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태령▲과거가 되어버린 추억은 내 곁에 머물지 못하면 슬픔인 것을.



- 언제 : 2008.2.2(토) 09:30~15:30
- 얼마나: 2008.2.2 10:00~13:00(3시간)
- 날 씨 : 눈은 내리지 않았으나 눈올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날
- 몇명: 8명
- 어떻게 : 고뫼산악회 동행
▷어린이대공원-박재혁동상-삼림욕산책길-불태령(만남의 광장)-KBS송신탑-365봉-만덕고개
- 개인산행횟수ː 2008-5[W산행기록-184 P산행기록-326/T670]
- 테마: 근교산행,답사산행
- 산높이:불태령 340
m
- 호감도ː★★★★

 


애초에 자연이 이루어진 이후 사람들이 이동을 하면서 길이 생기고 중요지점은 지명이 만들어졌을 것이다.그러나 그 지명이라는 이름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뀌게 되는데, 어떨때는 지명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지명의 원래 위치조차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 왕왕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여러 가지 학설이 뒤따르게되면서 "설"이 난무하게 된다.현재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의 위치도 여러설이 있고,백제의 위례성도 마찬가지 처지다.위례성의 의미조차 "울타리"를 뜻하는 말이라는 해석을 비롯하여 여러 해석이 뒤따를 정도다.



그런 곳 중의 하나가 불태령(佛態領)이다.부처님의 모습(자태)이라는 불태는 산아래 민가에서는 부태로 "ㄹ"이 탈락하기도 하고 비슷한 한자의 불웅(佛熊) 혹은 불능(佛能)으로 바뀌기도 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백양산과 금정봉 사이 610봉이 불태령이라는 주장과 현재의 만남의 광장을 불태령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역사이든 지명의 역사이든 애정을 갖고 돌아보지 않으면 쉽게 잊어 버리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꿈을 꾸는 사람은 대체로 다른 사람보다 슬픔이 많은 편이다.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추억으로 하여, 다시는 내 곁에 머물 수 없다면 그 자체가 슬픔이다.잊혀졌어도 가끔 누군가 헤집어 다시 떠올리수 있다면 그 기억의 편린은 웃음을 찾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동기동창의 친목성격이 강하여 이름은 분명 "고뫼(高뫼)산악회"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등산하는 것은 만남의 핑계일뿐이고, 속을 들여다보면 술이 절반인 고주(高酒)라서 뒤에 망태기만 붙이면 큰일 날일이다.술은 자제하고 등산을 해보려고 하지만 일단 만나면 부지불식간 어느새 술잔으로 회포를 풀고있는 우리들을 발견한다.

 

원래계획은 어린이대공원에서 금정산 남문까지였지만 술자리를 찾아서 결국 만덕고개에서 하산하여 또 다른 술자리를 찾아내려왔다.

 

 

 

9:30
사람의 말과 글은 참 재미있다.이번 산행의 공지사항을 보니 다섯 번째,
" 5. 기 타 : 등산회 회원이 아이라도 참석 가능함"이라고 적혀있다.



내가 해석한 바로는 집의 애들도 동참가능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그런데
나중에 자세히 보니 "등산회 회원이 아이라도 참석 가능함"은 "등산회 회원이
아니라도 참석 가능함"의 오타였다.이것은 굳이 고뫼산악회의 회원이 아니더라도
고교 동기면 누구라도 참석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또 다른 설(說)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하튼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아들과 딸을 데려갈 참이었으나 아들은 올해
입학하는 고등학교를 배치받는 날이어서 불참하고 딸과 함께 모임장소로 갔다.


 

결국 모임출발장소인 어린이대공원 입구에 가보니 자녀와 함께 한 사람은
나뿐이고,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참석인원도 술판 벌리기 좋은 7명이다.
우선 만나서 대공원 입구 옆 가게로 들어가서 막갈리 4병으로 목을 축인다.


슬슬 산행을 시작하여 쌀쌀한 날씨에 산행하기 적당한 몸의 기운이 되었을때
고교 선배중 한분인 박재혁의사 동상앞에서 묵념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박재혁[朴載赫, 1895 ~ 1921.5.27]의사는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만주로 건너가 의열단()에서 활동하였다.1920년
9월13일 고서적상으로 가장,
고서() 속에 폭탄을 숨겨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부산으로 들어와
다음날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를 만나 폭탄을 던졌다.
1921년 3월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과 폭탄의 상처로 고통을 겪다가 단식을 시작하여 형 집행 전에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0:39
성지곡수원지에 오면 해송의 일종인 곰솔과 직선으로 뻗은 편백나무가 어우러져 삼림욕장소로 안성마춤이다.
그래서 바로 만남의 광장으로 가지 않고 에둘러 삼림욕장 산책길을 빙둘러간다.이곳은 햇살좋은 날에도 좋지만
오늘처럼 을씨년스러운 날에도 사유하며 걷기 좋은 곳이다.



나는 "무작정 산을 오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믿으며 산길 하나를 걸어도, 고개 하나를 넘어도 사유해야만
산행의 즐거움이 2배, 3배로 커질 것"이라는 산림청 이현복팀장의 말에 공감하는 바이다.


 



 

 

10:40
또 같은 편백나무의 모습이건만 자세히보면 수직방향의 껍질이 뿌리근처에 다다르면 수평방향의 살트임을
볼 수 있고,어떤 편백나무는 떨어지는 낙엽을 붙잡아 액세서리로 치장한 것도 있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일진대왜이 낙엽은편백나무허리춤에서꽂혔을까? 내 몸에 붙어 있는
귀중한 등산용 액세서리는 내 눈이 아득해 보이지 않고 편백나무의액세서리만내 눈에 내 맘에
가득 하다.


