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잊혀간 왕국,아라가야의 유서깊은 역사와 찬란한 문화에 다시 눈을 뜨다.

- 언제 : 2011.12.3(토) 10:00~17:00
- 얼마나: 2011.12.3 11:10~15:00
- 날 씨 : 맑음
- 몇 명: 홀로
- 어떻게 : 자가SUV 이용
▷장춘사-무기연당-대산리 석불-무진정-도항리,말산리 고분군-함안박물관

 

 

 

드디어 겨울이 왔다.겨울은 내가 생각하는 등산의 꽃같은 계절이다.동계 산행은 다른 계절보다는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그래서 겨울이 산행의 꽃이다.원래 등산이란 것이 가혹한 함정을 넘어서는 더 많은 유혹이 있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통풍으로 술을 끊게 만들더니 이번엔 고질화 조짐을 보이는 아킬레스건염으로 산행을 못하게 만든다.내가 좋아하는 것을 시기하는 그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프랑스의 철학자 R.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지만 산행인들은 원래 "우리는 산에 오른다,고로 존재한다"는 역설에 어울리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래서 산과 건강의 함수에서 적당한 타협을 한다.등산은 아니지만 산기슭에서 배회하는 것이다.특히 문화유산답사는 산기슭이나 산아래를 배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에 결정한 장소는 함안咸安 이었다.함안은 부산에서 차로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있는 곳이다.함안하면 흔히 지리산 자락의 함양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함안咸安의 안安은 아라가야阿那伽倻, 즉 안라安羅의 안安과 결부하여 외워두면 다음엔 헛갈리지 않을 것 같다.

 

 

경남 함안 성산산성(사적 67호)에서 최대·최고(最古)의 목간(木簡) 65점이 대거 쏟아짐에 따라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함안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다.신라가 아라가야(安羅·함안)를 수중에 넣는 555~561년 사이가 출토목간의 연대이다.목간은 각 지방에서 보낸 군량미 등을 받으면서 “잘 받았다”고 확인시켜주는 물품꼬리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철제 마갑馬甲은 김해에서 익히 보아왔던 터라 눈에 친숙하게 느껴졌다.그 외 함안은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므로 미리 스케쥴을 잡아서 하루를 둘러보기엔 참 좋은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함안으로 들어서니 새로운 장소의 함안IC가 네비게이션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장춘사였다.

 

경남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14

 

들어가는 길이 호젓하며 약간 아슬하여 답사의 맛을 느낄 수있는 곳이었다.
허술한 싸립문이 정감이 있는데 잠겨있고 별도로 우측에 열린 문이 있다.
무릉산 장춘사라고 적혀있다.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오밀조밀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장춘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7년(832)에 무량국사(일부는 무염국사가)가 세운 절로
입구에 들어서면 오층석탑(경상남도유형문화재 68호)이 대웅전 앞에 서 있다.

 


원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곳에 옮겨 왔다고 하는데 2중기단에 5층의 모습이었으나
지금은 4층만 남아있고 바로 옆에 석탑부재가 아름답다.고려후기 작품이다.

 

 

 

 

 

 

꽃창살이 아름다운 대웅전은 1979년에 새로지은 건물이라고 한다.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에 팔작지붕이 잘 어울린다.스님의 불경소리가 청아한 옆문으로 들여다보니

내부에는 하얀색의 수기삼존불상이 있다.

대웅전 뒤로 곡선의 돌계단이 안내하는 곳은 약사전이다.약사전 옆에는 산신각이

따로있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장춘사 절집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단칸건물의 약사전 문을 열어보니 석조약사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금빛으로 개금하여
금동불처럼 보이고 불꽃문양(화염문)의 광배光背의 빛깔이 붉은 색이어서 금빛의
이목구비가 뚜렷한 불상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통일신라 후기 혹은 고려 초 정도의 작품

이다.

다시 아래 대웅전 앞 도량으로 내려오니 설법전의 편액이 무설전으로 되어 있다.


불경을 강의하는 설법전이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은 언어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에 있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무설전(無說殿)이라고 명명하니
불교 만큼 철학적으로 반전의 묘미를 보이는 곳이 또 있을까?

 

 

 

 

 

 

 

 

 

두번째로 간곳은 도교적 느낌이 강한 무기연당咸安舞沂蓮塘(중요민속자료 2205호)이었다.

경남 한안군 칠원면 무기리 966

무기리 주씨고가 정려를 지나 무기연당으로 들어가려했으나 아쉽게도
한서문이 잠겨있다.담 너머 무기연당을 까치발로 들여다 본다.



주재성은 조선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함께
난을 진압한 인물이다. 그때 서당 앞 넓은 마당에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봉래산을 만들었다.삼신사상 때문인지 한눈에 보아도
제법 원형에 가까운 남근석이 눈에 띄는데 아마도 후손번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못가에 바람에 목욕한다는 풍욕루와 하환정이 보이는데,하환정이 내눈을
크게 만든다.어찌 하何 바꿀 환換,즉 "어찌 바꾸겠는가?"의 의미다.


"이 즐거움을 어찌 나랏일과 바꿀 수 있겠는가?"의 뜻이지 않을까?

아마도 난을 진압하면서 보았던 참상 때문에 생긴 회한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음 장소는 대산리 석불이다.

