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시신이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루던 곳의 평화는

 

- 일시: 2024-1.13~14
- 날씨: 새벽엔 영하6도였지만 대체로 맑음
- 몇명: 홀로

 

칠곡(漆谷)의 옛지명은 팔거八莒였는데 조선 인조18년(1640) 가산산성이 축성되면서 팔거현이 칠곡도호부(七谷都護府)로 승격되면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가산산성이 있는 가산은 일명 칠봉산(七峰山)으로도 불리는데, 산정(山頂)에는 나직한 7개의 봉(峰)으로 둘러싸인 평정(平頂)을 이루고 골짜기도 사방 7개로 형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명칭을 따서 「七谷」이라고 했는데 그후 일곱 칠(七)자를 칠(柒)자로 바뀌어 「柒谷」으로 사용하다가 칠(柒)과 같은 자인 칠(漆)로 고쳐「漆谷」으로 다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칠곡군은 경북 서남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대구광역시 군위군, 서쪽은 김천시, 성주군, 남쪽은 대구광역시, 북쪽은 구미시와 접하고 있는 영남지방의 도로교통의 요충지입니다.낙동강이 칠곡군 중앙을 남북으로 흐르고, 그 동쪽으로는 팔공산맥에서 뻗어내린 가산(902m)ㆍ유학산(839m)ㆍ황학산(714m)ㆍ소학산(622m) 등이 솟아 있고 강 주변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하였습니다.하천은 팔거천과 이언천이 남류하다가 금호강으로 흘러들며, 그 밖에 경호천ㆍ두만천ㆍ서원천ㆍ한천ㆍ광암천 등이 낙동강에 유입하여 낙동강을 따라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6.25 전란시기 이곳은 낙동강방어선으로 남한은 이곳을 무조건 사수해야할 마지막 방어선이었고 북한은 이미 국토의 90%를 확보한 상태에서 나머지 10%만 뺏으면 전쟁이 끝나는 상황이었습니다.남북한 양진영 모두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 되다보니 전투는 치열했습니다.낙동강 방어선 전투 55일 중에서 특히 다부동에서 12일간 328고지에서는 고지의 주인이 15번 바뀌었고 이것을 모티브로 영화한 것이 "태극기 휘날리며"입니다. 지난 2000년 4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328고지에서 첫 발굴을 실시했고 이때 '최승갑'이란 이름이 새겨진 플라스틱 삼각자와 만년필·호각 등이 발굴됐고, 전사자 기록을 통해 70대 중반의 최승갑 아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이 사연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입니다.

대장간에서 대장장이가 단단한 쇠를 다룰때는 모루 위에 가열된 붉은 쇳덩이를 올려놓고 망치로 내리쳐서 모양을 만듭니다. '아무리 강한 쇠도 모루에 대고 망치로 두들겨대면 꺾인다'는 것으로 이런 작전을 "망치와 모루(Hammer and Anvil Tactic)전술"이라고 하는데 "포위 섬멸"작전으로 이순신장군의 학익진 전법도 이와 유사합니다.인천상륙작전이 "모루"에 해당한다면 "망치"에 해당한 것이 칠곡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방어선이었습니다.


시산혈하(屍山血河),시신이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루었던 곳이 칠곡이었습니다.지금의 평화는 많은 사람들의 피로 지켜냈었고 지금의 세계정세는 다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그리고 예멘으로 전장의 범위가 확산되고 있어서 대만과 한국도 경계심을 더욱 높여야 하는 시절입니다.  

칠곡은 왕건과 견훤의 혈투에서부터 임진왜란·병자호란, 가까이는 한국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그래서 흔히들 칠곡을 ‘호국의 고장’이라고 부릅니다. ‘호국의 고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이 가산산성(사적 제216호)입니다.

▷ 답사일정(風輪) :328km

 

가산산성 - 송림사 - 다부동전적기념관 - 칠곡신동입석 -가실성당 - 호국평화기념관 - 한미우정의공원(303고지학살추모비)-신유장군유적지 -칠곡가시나들벽화거리(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1168-11)

2024-1-13

 

▷가산산성


해질 무렵 가산산성에 도착했습니다.초승달이 떠 있고 영남 제일의 방호시설이라는 의미의 "영남제일관방" 현판이 보이는 가산산성 진남문에는 조명이 밝혀져 이곳이  피비린내나는 전장터였던가 싶을 정도입니다.

