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산 박달골▲알고는 갈 수 없으나 모르고는 갈 수 있는 심설 두타행(頭陀行)



- 언제 : 2008.2.9(토) 23:00~2.10(일)21:30
- 얼마나: 2008.2.10 06:45~14:00(7시간 15분)
- 날 씨 : 대체로 맑음
- 몇명: 35명
- 어떻게 : 부산 벽소령산악회 동행
▷매표소-삼화사-학소대-쌍폭,용추폭-박달골-박달령-이후 원점회귀
- 개인산행횟수ː 2008-6[W산행기록-185 P산행기록-327/T671]
- 테마: 심설산행,계곡산행
- 산높이:박달령 1,200
m
- 호감도ː★★★★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것,인간세상의 온갖 괴로움을 떨치고 마음을 밝히는 일,정처없이 떠돌면서 갖가지 괴로움을 무릅쓰며 도를 닦는 일이 두타(頭陀)의 본래 뜻이라면 아마도 두타산을 간다는 자체가 바로 두타행(頭陀行)일 것이다.

 

두타산(1,352.7M)은 청옥산(1,403.7M)보다 51M 낮은 산인데도 불구하고 청옥산마저 두타산 영역에 두는 이유는 모르겠으나,여하튼 두타산에 오면 바위,산세,계곡,넓은 암반,기품있는 나무,이름난 사찰 등 팔방미인이어서 눈 닿는곳마다 명품의 산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무릉계곡은 국민관광지 1호이며 누구라도 한번만 오면 단번에 그 풍광에 사로잡히는 곳이다.

 

25여년전 5월초에 가서 본 무릉계곡의 수려한 산중 경관에 반하여 기회가 되면 겨울 두타산도 보고 싶은 욕심이 늘 있었다.그러나 겨울엔 갈때마다 폭설로 인하여 산행자체를 포기하고 무릉계곡만 몇 번 관광하고 돌아왔다.



겨울 두타산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던 차에 이번 벽소령산악회의 코스는 810M 댓재에서 출발하여 두타산과 청옥산을 밟고 신선봉을 거쳐 무릉계곡으로 하산하는 산행계획에 반색하며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댓재에 도착해보니 얼어붙는 추운 날씨에 러셀이 안된 1M이상의 심설로 인하여 100미터 운행 후 바로 포기하고 삼화사로 내려왔다.

 

부득불 급히 변경된 산행코스를 두타산성을 거쳐 두타산을 산행하고 박달령까지 능선을 잇고 이후 박달고개로 내려오는 계획으로 바뀌었는데,나의 경우 두타산성 코스는 여러번 다녀온 바 있고, 그 험한 산길을 모르고는 갈 수 있으나 알고는 가기 싫었다.



두타산과 청옥산을 아울러 두타산은 댓재에서 출발하지 않고 삼화사에서 출발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올라야 하는 일명 "골때리는 산"-머리 두(頭),칠 타(打)-이지 않은가?

 

그래서 박달골로 직진하여 바로 박달령으로 오르는 계곡산행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사실 계곡산행은 여름에 주로하고 겨울엔 깊이 쌓이는 눈 때문에 위험하기 때문에 별로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작년 겨울부터 나름대로 산을 꾸준히 찾았지만 심설은 밟아보지 못해 내심 안달이 나 있어서 오늘은 실컷 눈을 밟아보려는 욕심도 가세하여 올라갔던 길을 그대로 내려오는 단조로운 계획에도 불구하고 심설운행 훈련한다는 기분과 겨울계곡의 색다른 이미지를 느끼고자 홀로 계곡을 향한다.



이미 정상을 꼭 밟아야된다는 생각을 버린지 오래이며 등정이라는 결과보다는 얼마나 어려운 등반 과정을 거치며 등반했느냐에 참 뜻이 있다고 보는 등반 정신-머머리즘[mummerism,등로주의]-에 찬성하는 바이지만 사실 얼마나 산을 잘 타는가에 대한 "쟁이"보다는 나의 경우 얼마나 많이 느끼며 그것을 글로 적는가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일담으로 한번도 쉬지 않고 두타산성을 거쳐 두타산을 오른 대간꾼들인 벽소령 산악회원들과 함께 했다면 출중한 그들의 산행실력에 적잖은 민폐를 끼칠 뻔했다.

 

 

 

05:28
백두 대간 길인 댓재에 도착하여 보니 차도 옆 쌓인 눈이 족히 1M 가까이 된다.
선두를 따라 통일된 대오를 만들며 100M 진행하던 선두팀이 러셀이 안되어 있고
1M 이상되는 심설에 중도포기하고 되돌아오며 일단 삼화사로 가기로 한다.

