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義는 고통이 따르지만 마땅히 해야하는 옳음이기에

- 일시: 2024-3-8 22:30 ~3-10 06:45
- 날씨: 대체로 맑음
- 몇명: 홀로

 

의성(義城)은 이름부터 옳을 의(義)로 시작합니다.義는 "옳다,의롭다.바르다,선량하다.착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義는 단어, 문장의 '의미'를 나타내며, 意는 사람의 '의지'를 나타내어 서로 구별됩니다.또한 도의(道義), 예의(禮義)와 같이 '마땅히 옳은 것'의 의미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마땅할 의)와 의미가 비슷한데, 형용사 '마땅하다'의 뜻을 가진 宜에서 명사 '마땅히 옳은 것'으로 의미가 파생된 것을 義로 표현했습니다. 宜는 평성이고 義는 거성입니다.

義는 선량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정신세계이지만 지명에 이렇게 옳을 의가 붙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북한에는 의주가 있고 남한에는 의왕시(義王市)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지명에 이렇게 옳을 의로 시작한다면 간단치가 않습니다.옳고 바른 일이라면 마땅히 해야하는 사람의 일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엄청난 고혈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前文)을 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합니다.의(義)보다는 불의(不義)부터 나옵니다.여기서 불의는 이승만과 이승만정부입니다.자신이 살고 있는 지명에 덧붙여 "양민학살"이라고 치면 거의 모든 지역에서 나옵니다.

"의성양민학살"이라고 치면 그 내용에서 처절한 피눈물이 느껴집니다.학살된 숫자만 보면 연산군보다 훨씬 더합니다.2십만은 기본입니다.이승만이 불의라면 이승만을 쫓아낸 것은 정의입니다.역사를 윤색하고 동상을 세우더라도 대한민국의 헌법에도 이승만은 불의라고 나옵니다.그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입니다.  

(이승만 양민학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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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이틀 후 일본으로 망명정부의사를 타진한 이승만
https://youtu.be/hssWxSCNBAg?si=ygCIijU536RMOaFQ

 

원래 의성은 조문국(삼한시대)-문소군(후삼국 신라시대)-의성부(고려시대)-의성군(조선 고종)으로 지명이 바뀌었습니다.후삼국 시대에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한반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일 때 의성 지역은 군사적으로 요충지에 해당하여 왕건과 견훤이 호시탐탐 노리는 지역이었습니다.홍술은 문소군의 토호였는데 왕건에게 귀부했습니다.이후 문소성을 지키던 홍술洪術(=홍유洪儒)장군이 견훤에게 패할 것을 알면서도 의롭게 싸워 전사함으로써 왕건이 부여한 지명이 의성이며 이후 의성부(義城府)로 승격됩니다.고려사에서는 왕건이 그의 전사 소식에 '양 팔을 잃은 것 같다.'고 절규할만큼 이름있는 인물이었습니다.의성 위는 안동인데 두 지역 모두 왕건과 관련된 지명입니다.


▷ 답사일정(風輪) :470km

 

빙계계곡-수정사-산운마을-의성에코센터-의성탑리리오층석탑-조문국박물관-조문국사적지-의성방단형적석탑(경북 의성군 안평면 석탑1길 141-14) -만장사-토현지

 

2024-3.8 

 

분명히 퇴직 이후 백수인데 천성이 부지런하고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여 쉴틈이 별로 없는 말년운이 대단히 좋은 백수입니다.모두 돈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어서 "N잡러"는 아니지만 돈과 별도로 여러가지 일을 하니 활동량만큼은 유사합니다.말년이 좋으려면 일단 초년 고생은 좀 했어야합니다.주역으로 유명한 중국 송나라 학자 정이천(程伊川)은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이라고 했습니다.초년운이 좋다면 말년운이 나빠질 확률이 높겠죠.저는 초년운이 신통치 않아서 거꾸로 말년운이 좋은 1순위는 통과되었고 젊은 날 많은 경험이 있으면 말년운이 좋을 확률이 확 올라 갈 것인데 여기도 저는 통과했다고 자부합니다.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커서 걱정이 없고 술,담배,커피,탄산조차 하지 않는 저는 인연을 가려가며 벗하니 우환이 적습니다.마지막 하나 남은 "늘 긍정적인 언어" 사용을 좀더 강화하면 됩니다.긍정적인 언어 사용이 잘 안되면 언지불출(言之不出,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 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밤이 되니 미리 공부했던 의성출신 오효원이라는 시인의 시가 생각납니다.