 


1950.8.18~27 가산산성 전투가 있었습니다.8월18일 북한군은 국군1사단 11연대본부와 미군 포병부대를 습격하였고 8월20일에는 동명초등학교의 국군 1사단 사령부까지 기습하는 등 아군의 후방을 교란하였습니다.

가산산성의 일대를 공격한 부대는 국군1사단에 배속된 8사단 10연대로 8월24일 남문과 서문을 공격하였고 동문과 북문의 퇴로를 차단하고자 했으나 완강한 저항을 받았지만 결국 적의 후방침투를 저지하기 위하여 8월27일 북한군이 차지한 가산산성을 탈환하였습니다.

 

조선시대 때 외적 방어용으로 건립되었으며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진 3중성입니다.웅장한 외관과 규모 덕에 가산산성은 이 당시의 행정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성을 무리하게 건설하면서 주변 민심은 바닥을 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여러 행정 관청과 시설들에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주둔해 있어서 미군과 한국군이 무진장 폭격을 하여 남아 있는 것은 없다고합니다.

<초토의 시 1-구상>

하꼬방 유리 딱지에 애새끼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려 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춰라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체니〔少女〕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그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구상 시인이 6.25 전쟁 당시 종군 기자로 활동하면서 전쟁을 보고 느꼈던 자신의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15편의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제목 자체가 초토라고 했습니다. 초토(焦土)는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 혹은 불에 탄 것처럼 황폐해지고 못 쓰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요즘 이런 장면은 가자지구에서도 보고 우크라이나 전장터에서도 봅니다.

 

 

(일박)

2024.1.14

 

진남문 안으로 들어가면 해운정사가 나오고 그 뒤쪽에 비석이 있는데 특히 하나의 비석엔 비각까지 있습니다.관찰사이공거사비 정각에는 이세재불망비가 있고,좌측으로 비석 6기가 있습니다.이세재는 인조26년(1648년) 출생한 나주목사 하악의 아들로서 현종 10년(1669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전설사 별검으로 등용되어 의금부도사,감찰,공조화랑,남원현감,병조좌랑,지평, 동래부사, 병조·예조참의 등을 역임했고 숙종 24년(1698년)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왜관수리 및 전정에 관한 사무와  더불어 가산산성의 축성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임기가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산 외성의  축성 때문에 숙종 27년(1701년) 2월 8일까지 재임하다가 예조참의로 전임됐어요. 그가  전임된 후 숙종 34년(1708년) 그의 공덕을 기려 고을백성들이 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합니다.

민심이 바닥을 쳤다는 내용도 보이고 공덕비도 나오니다만 이상하게 볼 것 없이 이런것이 인생사입니다. 

▷송림사

송림사는 1500년 고찰로 평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이 보입니다.최근에 보수를 해서인지 상당히 상태가 양호합니다.특히 청동으로된 상륜부는 보기 드문데 이곳엔 제대로 있습니다.

 


대웅전 현판은 숙종어필로 편액의 크기가 상당히 큽니다. 특히 대웅전 아래 문을 열면 사부대중이 부처님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문을 보면 중심에 4개의 문이 있고 그 다음 기둥 너머 3개의 문이 있으며 다시 기둥이 있고 마지막은 문이 하나입니다.전면 5칸이지만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이 같지 않다는 점이 특이점입니다.


상륜부가 제대로 있으니 탑이 정말 멋지게 보입니다.

▷다부동전적기념관

4.19로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과 간도 특설대 활동으로 백선엽 동상이 세워져 말이 많았던 다부동전적기념관입니다.

사람은 일개인으로서도 희노애락과 흥망성쇠를 거치기 때문에 어느 일부분만 딱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을 바라보는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결국 다층적으로 볼 수 밖에 없는데 공과 과
(功過) 분명한 사람 중에 백선엽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최근 "서울의 봄" 영화를 보면서 인간들은 도덕을 떠나 누가 더 집요하고 치열한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것을 느꼈습니다.물론 도덕으로 나쁜 것을 평가하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세월이 지나면 사필귀정이 됩니다. 대전(大田)은 한밭이라 북한군이 쉽게 돌파했고 대구(大邱)는 큰 언덕이라 북한군이 쉽게 돌파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그것 보다는 모두 인간 의지의 집합체를 비롯한 총체적인 결과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이곳엔 구국용사충혼비가 있는데 1994년 ~1997년 8차례에 걸친 육군 제50사단 장병들이 유학산 일대에서 발굴한 259점의 유해를 합장하고 구국용사의 묘가 있는데 이를 추모하고자 만들었다고 합니다.국군 제1사단,제8사단10연대,제7사단3연대 1대대,미 제1기병사단,미 제25사단 27연대,미 제2사단 23연대 장병들의 추모비입니다.이들이 진정한 영웅들입니다.

