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개▲꽃이 피니(花開) 시간은 꿈모양 흘렀으나 앎도 달라진다(智異).

- 언제 : 2008.4.5 (토) 08:00~22:00
- 얼마나: 2008.4.5 11:30~16:30(5시간)
- 날 씨 : 맑음
- 몇명: 36명
- 어떻게 : 부산 지리산행 산악회 동행
▷악양면 고소성 섬진강변 도로-화개장터-쌍계사
- 테마: 도보여행
- 가져간 책:밀교와 한국의 문화유적,알피니스트의 마음.
- 호감도ː★★★★

 

 

원래는 산행을 가려던 계획이었다.쌍계사에서 불일폭포를 지나 상불재,관음봉을 경유하여 내원골로 하산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악양면을 지나면서 차량들이 길게 정체를 하면서 이렇게 꽃이 핀날 벚꽃을 구경하면서 섬진강변 도로를 따라 걷는 것도 산행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아무런 후회없이 그냥 버스에서 내렸다.

사람들은 버스에 편안히 앉아있어도 정체가 되면 마음속으로 졸갑증(이런 곳에서는 조급증이라는 표준어보다는 "졸갑증"이라는 지방어로 표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을 여실히 느낀다.사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화개장터로 유명한 "화개"라는 지명은 꽃 화(花) 열 개(開)이다.지명 이름으로만 본다면 사시사철 꽃피는 지역이지만 화개가 정말 화개다움을 설명하자면 그것은 아마도 4월 초순 청명절 즈음에 섬진강변과 화개천변을 따라 활짝피는 벚꽃이 필때이다.

그리고 화개에서 꽃이 필때는 죄송하지만 차량은 섬진강변의 물처럼 여유롭게 가는 듯 마는 듯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그것이 아름답다.봄날의 아지랑이는 그렇게 해야만 또 볼 수 있다.이렇게 꽃피는 시절에 차량들이 그냥 쌩쌩 지나간다면 이곳의 아름다움이 절반은 뚝 떨어질 것이다.악양면 고소산성 근처 섬진강변에서 출발하여 도로와 방죽을 따라 10Km를 화개장터까지 걷고,화개장터에서 화개천변을 따라 쌍계사까지 6Km를 걸었다.

섬진강 강물의 소곤거림도 들어주고,설렘을 안고 벚꽃의 하얀 꽃비를 맞으며 천천히 걸어보는 것이 어찌 산행에 뒤질까? 이곳은 어머니 품속의 지리산 자락...지리가 무엇인가? 지리(智異)는 앎이 달라진다는 의미이니 이곳은 기존의 관념을 버리고 바라보아야 제대로 보이는 곳이다.

 

 

섬진강물처럼 여유있게 꽃비를 맞으며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들고 햇볕을 가릴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도로의 가장자리를 경계로 섬진강과
벚꽃도로를 왕래하며 걷는다.도로의 중앙선을 자주 넘나들어도 괜찮은 시절이다.어차피 평균적으로
차는 내가 걷는 속도 이상을 가지 못하고 있다.섬진강변 이곳 궁벽한 벽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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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법을 배운다.

 

첫째,벚꽃을 심어 지리산 산신령(우리나라 산신령은 할아버지 남성 산신령과 할머니 여성 산신령이 있는데
이곳 지리산은 삼신 할미,천왕봉 성모상,어머니 이미지 등이 어우러져 여성-모성-산신령이 있다고 본다)
에게 꽃 공양을 하며 지리산 성모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지금은 그 덕으로 많은 관광인파를 불러들인다.



섬진강변 수령 300년의 건팽나무가 있다면 "나의 살던 고향은"이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는 노랫소리가
나오도록 초가 세트라도 한채 지어주어 심금을 울린다.



섬진강의 물의 노랫소리를 감상 할 수 있게 노래방 소파는 강변 모래사장에 놓아두고,길가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길이라고 알려주어 이 길이 성스럽기까지 한 곳이라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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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벚꽃은 한국, 일본, 중국에 자생했던 꽃이며, 일본에서는 자생지가 없고 한국에서 흘려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벚꽃은 제주도 해발 600m 지점이 자생지이며, 일본인들이 발광하는 야스쿠니진자(靖國神社) 앞의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왕벚꽃은 전남 대흥사가 자생지임에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일본의 국화(國花)라고 알고만 있다.

