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서남산 금오봉▲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말하지 마라!

- 언제 : 2010년 11월21일 07:30~17:30
- 얼마나: 2010.11.21 09:30~15:30(5시간 30분)
- 날 씨 : 맑음
- 몇 명: 40여명
- 어떻게 : 경주남산연구소 서남산 답사길 동행
▷삼릉에서 용장까지(배리삼존불-삼릉-냉골석조여래좌상-마애관음보살입상-
선각육존불-마애여래좌상-석조여래좌상-선각마애여래상-상선암선각보살상
-상선암마애대좌불-금송젙터와 바둑바위-상사바위와 소석불-금오봉 정상
-대연화대(삼화령)-탑기단석-용장사지삼층석탑-마애여래좌상-삼륜대좌불-
용장사터-탑재와 석등대석-용장마을
- 개인산행횟수ː 2010-20[w산행기록-262/T751]
- 산 높이:경주 남산 금오봉 468m
- 테마: 답사산행
- 호감도ː★★★★★

 

 

 

지난주 경주 동남산을 가족과 함께 드라이브하며 답사를 하면서 경주남산연구소(http://kjnamsan.org)를 알게되었다.매월 1,3,5 일요일,공휴일과 매월 2,4 일요일 그리고 매월 2,4 토요일 일정별 코스를 따라 무료로 경주남산 문화유적 답사안내를 하는 프로그램도 알게 되었다.

 

경주남산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답사에 참여한다는 신청을 하고 당일날 답사 출발시간인 9:30분에 맞추어 각 코스별 모임장소로 나가면 된다.지난주는 동남산 산책코스를 다녀왔으므로 이번주는 산행과 문화유산답사를 함께하는 서남산 코스(삼릉에서 용장까지)를 선택하였다.

 

불교는 서방을 중시한다.극락정토가 거기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경주 남산 중에서도 서남산코스가 가장 많은 문화유적이 남아있다.

 

오늘 전반부는 김구석 소장님이 답사안내를 해주셨고 선각여래상 이후는 김정자해설사님이 이어서 안내를 해주셨는데,해박한 전문지식과 유머로 힘든 답사길도 즐겁게 만들어주셨다.상세한 내용을 접하면서 경주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말하지 마라는 경주남산연구소 홈페이지의 글을 보고 정말 그렇다는 공감을 하게 되었다.

 

늦게나마 이 프로그램에 참여 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으며 다음에 여유시간이 나면 다른 코스도 꼭 동행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안내글을 보니 서남산 코스는 "배리 삼존불에서 시작하여 산기슭을 따라 삼릉을 답사하고, 냉골(삼릉계곡)을 따라 금오산 정상을 거쳐 용장계곡으로 하산하는, 등산을 하면서 문화유적을 관광할 수 있는 코스로서 도시락 및 음료를 준비하여야 하고 등산 차림이 필요하다. 이 코스는 편의상 서남산주차장에 주차하고 삼릉에서 부터 시작하여도 좋다."고 되어있다.단순 등산시간은 3.5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답사 설명시간을 듣는 시간까지 합하면 6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이다.

 

 

서남산주차장(삼릉주차장)에 주차(주차비 2,000원)하고 바로 그기서
경주남산연구소의 간단한 안내 설명을 듣고 바로 망월사로 향한다.
망월사 입구 좌측으로 들어가면 배리삼존불이 보호각 속에 있다.

 

 

배리 삼존불(배리 석불입상, 보물 63호)

1923년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서 현재의 자리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본존불은 눈꺼풀이 없는 모습과 육계 위에 또 하나의 상투같은 모습이
조각되어 있어서 이채로웠고 ,우측의 보살상은 S라인이 돋보이도록
다소 몸을 비틀어 선 모습이 놀라웠다.또한 화려한 몸치장으로 다른
불상보다는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좌우 보살상은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팔과 몸 사이 구멍을 뚫어 놓았다.

 

 

 

 


 

 

 

대웅전 앞의 탑은 시대별로 다른 3개의 옥개석을 쌓아놓았다. 700개 가까운
유물이 남산에 있고,최근에도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어서 경주 남산이 어떤 곳
인지를 엿볼수 있었다.또한 삼릉으로 가는길에 민묘들을 볼 수 있었는데
경주에서 남산은 여전히 이상향인 불국토임을 알 수 있었다.많은 민묘들이
아침 햇살을 받고 있었는데,이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요즘도 불법 묘들이
야음을 틈타 1년에 60여기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삼릉은 내가 본 우리나라 소나무 숲 중에서 최고로 꼽는 곳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로 몇번 왔지만 삼릉에 대해서는 그리 알지 못하였다.

