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랑진,양산,원동)피흘려 싸우고,빌고빌며,자손의번성을기원하고풍류를즐긴다.

- 언제 : 2012.6.10(일) 14:30~19:50
- 얼마나: 2012.6.10 15:10~19:00
- 날 씨 : 맑음.더위
- 몇 명: 2명(with W)
- 어떻게 : 자가SUV이용
▷작원관지-양산 호계동 마애불-연어대-원동 가야진사-부은사,부은암

 

 

오후 늦은 시간 출발하여 부산근교의 문화유산답사를 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우선 원동의 가야진사로 먼저 갈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네비게이션에서 알려주는 가야진사는 양산 서창동의 엉뚱한 가야진사를 알려주었다.그래서 계획을 바꾸어 가야진사를 맨 나중으로 돌리고 작원관지부터 찾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오늘 순회한 유적지인 "작원관지-양산 호계동 마애불-연어대-원동 가야진사-부은사,부은암"은 순서가 잘 못 되었다.자동차로 돌면 같은 길을 두 번 돌아야한다.만약 나의 집에서 다시 한바퀴만 돈다면 "양산 호계동 마애불-연어대-원동 가야진사-부은사,부은암-작원관지"순으로 돌겠다.아니면 역순으로 "작원관지~양산 호계동 마애불"순으로 돌면 된다.

두바퀴를 돌아도 반나절이면 되었다.작원관지는 주차공간도 넓었고 작원관지 누각에 앉아 한참을 시원한 바람을맞으며휴식이가능했다.양산 호계동 마애불은 4WD SUV가 아니면 마애불과 양산 석굴암은 좀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곳이고,연어대는다리이름인 "장제교"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하여 가는 것이 좋다.장제교 다리 밑에 있기 때문이다.원동 가야진사는 일단 원동역으로 간 후 철길을따라서울방향으로직진하면좌측에아래로 난 굴다리가 보인다.그 굴다리를 통과하여 낙동강 방향으로 들어가면 된다.부은사와 부은암은 가야진사에서 탐방을 마무리하면 네비게이션에 작원관지를 입력하여 출발하여 차는 원동에서 삼랑진으로 산길을 넘어 가면 우측에 부은사,부은암 이정표가 보인다.차가 부은사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작원관지([鵲院關址]

영남지방의 동서와 남북을 잇는 요로의 역원인 작원관의 옛터다.작원관지의 작鵲은
까치 작鵲이므로 까치원터라고도 한다.

왜적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하여 고려 고종때 창건했다.관원들의 숙박시설,화물 검문,

나루터 구실로 원()·관()·진()의 역할을 겸했다.


임진년 조일전쟁 당시 이각()과 밀양부사 박진()이 밀려드는 왜적을 맞아
결사적으로 항전을 펼친 곳이다.일제강점기 철도부설로 다른곳에 이전.복원되었으나
낙동강 대홍수로 유실되고 1995년에 복원되었다.

비각에는 1939년 밀양군에서 비를 설치한 것이 남아있으며 비각 위에는
"작원관위령탑"이 있다.

반대편으로 넘어가니 한남문이 보이고 그 위로 누각이름인 공운루의 현판이 보인다.
임진왜란때 작원관을 지키다 300여명이전사했는데이를기리는위령탑이세워져있다.

평상 같은 누각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기차가 지나간다.


 

 

양산 호계동 마애불/경남 양산시 호계동 404번지

호계동虎溪洞...이름이 범상치 않다.말 그대로 호랑이계곡이다.이곳에 가려면 제법 산을
올라야 한다.다행히 내차는 4WD SUV로 마애불이 있는 곳까지 올랐다.

제일 먼저 조선 중기의 마애불이 누각에 보호되어 있다.커다란 대좌위에 결가부좌한 모습,
얼굴은 양각, 신체는 선각으로 표현,상호가 투박하고 토속적인 분위기다.

조선 중기의 작품이니 예술성은 다소떨어지지만, 삼국시대 이후 지속되어 온 마애불의
전통을 계승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마애불 아래에 있는 석굴은원효대사가수행했던
‘반고굴(磻高窟)’이라는 전언이 있어 석굴 사원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석굴 입구 좌측에 꽃이 보이는데 처음엔 조화인줄 착각하였다.바위 틈에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이는데 너무나 생육상태가 좋았기 때문이다.