 

夜坐 (야좌) - 오효원

책을 읽는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해
밤새워 등잔불이 깜박거려 훤히 밝아
종년은 알지 못해서
사립문도 닫지 않네.

書屋無塵事 
서옥무진사
殘燈繼夕暉 잔등계석휘
少婢知余意 
소비지여의
夜深不掩扉 야심불엄비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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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원(吳孝媛, 1889~?)은 호가 소파(小坡)이며 오시선(吳時善)의 딸로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여자를 위한 교육기관이 없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9살 되던 해 봄 두 오빠를 따라 사숙(私塾)에 다녔고 그는 학교를 다닌 지 얼마 안 되어 천자문을 모두 외우고 한시를 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九歲入學後作(구세입학후작)

國俗自何時(국속자하시) 나라의 풍속이 어느 때부터

重男不重女(중남부중녀) 남자는 중히 여기고 여자는 중히 여기지 않았는가

一篇千字文(일편천자문) 한 편의 천자문을

九歲學於序(구세학어서) 아홉 살에 서당에서 겨우 배웠네

 

一體君師父(일체군사부) 임금, 스승, 아버지가 일체라고

書中乃得知(서중내득지) 책 가운데서 지식을 얻었네

函筵嚴若帥(함연엄약수) 스승은 엄한 장수와 같아

唯命敢無違(유명감무위) 오직 명한 것은 감히 어기지 못하네

 

當年記姓名(당년기성명) 올해 이름을 쓰고

旋占五言城(선점오언성) 오언시로 판을 치네

一隊同窓伴(일대동창반) 한 무리 동창들이 따르며

謂吾慧(위오혜)보明(명) 날보고 지혜롭고 총명하다고 하네


이제 막 천자문을 배운 아홉살의 여자아이가 지은 시가 이 정도였으니...

 

금요일 아침 7시 부터 밤 10시까지의 일을 마치고 10시반에 출발하여 청도휴게소에 도착하니 피곤이 몰려와 여기서 쉬어갑니다.

 

(청도휴게소에서 1박)

 

2024-3-9

 

의성으로 가는 도중 흰산이 보이기에 바라보니 팔공산 정상입니다.팔공산 또한 왕건과 관련된 지명입니다.보리밭 같은 초록밭이 보이면 거의 대부분 마늘밭입니다.초록빛 마늘밭과 흰눈이 대비되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빙계계곡

빙계게곡은 의성지질공원의 지질명소이며 경북팔승지일(慶北八勝之一)로 경북팔경 중 제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의성 빙산사지 오층석탑

모전석탑으로 의성 탑리 오층석탑을 따라 만들었는데 신라후기 혹은 고려전기 사이 조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빙혈/풍혈

빙혈의 평균온도는 영하 -0.3도로 외부기온보더 10도C 이상 낮은데 그 이유는 너덜 때문이라고 합니다.밀양 얼음골에서도 너들을 본 기억이 납니다.너덜에서 저장된 공기온도와 외부기온이 바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얼음처럼 찬 곳의 산이라서 이곳 지명이 빙산(氷山)임에도 경칩을 지난 봄이 되니 꽃망울이 사정없이 피어나고 있습니다.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습니다.

▷빙계서원

모재 김안국,회제 이언적,서애 류성룡,학봉 김성일,여헌 장현광,학동 이광준 6현을 봉향하고 있습니다.

