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어진 회산(山)이라는 벼랑산에는 
사상구인연구제단[沙上九壇]의 원래 자리였고,
사상팔경(沙上八景)을 모두 볼 수 있는 팔경대(八景臺)가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그 흔적을 찾아러 갑니다. 




먼저 간 곳은 사상 초등학교입니다.여기에는 "사립명진학교"학교 석주가 교정에 비석처럼
세워져 있습니다.
사립명진학교는 구한말 신교육을 실시하기 위하여 설립한 학교로서
그 건립연대는 융희 3년 (1909)이라 전합니다.110년 되었네요.

 

석주는 사상구를 알리는 조형물 안에 놓여 있으며 私立明進學校에서 私는 깨어져 보이지 않습니다.

석주의 아래 기단 오석()에는 ‘우리 학교의 역사’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글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 학교는 처음 괘내에서 명진학교()로 개교(1910. 4. 1)하여 공부하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교명도 사상공립보통학교(1920. 4. 1)로 바뀌어서 일제 시대를 보냈습니다.
6·25 사변 때에는 임시 사용하던 미군의 실화로 교사가 전소(1951. 1. 25)되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한때는 100학급(1979. 3. 1) 6,000여 명의 학생이 다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학장·모라·감전·삼덕·괘법·덕포초등학교 등 6개 교가 우리 학교에서 분리되었으며,
지금까지 1만 명이 넘는 졸업생이 배출되었습니다. 이 돌비는 사립명진학교 때의 것으로 보관 도중
윗부분의 일부가 없는 채로 교정 구석에 세워졌던 것을 이번에 이 자리로 옮겨 세우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들은 이처럼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사상국민학교의 어린이로서 모두가 착하고 바르고
씩씩한 어린이가 되도록 다 같이 노력합시다."




학교 뒤로 이동하면 하강선대(下降仙臺)가 나옵니다.
하강선대는 할매 당산으로 1년에 한 번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를 지냅니다.
들어가는 입구엔 선령문(仙靈門) 글씨가 보입니다.
앞의 보호수는 350여년 된 괴
목입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할배당산인 상강선대로 갑니다.
상강선대 앞에는 구주성 효자비가 있습니다.
제액은 '효자구주성지각"으로 되어 있고, 
1740년 발간 동래부지 에 의하면 "전염병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목숨을 구하였다.
만력 경술년(1610)에 효행이 알려져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했다"는 내용입니다.
 





효자비 옆에 있는 송덕비 셋은 기리는 사람 다 달라도 비석 명칭은 다 같습니다.
모두 축제혜민비(築堤惠民碑)로 둑을 쌓아 백성에게 혜택을 줬다는 뜻입니다. 


강선대 송덕비는 둑을 쌓을 때마다 세운 비입니다.사상과 사하는 낙동강 하류라 홍수 피해가 막심했고
1788년 비석은 이 지역에 처음으로 둑을 쌓은 것을 기린것인데 그 둑이 무너져 50년쯤 지날 무렵 다시 쌓았습니다. 1832년 비석은 그것을 기립니다.둑이 또 무너져 또 다시 쌓고 세운 비석이 1841년 비석입니다.
송덕비들은 애초 덕포동 경부선 철로변 큰길에 있었고
훼손을 우려하여 1971년 이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둑 공사를 관장한 이는 모두 동래부사입니다.이경일(1787. 2∼1788. 9)과 박제명
(1831. 2∼1833. 6), 이명적(1839. 1∼1840. 6)입니다.

괄호 안은 재임기간으로 이경일 부사는
파직당했고 박제명 부사는 임기가 차서 바뀌었고
이명적은 사임했습니다.

이경일 부사 파직은 동일 사안을 두 번이나 조정에 들먹인 죄였습니다.

양식을 확보하고 운반하는 벼슬아치인 운량도감 폐해를 상소했다가 여의치 않자
국가 비상사태 대비 부서인 비변사 비국에 다시 들먹였다가 직에서 쫓겨나고
잡혀갔다고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사상생활사박물관"으로 갑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먼저 옥상부터 갑니다.


박물관 옥상은 "신사상팔경"과 
사상의 인물이 적혀있습나다.


사상의 인물에 효자 구주성과 독립운동가 김형기와 연극인 추송웅을 비롯하여 
여러명이 거론됩니다.  


3층 전시실엔 명진학교를 앞세운 학교생활,7080음악다방,추억의 사진관,

제첩국,사상신발공단 관련 내용들이 보입니다.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보여주는 "공단길"이라는 글이 보입니다.노래입니다.



재첩국 사이소 미니어처 할매도 보입니다.




사상팔경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구덕조무(九德朝霧) - 구덕산에 서리는 아침안개
원포귀범(遠浦歸帆) - 멀리 포구에 돌아오는 돛단배
평사낙안(平沙落雁) - 하늘을 날다가 모래펄에 내려 앉는 기러기
칠월해화(七月蟹火) - 7월의 갈대밭에 게를 잡기 위해 밝힌 햇불
팔월노화(八月蘆花) - 8월의 강변에 피는 갈대꽃
서산낙조(西山落照) - 서산으로 지면서 강물에 비치는 햇빛
운수모종(雲水暮鐘) - 운수사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
금정명월(金井明月) - 금정산에 떠오르는 밝은 달빛



사상팔경을 다 볼 수 있는 팔경대가 지금은 없어진 회산에 있었다고 하는데 
옛날사진을 보니 큰 바위에 팔경대라는 한자글씨가 보입니다.(아래 사진 왼쪽)




2층은 담소방으로 북카페 쉼터입니다.안에 있던 관계자분이 차라도 한잔하고 가라며
친절하게 맞이합니다.1층은 주차장과 아트홀이 있습니다. 


사상생활사박물관을 나와 과거 회산의 팔경대가 있었던 위치를 찾아갑니다. 

팔경대가 있었던 회산 자리로 가보니
위치는 사상시외버스터미널과 오복미역 중간 차도에 
조형물이 있습니다.


중국 소상 주변의 뛰어난 경치를 표현한 소상팔경에 빗대어 사상팔경은 낙동강 하류지역의
경승지였으나 
사상공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저습지를 매립할 토량을 확보하기 위해 팔경대가
있던 회산이 깍여져 없어지면서 현재는 
기념 조형물만 세워져 있습니다.





오늘도 매화향기는 덤으로 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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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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