 


배리 삼릉(사적 219호)

신라 54대 경명왕릉(景明王 : 917 ~ 924),가운데 것이 53대 신덕왕릉
(神德王 : 912 ~ 917),맨 뒤의 것은 8대 아달라왕릉(阿達羅王 : 154 ~ 184)이라
전해 오고 있다.



중간에 있는 53대 신덕왕릉은 1935년과 1963년 두번이나 도굴되었다고 한다.
1963년 조사에 의하면, 석실 연도(羨道)에서 오방색(주, 황, 백, 군청, 감청색)이
확인되었다고 한다.신라 릉 중에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석실 내부에 채색이 되어
있다고 한다.

 

 

삼릉 뒤 부터는 답사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계곡에 굴러다니던
옥개석,기단,깨어진 불상들을 한켠에 모아놓았다.

 

 

 

 

예쁜 매듭이 화려하게 도드라져보이는 냉골 석조여래좌상에 도착하니
대전에서 온 유치원생들이 답사를 왔다.그 모습이 석조여래좌상의 매듭
만큼이나 예쁘다.어릴때 부터 제대로된 문화유적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추어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목이 잘려나간 불상.사국시대,고려시대를 지나 유교가 득세한던 시절에
파괴된 흔적들이다.몇년전 아프가니스탄 중부 힌두쿠시산의 바미안에 있는
석굴사원인 바미안 석굴의 초대형 석불들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탈레반에 의해서 파괴된 적이 있다.그날 전세계가 비난했으며 모든 신문
들이 대서특필한 적이 있다.

 

다른 나라들은 욕을 할 자격이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는 미안하지만 욕을
할 자격이 없다.소장님의 설명 중에 이런 늬앙스의 내용이 들어있었다.


 

 

 

냉골 석조여래좌상

계곡에 묻혀 있다가, 나의 생년과 일치하는 1964년 발견되어 지금 장소에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마멸이 없고 옷주름들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8세기 중엽
신라 전성기의 불상이다.



특히 왼쪽 어깨에서 가사 끈을 매듭지어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영총
(纓總)수실은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이 불상은 용장사(茸長寺)
삼륜대좌불(三輪臺座佛)처럼 가사 끈이 있기 때문에 존명을 정하기 어려우나
여래상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 듯한 관음보살상이 보인다.뒤에 있는 바위는
방금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암시를 주는 옷처럼 느껴지고
발 아래는 빠른 속도감을 주기 위해 흐릿하게 처리되었다.

 

 

마애관음보살입상(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지방유형문화재 19호)

오른손은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머리에 쓴 보관(寶冠)에는 화불
(化佛)을 배치하여 관세음보살임을 표시하였다.



이 불상이 진정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순간은 석양 해질 무렵
이다.단풍이 드는 가을철 석양 때가 더욱 좋다고 한다.
서산마애삼존불처럼..서쪽,가을,해질때는 궁합이 맞다.

 

 

다소 어두운 골짜기를 걷다가 갑자기 밝아진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있다.여기도 뭔가 유적이 있겠구나하고
밝은 곳으로 나아가니 스님 한분이 피리를 불고있다.그 가락이
너무나도 이곳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육법공양 중 하나인 차 공양을
해 놓고 소리공양도 하고 있었다.

 

 

그 뒤로 선으로 그려진 불상이 보인다.선을 조각하였다고 하여
이런 형식을 선각이라고 한다.바위 아래 무심히 나뒹구는 옥개석도 보인다.
그리고 이 바위 위로 가 보면 빗물이 바위면의 선각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골을 파 놓은 모습을 보여준다.


선각육존불(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지방유형문화재 21호)

이 선각육존불상은 뛰어난 신라불교의 회화를 보는 듯한 모습으로 다소 곡면애 가까운
바위를 대패질 하듯이 깍지 않고 그대로 그려 흡사 부처님 앞에 비단으로 된 커텐이
쳐져있는 느낌이다.



동쪽 바위 면에 설법하고 있는 석가모니 삼존불을 새기고, 서쪽 바위 면에 아미타
삼존불을 새겨, 현생과 내생을 나타내었다. 아미타삼존불은 좌우에 보살이 두 손에
꽃을 받쳐들고, 부처님은 죽은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오시는 내영아미타여래
(來迎阿彌陀如來)이다

 

 

 

 

 

 

그리다가 만듯한 마애여래좌상이 보인다.

 

마애여래좌상(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지방유형문화재 159호)

 

몸체는 모두 선각(線刻)으로 나타내었는데 얼굴만은 깍아 내어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다.
이 마애불은 남산에서 가장 늦은 시기인 고려초기 즉 10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제법 올라왔나보다.망산이 보인다.여인의 가슴과 머리 그리고
왼쪽 팔이 보이는 이 산은 전설이 있다.