▷수정사

금성산과 비봉산 사이 계곡의 맑은 물이 시작될 만한 곳에 지어진 사찰로 이름부터 "물이 깨끗한 절"이라는 의미의 수정사(水淨寺)입니다.


▷조문산성(금성산성,금학산성,금산석성)

홍술이 지키려고 했던 문소성은 바로 조문산성입니다.현재도 석성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포곡식 석축산성으로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해 당군을 물리치는데 한 몫을 했다고 합니다.

▷용문암

금성산은 530m로 등산로 초입에서 정상까지1.1km정도 걸으면 되는데 중간 삼거리에서 용문암으로 가려면 1.2km정도 걸으면 됩니다.초입에서 600m정도 까지는 다소 경사도가 있지만 이후부터는 트래버스로 횡단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용문암은 용이 하늘로 승천하고 지나간 천장의 흔적의 남은 구멍이 보인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입니다.갑진년 청룡의 해이니 이곳도 둘러봅니다.

▷산운마을(소우당)

소우당은 잠겨있어서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금성산과 비봉산이 보이는 곳으로 마을 남쪽의 쌍계천이 흘러 전형적인 배산임수지형이며 영천이씨 집성촌 마을입니다.마을이름이 “산운”이 된 이유는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시대 때 수정계곡 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마을 내에 소우당을 비롯하여 학록정사와 운곡당,점우당 등 지정문화재와 전통가옥이 다수 남아 있어 볼거리가 많습니다. 

의성탑리리오층석탑

목조양식을 응용한 전탑의 조성기법으로 신라석탑의 시원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경주 분황사석탑 다음으로 오래된 석탑입니다.

▷조문국박물관,조문국사적지

장한상이 울릉도를 조사하고 기록한 "울릉도사적"에는 독도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동남쪽에 섬 하나가 희미하게 있는데,크기는 울릉도의 3분의1이 안되고 거리는 300여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장한상(張漢相)은 조선후기 경상좌도,함경북도,전라도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입니다.

 

경덕사 고문서 (울릉도 사적)

 

박물관 옥상에서 바라 본 조문국사적지입니다.

조문국박물관 앞에 차조문경덕왕릉수비운(次召文景德王陵竪碑韻) 비석이 보입니다.
만사 김진종이 경덕왕릉의 비를 세우며 읊은 시입니다.

"들풀은 엣궁궐터의 가련함을 견디고 있네" 가 인상적입니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의 과조문유감(過召文有感)이란 시를 석각해 두었고 이에 선생의 저서⟪愚泉實記⟫에도 조문국에 대한 시가 전합니다.

千百年光一瞬間 천백년 오랜 세월도 일순간이런가
舊邦遺跡但靑山 옛 나라 끼친 자취 청산만 우뚝하네
泥農御井馳黃犢 진흙 짙은 우물가엔 누렁소가 치달리고
草沒金城起翠髮 풀에 잠긴 금성터엔 초록머리 오가누나
累累陵園皆剝落 얽매였던 능원 터는 거의 다 퇴락했고
崔崔石塔尙堅頑 우뚝 솟은 석탑만이 오히려 견고하네
興亡物理無前定 흥망의 사물이치 미리 정함 없느니라
獨自悼傷去復還 나 홀로 슬퍼하며 오고 가고 하는구나.

▷누룩바위

 

모양새가 흡사 빚은 누룩을 층층이 쌓아놓은 모습입니다.의성지질공원의 또 하나의 단면입니다.

▷방단형적석탑

남쪽과 동쪽의 감실엔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5층으로 유추되지만 정확하지는 않고 시기는 고려시대로 유추합니다.남한에도 이런 방단형 적석탑이 몇개 더 있어서 흥미롭지만 설명을 읽어보아도 불분명한 사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길에서 만난 할머니말로는 예전보다는 많이 무너져서 높이가 낮아졌다고 합니다.