경남 한안군 함안면 대산리 1139

대사골로 불리는 마을 앞 폐사지에 3구의 불상이 남아있다.
내가 예상한 것 보다는 크지 않았다.아마도 내 머리속에
대산리의 대大와 석불石佛이 편집되어 대석불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 없는 본존불 좌우로 협시보살로 보이는데 머리에는 두건 같은 관을 쓰고 있다.
옷주름이 뚜렷한 석조보살상이다.대좌는 연꽃으로 화려하고 아래 8각의 단에
각 면마다 귀꽃을 표현해 놓았다.고려 시대 불상으로 조금 떨어진 우측에
관음보살상으로 보이는 몸체만 남아있는 불상이 있다.

아쉽게도 사진을 찍으려는데 두그루의 큰 느티나무 때문에 그늘이 졌다.

 

 

 

 

 

 

 

 

 

 

 

대산리 석불에 가기 전 보았던 무진정을 다시 찾았다.

경남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547

무진정(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58호)은 정말 놓여있는 위치가 절묘한 곳이었다.
풍류를 즐기기 위해 이런 공간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무진이란 다함이 없다는 뜻인데 이곳의 풍광과도 잘 어울린 이름이다.


이 정자는 조선 명종 22년(1567)에 무진 조삼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세우고, 조상의 호를 따서 무진정이라고 하였다.



무진은 조선 성종 14년(1483)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ㆍ창원ㆍ대구ㆍ성주ㆍ상주의 목사를 지냈고, 사헌부집의 겸 춘추관편수관을 지냈다.

우선 괴산재로 먼저 들어간다.괴목은 느티나무를 의미하고 이곳은 괴산리이다.


과연 무진정에도 엄청난 크기의 느티나무가 많았다.뒤로 난 언덕을 오르니
무진정 정자이다.언덕에 오르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진정에서 내려 연못으로 향한다.

 

 

 

 


큰 바위와 대나무,연못,느티나무,왕버들,수양버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정말 대단하다.
다만 후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연못을 가로지르는 몇개의 다리가 오히려
볼썽사납게 만들었다.너무 보태어 여백의 미를 죽여버린 것이다.

 

 

한바퀴 도는데 노비의 비석이 보인다.충노대갑지비忠奴大甲之碑

충성스러운 노비 대갑이라는 사람의 비인데,자료를 찾아보니


정유재란 당시 노비인 대갑이 주인인 조계선을 모시고 전쟁에 참여했는데
조계선이 전사하게 되자 함께 죽는 것이 옳겠지만 공의 죽음을 알릴 길이 없어서 의주에서
돌아와 본가 5리쯤 떨어진 곳에서 조계선의 부음을 알리고 "혼자 살면 어찌 면목이

있겠습니까. 주인을 난亂에서 구출하지 못하여 집에 갈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하고 검암천에 투신 자살했다고 한다.

충노대갑지비 좌측의 글을 보면

의롭구나!.이 노비.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봐도 부끄럼이 없다네.
고금에 드문 일이니 비석에 적노라

요즘의 관점에서 보면 신파조의 내용이지만 한 시대상을 알려주는 희귀한 비석이다.


조준남과 그의 아들 조계선을 기리는 비는 전각에 있지만 노비의 비석은 비바람 맞으며
주인 옆에 서 있다.그렇지만 노비의 비석을 세웠다는 자체로만 보아도 의미는 있어보인다.

바위와 느티나무 뿌리가 함께 뭉친 한 공간에 금줄을 쳐 놓았다.원래 풍류의 공간에
신령스러움이 있는 법이다.

 

 

 

 

 

 

 

함안박물관으로 가는길에 도항리,말산리고분군을 만났다.


말산리의 지명은 당연히 말산에서 왔는데 말산(末山)은 원래 말이산이고
마리산은 머리頭산의 의미이니 어떻게 이렇게 의미가 다르게 변한 것인지
신기할 정도다.

가야읍 뒤로 보이는 산에 있는데 차를 타고 가다보면 그대로 눈에 드러난다.


구릉에 오르니 고분이 보이고 3.1운동 기념탑도 보인다.이후 수십여기의 릉이
줄을 맞추어 길게 늘어 서 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보다는 낮은 산이나 산등성이에 이어져 있다.
발굴 조사 결과 각종 토기ㆍ철기ㆍ장신구와 사람의 뼈가 발견되었고 함안 박물관에
가면 볼 수있다.이곳에 서면 함안시내가 그대로 보인다.

고분을 본 다음 함안박물관으로 갔다.아라가야의 상징 불꽃무늬가 있는 형상 건물로
들어가니 관람료가 500원이다.커피 한잔 값에 1시간 정도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마지막으로 함성중학교의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을 보려고 이동하던 중
함성중학교에 거의 다다른 상태에서 차기름을 보충하고자 들런 농협주유소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주유하는 분이 글쎄 경유차에 휘발유를 넣는 혼유사고가
난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차량 내의 휘발유를 뺀 후 경유를 넣고
다시 답사길에 나서려니 오후 6시가 되었다.3시간 시간낭비를 한 것이다.


사자석탑은 다음에 함안을 찾으면 그때 볼 생각이다.

김해로 가서 중학교 동기들과의 정기모임을 갖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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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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