 

"천지 창조 당시 남신이 화해서 남산이 되고 여신(女神)이 화해서 망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부터 여성인 망산은 주변에 있는 남성 산으로부터 많은 유혹을 받아
왔다. 바로 옆에 있는 벽도산(碧桃山),선도산(仙桃山)은 미남형(美男型)의 산으로
울퉁불퉁하고 깊은 계곡에 의해 주름살만 늘어난 남산보다 젊고 아름답다고 뽐내고
있다. 그러나 망산이 지녀온 남산에 대한 마음은 일편단심이며 변할 줄 모른다.

 


망산의 절개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서라벌 여성의 절개 또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경주여성의 자랑이다. 망산이라는 이름은 신라군이 출정(出征)하거나 개선(凱旋)할
때 부모 형제 처자들이 이 산에서 환송하고 환영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곳이기에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산 경주간 고속도로 진입로가 목 부분을 관통하여 요즘 경주 여성의 절개는
모르겠다는 소장님의 유머가 빛을 발한다.

 

 

보수를 했으나 목이 잘린 흔적이 뚜렷하고 광배는 모자이크처럼 땜질의 연속이다.
불상 아래 쪽에 탑의 4각으로 배치된 기단 흔적이 보인다.

 

석조여래좌상(삼릉계 석불좌상, 보물 666호)

 

원래 전각이 없었던 노천불로 복련이 없어서 땅에서 솟은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뒤에 광배를 배치하여 과거에 쉽게 볼수 있었던 불상 뒷면의
넓은 어깨,풍만한 엉덩이와 옷주름을 볼 수 없었다.

 

 

왼쪽 위로 큰 바위가 보이고 엷은 선들이 보인다.

 

선각마애여래상

 

이 불상은 바위 속에서 숨어있다가 살며시 그림자를 드러내 반겨 주는 듯한
모습이다.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에 흐릿하게 있다.

 

 

상선암에 도착했다.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이곳 남산은
불교 유적 뿐 아니라 신라화랑들의 영향때문인지 모르지만 풍류도의
느낌도 많이 나는 곳이다.상선암이라는 절 이름의 선(仙)도 신선사상과
연관이 있는 느낌이 난다.금오봉의 자라 오鰲자도 같은 느낌이다.

 

자라가 삼신산(三神山)을 등에 업고 있다는 전설은 금산사,개태사의
삼천일지에도 나온다.'동해 대오 배부 삼신산(東海 大鰲 背負 三神山)이라고
하는데,동해에 살고있는 큰 자라가 삼신산을 업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자라만 보더라도 삼신사상,신선사상,풍류사상과 연관지어 볼 수 있고
곤륜산이 서방의 낙원이라면 삼신산은 동방의 낙원인 것이다.

 

또한 바둑바위도 신선과 관련이 깊다.

 

따라서 경주 남산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신성시되어 온 산인
것이다.

 

상선암 선각보살상

 

상선암 부엌 바로 뒤에 파괴된 바위에 보살상의 하반신만 선각으로 남아
있다.완전한 모습은 6미터 정도의 대불이라고 한다.

 

 

 

상선암 뒤로 오르니 멋진 대불이 보인다.

 

선암 마애대좌불(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지방유형문화재 158호)
6m 높이로 양각된 이 여래좌상은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큰 불상이다.
조성시기는 통일신라 하대이며 모습은 바위에서 부처님이
나오는 듯하며 바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모습이다.

 

 

 

경주 시가지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보인다.바둑바위이다.
선덕여왕이 춘추에게 연기가 나는 김유신 집에 문희를 구하라고 말했다는
장소이다.이후 춘추와 문희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 바로 문무왕이다.

 

금송정터와 바둑바위

 

냉골, 암봉 바위산 꼭대기에는 자연을 잘 이용한 금송정터라고 전해오는
건축터가 있다. 또는 봉생암터라고도 한다. 그 옆 바위 벌판에는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며 놀았다고 하며, 전망이 좋아 서라벌 벌판
전체와 북남산이 모두 보인다.

 

 

여근석과 산아당(産兒堂)이 나온다.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곳이다.그 뒤쪽에 상사바위가 있고 작은 소석불이 감실 아래에 있다.

 

드디어 정상,남산의 금오봉에 도착했다.까마귀 오자가 아닌 자라 오자가 맞다.
해발 468M로서 이곳에서 냉골, 포석계, 지바위골, 비파골, 약수골 등의 분수령이
된다.이곳 아래 용장사와 은적암은 금오신화를 탄생시킨 조선의 천재 김시습이
있었던 곳이다.김시습은 유불선에 능했으며 풍류도맥을 잇는 중요한 분이다.

