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원효봉▲닫힌 벽을 열어 빈 공간속에 오묘한 진리를 찾아
(부제:의상대,원효석대를 찾아서)

- 언제 : 2006.2.4
- 얼마나: 11:20~15:20(4시간)
- 날 씨 : 입춘으로 맑은 날씨이지만 추운날씨,능선 강풍
- 몇명: 홀로
- 어떻게 : 자가용 이용
▷상마마을~오동나무집~원효봉~북문 가기전 지능선~원효암~의상대~원효석대~범어사

- 개인산행횟수ː 2006-5 [W산행기록-134/P산행기록-276/T622]
- 테마: 근교산행,문화유산 답사산행
- 산높이:원효봉 687m
- 좋은산행 개인호감도ː★★★★

보물찾기

나름대로 금정산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한울타리님의 산행기를 보고는 뭔가 머리를 둔기로 맞은 느낌이었다.나이가 들어가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줄게 마련인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한울타리님 산행스타일은 "작은 물고기까지 놓치지 않는 싹쓸이 멍텅구리배 저인망식 산행"이라고 내가 말한바 있는데 그동안 수확한 크고 작은 물고기중에서 나는 큰 물고기만 챙겨서 볼 요량으로 느지막히 떠난다.어차피 산행지도에도 원효석대나 의상대는 표기가 없어 산행기를 눈으로 훌어보고 지도도 없이 떠난다.

사실 오늘 부산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해가 중천에 뜬 시점에 산행을 하는 이유도 있지만 이미 사진과 대충의 지리를 알고 있으므로 빨리 산행을 할 이유도 없었다.그러나 실제 산행을 해보니 비슷비슷한 바위가 너무 많아서 원하는 곳을 찾기 위해 산허리를 오르내리고 가로지르며 한나절 멧돼지처럼 훌어다녔다.

잘 모르는 곳을 찾아간다는 것은 닫힌 문과 같아서 온통 벽을 느꼈고,한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이 열리니 그것은 상상보다는 훨씬 감동스러움을 느꼈다.닫힌 문이 열리는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이런 수수께기를 풀려는 보물찾기식 산행도 권할 만하고 생각한다.

금정산 범어사에는 범어 3보3기(梵漁 三寶三奇)가 있다.오늘 나는 범어사의 삼국유사(보물 제419-3호)를 범어사 성보박물관에서 영인본이지만 보았고,범어사 3층석탑(보물 제250호),범어사 대웅전(보물 제434호)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으니 이것이 3보이고 원효석대(元曉石臺) 자웅석계(雌雄石鷄) 암상금정(岩上金井)등 이름난 세 암석을 3기라고 하는데 그중 원효석대를 보았다.자웅석계와 암상금정(금샘)은 이미 예전에 보았으니 사실상 범어 3기도 다 본셈이다.
그리고 금정8경 중 하나인 의상대를 보았다.



찾는 것은 보이지 않고

11:21~11:58
상마마을 사자암 맞은편에 차를 주차하고 마을 안쪽으로 걸어가며 위를 바라보니 원효석대가 보인다.
"오동나무집" 마당을 건너 우측으로 난 산길로 접어드는데 예상치 못한 불청객을 본 때문인지
강아지 울음이 고요한 산가에 깨진 유리파편이 튀는 듯하다.애써 무시하고 산으로 드니
흐릿한 길이지만 방향은 잡힌다.중간에 좌측길과 우측길로 나뉘는데 우측으로 리본이 걸려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갔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산세흐름을 따라 좌측으로 난 길로 들었다.


지능선의 마루금에 오르니 좌측으로 범상치 않은 바위가 있다.여기가 의상대인가 하고
훓어보지만 아니다.글씨가 없어서 산길을 내려 다시 올라 족적없는 산길을 능선 따라 오르니
매바위로 보이는 곳에 오른다.


이곳에서 보니 원효암이 눈에 들어온다.그리고 그 반대쪽으로 보니 용바위가 보인다.
용의 머리,눈,생김새가 언젠가 "부산의 풍수" 책에서 본 모습 그대로이다.예상치 못한 수확이다.



12:11~48
이곳에 오니 웬 바위가 이토록 많은가? 예사롭지 않은 바위가 군데군데 수없이 많아서 길도 없는
산길을 걸으며 바위라는 바위는 죄다 취조하듯이 기억속의 바위와 인상착의를 대조한다.


어느바위에 올라도 계명암이 보이니 이 바위 같기도 하고 저 바위 같기도 하다.저 멀리 고당봉 쪽
능선 방향을 보니 북문으로 넘어가기 전 원효석대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되는 바위가 보이고
그 뒤로 고당봉이 보인다.


어느정도 인상착의가 뚜렷한 바위는 모두 훓어보았지만 의상대는 보이지 않아서 원효석대라도
볼 생각으로 석문을 지나 원효봉으로 향한다.



원효봉에 서다

13:20~58
지능선을 따라 금정산 주능선에 오른 후 원효봉에 올랐지만 봉우리치고는 별로 특색이 없다.
원효암 암자가 있는 능선과도 연결이 되지 않지만 여기서 보는 의상봉과 부채바위가 볼만하다.



