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황대)출여의낭자(出如意娘子)의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을 찾아서

 


-.일시 : 2008.5.4
-.날 씨: 구름
-.몇명: 4명
-.어떻게: 자가용 이용
-.일정:
봉황대
-.테마: 답사 여행

 

살면서 가까운 곳에 있어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더러있다.어떤 것들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만 눈에 익어서 아름다운줄 모르다가 뒤늦게 가치를 재발견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경우는 정보부족이나 나의 무지로 몰라서 뒤늦게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야의 설화 혹은 전설 중에 황세와 여의낭자에 관한 내용을 읽고 김해시내 봉황대를 찾아갔다."봉황동유적지"라고 되어있어서 찾기는 쉽다.다만 봉황대라는 글씨는 높은 곳에 올라 제법 눈썰미를 가지고 찾아야만 볼 수 있다.

 

봉황동유적지에 가면 가야의 배船와, 고상가옥, 망루 등이 재현되어 있고 가야시대의 철기문화를 엿볼 수 있다. 고상가옥은, 봉황동유적지에서 발견된 고상가옥터와 가야시대 집모양 토기를 바탕으로 재현해놓았다. 그외 주위를 조금만 살펴보면 가락국왕궁터를 볼 수 있고 회현리(봉황동)패총유적지까지 볼 수 있다.

 

전설의 내용도 아름다운데 내가 볼때 동양판 혹은 가야판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이다.

 

 

 


봉황대는 인근에 패총과 주거지 등 가락국 당시의 다양한 유적이 발견된 곳이다.
우리나라 여러곳에 봉황대가 있지만 김해의 봉황대는 가락국의 궁지로 전해오는 곳으로
남아있는 유구는 없으며 부사 정현석(鄭顯奭)이 자연암반에 '鳳凰臺'라고 새긴 글자만 남아있다.

그런대 무속행위가 있었는지 바위면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어서 심히 유감스러웠고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든지 대나무로 가린 흔적이 뚜렷해서 이 글자를 찾는 것이 다소 어려웠다.
여의각 뒷편 구릉성 산의 정상 부위를 잘 살펴보면 찾을 수있다.

가락국시조왕궁터라는 글자는 가락회관 근처에 있는데 여의각보다는 30여M 아래에 있다.

 

 















봉황동유적지 위로 가다보면 제법 큰 바위가 나온다.이바위가 "황세"바위다.
조류의 일종인 황새처럼 생긴 바위가 아니라 사람이름 "황세"다.

 

봉황대(鳳凰臺)는 김해시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구릉으로, 동남쪽으로는 회현리 패총이 있는
구릉과 연결되어 있다. 옛날부터 가라대(伽羅臺), 망해대(望海臺), 여의현(如意峴), 독현(獨峴), 회현(會峴)
등으로 불리어 왔다.

 

봉황대는 인근에 패총과 주거지 등 가락국 당시의 다양한 유적이 발견된 곳이다.
1975년에는1975년에는 출여의낭자(出如意娘子)의 정절을 기리기 위한 여의각(如意閣)이 세워졌는데
매년 여의제(如意祭)가 열리고 있다. 전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가락국 제 9대 겸지왕(肅王) 때 남대정동(南大政洞)에 사는 출정승과
북대사동(北大寺洞:현 대성동)에 사는 황정승은 자식이 태어나면 혼인을
시키기로 약속했다. 이후에 황정승은 아들 세(洗)를 낳고 출정승은 딸 여의(如意)를 낳게 되자
출정승은 마음이 변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속였다.


의향제를 맺은 황세와 여의는 어릴때부터 같이 자랐는데,어느날 황세가 여의에게 오줌 멀리누기
시합을 제의하자 여의는 삼대줄기를 사용하여 위기를 넘겼는데,이 시합을 한 곳이 바로 황세바위이다.



여의가 자라면서 점점 여인의 모습을 띠게되자 이를 수상히 여긴 황세가 거북내(해반천)에서
멱을 감자고 하였는데 여의는 할 수 없이 자기가 여자임을 밝히고 둘은 결혼을 약속하였다.

 

얼마 후 황세는 신라군이 침범해오게 되자 출정하여 큰 공을 세우고 개선하게 되었다.
이에 왕은 황세에게 하늘장수라는 장군 칭호를 제수하고 외동딸인 유민(流民)공주와 혼례를 시켜
부마로 삼았다.

 

여의낭자는 황세장군을 그리워하며 죽었다.이후 공주와 혼인한 황세 또한 여의낭자를 잊지 못하여
마음의 병으로 그 해에 역시 죽고 말았다. 한편 유민공주도 봉황대 서쪽의 임호산(林虎山)으로 들어가
수도에 정진하였다고 전하는데 그래서 임호산을 유민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안 사람들은 여의낭자와 황세장군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이 매일같이 놀던 개라암(황세바위)에
작은 바위를 얹고 서남쪽의 것은 ‘황세돌’, 동남쪽의 것을 ‘여의돌’이라 불렀다고 한다.

 

동양의 로미엣과 줄리엣이야기로 손색이 없다.

 

이 전설과 관련된 곳으로는 여의낭자가 죽어서 혼이 들어갔다고 전해지는 하늘문이라고
불리는 돌문이 있고, 황세장군과 여의낭자가 약혼한 후 처음으로 놀았다는 평평한 바위인
여의좌(如意座), 그리고 망견대(望見臺), 여의목(如意木), 황세목(黃洗木), 소변터 등이 남아 있다.

 

 

 

사랑의 전설

-서정윤

사랑은 아름다워라
그대 눈빛을 보고 있으면
나는 촛불이 다 타는 것도 잊고
떨리는 내 그림자를 숨기며
그냥 그대 앞에만 있고 싶어라.

사랑은 굳건하여라
나의 생각이 요구하는 어떤 것도
그대를 향한 믿음의 나무보다
튼튼하지 못하고
한갓 말이 부리는 재주에
흔들리지 않는 사랑으로
내 그대에게 다가가리니.

사랑은 생명이어라
메마른 마음의 깊은 계곡에
풀이 돋아 꽃을 피우는 사랑은
죽음조차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전설이어라.

하지만 사랑은 아픔이어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오랜 기다림으로도
사랑의 속삭임을 들을 수 없어
내 소중한 나를 다 버려도
사랑의 미소는 잡을 수 없다.
사랑의 아픔은 더욱 소중하여라.

오래 남는다.
사랑의 상처는 너무 오래 남는다.
아득한 시간이 흘러 아픔은 사라져도
상처의 흔적은 남아
슬프지 않은 추억이 된다.
사랑의 전설이 된다.
사랑의 전설은 언제나 아름답다.



━━━━━━━━━━━━━━━━━━━━━━━━━━━━━━━━━


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
,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Posted by 세벗 트랙백 0 : 댓글 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