산행을 할 때는 무거운 DSLR보다는 기벼운 콤팩트를 가지고 가는데 아무래도
빛이 약한곳에서는 노이즈가 많다.

6:46~07:09
아직 어둠이 있는 시각에 매표소를 지나 무릉반석이 있는 금란정과 삼화사를 지나
학소대에 이르니 날이 제법 밝았다.학소대를 지나 일행들은 두타산성으로 오르고
나는 우선 쌍폭과 용추폭으로 향한다.이곳은 무릉계곡이 아닌가? 눈닿는 곳마다
예의 그 수려한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07:39~45
쌍폭과 용추폭 모두 얼음에 덮혀있는데 물소리만 청아하게 들린다.
여름날의 그 멋진 모습은 감춰두고 덮개로 포장을 해 놓은 듯
운치가 반감되어 아쉽지만 나름대로 색다른 모습이다.

 

07:45
용추폭포 앞에 있는 철계단은 하늘문을 지나 문간재로 가는 길인데 설치미술 조형물같이
계단의 통일감과 우측으로 휘어지며 꺽여들어가는 곡선미가 생동감마저 불러일으킨다.

 

 

07:56~08:37
사실 이 산의 진면목은 이곳을 지나 문간재 이후부터다.문간재는 이름 그대로 이 산의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中門)
쯤에 해당된다.


 

이곳을 올라 그 풍광을 한번더 보면 좋겠지만 일행들이 박달령을 거쳐 박달골로 내려오게 되어 있고 나 또한 오늘
계곡에서 실컷 눈을 밟아보려는 욕심에 발길을 돌려 박달골로 향한다.


햇살이 산머리부터 비추기 시작하는데 이 좋은 풍광을 계속 쳐다볼 수가 없다.발아래도 계속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예상은 했지만 푹푹빠지는 심설운행은 드디기만 하다.
어느정도 러셀이 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온몸이 젖어든다.

 

 

 

 

 

 

 

9:32~10:07
누군가 하산하면서 경사진 곳은 글리세이딩한 자국이 뚜렷한데 이런 곳을
오르는 나는 더욱 힘들어진다.경사가 져서 바로 오를 수 없기 때문에
프론트 킥킹을 하면서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계곡이 깊긴 깊다.10시가 지나서야 직접 태양을 볼 수 있었는데 햇살이 워낙 강하여
바로 선글라스로 안경을 교체한다.

 

 

 

 


10:48~12:48
11시가 다되어 박달령을 바로 코 앞에 두고 내려오는 일행과 함께 다시 하산한다.
4시간 정도 심설을 밟고 다녔더니 왼쪽 발목에 통증이 느껴진다.

 


내려오면서 다시 본 학등 방향의 암벽이 더욱 반짝이며 눈을 즐겁게 만든다.


14:10
따뜻한 햇볕이 가득한 시각에 삼화사를 둘러본다.문화재로 적광전 앞의 3층석탑이 눈에 들어오고
적광전 안에 모셔져 있는 비로자나불인 철조노사나불좌상은 문이 닫혀있어 보지 못했다.



삼화사는 신라때 사굴산의 품일조사가 여기 불사를 일구고 그 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오대산과 함께 이 산을 두루 살핀 끝에 선덕여왕11(642)년에 그 자리에 흑련대를 지었다고 한다.
흑련대는 물론 지금의 삼화사라고 사적기 에는 전한다.



한편 삼화사 고금사적에는 또 이 절 둘레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데
'진주(眞珠)의 땅에 삼화사가 있으니 천년 고찰이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 쌓였으니 그 서쪽 봉우리는
봉황새가 춤추고 학이 일어서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 남쪽 기슭은 용의 반석, 호랑이가 웅크리는
모습으로 다시 없는 명승지로서 으뜸간다. 북으로 두타산이 있으니 웅장하며 위대한 기세가 오대산과
표리를 이루어 그 천석이 아름답기 짝이 없다'고 적혀 있다.

 

삼화사를 지나 무릉반석에 도착했지만 양사언 글씨는 눈에 덮혀 볼 수 없었다.
양사언은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히로다"로 시작되는 시를 지은 시인이며 명필로도 유명하다.

 

 

“생각과 행동은 따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독창적인 사상을 창조해낼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그것은 천재들에게나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정상만 추구하는 산행을 한다면 결국 ‘쟁이’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고요. 진정한 산악인이라면 풍부한 사고 속에서 가치 있는 등반을 펼칠 줄 알아야 하고, 그 과정을 글로 정리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 행위, 쓰기가 삼위일체를 이뤄야 한다는 겁니다.”

- 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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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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