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산▲요산(樂山)일수록 요산(尿酸)의 수치만 높아졌다니



- 언제 : 2008.2.24(일) 08:00~21:00
- 얼마나: 2008.2.24 10:50~17:00(6시간10분)
- 날 씨 : 흐린날씨에 약간의 눈발 날림
- 몇명: 49명
- 어떻게 : 백양산악회 동행
▷보경사-문수암-문수산-내연산(삼지봉)-거무나리코스-은폭포-관음폭,연산폭-상생폭-보경사(원점회귀)
- 개인산행횟수ː 2008-8[W산행기록-187 P산행기록-329/T673]
- 테마: 적설산행,계곡산행,답사산행
- 산높이:내연산 삼지봉 710
m
- 호감도ː★★★★

 

민주주의의 속성은 예측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에 있다.그리고 예측이 가능하려면 토론을 하여 투명한 과정이 필요하다.그렇지만 이런과정이 생략되어도 할말없는 곳이 있다.아마도 남자의 세계에서 이런 과정이 무시되는 곳이라면 바로 군대와 동문 조직일 것이다.백양산악회는 고교동문의 산악회이다.

 

원래의 계획은 영덕의 칠보산으로 가는 것이었으나 칠보산이 산불경방기간(警防期間)으로 입산금지되어 다른산으로 가게 된 곳이 내연산이었다.내연산은 여름에 가면 좋은 산이다.키 큰 나무들로 인해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고 12폭포 소리만 들어도 시원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버스를 탈때까지도 나는 산행지가 바뀐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산불경방기간에 접하여 회장님 이하 집행진에서 부랴부랴 급하게 바꾼 모양이다.그렇다고 내연산은 여름에만 가라는 법은 없다고 볼때 겨울에 간다면 색다른 맛은 느껴질 것 같았다.결론적으로 겨울에도 볼 만한 구석이 많은 산이었다.명산이라는 것이 어디 한철만 주름잡아서 명산이겠는가? 여하튼 그건 그렇고, 첫 번째 예측 불가능의 일이란게 산행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2월 정기산행 안내지를 보니 어랍쇼 내가 산행대장으로 이름이 올라있다.어째 이런일이...이제 두 번째로 참가하여 분위기 파악단계인데...두 번째 예측불가능의 일이다.

 

산행 중 문수봉을 지나 시산제를 마치고 나니, 나의 손에 무전기가 쥐어졌다.졸지에 후미대장이 된 것이다.세 번째 예상치 못한 일이다.

 

그리고 뒤풀이에서 카페지기가 되었다.네 번째 예상치 못한일이다.예측불가능의 상황이 연속되어 변동성 높은 위험조직(?)에 들어온 느낌이다.

 


또 하나 개인적으로 그동안 산을 좋아하여 요산(樂山)거사를 흉내내었는데 느닷없이 요산(尿酸) 수치가 높아져 통풍이 되어 이 또한 전혀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어떤 자리에 가도 "술 좀 그만 마셔라"는 소리만 듣다가 술을 사양하는 처지의 아이러니라니...금주 15일째이다.



그러나 어떻하겠는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은상의 "산악인의 선서"에 보면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고 되어있지 않는가?.

 

극복이라... 좋은 말이다.

 

 

 

10:48~10:52
부산에서 보경사로 가는 길 버스내에서 "쿠바 잔혹의 역사 매혹의 문화"를 읽었다.

 


수백년간 제국주의의 식민통치,해적들의 침입,독립전쟁,미국의 정치경제 봉쇄조치 등
시련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쿠바인들은 고난의 역사 속에서 "설탕왕국","음악천국"
그리고 "혁명"을 만들어냈다.이점에서 강인한 정신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체 게바라,피델 카스트로...설탕,시가,럼주,관타나메라...등 간헐적인 정보가
한줄로 연결되었다.그동안 쿠바에 대하여 잘 못 알고 있었던 부분을 바로 고쳐 알게 된 것은 물론...



그러다 보경사에 도착하였다.
49명의 문화재 관람료를 내고 보경사 방향으로 들어간다.불이문이 보이는 입구는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운치있는 송림의 모습이 아름답다. 좋찮아! 이분위기..

 


보경사는 내려올때 보기로 하고 바로 갑천(甲川) 계곡을 따른다.계곡너머 서운암이 흙담 너머로
보이고 문수암 가는 길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가파른 산길로 향한다.





 

11:17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내려보는 12폭포가 있는 갑천 계곡의 폭포가 자리가 짐작이 가는데
제1폭인 상생폭은 하얀얼음 아래 시퍼런 소(沼)까지 보이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빛은 초록빛에서
흰빛으로 변하고 있다.



