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관음(觀音)이여! 피빛 눈물을 거두고,은하수 다리놓아..

- 언제 : 2006.1.20~22
- 얼마나: 2006.21 07:10~14:40(7시간 30분)
- 날 씨 :흐린날씨로 시작하여 개인 후 다시 흐려짐
- 몇명: 19명
- 어떻게 :산정산악회(
http://mysanjung.co.kr) 따라서
▷성판악휴게소-사라대피소-진달래밭대피소-백록담-용진각대피소-개미등-탐라계곡대피소-관음사 야영장(산행마감)-관음사(40분 관람)

-개인산행횟수ː 2006-3 [W산행기록-132/P산행기록-274/T620]
- 테마:눈꽃산행,문화유산 답사산행
- 산높이:한라산1950m
- 좋은산행 개인호감도ː★★★★★

 

한라산은 알고 있다.

한번 구경 오이소 높이(1,950M)의 한라산(漢拏山)은 ‘은하수를 잡아 끌어당길 수 있다’(雲漢可拏引也)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으로 그만큼 산이 높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한(漢)은 천하(天下)·은하(銀河)를 뜻하고, 나(拏)는 손을 들어 잡는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 은하수를 잡을 수 있는 산'이라는 의미다.그러나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일지언정 우리나라에서는 등수가 한참 내려가서 명함을 내밀기 힘든 높이다.남한과 북한의 해발 경계 높이는 2,000M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은 백두산이며 그 다음은 북한의 알프스 연봉이라고 일컬어지는 "관모산(2541m) "이다.한라산은 우리나라에서 높이로 보면 보잘 것 없을수는 있다하더라도 남한의 가장 높은 산임과 동시에 가장 남쪽에 있어서 북한의 가장 북쪽에 있으며 가장 높은 백두산과 대별되어 "백두에서 한라까지,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이름으로 통일의 당사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한라산은 곧 제주도이며 제주도는 곧 한라산이라고 하는데 제주의 가장 애끓는 역사는 제주4.3이다.제주의 역사는 1901년 "이재수의 난" 영화를 보고 알았지만1947년 부터 7년간의 제주도 제주4.3은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처이다.사태의 발발 경위와 미군정의 진압 그리고 좌익계열의 무력저항 등에 대한 사건 당사자의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있어 아직도 제주4.3은 아직 역사적인 정의를 내리기 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제주 4.3은 전에는 입도 뻥긋할 수 없는 금기였지만 지금은 노무현대통령의 사과 발언 및 정부의 진상조사 및 제주도민 명예회복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과사전에 보면 1948년 4월3일만 떼어 4.3이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발단은 그해 3월1일 부터 시작된다.그리고 6년 6개월 동안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지면 제주도민 1/10이 죽임을 당한다.
6년 6개월 중 4월3일만 떼어보면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를 전후하여 350명의 무장대가 도내의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하였고, 경찰과 서북청년회 숙소, 독립촉성국민회와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습격하였다. 이로 인하여 경찰 4명과 민간인 8명, 무장대 2명이 사망하였다."고 백과사전에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제주4.3은 "사건의 배경은 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 착종되어 있어서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고 되어 있다. 

남로당의 폭동으로 시작된 제주4.3은 토벌대의 삼진정책으로 3만여명을 죽였다고 하니 엄청난 일이다.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고, 죽여 없앤다는 이른바 '삼진정책(三盡政策)은 마을단위로 집단학살을 했는데 18세-40세 남자들을 나오라고 하여 이유를 불문하고 총살하거나,무장대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집단사살하고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집에 없으면 폭도 가족이라 하여 몰살시켰다고 한다.이런 과정에서 민간인의 희생도 컸다고 한다.


그동안 죽은자는 말이없고 산자는 두려움에 입을 다물었으니 관음보살조차 피빛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관음사 절 전체가 타버렸으니 피에 젖은 한라산,고이 잠들 수 없는 원혼의 그곳으로 다가간다.


작년 여름에 다녀온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남북의 휴전선처럼 반으로 쪼개진 중국령 백두산(창바이샨)을 다녀왔지만 그래도 백두산을 밟았다는 의미에서 감개가 무량하였고,이제 한라산까지 가야만 될 것 같은 의무감에 떠나는 산행이었다.


 

은세계 속으로

07:10~08:50
밤새 설봉호 배를 타고 새벽 6시에 하선하여 버스를 타고 성판악휴게소에 도착했다.
이마등을 켜고 산을 오르니 눈이 잔뜩 쌓여있어 오늘 제대로 된 심설산행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눈으로 덮어 쓴 나무들이 산길 좌우로 변화없는 모습으로 서 있고,
등로는 아주 완만한 경사가 이어지며 편하게 놓여있다.

고도를 높여 갈수록적설량이 많아지는 것을 느낄 즈음 점차 환해진다.
좁은 산길이 광장에 들어선 듯 넓어지니 이곳이 눈무게를 견디기 힘들다고
하소연 하는 듯한 사라대피소가 조금 지난 자리였다.