원효암 가는 길

13:58~14:08
금정산 주능선에서 북문방향으로 걸어가서 그동안 대수롭게 보았던 기암을 넘자마자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처음엔 흐릿한 산길이 있는듯 하더니 곧 없어져 버린다.곧 철조망이 나타나는데 철조망을 따라 능선으로 오르니
철조망이 찢어져 있는 곳이 있다.그 안으로 들어가서 전봇대가 보이는 쪽으로 길없는 산길을 헤쳐가니 다시 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 산길을 내려오니 원효암이 나오는데 철조망과 철문이 닫혀있다.그래서 우회를 하니
지기를 누를 목적으로 세웠다는 탑이 보인다.


탑을 따라 철조망을 우회하니 원효암으로 가는 길이 나타나고 곧 일주문이 보이는데 원효암 글씨는
빛이 바래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울 정도다.계단을 올라 원효암 경내로 들어가니
너무나 조용해서 숨을 죽이고 사위를 살핀다.


제일선원 옆의 무량수각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 글로써 조계산 선암사의 무량수각 현판을
빌려 온 듯 똑 같은 필체다.


좌측 요사체 옆에 3층석탑이 보이는데 1972년에 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다고 하고
이 탑은 지금의 범어사 원효암에서 30m 정도 떨어진 빈터에 있다가 원효암 경내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경내에서 방금 들어온 일주문을 바라보니 많이 이즈러져 균형이 맞지 않아서
오히려 고색창연한 그 느낌이 좋다.일주문을 빠져 나오니 길 옆 나무들이 보기 좋고
경봉당대선사를 비롯한 3기의 부도밭이 있고 곧 경내에 있던 3층석탑과 같은 모양의
원효암 동편 삼층석탑[元曉庵東便三層石塔]이 있다.



의상대와 원효석대

14:14~17

길을 따라나와서 원효암 뒤쪽의 능선상에 있을 원효석대를 확인하기 위하여 길옆 높은 곳을 올라
조망을 보려고 하는데 여기에 예상치 못한 의상대가 있다.그렇다면 원효석대와 의상대는 같은 능선에 있는 것이다.
한울타리님의 산행기를 보면서 무엇을 잘 못 보았길래 나는 원효석대의 건너편 능선에 있다고 느낀 것일까?
의상대 아래 상마마을이 보이고 의상대에서 원효석대를 보니, 원효석대 너머 마루금에 뾰족하게
북문가기전 능선상의 이정표가 되었던 그 기암이 보인다.


왼편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 옆에 가로 20m 10㎝, 세로 1m인 10여도 경사진 타원형 화강암에
"의상대"라고 행서로 음각되어 누구나 쉽게 알아 볼 수 있다.의상대사가 금정산에서 수도 하시던 석대가
바로 이곳 『의상대』이고 이 대에서 남해를 바라보는 절경을 사람들은 의상망해(義相望海)라고 먼 옛날부터 불렀다.


의상대에 올라 시인, 묵객들이 읊은 글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화엄대종사로서 의상은 이 대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수도를 하시면서 범어사를 창건하였다.본 내용은 범어사 일주문 아래 성보박물관
안에 잘 안내되어있다. 범어사는 신라의 왕이 꿈의 계시를 따라 의상(義湘)대사와 함께 7일 밤낮으로
제를 올려서 10만 왜군을 물리친 후 창건하였다는 절로, 창건부터가 일본과는 적을 진 셈입니다.


14:41
원효석대 좌우 산길은 온통 잡목과 대나무로 인하여 길다운 길이 아니라서 아쉬었다.근처에 가보니 여기가
원효석대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지만 근처 높은 바위로 오르고 보니 뚜렷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효석대로 올라가보니 바위와 바위사이 틈새가 까마득해서 오금이 저릴 지경이다.해골물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꿀맛같다는 일체유심조(一體有心造)를 깨달은 기상이 이해될 만하다.
원효 아니면 누가 저 위에 올라 앉아 있을까?


맞은편 계명봉 아래 계명암이 보이고 아래로는 범어사가 지척이다.원효석대를 따라 빙둘러 아래쪽까지
내려서보니 그기서는 원효석대의 모습이 무등산의 규봉같은 모습으로 창끝처럼 찌를 듯 하늘을 보고 있고
능선 위쪽은 온통 내나무 밭으로 길이 아주 흐릿하다.



과거에 본 범어사는 지금 내가 보는 범어사와 다르다

15:04~20
산길을 내려오니 범어사이다.범어사 옆 계곡의 바위 등산로는 언제 보아도 정감이 가고,스승 없이
홀로 깨달음을 얻으신 나반존자를 모시는 독성전 현판 아래는 종합예술품이다.
생동감 있는 무늬 아래로 아치형의 문이 있고 그 안에 꽃창살이 아름다우며 특히 문 좌우에
아주 작게 조각되어 있는 남녀 인물상은 단청이 바랜 색감으로 민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범어사 3보 중 하나인 대웅전은 계단아래 귀면을 한 석상이 귀엽고 그 아래 마당도 꽃 무늬로 채워져있다.
세세한 곳까지 아름다움을 채워진 절이다.