 

벚꽃이 우리 나라의 민족혼에 흐르는 것부터 살펴보면, 팔만대장경의 판목이 산벚나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팔만대장 경판제작 국책사업은 인류역사에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형국가사업일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벚꽃에 애환을 가지게 된 것은 사무라이(武士)문화와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아마도 "인간이라면

사무라이, 꽃이라면 사쿠라"라는 일본인들의 말처럼 "사무라이는 사쿠라처럼 목숨을 던져라"라고 이미지화 하였던

것이다. 특히 대동아전쟁을 미화하기 위하여 "천황을 위해 사쿠라처럼 목숨을 던져라" 혹은 " 천황을 위해서 죽으면

사쿠라로 환생한다"는 군국주의 미화작업을 하였다.

 


(大貫惠美子,ねじ曲げられた櫻 美意識と軍國主義)

 

벚꽃은 분명히 자생지가 한국이고, 한국의 역사적 혼이 흐르는 꽃이다. 그럼에도 왜 일본이 좋아라고 발광을 하고,

일본인들이 사무라이에 미화하고, 군국주의의 혼으로 상징화하고 있을까? 우리가 챙기지 못했고, 일본국화로 팔아먹고 있으니 조상님들 뵐 면목이 없다.

 


팔만대장경 국책사업을 추진하시던 조상님들의 나라사랑과 나라를 지키는 나무(꽃)이라는 의미에서 똑똑한 후손들이였다면
고려시대의 국화(國花)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이곳 토양에 잘 맞는 유실수를 심어보자.배나무를 심고 밤의 크기가 작다고 꺼리면 "약밤"이라고 하여
상품가치를 올린다.꽃비는 내리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하얀 벚꽃의 잎들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오르기도 한다.

 


흡사 승천하는 선녀의 옷의 장식이 떨어져 나오듯,가볍게 위로 치솟는데 저기 방죽 먼곳의 아지랑이와 어울려
눈부심이 배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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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섬진강에서 잡은 은어와 빙어로 입맛을 다시게 한다. 정태춘이 노래한 "나 살던 고향"에서

"니빠나 모노 데스네 니빠나 모노 데스네,가스불에 은어 소금구이 살살 혀 굴리면서 신간선 왕복 기차 값이면

조선 관광 다 끝난단다,육만 엥이란다."라고 현실을 개탄했지만 실상 은어는 어떤 물고기인가?



맛은 일품이었거니와 그 성깔은 지리산과 닮았다.물이 맑지 않다면 살지 않는 고기이며,물에서 벗어나면

바로 죽어 버리는 물고기다.또한 다른 물고기들이 영역을 침범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한다.



구례의 매천 황현(黃玹)은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망하자 바로 음독 순절한 점을 보면 이곳 지리산 자락에

사는 것은 말 그대로 신토불이(身土不二)로 서로 똑같다.은어회는 2만원이었다.벚꽂의 꽃비 한잎이 날아와 회접시에

앉았는데,은어의 하얀속살이 더욱 희게 보인다.



좀 더 걸어가니 드디어 화개장터가 나온다.화개정 정자에 올라보니 화개라는 이름에 걸맞게

파라솔마저 꽃이 피었다.이곳에서 산악회에서 준 큼직한 떡을 먹고, 잠시 휴식한 후 시장을 둘러보고 자연 염료로

만든 목수건을 하나 구입했다.날이 좋아서 땀도 많이 흘렸기 때문에 내가 가져온 수건은 모두 젖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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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면과 화개면 사이에 형제봉,시루봉이 높이 울타리처럼 쳐져있어서 화개천변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흡사 무릉도원으로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넷째, 된장과 짱아찌를 만든다.지리산 맑은 물과 녹차를 넣은 된장이니 더 볼 필요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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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이곳은 녹차를 키운다.녹차가 처음 전해진 시배지始培地 답게 다원과 찻집이 많다.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는 신라(新羅) 흥덕왕(興德王) 3년(828)에 김대렴(金大簾)이란 이가 당(唐)나라에서
녹차(綠茶) 종자(種子)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智異山) 일대(一帶)에 처음 심었으며 그후 동왕(同王)

5년(830)에 진감선사(眞鑑禪師)가 차를 번식시켰다"고 한다.실제 쌍계사에 도착하기 바로 전에 "차시배지" 기념비가

있다.