국군과 북한군의 전력을 비교해보면 단단한 "쇠뭉치" 북한군이 느껴집니다.이들을 녹여 컨트롤하기 위하여 쇠뭉치를 벌겋게 달굴 필요가 있었는데 8월16일 유엔군의 융단폭격을 실시했습니다. B-29 폭격기 98대가 북한군 집결지에 960톤의 폭탄을 투하했습니다.제대로 "망치"로 두드렸습니다. 


영화 퓨리의 제작배경 모티브가 된 어니스트R ,코우마 중사입니다.홀로 M-26전차에 남아 9시간 사투를 벌여 북한군 250여명을 사상했습니다.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한 날 한 시로 하자" 
국군 제1사단의 맹세

▷신동입석

 

입석은 우리말로 하면 "선돌"로 신동입석은 높이 4.5M로 우리나라 입석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합니다.주로 지역간의 경계나 신앙의 대상물 또는 마을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나무아미타불 글씨는 불교 전래이후에 새겨졌고 이 선돌은 청동기 유적입니다. 

▷가실성당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면 한국은 "한티가는 길"이 있습니다.45.6 km로 출발점은 가실성당이며 신나무골 성지-사기점공소- 금낙정-동명성당-송림사-원당공소-진남문-한티순교성지-십자가앞마당으로 이어집니다.


칠곡가실성당은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입니다.1923년 새로 지었는데 설계는 명동성당을 설계한 빅토르 루이 푸아넬 신부가 맡았다고 합니다.

가실성당은 6.25당시 남과 북 양측이 야전병원으로 사용하여 치열한 낙동강 전투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2005년부터 가실성당으로 불리지만 1958년부터 2004년까지는 낙산성당으로 불렸습니다.

▷호국평화기념관


먼저 칠곡보를 바라보며 왜관지구전적기념관을 둘러봅니다.

볼이 발갛게 복사꽃 같은 나이에 사랑도 하나없이 전쟁터로 나서는 출정사가 눈길을 끕니다.한동안 서늘하게 얼어붙게 만듭니다.


낙동강 방어선은 처음에 X선이었는데 불과 2주가 지나자 더욱 쪼그라들어 Y선이 됩니다.그리고 X선 이후 한달 보름만에 X대비 다시 절반으로 쪼그라든 최종방어선이 보이는데 포항에서 경주,영천,대구,현풍,창녕,영산,남지,마산이 보이고 데이비드선 안에는 울산,밀양,창원,진해가 보입니다.임시 수도는 부산입니다.


칠곡을 중심으로한 낙동강 방어선 55일간의 전투가 일목요연하게 보입니다.

왜관철교 폭파(현재 보수공사 중이었습니다.) -369고지 전투(태극기 휘말리며 제작배경의 최승갑 용사의 유해가 발견된 곳)-금무봉전투-자고산 미군포로 학살만행 - 유학산 전투(9회에 걸친 백병전,지게부대인 노무부대의 헌신)-328고지 전투(12일 동안 주인이 15번 바뀐 전투)-수암산 전투 - 유엔군 융단폭격 실시 - 볼링앨리 전투(6.25 전쟁 최초의 전차전) - 가산산성 전투-가산전투-팔공산 전투-315고지 전투(대구 북쪽 12km지점까지 북한군 진출)

▷한미우정의 공원


자고산 미군포로 학살사건으로 인해 생긴 한미우정의공원(303고지학살추모비)이 생겼습니다.

8월13일 북한군 3사단은 낙동강을 도하하여 자고산(303고지)을 지키던 미 5기병연대 2대대를 공격하였고 전투 중 대부분의 미군은 북한군의 포위를 뚫고 탈출하였으나 8월16일 1개 박격포 소대가 국군의 증원을 기다리다가 북한군을 국군으로 오인하여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었습니다.이후 미군이 자고산을 탈환하자 북한군은 빠르게 후튀하기 위해 도중에 41명의 미군 포로들을 총살하였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45명중 4명은 동료의 시신 밑에 숨어 있다가 살아남아 그날의 전쟁범죄를 증언하였습니다. (생존자 사진)

▷신유장군유적지 

2007년 개봉된 영화 300이 기억나는데 내용을 보년 100만대군이 그리스를 침공하는데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300명의 스파르타 요사들을 이끌고 "테르모필레"협곡을 지킵니다.