 

 

 


08:55~09:41
잠시 휴식 후 이제 진달래밭 대피소를 향해 출발한다.
오를수록완만한 경사이지만 가파라지고 그에 비례해서 조망도 뚫린다.
날씨는 흐리지만 눈꽃이 도톰하게 실하게 피었다.

완전히 은세계로 빠져든 산객들의 행복한 미소가 떠 날 줄 모른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점차 해안가로 갈수록 확연히 눈의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햇볕이 눈(雪)을 눈(目)부시게 만들다

10:17~:51
진달래밭대피소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니 터진 구름 사이로 햇살이 보이는데
은빛이 태양을 만나니 백설이 된다.


이제 백록담으로 오르면서 뒤를 돌아다보니 눈속의 진달래밭대피소가
동화의 한장면처럼 평온한 보습이다.

구상나무를 비롯한 키 큰 나무들은 솜을 뒤집어 쓴 크리스마스 트리같은 모습이고
바람이 불며 구름을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다.

구상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구한말인 1905년 유럽으로 유출되어
실제 크리스마스트리로 서구에서 각광받는 나무가 되었다.


그러므로 눈에 덮힌 구상나무를 본다는 것은 크리스마스트리의 원형을 보는 것이다.

 

 

 

 

 



11:00~11:39
햇살에 드러난 눈들은 자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말로 형언하기 힘든
아름다움에 넋이 잃을 정도다.나무 솦속을 빠져나오니 한라산 정상이
눈부신 미녀의 젓가슴처럼 볼룩 솟아있다.

그 가슴의 꼭지점을 향하여 산객들이 줄을 이어 장사진을 펼치고 있다.
뒤돌아 아래를 보니 이런 멋진 조망은 원추형의 한라산만이 가능할 것이다.
저 멀리 기생화산의 모습들도 정감이 간다.

 

 

 

 

 

11:50~57
백록담이다.이 감동을 어떻게 표현 할 것인가? 녹담만설(鹿潭晩雪)이 이런 것이구나.
유두함몰된 속으로 갈수록 눈이 깊이 쌓여있다.우측으로 백두산의 달문처럼 뚫여있는데
그 아래쪽으로 탐라계곡이 이어진다.즉,용암이 흘러 탐라계곡으로 크게 빠진 자리인 것이다.
그 아래에 용진각대피소가 있을 것이다.뚫여진 그곳으로 운해가 맞닿아있어
부족분을 메워주는 느낌이다.백록담 정상안내소 주변은 온통 산객들로 꽉차있다.

 

 

 

 

 

 

구름이 드리우니

11:58~12:01
관음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는 것은 탐라계곡을 따라 내려가는길이다.
끝없이 펼쳐진 운해가 압권이다.오늘 보고 싶은 멋진 풍광들이 줄줄이 따라나온다.
어디가 백설의 눈이며 어디가 흰빛 구름인가?
백록담 옆 사면을 따라 용진각대피소 방향으로 내려간다.

구름이 드리우니 대붕은 날개를 펄럭인다더니(雲垂大鵬騛)..

 

 

 

 

 

12:03~16
고사목과 백설의 삼각봉 사이로 탐라계곡이 뚜렷이 놓여있고,
삼각봉 근처는 동계훈련하는 산악인들이 눈에 띄인다.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눈맛이 그만이다.

 

 

 

 




12:38~54
용진각대피소는 훈련하는 산악인들의 텐트가 즐비하고 그 위로 눈쌓인 사면을 오르는 훈련에 열중이다.
용진각대피소를 지나 개미목의 샘터에서 한모금 물을 마시는데 눈속의 샘터는 거의 2M안쪽에 있어서
안에 들어간 산객의 머리부분만 보인다.개미등에 올라 용진각대피소를 바라다보니 화장실도 눈에
뭍혀 지붕만 보인다.

개미등을 지나 탐라계곡 하단부로 내려가니 점차 온도가 올라가면서 아침의 바싹거리든 눈의 질은
물기로 촉촉해져 걸음걸이 옮기기가 쉽지 않다.2시간을 키 큰 수림속을 걷고 계곡을 걸으며
나름대로 속도를 내어 급속횡단을 하는데 숯가마터는 눈에 파묻히어 흔적을 알아보기 힘들고
하산길이 지루함을 느낄 즈음관음사 야영장에 도착했다.


 

 

 

 

 

 

 

 

 

 

 

아픔을 넘어 희망의 산실로

15:08~19
관음사 야영장에 도착하면서 실제적인 산행은 마감되었다.야영장 옆 휴게소에서 잔치국수로
요기를 하고 아직 후미가 도착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야영장에서 1KM떨어진 관음사로 갔다.

관음사는 일주문 앞의 안내판에 1948년 4.3 사태로 소멸되었다가 1969년에 복원되었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이렇듯 제주도의 아픔을 함께 한 사찰이기에 제주도민에게는 관음사가 더욱 뜻 깊은 곳이다.
산행들머리 부터 보였던 까마귀는 관음사에 도착하여 온통 사찰을 뒤덥으며 울고 있었다.

