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영암)고조선은 마한으로,마한은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 일시:2022-10-5~6
- 날씨:대체로 맑은 가운데 밤엔 기온 0도로 강하  
- 몇명:홀로

 

 

▷ 답사일정(風輪) : 나주,영암 650km

 

(나주)반남고분군,나주박물관-복암리고분전시관-복암리고분-(영암)마한문화공원-내동리 쌍무덤-태간리 자라봉 고분

 

 

우리나라의 지금 국호는 대한민국(大韓民國)입니다.여기서 한국의 韓은 어디에서 왔느냐 하면 고종의 대한제국에서 왔습니다.그럼 고종은 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했을까요? 그것은 마한,진한,변한을 아우르는 큰 한, 즉 대한으로 국호를 정했기 때문일겁니다.그중에서도 마한(2000년전~1500년전,김제의 벽골제가 만들어진 시기는 1700년전인데 황등제는 벽골제보다 600년 더 이른 시기 축조)을 생각했을 것인데 마한은 발해만 일대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이 디아스포라로 현재 전북의 익산지역으로 와서 고조선에서 새로운 땅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익산은 전북지역으로 전북하면 떠오르는 전주는 전주 이씨 왕가로 대변되는 조선과 연관이 깊어 풍패지향(風沛之鄕:제왕의 고향)입니다.익산과 전주는 전북의 만경평야 근처로 조선과 연관이 깊다고 봅니다.나중에 충청도와 전남지역까지 마한의 영역으로 넓혀갑니다만 마한 첫 시작은 전북지역으로 보입니다.아마도 고종은 이러한 생각을 밑바탕으로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북한은 김일성 이후 백두혈통이라고 하지만 전주 김씨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남북한 모두 전북에서 출발한 느낌이 듭니다.

결국 고조선에서 마한,마한에서 대한으로 이어져 지금도 이어진다고 보아야겠죠.익산에는 벽골재와 비슷한 수리시설인 황등제가 있었습니다.익산은 만경강 유역인데 나중에 꽃을 피운 곳은 영산강유역입니다.

 

전기 마한은 경기도,중기 마한은 충청도라면 후기 마한은 나주와 영암인데 오늘 나주와 영암 중심으로 둘러 보았습니다.특히 고분에 가면 설명이 부실하고 그냥 커다란 무덤만 있기 때문에 박물관 혹은 전시관이 곁에 있는 나주박물관과 복암리고분전시관을 끼워서 탐방을 했습니다.

(익산 황등제 호수를 중심으로 남쪽을 호남(湖南)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표의 "톤"이 의미하는 것은 신라 원성왕 시기 영천 청제의 300석을 기준으로
역산한 해당 수리시설을 이용한 "농업 생산력"을 의미합니다)

 

▷나주박물관,반남고분군(전남 나주시 반남면 고분로 747)

 

부산에서 300km를 달려 반남고분군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복암리로 먼저 가려다 반남고분군의 야간사진을 먼저 촬영하고자 반남고분군으로 먼저 왔습니다.하늘엔 달이 조명처럼 떠 있고 고분은 야간조명으로 빛이 납니다.

아침에 일출시기에 맞추어 반남고분군을 둘러봅니다.어차피 나주박물관은 오전 9시에 입장가능해서 0도까지 급강하한 새벽 찬기운을 즐기며 한바퀴 천천히 돕니다.

마을 풍경을 보니 비산비야로 정감이 가며 날씨는 춥지만 기분만은 온화한 느낌의 평화롭다는 인상입니다. 

차로 돌아와서 군고구마와 커피로 간단한 아침을 대신합니다.통삼겹과 군고구마를 준비했는데 어제부터 11월 초순에 드니 겨울이 온 듯합니다.나의 베이스캠프 풍륜은 드레인을 했습니다. 

 

▷나주박물관

옹관묘의 크기가 3m 정도 됩니다.옹관의 모양은 뭔가 달걀을 반쯤 두개 합쳐 놓은 듯 인간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다시 비슷한 형태의 "알"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지상에서 하늘세계가 아닌 다시 지상의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고조선 준왕은 태안반도 아산만으로 처음 들어온 것으로 유추합니다.


근처 미륵산성은 용화산성(龍華山城)이라고도 불리고 고조선의 준왕이 쌓았다고 하여 기준성(箕準城)이라고도 합니다.

‘위략’에는 연나라에서 활동하였던 위만이 고조선에 망명한 다음, 한나라가 침공하니 막아야 한다고 준왕을 속이고 정권을 탈취하였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지’는 이를 인용하면서 준왕이 바다를 통해 한(韓) 지역으로 망명하여 한왕을 칭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194년에 일어났던 사건인데 당시 한이라는 역사적 실체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조선 준왕이 남하하였던 시기의 한은 아직 마한으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진한과 변한이 분화된 다음에 서로 구별하기 위해 마한이라 불린 것입니다.

마한은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분포한 삼한(三韓) 중의 하나로 대체로 BC 1세기~AD 3세기에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 분포한 54개의 소국(小國)을 가리킵니다.진수(陳壽)의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따르면, 마한 54소국은 큰 나라는 1만여 가(家), 작은 나라는 수천 가로서 모두 합하면 10여 만 호(戶)가 됐다고 합니다.

마한은 백제에 병합되기 이전에 백제와 다른 문화로 보아야 합니다.그동안 마한문화는 백제로 인식되어 잘 못 알려졌습니다.마한이 옹관묘와 분구묘라면 백제는 횡혈식 석실분으로 대표됩니다.