 



 



 

11:28
문수암 암자의 이지러진 일주문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수보살 [文殊菩薩]은 어떤 보살인가? 반야경(般若經) 계통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 아닌가?

 


문을 낮게하여 문수암으로 들어오려거든 우선 머리를 숙이라는 것이다.
그동안의 알음알이를 모두 잊으라는 불이문보다 더 지혜롭다.

 


이지러진 기왓장 아래로 눈이 머무는 곳에 "연등접수" 마케팅도 돋보인다.
그런 문수암도 이 산의 주인인 산신령은 가장 위쪽에 모시고 있다.
오늘 시산제는 저 산신각에서 모시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고개숙여 안으로 들어가니 대웅전 앞 백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 유명한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가 떠 오른다.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없다(無)."



부처님께서는 "온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조주스님은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로 시작하는
의심은 사유의 모든 출로가 차단되는 은산철벽(銀山鐵壁)으로
이것을 투과하고 깨달아야 부처가 될 수 있다.간화선의 화두는
그런 것이다.










 

11:56~14:17
가파른 산길이 끝나고 부드러운 육산의 능선이 나타난다.문수암을 지나 양지바른 곳에서 시산제를 마치고
식사가 끝난 후 다시 삼지봉으로 향한다.응달엔 제법 눈들이 쌓여있고,눈속은 얼음길이다.

 


그래도 버들가지 움트는 것은 막을 수 없다.아직 날씨가 추우니 털장갑 하나씩을 모두 끼고 고개를 내민 모습이다.









 

14:30~15:49
삼지봉 정상에서 휴식한 후 계곡으로 하산한다.



 



 

 

16:00~23
제6폭인 관음폭과 제7폭인 연산폭은 언제보아도 좋다.12폭중 하이라이트 폭포이다.
연산폭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바위가 바로 학소대이다.

 


조금 더 내려오니 오름길 원거리에서 보았던 제1폭인 상생폭을 가까이서 구경하고 보경사로 향한다.





 

16:44
보경사 천왕문 입구의 신방목에 눈길을 흘깃주고 안으로 둘어가니
5층석탑과 적광전이 보인다. 보경사 오층석탑은 유형문화재 제203호이고
보경사 적광전은 유형문화재 제254호이다.5층석탑의 탑신에 보면 자물쇠 모양이
상당히 현실감있게 조각되어있다.탑신에 무엇을 넣어두고 자물쇠를 채웠을까?




16:46
적광전 뒤에 대웅전이 보인다.보경사 대웅전은 문화재자료 제231호이다.
주련을 보니 "천상천하 무여불(天上天下 無如佛)"이라, 세상에 부처님 같은 분은 없다는 말이다.



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무여불) 천상 천하 어디에도 부처님 같은 분 안 계시고
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역무비) 온 세상 둘러봐도 또한 비교될 분 없도다
世間所有我盡見 (세간소유아진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다 보았으나
一切無有如佛者 (일체무유여불자) 모두가 부처님같이 존귀한 분 없도다


 

16:47
대웅전 뒤에는 비사리 구시가 있다.비사리 구시는 부처님의 공양을 마련하는 구유를 말하는데,
비사리는 '벗겨놓은 싸리의 껍질'을, 구시는 '구유'를 말한다.


보경사의 비사리 구시는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나라의 제사 때 절을 찾는 사람들이
밥을 퍼먹을 수 있도록 쓰인 도구이고, 쌀 7가마 약 4000명분의 밥을 담았다고 한다.


 

16:52
이곳에는 원진국사와 관련된 것이 있어 이채롭다.원진국사비가 있고,원진각이 있으며
원진각 안에는 창건주 지명법사.중창주 원진국사,그리고 사명대사의 영정이 있다.
원진국사비는 보물 252호로 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의 탑비이다.



"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넓다란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거북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몸을 끼워두게 하였다.
비몸의 둘레에는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비문에는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으로 원진이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라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부산으로 오는길에 "좋은 사진을 만드는 노출"이라는 책을 읽고, 메기 매운탕으로 뒤풀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금주(禁酒)의 기록은 계속된다.

 

 

只道梅花發 매화꽃 핀다고만 말들 하길래
那知柳亦新. 버들도 새로운지 모르고 있었소
枝枝總到地, 가지들이 모두 땅까지 내려닿고
葉葉自開春. 잎사귀 하나하나 절로 봄빛이구료

- 두보 '수양버들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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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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