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筆寫(한시필사)

소나기(驟雨·취우) /허적

세벗 2023. 8. 24. 13:12

#한시

소나기(驟雨·취우) /허적

어지러운 바람이 소나기 몰고 다니니(亂風驅驟雨·난풍구취우)
앞쪽 기둥은 비 뿌려 온통 젖어버렸네.(霑灑滿前楹·점쇄만전영)
날아다니는 폭포 되어 처마 타고 떨어지고(飛瀑緣簷下·비폭연첨하)
세차게 흐르는 물길은 섬돌 따라 돌아가네.(流湍澆砌橫·유단요체횡)
이미 무더위 다 씻어 몰아냈으니(已滌炎威盡·이척염위진)
되레 상쾌한 기운이 많이 살아나네.(還多爽氣生·환다상기생)
저녁 무렵 먹구름 걷히고 나서(向夕陰雲捲·향석음운권)
옷깃을 열고 밝은 달을 마주하네.(披襟對明月·피금대명월)

 

#漢詩筆寫

*풀이

위 시는 조선 중기 문신인 수색(水色) 허적(1563∼1640)의 ‘소나기(驟雨·취우)’로, 그의 문집인 ‘수색집(水色集)’ 권5에 들어 있다. 그는 1597년(선조 30)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판서까지 올랐으며, 시문에 능하였다.

어지럽게 부는 바람이 소나기를 몰고 다닌다. 이럴 때는 집 밖에 나가기 어렵다. 우산을 펼쳐 들어도 뒤집어진다. 집 대들보 기둥에 비가 들이쳐 다 젖어버렸다.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는 폭포와 다름없다. 집 뒤쪽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처마의 물줄기가 합쳐져 섬돌을 따라 세차게 흐른다. 집 안 사정이 이럴진대 바깥 개울은 보나 마나다. 태산도 삼킬 듯 넘쳐흐르고 있을 것이다.

소나기가 가시자 무더위가 사라진다. 되레 상쾌하기까지 하다. 언제 그토록 사납게 퍼부었느냐는 듯 저녁이 되니 하늘은 고운 달을 내놓았다. 시인은 소나기를 묘사하며 비 그친 뒤 밤하늘에 떠오른 달을 시로 그려내는 재능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