점차 주력이 떨어지며 힘이든다.대부분 산길이 아닌 도로변을 따라 걸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시원한 칡즙을 사서 마시지 않았다면 갈증이 더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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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에서 유심히 볼 문화유산은?

 

드디어 쌍계사에 도착했다.일주문엔 "삼신산 쌍계사"라고 되어있다.지리산은 두류산,방장산,삼신산으로 불렸던
곳이다.삼신산(봉래산,영주산,방장산)은 중국의 신선사상에 근거한 이름이다.

 

경내로 들어가니 대웅전 앞에 진감선사 대공탑비(眞鑑禪師 大空塔碑 : 국보 제47호)가 있다.
진감선사의 차를 번식한 덕분에 현재 이곳 화개면 사람들의 톡톡한 수입원이 되고 있는데..



안내문을 찾아보니 "선사(禪師)의 유계(遺戒) 때문에 입적(入寂)한 지 삼기(三紀 : 36년)가 지나서야 선사 사적의

인멸(湮滅)을 우려한 문인(門人)들의 주청에 따라 진성여왕(眞成女王) 원년(元年 : 887)에 비로소 ‘부도비(浮屠碑)’

라고도 불리는 대공탑비(大空塔碑)가 대웅전(大雄殿) 앞마당에 세워졌는데, 전체 높이 3.63m에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는 완전히 남아 있으며, 비신(碑身)은 검은 대리석으로 돼 있으며 높이 2.1m․너비 1.03m․두께 22.5㎝에

달한다.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직접 글을 짓고 글씨까지 쓴 이 비문(碑文)은 그의 ‘사산비명(四山碑銘)’ 가운데

하나이자 ‘해동(海東)의 문장(文章)’인 고운(孤雲)의 불심(佛心)이 고스란히 깃들여 있어 우리나라 4대 금석문

(四大 金石文)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고 있는 것으로, 모두 2,417자의 해서체(楷書體) 글자가 2.3㎝ 정도의 크기로

선사(禪師)의 일대기(一代記)와 업적 등을 4단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1단은 서론(序論) 부분으로 선사(禪師)가

당나라로부터 선(禪)을 전한 인물임을 밝혔고, 2단은 선사(禪師)의 생애(生涯)와 공덕(功德)을 자세히 서술하였으며,

3단은 비문(碑文)의 찬술 과정(撰述 過程)을 밝혔고, 4단은 4언고시체(四言古詩體)의 게송(偈頌)을 담고 있다.



특히 한자 한자 짜임새있게 새겨 놓은 비문(碑文)의 글씨는 자(字)의 운(韻)과 율(律)에다가 고저장단(高低長短)이

화려하게 어우러져 가히 ‘신품(神品)’이라는 극찬(極讚)을 받았는데, 그리하여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이

비문(碑文)을 탁본(拓本)하여 중국(中國)에 전하자 고운(孤雲)의 서체(書體)를 중국(中國)의 글씨 교본으로 삼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비신(碑身)의 전면 오른편 상부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의 병화(兵禍)로 크게 함몰되었고 또 한국전쟁(韓國戰爭)

때는 한 외국인 병사(外國人 兵士)가 총(銃)을 쏘아 상처를 입혔는데, 그리하여 현재 비신(碑身)의 손상이 커서 보조

철틀로 겨우 모양이 유지되고 있으며, 글씨의 마멸도 심해 육안(肉眼)으로 내용을 식별하기는 힘들 지경이지만,
다행히 영조(英祖) 원년(元年 : 1725)에 전문(全文)을 목판(木板)에 옮겨 새긴 것이 보존돼 있어 그 내용을

알 수가 있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육안으로는 내용을 식별하기 힘들다고 하던데,나의 육안으로는 확실히 보이는 곳은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그 다음 유심히 바라본 것은 마애불이다.높이가 1.35m로 그렇게 크지 않아 아담하게 느껴지며 고려시대
(高麗時代)의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는 이 마애불(磨崖佛)은 명부전(冥府殿) 앞에 위치한 큰 바위의 한 면을
사각으로 움푹 파내고 그 안에 여래형(如來形)의 조상(彫像)을 두껍게 양각하여 마치 감실(龕室) 안에 불상
(佛像)을 앉힌 것처럼 조각하였는데, 감실 위에는 한자(漢字)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 씌어 있다.