신유장군은 나선정벌(나선은 러시아 혹은 러시아 사람을 지칭)을 한 장군입니다.효종 9년(1658년) 신유장군이 함경북도병마우후로 있을때 청나라의 요청을 받아 원군을 이끌고 흑룡강 부근에서 그곳을 침입한 스테파노가 이끄는 러시아군을 거의 전멸 시킨 큰 공을 세운 것을 말합니다. 신유장군이 이 기록을 남긴 것을 북정록(北征錄)입니다.조총군 200명으로 러시아를 격파했는데 러시아군은 전립을 쓰고 백발백중 사격술을 보인 조선군을 두려워 했는데 러시아의 카자크인들은 조선군을 대두인(大頭人)으로 본 이유가 조선군은 전립을 쓴 것을 본 이유입니다.

 

조선의 효종은 청나라를 정벌하려는 북벌을 위해 조총부대를 양성하는 등 군비강화에 노력했는데 오히려 나선정벌로 청나라를 돕게 됩니다.힘이 약한 나라의 비애가 느껴집니다. 조선의 조총은 화승총으로 심지를 사용했다면 러시아는 부싯돌울 이용하여 앞선 기술이었는데 신유는 청나라에 애걸복걸하여 전리품 중 단 한자루의 러시아 조총을 조선으로 가져오게 됩니다.북정록을 보면 피눈물 상황이 여러번 나옵니다.

신도비 비각안에는 2개의 신도비가 있는데 좌측 비석은 한국전쟁으로 파손되었고, 우측의 비석은 현대에 들어 새로 복원한 것이다. 포탄자국으로 보입니다.

▷칠곡가시나들벽화거리(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1168-11)

2019년에 단편영화 "칠곡가시나들(Granny Poetry Club2019)"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지금도 검색하면 나오는 영화 소개글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때론 컨닝도 하고, 농띠도 피워가며 ‘가갸거겨’ 배웠더니 어느새 온 세상이 놀 거리, 볼 거리로 천지삐까리! 눈만 마주쳐도 까르르르, 열일곱 가시나가 된 할머니들 이제 매일매일 밥처럼, 한 자 한 자 시를 짓게 되는데… "고마 사는 기, 배우는 기 와 이리 재밌노!" 한글과 사랑에 빠진 칠곡 할머니들의 두근두근 욜로 라이프가 시작된다! 제2회 제주혼듸독립영화제 초청 (2019)"


하루종일 전쟁관련 주제만 다루었으니 아무리 호국의 고장 칠곡이라고 해도 그 뒤에 이어지는 "평화"를 대변하는 곳은 이곳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왔습니다.



도래꽃을 보면 돌아가신 영감님 생각이 나서 지은 시 같습니다.노란색이고 도래꽃이라고 한 것을 보니 혹시 다래꽃인가 싶습니다.

 


이건 엄마생각의 모티브가 느리게 걷는 할매입니다.


"화투치니 기분이 좋다.돈따면 더 좋다." ^^* 

할매 사랑,손녀사랑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리 천하고 고생스럽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는 말을 이렇게 쉽게 할줄이야.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는 일곱 할머니들의 노년의 일상을 설렘으로 만든 다큐멘터리입니다.

 

칠곡 답사여행을 하면서 문득 어릴 적 라시찬 주연의 "전우"가 떠올랐고 아직도 귀에 생생한 별넷의 전우의 주제곡이 떠올랐습니다.

"무너진 고지 위에 태극기를 꽂으면 마음은 언제나 고향이 간다" 
 
그런데 낙동강방어선 뒤 생각나는 노래는 "전우야 잘자라"입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흘러가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를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 "

2절에는 추풍령이 나오고 3절에는 한강수가 나옵니다.4절에는 삼팔선이 나옵니다.

낙동강 방어선의 최대격전지,왜관~다부동에서 벌어진 55일간의 혈전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전투였으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한 승리로 세계 전사에 기록됩니다. 

 

P/S
일정에 빠졌지만 "구상문학관과 선봉사대각국사비, 도덕암"도 볼거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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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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