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시인ㆍ외교관. 자는 대수(大手), 호는 습재(習齋). 본관은 안동. 1543년(중종 38) 진사, 이어서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 부제조(承文副提調)ㆍ강원 관찰사를 역임. 사신으로 두번이나 연경(燕京)을 방문했다. 시에 능하고 문명이 높았다. 시 《효행(曉行)》 등의 작품이 있다.
'칠석우서七夕偶書'(칠석날 우연히 쓰다). 조선 중기의 문신 권벽의 시다. 한시에 능해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를 즐겼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산다는 건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견우와 직녀도 일 년에 딱 한 번 칠월 칠석날 오작교에서 잠깐(俄時) 만나고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만남과 헤어짐에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얘기다. 권벽은 73세까지 살았다. 그 당시 기준으로는 장수를 누린 셈이다. 중종~선조까지 네 임금을 모시고 벼슬살이를 50년 했으니 관운도 좋았다. 관직생활 동안 가사는 전적으로 아내 몫이었고 집안에 손님도 들이는 법 없이 여가시간엔 오직 시에만 마음을 쏟았다. 그가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데에는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가 한몫을 했으니 처복도 좋다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