 


금오신화 내용도 불교만 언급한 것이 아니다.금오신화도 유불선의 퓨전이다.

 

낭떠러지 바위에 앉아 멀리 산첩첩 그리메가 아름다운 곳에 앉아 점심식사를
한다.

 

 

 

 

용장골로 내려가면서 멀리 삼화령의 대연화대를 본다.저곳 근처가 박물관에
있는 삼화령 애기부처를 발견한 곳인가 보다.

 

대연화대는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선덕여왕 때 스님 생의는 언제나 도중사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꿈에 한 스님이
그를 데리고 남산으로 올라가서 풀을 매어 표를 해 놓게 하더니 남쪽 골짜기로 와서
말했다. "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스님은 이를 파내어 고개 위에 편히 올려 주시오."
꿈에서 깨자 그는 친구와 함께 그 골짜기에 이르렀다. 표해 놓은 곳을 찾아 땅을 파
보니 거기에서 돌미륵이 나왔으므로 삼화령 위로 옮겨 놓고 그 아래에 절을 세우고
살았는데 후에 절 이름을 생의사라고 했다. 충담스님이 해마다 3월 3일과 9월 9일
이면 차를 다려서 공양한 것이 바로 이 부처님이다.

 

(三國遺事 第三卷 塔像 第四 生義寺 石彌勒).

 

좀더 내려가니 바위를 채취한 흔적이 있다.그리고 탑의 기단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용장사 근처에 온 모양이다.

 

 

 

 

일순 놀라고 말았다.너무나 경치 좋은 곳에 삼층석탑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용장사곡 삼층석탑, 보물 186호)

 

현재 3층 옥개석까지 남아 있는데 높이가 4.5m이다. 높이 200m가량 되는 산의 바위를
하층기단으로 삼은 점이 신라인의 자연과의 조화 방법을 잘 나타내 준다.통일신라 중기
인 8세기 중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바위에 옷의 선들이 섬세한 마애여래좌상이 보인다.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913호)
신광 좌측에는 명문이 3행으로 10여자 있으나 판독이 어렵다.
8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원형의 받침이 아름다운 삼륜대좌불이 경이롭다.
역시 머리가 없다.



아름다운 것은 그대로 두는 법이 없나보다.
그것이 여자이든 ,꽃이든 또는 아름다운 석불의 머리이든...

 

용장사지 삼륜대좌불(용장사곡 석불좌상, 보물 187호)
삼국유사의 賢瑜伽, 海華嚴 조에 의하면, 옛날 용장사에 유가종의
대덕이신 대현스님이 계셨는데, 그 절에는 미륵장륙석상이 있어 대현스님이 그
미륵부처님을 기도하면서 돌면, 미륵부처님 또한 대현스님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는
이야기가 있다.이 불상을 삼국유사의 이야기처럼 미륵불이라 한다면 기단석 위가
사왕천이 되고 처음의 둥근 반석 위는 도리천, 두 번째 반석 위는 야마천이 되며
마지막의 연화 원반대좌는 미륵보살이 계시는 도솔천이 된다.

 

 

장명등을 꽂았던 흔적,옥개석 등 탑재가 보인다.

 

 

 

폐사지인 용장사터에 도착했다.

 

용장사는 어느 시대에 폐사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초기 김시습이
이곳에 오래 머물고 있으면서 금오신화를 썼다고 하니 조선초기까지는 절이
있었고, 지금은 절터 축대들과 기와 조각들만이 폐허를 뒹굴고 있다.




용장사 ...................... (김시습)

용장골 골 깊어
오는 사람 볼 수 없네
가는 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나고
비낀 바람은 들매화를 곱게 흔드네
작은 창가엔 사슴 함께 잠들었어라
낡은 의자엔 먼지만 재처럼 쌓였는데
깰 줄을 모르는구나 억새처마 밑에서
들에는 꽃들이 지고 또 피는데...

 

 

용장사 3층석탑과 삼화령 대연화대가 하늘과 맞닿은 모습으로 보이는
유일한 장소에 섰다.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은 용장사 3충석탑과 우측 아래
소나무 위로 보이는 대연화대를 본 과거의 신라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또한 이곳을 오른 김시습은.....조금 내려오니 은적암터로 가는 계곡의
암반이 보인다.이제 모두 세월 지나 무심한 억새만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P/S

오늘 너무나 공들여 안내를 해주신 김구석 소장님과 김정자 해설사님께
감사를 드리며 복습하는 의미에서 나눠주신 답사안내자료와 홈페이지
일부분을 요약하며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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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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