유는 내가 타국의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점,단체산행에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민감함이 가장 힘들게 했고, 또한 에티켓을
벗어난 낮은수준의 산행문화를 보여주는 한국인의 꼴불견을 두눈 뜨고 보고싶지않다는
점이다. 오꾸호다카다께산장에서는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 한국인을 위하여 별채에 따로
잠자리를 제공한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조금씩 산행문화와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세로 산행을 한다면 일본산행은 무엇보다 배울 것이 많은 산행이 될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고없이 각자 최선을 다해 준 일행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의 첫 일본행,일본의 산행은 설레임과 어설픔 사이에서 운무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끝)

공부는 등산 하는 것과 같아 경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멀리 정확하게 볼 수 있다.

-남명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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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
,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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