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울산 지명의 시원은 우시산국이며 지금의 웅촌(?)

 

- 언제 : 2021.3.14(일) 
- 날 씨 : 대체로 맑음
- 몇 명: 홀로

▷ 답사일정

부산→울주 청송사지→은현리 적석총→검단리 유적→부산

 

 

서울에 근무하는 딸의 생일이 가까워오자 와이프는 서울행이고 나는 어제 온라인 모임으로 학습을 마친 후 오늘은 아주 늘늘하게 가까운 곳을 배회하기로 합니다.

 

울산 울주는 신불산,간월산 등 영남알프스 때문에 자주 간 지역이지만 이번에 가는 곳은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곳입니다. 폐사지 한 곳과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는 다소 보기 힘든 적석총을 보러갑니다. 이 적석총은 우시산국과 관련이 깊다고 하는데 우시산국은 울산의 시원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어서 관심이 갑니다.

 

원래 이렇게 계획은 2군데였지만 부산으로 오는 길에 검단리 유적이 보여서 잠시 둘러보고 금정산터널을 이용하여 부산에서 울산 울주로 다녀오는길은 예상보다는 편안한 길이었습니다.

 

 

 

 

▷울주 청송사지(靑松寺址)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 1420

울주 청송사는 신라때 창건되어 조선 중기 혹은 후기에 폐사된 곳으로 나옵니다.

청송사지 3층석탑의 위용이 대단합니다.

탑이 세워진 위치도 이곳에서는 가장 넓은 곳입니다.
3개의 기단 위로 탑신 3층을 올렸고 가장 맨위 옥개석 위 부터는 멸실 되어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상륜부는 두께가 얇아서 먼저 파손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한눈에 보아도 통일신라 시대 작품으로 웅장하면서 아름답습니다.
특히 옥개석 낙수면 아래 전각의 모서리를 보면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아직도 베일 듯이 날렵합니다. 유려하면서도 강인한 인상입니다.

 

 

뒤로 돌아가보니 전각 모서리 부분은 깨어진 곳이 절반입니다.
뒤로 키 큰 오동나무에 까치집이 몇개 보입니다.

 

 

 

부도밭을 가기 위해 도로를 따라 걸으니 축대 밑에 널부러진 바위가 있어서 보니
인위적인 문양이 눈에 들어옵니다.

청송사 탑의 부재로 보이지만 정확한 것은 가늠하기 힘듭니다.

 

 

길을 돌아 산쪽으로 바라보니 청송사지 부도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약간 높은 둔덕으로 오릅니다.

 

 

고도를 높이자 부도가 나타납니다.

 

 

가장 큰 부도의 기단엔 인왕상(신장,금강역사)의 돋을새김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석종형의 부도는 3기가 눈에 들어오는데 다소 투박하지만
단순하면서도 조형미는 훌륭합니다.

 

 

반대로 돌아가니 걸음이 저절로 멈추어집니다.
말로 표현 못할 이 분위기가 최고입니다.

 

높이가 다른 석종형의 부도 3기 옆으로 원추형,직사각형 등
부도의 부재들이 폐사지의 느낌을 진하게 풍겨냅니다.

 

사리공을 판 기단도 보입니다.
 

 

중간 부도 탑신 중앙에 ‘서응당(瑞應堂) 신흡대사(愼洽大師)’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습니다.

 

 

연꽃 무늬가 새겨진 부재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탑신 아래에 범어가 보입니다.

 

 

부도밭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최근 새로 중창한 청송사가 보입니다. 

 

 

청송사로 가보니  대웅전 우측 풍경 뒤로 소나무와 진달래가 아주 멋집니다.

 

 

다시 삼층석탑으로 오니 안내판에 3층석탑을 해체 복원할때
청동사리함이 나왔다고 합니다.

 

 

차창에 3층석탑이 비치어 보입니다.

 

 

▷은현리 적석총

    경남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207-1,2

 

우선 은현리 적석총,검단리 유적 등 분명히 큰 세력이 있었다는 유적은 있지만 
기록은 빈약하여 그 사이의 간극을 채워나가는 작업을 정상의 연구자들이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래글은 역사학,고고학과 구비전승까지 동원하여 현재까지 논의되고 있는 부분들을 
언급하기 때문에 개연성의 확률은 높지만 아직까지는 완전한 정설이 아님을 미리 양지하고
글을 읽으시면 됩니다.

  

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갔더니 은현리 적석총이 보이지 않아서
휴대폰 네이버지도를 이용하여 다시 검색을 하여 찾아갑니다.

다소 급회전 각도의 좁은 길과 경사도 높은 길을 거쳐 은현리 적석총에 다다랐습니다.

 

 

이 묘의 주인공은 우시산국(于尸山國)의 우태왕(于太王)이라고 합니다.
우시산국은 울산 명칭의 시원이라면 우시산국은 이곳 웅촌입니다.

 

한글이 없던 고대 향찰식 표기에서 尸는 'ㄹ' 받침으로 쓰였으므로
고대에 이미 울산 / 울뫼 등으로 불렸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우시산->울산)

사로국에 복속되기 이전 우시산국은 이곳 웅촌이라면
이 적석총을 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시산국은 신라의 탈해이사금 시기 멸망한 것으로 보이는데,
우시산국은 원삼국시대 진한(경상도) 지역 소국들 중 하나로
울산 웅촌과 양산시 웅상일대로 보고 있는데

또 다른 주장은 
"경북 영덕군 영해면(盈德郡 寧海面)의 옛 이름이 ‘우시(于尸)’이므로
이에 비정된다."고 되어 있어서 우시산국을 확실하게 특정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적석총의 규모가 제법 큽니다.

 

왕산의 구형왕릉 보다는 약간 적은 느낌이지만
아마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무너져 내려서 그럴 뿐

처음엔 상당히 높게 돌을 쌓았을것으로 보입니다.

 

 

뒤로 가보니 돌담장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이 묘의 주인공 우태왕의 딸이 아진의선(阿珍義先)이고 
아진의선은 박혁거세의 해척지모이니 바로 박혁거세의 어머니입니다.

박혁거세 천강설화를 믿는 분은 그대로 믿으셔도 되겠지만
과학적인 눈으로 보면 아진의선의 아들이 박혁거세로 믿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우태왕-아진의선-박혁거세)

계림 동쪽 하서지촌의 아진포(阿珍浦)의 아진은 현재의 웅상일대로 보입니다.

 

 

 

▷검단리 유적
    울산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 산 62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안내판이 보여서 잠시 둘러봅니다.
길은 차 1대가 간신히 들어가는 길이고 나중에
차를 회차하는 것이 힘들 정도로 좁았습니다.

울산 칸트리클럽 증설공사구역에 포함되어
1990년 부산대학교 박물관이 약 3개월간 발굴 조사하여
집자리,환호,고인돌 등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유구로 확인된 곳으로 
현재는 그냥 공터만 존재합니다.

 

 

울주문화원은 "우시산국 위치를 두고 현재까지 그 중심세력이 지금의 웅촌 검단리 일대라는
학계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일부 이견이 잔존하는 것은 사실이다.국내 정상급 연구자들이 참여와 활발한 토론으로 명확한 규명을 이끌어 울산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이를 현대사회의 역사문화콘텐츠로 활용하는 방안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되어 있어서
아직은 우시산국이 웅촌이라는 것이 개연성은 크지만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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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Posted by 세벗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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