널리 중생을 구제한다는 보제루(금강계단)을 지나 불이문이 나온다.불이문 옆 대나무들의 서걱거림이
정신을 맑게하니 소리에 의한 죽비소리가 이런 것이다.


불이문과 사천왕문 주련은 동산대선사가 적었다.그의 글은 보제루 앞 "금강계단" 글씨도 썼는데 당(唐)
유공권(柳公權)의 서미가 엿보이는 해서로 군더더기를 다 떨어내고 근골(筋骨)만 남긴 청경(淸勁)한 글씨이다.


주련의 내용은 이렇다.‘신광불매만고휘유(神光不昧萬古煇猷)’와 ‘입차문래막존지해 (入此門來莫存知解)’라는
주련이 걸려있는데 "신광의 오묘한 뜻을 알기 위해 이 문을 들어서면서부터는 알음알이를 배척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해석을 해도 어렵다.좀 더 쉽게 말하면 깨달음의 세계는 지식이나 말로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인데
선찰대본산다운 글이다.한마디로 말하면 '이 곳을 들어올 때는 기존의 상식과 지혜를 버리고 들어오라."는 의미다.


불이문은 해탈문이라고도 불리는데, 둘이 아닌(不二) 하나의 진리로써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면 해탈을 이루어
부처가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불이문이라는 이름을 쓰지않고 불국사에서는 자하문이라고 하며,
원주 구룡사처럼 보광루가 불이문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관촉사의 석문처럼 독특한 형태도 있다.


사찰에 들어서면 순서대로 일주문에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금강문에서 역사를 만나거나 천왕문에서
사천왕을 만나며 마음을 정화하고, 불이문에서 해탈을 이루면 드디어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이나
대적광전 등에 들어선 불타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불이문은 수미산 정상에 이르는 문으로 여기를 지나면
도리천에 도달한다고 하는데 몇명이나 그기까지 가 보았을까요?


불이문 지나면 천왕문이고 그 아래에 일주문이 있다.산문은 닫히면 벽이요, 열리면 빈 공간이다. 있는 건
이렇게 벽과 허공뿐인데 문은 어디에 있는가. 문은 벽인가? 그렇다, 아니다. 그러면 문은 빈 구멍인가?
그렇다, 아니다. 문이란 본시 열리는 벽이며 닫히는 허공이다.


그 의미는 이렇게 고정된 실체가 아닌 가운데 있다. 그건 갑작스레 드러나는 국면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곧잘 실체가 아닌 걸 실체화하고, 언어를 현실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이제 일주문이 보인다.조계문이라는 글 옆으로 선찰대본산,금정산범어사라는 글이 있다.

한국 불교의 큰 맥인 경허(鏡虛) 스님이 범어사에 주석하면서 세운 법맥은 용성·동산 스님으로 이어지면서
1910년대 범어사는 한국 불교의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 되는데 범어사 일주문의 ‘선찰대본산’ 현판과
‘금정산범어사’라는 현판은 1912년 해사당(海蛇堂) 스님이 쓴 글이다.70세를 넘긴 스님이 적었다고 보기엔
얼마나 힘찬 필법이며 군더더기 없는 글인가? 禪 사찰에 어울리는 글이 아닌가? 한참을 바라본다.


직경이 1m, 높이가 1.45m인 원추형 돌기둥 4개를 나란히 세우고 그 위에 짧은 나무기둥을 올린 일주문은
국내 일주문 중에서 가장 개성이 넘친다.형태와 기법의 변화를 꺼리던 조선의 목수 중에도 이처럼 튀는 이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어떻게 보면 주춧돌이 기둥의 반이다.


일주문 우측의 성보박물관에 들러 범어사에 대하여 좀더 깊이있게 공부하고 오늘의 산행을 끝낸다.

摩訶大法王(마하대법왕) 크고 수승한 법이여
無短亦無長(무단역무장) 짧고 긴 것 흔적도 없어라.
本來非 白(본래비조백) 본래 그 모습 희지도 검지도 않지만
隨處現靑黃(수처현청황) 곳에 따라 푸른색 노란색을 나툰다네.


-동산대선사

많이 아는 것을 경계할 줄 아는 지혜

동산대선사가 쓴 범어사 대웅전의 주련글은 어떻게 보면 주식의 움직임과 너무 닮았다.한번 의역을 해보면..

크게 높이 오르는 주식이여.
어느 종목이 오를지 증표가 없어라
본래 대형주,소형주 구별도 없지만
때에 따라 관리종목,이상종목이 주도할때도 있다네.


금정산은 산성이 있다.왜적을 막기 위함이다.범어사 창건부터 왜적을 막기 위해 세운 절이라는 것을 알고
한편으론 놀랐다.범어사는 의상대사,원효대사와 최근의 하동산대선사의 발자취가 뚜렷했으며
이번 산행을 계기로 범어사에 대한 자긍심이 더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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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모든 것 속에서 자신을 만난다.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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