밖은 더웠지만 석굴로 들어가면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석가모니불,관세음보살,
지장보살상은 아담한 석불이고 여러 나한상들은 채색이 되어 있다.
화엄성중단 우측에 있는데 화엄성중은 석재로 부조되어 있다.

 




연어대鳶魚臺/(양산 장제교 다리 밑에 있음)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연어대는 흔적을 찾기조차 어렵게 되었다.달랑 연어대라는
글씨만 남았다.이는 장제교 공사로 크게 훼손 된 이후 방치되어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연어대 글씨는 통도사의 구하스님 글씨라고 한다.


연어대 위 거목도 함께 처량해 보인다.

연어대..솔개연,물고기어 ....솔개와 물고기라니 다소 생뚱맞다.
그렇지만 사자성어 연비어약을 알고 보니 이곳은 "자연의 오묘한 도"를 알려주는 장소
라는 의미다.연비어약을 줄여 연어가 된 것으로 보인다.


鳶飛魚躍 연비어약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 속에 고기가 뛰어노는 것이 자연(自然)스럽고 조화(調和)로운데,
이는 솔개와 물고기가 저마다 나름대로의 타고난 길을 가기 때문이다라는 뜻으로,
만물(萬物)이 저마다의 법칙(法則)에 따라 자연(自然)스럽게 살아가면, 전체적(全體的)
으로 천지(天地)의 조화(調和)를 이루게 되는 것이 자연(自然)의 오묘(奧妙)한 도(道)
임을 말함

 

장제마을과 소삭마을 사이 양산천에 자라바위가 있고 이 자라바위는
전설이있다. "장제마을의 만석꾼과 재산 욕심에 며느리가 자라바위 목을 치는 내용"이다.

연어대 밑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는 자라바위가 아니다.

 


 

원동 가야진사/경남 양산군 원동면 용당리

가야진은 신라가 가야국을 정벌할 때 내왕하던 나루터라고 한다.가야진사에는
가야진지신(伽倻津之神)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공주의 웅진사,서울,경북 흥해와 함께 국가적 제향이었다고 한다.즉 마을 수호신이 아닌
진신(津神)을 모신 제당임을 알 수 있다. 이같이 수신 또는 용신을 모시기 때문에
이곳은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용당리 앞을 흐르는 낙동강하류의 용산 밑에는
용소(龍沼)가 있어 여기에 황룡 한마리와 청룡 두마리가 살고 있었다는 용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용은 세 마리가 나오는데 "두 마리는 부부용이며 한 마리는 첩 용이다.부인용의
질투로 첩용을 죽이고자 계획했으나 결국 남편 용이 죽게되는 내용
"이다.

용신제를 지낼때 사용하는 용 세 마리(청용,황룡)가 전수관 뒤에 놓여 있었고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의 사진이 몇장 걸려 있었으며,용신제전수회관 앞에는
용 세 마리의 석상이 놓여 있었다.

 






참으로 절묘한 위치다.무척산에서 시작된 산세는 그중 일부 지맥이 흘러서 낙동강으로
내려오는데 용이 낙동강의 물을 먹는 모습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다.

아래의 사진은 길게 이어진 몸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지만 낙동강으로 머리와 이빨이
보이는 모습이다.이렇게 길게 늘어진 이 산의 이름이 용산龍山이다.지금 용산의 몸 뒤쪽은
대구부산간 고속도로가 관통하여 꼬치가 된 모습이라 아쉽다.

가야진용신제 봉행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내려오는 국가제의 중사(中祀)
에 해당하며 가야 진사에 모시는 용신에게 올리는 제례를 바탕으로 형성된 민속놀이다.

행사로는 사전행사와 부정가시기, 칙사 영접 굿, 용신제, 용소풀이, 사신 풀이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는 잔치의 성격을 띤 행사이다.

그 중 용산 앞의 깊은 곳이 용소인데 제를 지낼 때 이곳에 날것의 돼지(희생돼지)를
빠뜨린다.침하돈(沈下豚 : 희생용 돼지를 물에 넣음)”을 3창하고 돼지를 강물에 던져
용왕께 바치는데 이를 용소풀이라고 한다.

이 용소풀이가 가야진사용신제의 하이라이트로 여겨진다.