욕망의 마음은 마음에서 시작되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 없을지나 그 마음속에 피어나는 욕망자체가
허공에 뜬 구름만큼이나 실체없는 변화무쌍한 것일지라도 모두들 그걸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본능이다.



본능에 충실하여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에 따라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자연은 아름답지만
무위자연으로 어떤 의도된 바도 없이 절묘하게 저렇게 꽂힌 것 또한 아름답다.



함께 산행을 한다고해도 약간 빨리가고 혹은 늦게가면 그 자체로 홀로산행의 사색은 각자의 몫이 된다.
이유없이 오고 흔적없이 가는 건 없다.다만 나의 무지로 깨닫지 못했거나 삶과 삶의 비교에서 오는 비애에
대하여 충분히 새겨진 가슴앓이를 애써 무시하려고 했을 뿐...

 



 



 

 

 

10:55
고개라는 것은 참으로 요상한 존재다.내가 가는 수직방향으로 볼 때,그곳은 가장 높은 곳이지만
주위를 둘러 수평의 선상에 그곳을 다시 그어보면 그곳은 가장 낮은 곳이다.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곳은 위험을 알려주지만 일단 그곳을 넘으면 안도 할 수
있는 곳이라서 그곳은 평온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잊혀진다는 것.망각(忘却)은 시간의 이복동생이다.세월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아직 북한에선 엄연한 보리고개가 있지만 남한에서는 세월의 흐름에 기대어 잊혀져가고 있다.
장소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진행되는 것이다. 



 



 



 

11:07
불태령은 고개인가?고개라고 본다면 불태령(佛態領)의 령은 "재"를 의미하는 고개이다.
백이성 낙동문화원장의 설에 따르면 만덕에서 초읍 성지곡 쪽으로 넘던 고개임에 틀림없으며 지명의 유래도
옛날 성지곡 골짜기를 명당으로 판정한 성지도사가 이곳 고개에 올라서서 만덕사가 있던 곳을 쳐다보면서
부처님(佛) 모습(姿態)이 보인다고 불태령으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주장하였다.



좌대곡령(座臺谷嶺 1,257.6m=좌일곡령)이나 치술령[致述嶺]처럼 이름은 고개이나 분명 현재의 위치가
봉우리처럼 솟은 곳과 같은 "고개"보다는 중요한 "목"에 해당된다면 불태령은 돌무더기 쌓아놓은 610봉이
맞을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예외일 뿐 99%이상 대부분의 령은 고개의 의미로 이름이 붙여져 있다.



각자 믿고 싶은 학설을 따르면 되겠지만 나는 대부분의 고개에 재 령(嶺)을 사용한다는 큰 원칙에 부합하여
바로 이곳 만남의 광장을 불태령으로 믿는다.어쩌다가 한번 발생하는 요행이나 일탈보다는 기본이나 원칙에
따르는 것이다.어차피 근원적인 자료는 부실하고 사변적인 설만 있으니...

 

만덕에서 성지곡을 넘던 고개길이라서 그랬을까? 이곳에선 등산장비도 팔고 동동주도 판다.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듯 건빵을 안주로 동동주 두통을 가져와서 둥근 통나무 의자에 앉아 고개를 넘고 있다는 의미로
또 한잔한다.

 

 

 

11:48
완만한 오름길을 걸으며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금정산 철학로로 이름붙여질 만큼
이곳은 사색하기에 좋은 산길이다.KBS송신탑을 지나 365봉을 오르고 보니 올해는 366일이라는 것이 자각된다.
그래서 이번달 2월은 오랜만에 29일도 있다.덤으로 하루를 더 받은 느낌이다.

햇볕이 거의 없어 조망도 별로지만 만덕의 병풍사도 보이고 사직방향의 도심도 산과 산사이에 놓여있다.

 

 


11:57
그러나 산행은 또 다른 복병을 만난다.만덕1터널이 만들어지기 전 넘어야했던 만덕고개를 만났기 때문이다.
동래에서 구포로 오려면 넘어야했던 만덕고개는 그 옛날 동래사람들이 구포장을 보러갈 때 넘는 곳이었기 때문에
도적의 소굴이었다.그래서 아직 "만덕고개와 빼빼영감"의 구전설화가 남아있는 곳이다.



우리도 여기서 도적을 맞았다.그것은 산행을 계속 이어가려는 의지를 도둑맞은 것이다.
고개의 길가에 차려진 포장마차에서 소주와 두부김치로 연타석 잦은 술의 잽같은 유혹의 펀치를 맞은 결과
제대로 마시기 위해서 바로 동래방향으로 하산하여 "고성장"이라는 가든에서 옻닭과 복분자술로
대미를 장식한다.

 

오랜만에 찾아 온 이길이 생각보다 안온하고 편안하다.산길을 못이어간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쓸쓸함이
남았지만....


나는 이런 친구들과 다시 다음 산행을 가야되는지 고민하고,
친구들은 속도 모르고 내 딸에게 앞으로 자주 아빠따라 나오라고 하고,
보나마나 내딸은 두 번 다시 따라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을터

 

어긋나는 것은 원래 말이 많은 법이나 그렇지 않을 때는 바로 이때이다.



고뫼산악회인지 고주음주회인지 분간이 안되지만 친구들과 만난다는
친목의 기본은 지키는 일이니 실용을 따진다면 산악회의 원칙도 희미해져버렸다.

 

능선을 따라 하얀그리움이 얼어붙고 있을 때 따뜻한 술은 산 아래에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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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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