 



이 마애불(磨崖佛)은 육계(肉髻)와 더불어 머리가 큰 편이고 법의(法衣)도 두툼하며 옷주름은 무릎 앞부분
말고는 뚜렷하지가 않고, 두 손은 소맷부리에 넣고 단전(丹田) 앞에 끌어 모아 뭔가를 받드는 듯하며,
스님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박한 인상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 모습이 마치 지리산(智異山)
천왕봉(天王峰)에 있었다가 지금은 산청군(山淸郡) 시천면(矢川面) 중산리의 지리산국립공원 중산리매표소
부근의 천왕사(天王寺) 뒤뜰에 모셔져 있는 ‘천왕봉 성모상(天王峰 聖母像 : 경남 민속자료 제14호)’과 흡사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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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두시간 30분 가량 남아서 불일폭포를 가려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금당과 박물관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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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곳에 금당이 있었다.경내 주축과 계곡을 사이에 두고 청학루(靑鶴樓)로 열리는 별도의 구역으로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을 모신 탑전(塔殿)인 금당(金堂 : 경남 유형문화재 제125호)과 팔상전(八相殿 : 경남

유형문화재 제87호) 등이 이곳에 모여 있는데, 쌍계사(雙磎寺)가 처음 문 열었을 때의 터로 추정되고 있다.

 

금당(金堂)에는 중국(中國) 선종(禪宗)의 제6조인 혜능 대사(慧能 大師 : 638~713)의 정상(頂相), 즉 머리가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 혜능 대사(慧能 大師)를 만나 보는 것이 원이었던 삼법(三法) 스님이 신라(新羅) 성덕왕(聖德王) 때

당(唐)나라에 유학을 갔을 때에는 이미 대사(大師)가 입적(入寂)을 한 뒤였기 때문에 그의 무덤을 찾아 머리를 모셔와

돌로 만든 석감(石龕)에 넣어 이곳 땅 밑에 안치했다는 것이다.



그 후 신라(新羅) 민애왕(閔哀王) 때 진감 선사(眞鑑 禪師)가 건물을 세워 ‘육조영당(六祖影堂)’이라 이름했고, 현재

석감(石龕) 위에 세워져 있는 칠층석탑(七層石塔)은 1800년대에 주변에 있던 목압사(木鴨寺)의 석탑(石塔)을

용담스님이 옮겨와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현재로선 다른 절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곳만의 특성이다.



팔작지붕의 단층 목조기와집으로 화려하게 단청된 현재의 건물은 1979년에 중수됐으며, 전면에 걸린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과 세계일화조종육엽(世界一花祖宗六葉)이란 현판은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명필(名筆)인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글씨다.


 

"세계일화"라는 큰 꽃...흰 얼굴 검은 얼굴 노란 얼굴들,수많은 눈동자와 하나 되게 이젠 세상 한복판을 도량 삼으라는

말인데 최근 한국에서도 외국인 승려가 늘어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닌가?



봄이 되면 삐죽삐죽 올라오는 초목 만큼이나 진리는 뚜렷해서 이미 오래전에 자연스럽게 깨쳤던 모양이다.
"세계일화"라..내,외국인 차별 없어지고,종교간 분쟁도 없는 세상...이미 우리민족은 홍익인간의 개념과 통하니
특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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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사람속으로 들어간다.제16회 화개장터 벚꽃축제이다.행사장으로 들어가 보니 왁자지껄한 축제
속에서 벨리댄스를 추는 무용단원들이 하나하나의 벚꽃만큼이나 화사한 몸짓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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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한 송이 꽃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산천 초목이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

어리석은 자들은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인 줄을 모르고 있어
그래서 나와 너를 구분하고
내 것과 네 것을 분별하고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다투고 빼앗고 죽이고 있다

허나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아라
흙이 있어야 풀이 있고
풀이 있어야 짐승이 있고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있어야 네가 있는 법

-만공선사의 세계일화(世界一花)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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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Posted by 세벗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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