부은사,부은암/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안태리 823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과 허황옥 왕비와 관련된 사찰이 있다.
삼랑진 천태산의 부은夫恩암,생림면 무척산의 모은母恩암 그리고 봉화산(자암산)의
12자녀를 위해 세운 자子암은 봉화산 마애불로 들어가는 입구 쯤으로 보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현재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이 세 사찰은 해동제일 보은도량으로 치고 있다.

부은사는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안태리 천태산에 위치해 있고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부은암,부암,부암사 등으로 불려졌으며 원효대사와 사명대사가 수도 정진한 마고석굴이
부은암 뒤 위쪽에 있다.

아래쪽은 옛 극락전이 있고 그 위로 부은암이 있다.산꼭대기에도 어떤 시설물이 보였는데
그기까지 가보지는 못했다.

 




생림의 무척산에 있는 모은암에는 모은암 뒤로 봉우리가 남근석(링가)을 닮아
김해김씨의 번창을 기원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부은암에는 요니가 있다.


이 요니(여자의 음부)는 인도 힌두교의 시바신을 상징하는 성기신앙의 대상물이다.

힌두교는 어떠한 성인도 요니를 통하여 이 세상에 출현한다고 하여 요니를 가장
신성시하여 숭상하는 종교이다.요니 위에 링가(남자의 남근)을 세워놓고 물을 뿌리면서
아기를 가지고 싶은 신도들이 출산 및 생남 기도를 하는 인도문화가 전래된 것이다.

이 요니는 2천년 창건연대를 고증하여 주는 좋은 소중한 유물이라고 한다.

돌의 성분도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파사석탑과 동일한 석재라고 한다.

힌두교 인구가 많은 인도의 인구가 곧 세계제일이 될 것이라고 하고,인도에서 온
허황옥왕비와 함께 온 "링가와요니"의효력덕분인지국내에서는김해김씨를
비롯한가락종친회인구가가장많은것은부정하기힘든증거가된다.


부은암 암자 뒤로 통천도량(通天道場)이라는 글씨가 보인다.지금은 가물어
폭포의 모습이 아니지만 만약 비가 온다면 아주 멋진 폭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요니의 다른 형태인지 모르겠지만...

마고석굴로 가는 길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삼랑진의 물길이 보인다.
마고석굴은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그 위의 바위는 굉장히 컸다.


나반존자와 마고신선을 양옆으로 협시되어 있고 중간에 약사여래부처님이 보인다.
내눈엔 요니를 보아서 그런가? 이 석굴도 흰두교의 요니,즉 여자의 음부로 보인다.

마고석굴을 보고 아래로 내려오니 스님이 지장보살을 통성하며 범종을 한바퀴 돌고
종을 친 후, 다시 범종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종을 치신다.

범종각의 주련이 의미심장하다.


원차종성변법계願此鍾聲遍法界(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하여)
철위유암실계명
鐵圍幽暗悉皆明
(철위산의 깊고 어두운 무간지옥 다 밝아지며)
삼도이고파도산
三途離苦破刀山
(지옥,아귀,축생의 고통을 여의고 도산지옥 무너지며)
일체중생성적각
一切衆生成正覺(모든 중생 바른 깨달음 이루어지이다.)

 

사찰을 내려오며 오늘의여정을 되돌아 본다.

유적지를 보며 인간사도생각한다.

"외적이 쳐들어오면 피흘려 싸우고,안녕을 빌고 빌며,은혜에 감사한다.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고,의미있는 놀이문화와 더불어 풍류를 즐기는 삶을 산다."
는 결론에 이른다.


유적지 속에도 사람의 삶이 녹아있다.

"사람"을 빨리 읽으면 "삶"이 되고 ."삶"이라는 글자의 받침을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고 발음하면 "사람"이 된다.
따라서 삶과 사람은 같은 것이다.


"돌아 올 날을 기약하고 떠나는 것은 관광이고, 돌아 올 날을 기약하지 않고 떠나는 것이
여행이다." 라고 했었다.영화 "마지막사랑"에서 존 말코비치의 대사이다.

우리 인생은 "여행"이다.그것은 여행처럼 태어난 날, 즉 출발일자는 알지만
돌아올 날,즉 죽는날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난 오늘은 관광을 했다.돌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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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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