▷나주복암리고분전시관(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백호로 287)

실내로 들어가면 거의 실측에 가까운 크기로 복암리고분을 재현해 놓았는데 상세하게 속을 들여다보여줍니다.복암리고분은 근처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원래는 칠조산(七造山)으로 불리었는데 봉분이 7개 였지만 경지정리로 3개는 없어지고 현재 4개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상당히 규모가 큽니다.분구묘로서 먼저 봉분을 쌓고 이후 옹관을 사용하여 매장하는데 이후 다른 사람이 죽으면 또 흙을 도우거나 혹은 또 다른 옹관에 시신을 넣고 매장하는 방식이라서 일명 아파트식 매장법입니다.

▷영암/마한 문화공원(전남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526)

고인돌 분포도를 보면 현재의 중국,한국,일본에 걸쳐있는데 전라남도에 가장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전라남도는 과거 마한지역이고 그 마한은 고조선과 관련이 있다고 최치원이 말했습니다.옛날 고조선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이 바로 고인돌 분포도와 비슷하다고 본다면 마한이 고조선의 원점이라는 의미가 됩니다.고조선 다음에 마한이지만 겹쳐서 바라보니 그럴 듯 합니다.시각을 넓혀 해상실크로드를 생각한다면 해남반도 부분이 항구도시로 적격입니다.그 근처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발견됩니다.항구도시 성격으로 다양성과 개방성이 기본이겠죠.그런 연유로 그 많은 유리구슬이 수입되었을 겁니다.

특히 한반도 서해와 남해의 분기점에 해당하는 지역은 그 당시 배를 이용하여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천혜의 지역이었는데 고인돌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마한이 해상무역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시대였는데 해상왕국으로서 많은 유물이 나옵니다.엄청난 유리구슬이 눈에 가장 먼저 보입니다.이 유리구슬은 동남아시아(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미얀마,인도네시아,인도,스리랑카)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하니 기존의 중국과 일본이라는 영역에서 생각하는 것을 깨야합니다.

(고인돌 분포도)


마한은 기록이 드물지만 신라 왕릉의 무덤과 비슷한 크기도 놀랍고 보통 무덤 하나에 피장자가 한두명이라는 상식을 깨고 옹관이 여러개 들어 있어서 아파트형 무덤이라는 것도 특이합니다.특히 옹관의 크기를 보면 지금도 만들기 어려울 정도로 큽니다.

봄과 가을에 제천의식을 치르고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하는데 강강수월래를 통해서 마한춤의 원형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금동관이 눈에 띄는데 나주 금동관의 대관은 신라의 나뭇가지모양이나 가야의 연꽃봉오리 장식과 비슷해 두 나라의 영향을 모두 받은 느낌을 줍니다. 모관은 백제의 영향을 받았지만, 대관은 가야·신라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최근 고인돌 분포 통계표에 의하면 북한 4,217기, 강원 412기, 경기도 957기, 충북 218기, 충남 743기, 전북 1,969기, 전남 22,560기, 경북 3,125기, 경남 1,660기, 제주 105기 등 약 35,966기 입니다.전남 영산강 유역이 압도적입니다.

 

▷내동리 쌍무덤(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산579-1번지)

길옆에 있는데 가장 큰 무덤은 전방후원분 비슷하지만 정확한 전방후원분의 형식은 아닙니다.타원형인데 말안장 같은 느낌이 듭니다.금동관편,대도2점 등이 출토되어 마한의 최고 수장층의 무덤으로 보입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월출산이 타오르는 불꽃 모양으로 배경이 됩니다.

▷태간리 자라봉 고분(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 747)

원방분(圓方墳)형식의 고분입니다.뒤로 월출산이 또 배경이 됩니다. 이 고분이 지니고 있는 여러 요소는 일본 전방후원분의 고식고분(古式古墳)에서 동시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그 기원을 추구하는데 참고가 될 것입니다.

▷월출산

월출산을 보니 백제대향로가 떠오릅니다.아마도 백제대향로는 월출산을 보고 모티브로 해서 만든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윗부분 이미지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월출산은 워낙 잘생긴 산이라서 멀리서 바라보면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인간세상에 있는 풍경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잘생긴 월출산에 눈길이 자꾸갑니다.이곳 지명 영암(靈岩)은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의미입니다.당연히 천하명물 월출산 때문에 붙은 지명입니다.오늘 역광에 신기루처럼 영험하게 보이는 월출산을 보고 더욱 영암이라는 것에 공감합니다.

 

마한,진한,변한 중 진한은 가야로,변한은 신라로 쉽게 복속이 되었지만 마한은 진한,변한 보다는 훨씬 많은 54개 소국으로 이루어져 백제 병합이 늦어졌습니다.삼한은 대한이 되었습니다.최근 마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는것을 느낍니다.54개 소국이 아닌 단 한개의 강력한 국가로 있었으면 훨씬 백성들이 고달팠을겁니다.마한은 풍요로운 땅에서 전쟁보다는 봄가을 하늘에 제사지내고 음주가무를 즐긴 평화로운 나라였습니다.지방자치제 처럼 그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변화 적응했기 때문에 마한은 시기별로 신라,가야,백제,왜의 영향도 받았습니다.그만큼 마한의 위치는 한반도가 중국과 일본을 넘어 동남아,인도로 가는 한반도의 모서리 돌출된 장소였습니다. 과거 강과 바다는 해상의 고속도로였습니다. 


마한사회가 추구하는 것은 풍요로운 땅에서 경제적으로 풍족하여 평화로웠고 소국이 많았다는 것은 큰 나라가 가지는 무력이 필요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기류가 적게 발굴됩니다.가장 많이 발굴되는 것은 농기구입니다.이것은 무덤을 보더라도 아파트처럼 함께 묻혀있는데 이는 모계사회의 특징이 잘 녹아 있습니다.그래서 유리구슬이 많이 출토되는 이유로도 유추됩니다.그런 시각으로 보면 옹관이 어머니 뱃속 같은 아늑한 공간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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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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