관음사는 관음도량(觀音道場)이다.제주도 관음사는‘제주 4.3 문학상’을 제정하여 ,
4월3일시상식을갖는 절이다.문학상 제정에 대해 관음사는 “4.3 사태의 고난을 도민과 함께 겪은 관음사는
앞으로 다가올 민족통일에 대비하고 제주의 삶을 꾸려갈 세로운 세대와 후손들에게 이 땅에서 발생했던
4.3 사태의 실상들을 정직하게 남겨주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도리며 의무라고 생각되어 상을
제정하게 되었다”고 밝혔다."4.3사태"와 "통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점을 유심히 볼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들(衆生)은 고뇌와 고난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佛子들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관세음보살을 찾게된다. 슬픔이 가득한 사바세계와 고난에 찌들려사는 중생들을 제도하고 生老病死가
常存하는 중생계를 살기좋은 곳으로 만드는 보살이 바로 관세음 보살이기 때문이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 욕망의 갈증으로 인한 모든 고통을 풀어주기위해계시다고 믿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불교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중생의 근기에 맞는 모습으로 나타나
대자비심을 베푸는 보살이다.

여기서 흥미 있는 사실은 손에 물바가지를 든 관음상과 여신상과의 관계이다.
내가 그동안 다녀본 사찰,즉 관음도량을 보면 2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하나는 바닷가 근처이며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동해 낙산사 홍련암 관음굴,서해 낙가산 보문사 극락보전 마애관음좌상,남해 보리암 해수관음보살상,
여수 향일암 해수관음보살상,부산 기장 해동 용궁사 해수관음보살상 등을 보면 바다 근처에 사찰이
있다는 점이다.물론 관음 이라는 말앞에 해수라는 말이 붙어있어서 눈치챘겠지만 산사가 바닷가
근처에 있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무관세음보살"이라고 하면 비는 이의 기원을 한가지는
들어줄것 같은 어머니 같은 분이니 "여신"이다.

여자는 보통 "음(陰)"을 나타내니 바다가 어울리겠다.게다가 보통 바다는 생명을 잉태하는
양수같은 곳이 아닌가?인자한 어머니 같은 관음보살은 또한 여럿의 머리나 여럿의 손을 가지고 있는
불상을 본적이 있다면 그 불상도 관세음보살을 형상화 한 불상으로 생각하면 될 듯싶다.

관세음 또는 관음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 아바로키테슈와라(Avalokite○vara)의 한역이며,
아박로지저습벌라(阿縛盧枳低濕伐羅)로 음역(音譯)되기도 한다. 밀호(密號)로는 정법금강(正法金剛)
또는 청정금강(淸淨金剛)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현장(玄乍) 이전의 구번역에서는 광세음(光世音),
관세음(觀世音), 관음(觀音), 관세자재(觀世自在) 등으로 번역했으나, 신역에서는 관자재(觀自在)라고
번역했다.

이러한 불상 중에는 머리가 11개 또는 33개나 달린 것도 있고 손 또한 그러하니 이러한 불상을
11면 관음보살상 또는 33면 관음보살상이라 부른다. 이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머리와 손을 가지고 있는 천수천안관자재보살상도 있다.
하기야 속세의 구석구석에서 찾고 부르는 소리에 감응을 주려면 어찌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귀로 다
감당하랴마는 그 의미를 강조한 것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싶다.제주도 관음사의 보살은 제주도의
원혼의 비원을 들어주기에도 벅찰 노릇이다.

제주도 관음사는 일주문을 지나니 바닥의 현무 박석 양옆으로 부처님들이 갓머리를 하고 도열되어있고
사천왕상 우측으론 제주4.3 유적지로 돌로 만든 참호가 보인다.대웅전 안에는 목조관음보살이 있는데
목조이지만 금빛을 하고 있었다.
파도가 움직이니 거오는 물에 잠김(波動巨鰲沒)을 우려해서일까 제주도는 온통 사방이 바다이지만
제주도 관음사에서는 바다가 가까이 있지는 않았다.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림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정희성 시인의「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꿈을 꾸다

이제 통일이 된 그날을 꿈꿔본다.일단 통일이 되면 한국의 영토는 영국과 맞먹고,
인구도 비슷하게 되겠지요.즉 유럽의 강대국과 비슷한 수준의 영토와 인구를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인구와 영토가 곧 국력인 시대는 지났지만,나라가 커진다는 것은 내수시장이 확대된다는 것을 뜻하고,
장기적인 경제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통일비용 때문에 고통도 따르겠지만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는 만나야 한다.

현실적으로 승일교라는 다리가 있다.
신철원과 구철원사이의한탄강에놓인다리로,그반은북한측이
전쟁전에,그반은남한측이전쟁후에놓았다하여'이승만'과'김일성'의이름에서한자씩따서승일교라
이름붙였다는속설이있다.여하튼 다리가있으나 건너지 못하는 다리가 아니라 완전통일되어 자유왕래가
가능한 그날을 염원해 본다.

관음이시여! 이제 피빛 눈물을 거두고,은하수 다리놓아 다시 만나게 하소서

노래 직녀에게 듣기

 

도올 김용옥,제주 4.3을 말하다 1부 https://youtu.be/ueB1LLDL-fY

2부 https://youtu.be/i_YIedf0x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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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모든 것 속에서 자신을 만난다.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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