▷만장사

우선 우측 산으로 올라 만장사의 전체 모습을 먼저 카메라로 담습니다.이곳의 산이름은 화장산(華藏山)으로 이름에 걸맞게 화려하지만 감추어진 느낌입니다.

성곽형태로 미루어 옛날에는 호국불교 무승들이 활약했을것 같은 느낌입니다.

대웅전 앞에는 소나무 네그루가 있어서 사천왕상을 대신하는 느낌입니다.

3층석탑을 보면 신라시대로 유추됩니다.


3층석탑 앞의 안락루 누각에서 바라보는 눈맛은 과히 최고이며 압권입니다.누구나 차를 마실수 있도록 배려해 두었네요.

대웅전 내의 석조여래좌상은 항마촉지인으로 불신,대좌,광배 모두 갖추고 있는 3부작입니다.통일신라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1999년 1월에 절을 새로 고치려고 암자 뒤쪽에 묻혀있던 불상을 발견하여 모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상호는 덕이 많아보이게 후덕한 둥근얼굴입니다.이런 형식은 추운 북방의 형식이고 태국,미얀마 같은 남쪽 불상은 허리가 가느다란 모습으로 더운 곳에서는 후덕하면 땀만 많이 흐르기 때문에 불상도 지역별로 특색이 있습니다.  

 

▷제오리 공룡 발자국 화석

 

1억5천만년 중생대 백악기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의 발자국이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중간에 움푹들어간 곳이 발자국입니다.

▷산수유마을

산수유마을 축제는 3.16(토)~24(일)까지 9일간 진행됩니다.현재 꽃들이 피기 시작했습니다.아마도 축제기간에 만개 할 것으로 보입니다.넉넉한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토현지

아카시 나무가 없습니다.왜놈들이 전통마을을 죽이려고 아카시를 심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모두 뽑아버렸다고 합니다.그래서 그럴까요? 토현지의 보호수는 신바람이 난 것 같습니다.신명난 춤사위를 보는 것 같은데 몸에 율동을 주고 손과 팔을 하늘로 올린채 장삼을 위로 흩뿌린듯한 형상입니다.

이곳도 초록밭이 보이는데 마늘밭입니다.의성마늘이 유명한 이유는 토질에 있는데 의성에는 화산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4개의 화산 지형이 있는데 백두산, 한라산, 울릉도 성인봉,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의성의 금성산입니다. 금성산은 한반도 최초의 화산이며, 국내 내륙의 유일한 사화산(死火山)입니다.지금으로부터 7,000만년전, 백악기에 화산이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화산활동하지 않습니다만 백악기 공룡의 흔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화산 폭발당시 분화구가 금성산과 비봉산 중심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분화구는 훨씬 커서 금성산과 비봉산은 화구 주변 정도였습니다. 

 

이곳의 토질은 화산의 혈암이 오랜세월이 지나면서 부서져 물빠짐이 좋고 약리작용도 뛰어난 기름진 땅입니다.또한 일반적인 난지형 마늘이 아닌 선선하고 서늘한 지역인 의성에서는 한지형 마늘이 주종입니다.10월에 파종해서 이듬해 6월쯤 수확하는데 지금 그래서 온통 초록밭입니다.즉,토양과 기후가 남다른 의성이기 때문에 마늘이 유명한 것입니다.마늘은 동안식품 4가지(마늘,녹차,붉은 토마토,적포도주) 중 하나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김치에 마늘을 찧어 넣기 때문에 더 건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마늘의 알리신은 휘발성이라서 가능하면 구운마늘보다는 생마늘을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성엔 의병투쟁을 기리기 위한 의성의병기념관이 있습니다.김상종의병장과 이필곤의병장에 대한 설명도 나와있습니다.의병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대의(義)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외단자의(外斷者義)는 죽지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

2024-3-10 (경주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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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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