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성산▲김해는 한국불교의 민족사관을 일깨우는 지붕없는 박물관이다.

- 언제 : 2008.9.6 (토) 12:30~22.00
- 얼마나: 2008.8.30 13:10~16:10(3시간)
- 날 씨 : 흐린 후 비
- 몇명: 홀로
- 어떻게 : 자가용 이용
은혜사 앞 계단-체육공원-분성산 봉수대-체육공원-해은사-분산성-분성산 정상-김해천문대-임도-임도·숲길 반복-안금마을
- 개인산행횟수ː 2008-24[W산행기록-203P산행기록-343/T693]
- 테마: 문화유산답사 산행
- 산높이:만장대 328M 분성산 322M

- 호감도ː★★★★

 

 

오늘 중학교 동기모임이 김해시내에 있다.학교는 부산에서 졸업했건만 졸업 이후 김해에 둥지를 튼 동기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장소가 김해 시내로 잡혔다.모임은 오후 7시 이니 오후에 잠시 김해를 관통하고 있는 분성산을 통하여 산행 겸 문화유산 답사를 할 계획을 세웠다.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메고 별도로 모임에 참석할 옷가지까지 챙겨 활천고개 근처 은혜사 주변에 차를 주차하고 바로 산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 그동안 보고 싶었던 해은사海恩寺의 대왕전 내에 있는 김수로왕과 허황옥 왕비의 초상을 보았다.

 

지금은 범어사의 말사인 조그마한 암자 규모의 사찰이지만 해은사는 이름 그대로 바다의 은혜를 의미한다.즉,허황후와 장유화상이 가락국에 무사히 도착한 후 풍랑을 막아준 바다의 은혜에 감사의 의미로 지은 사찰이다.그리고 해은사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대왕전이라는 별도의 각이 있는데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지금 일반 서적이나 팜플렛에서 볼 수 있는 표준영정의 초기형태의 원안으로 볼 수 있는 영정 그림이다.

 

우리나라는 불교의 전래시기를 북래설로 본다.북래설이 정통학설인 셈이다.북래설로 보면 고구려,백제,신라의 순서이다.삼국시대의 불교전래시기는 고구려는 중국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보낸 '순도(順道)'에 의해 불교를를 전했고 수용한 왕은 소수림왕 2년(AD372년)이며 백제는중국 동진(東晋)에서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전했고 수용한 왕은 침류왕(枕流王) 원년(AD384)이다.그리고 신라는 불교 공인에 기여한 이는 '이차돈(異次頓)'의 순교였고,신라 불교를 공인한 왕은 법흥왕(AD528년)이다.이렇게 볼때 우리나라가 불교를 전해진 시기를 기준으로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불교역사는 1636년 되는데 정말 그럴까?

 

공식적으로 남방불교 전래(남래설)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남방불교의 흔적은 무수히 많다.만어사,김해의 은해사와 은하사,녹산 의 명월사, 장유의 불모산과 장유암, 삼랑진의 부은암,무척산의 백운암,지리산의 칠불암 같은 절들이다.나는 가야(AD 48년)에서 출발하였다고 굳게 믿는다.그래서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는 1960년이다.남래설은 삼국유사에서도 인정한 내용이지만 내가 유추해본 건데 우리나라는 중국이라는 사대사상 때문에 인도-중국-한국으로 공식화 한 것 같다.중국이 볼때 인도-중국-한국이 아닌 인도-한국으로 바로 직수입되었다고 한다면 기분 나빠 할 것 같아서 그렇게 기록 한 것으로 보인다.

 

허황옥 왕비릉에 있는 파사석탑의 '婆娑'의 뜻은 무엇일까? 노파'婆', 춤출'娑' 즉 노파가 춤추는 석탑이 되는데 이런 불탑명이 있을 수 없으므로 한문식 뜻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그래서 인도의 범어식 뜻으로 음미해 보면 '婆'는 'Bha'로서 진리이고 '娑'는 'Sa'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즉 진리가 현존하는 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인도식 석탑명이 분명하므로 인도에서 제작되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그래서 결론적을 나의주장은 북래설은 사대사관에 의한 해석이며 남래설은 민족사관의 관점이다.가야사는 일본사의 원류이다.그런 측면을 이해 하더라도 지금 필요한 것은 후세에게 민족사관으로 가르쳐야 한다.남래설이 가짜라면 이미 언급한 가짜유적이 그렇게 많으며 허황후의 오빠인 장유화상은 실체가 없는 가공의 인물인가? 그렇다면 장유사의 장유화상 사리탑은 누구의 사리탑인가? 장유라는 지명도 만들어진 소설인가?

 

빤히 보이는 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이치가 명확하면 과감해져야 하고 깨우치고도 믿지 않는다면 그 또한 어리석음의 증거다.어리석으니 남쪽은 보지 않고 북쪽만 바라보는 것이다.

 

만장대 봉수대 근처 흥선대원군의 만세불망비를 비롯한 4개의 비석을 모아 놓은 충의각은 분성산 공사 중으로 철 펜스를 쳐 놓아 들어가지 않았다.굳이 들어가려면 들 어 갈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아쉬움을 두어야 다음에 또 올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특히 분성산에 오르니 건너편 신어산도 잘 보이지만 낙남정맥의 끝이 분성산인데 그 산줄기가 끊어져 김해평야로 잦아들었다가 그 여운이 오봉산과 덕도산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칠점산에서 맥이 끝나고 있음을 느겼다.

 

 

 

은혜사 근처 도로 옆 산으로 드는 들머리는 목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산길은 오솔길로
정감있게 이어져 있었으며 도심의 산답게 체육공원이 자주 나타나고 제법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덤들은 추석이 다가온 덕분인지 벌초가 잘 되어 있었다.고도를 조금 높이자 김해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고 오봉산과 덕도산이 김해평야 사이로 낙남정맥의 여운마냥 징검다리처럼
솟아 이어지고 있다.


 

제법 가파르게 오른다.건너편 신어산이 보이고 분성산성 내의 봉수대가 보인다.허물어진 분성산성도
잘 정비되어 있으며 지금도 철 펜스가 쳐진 것으로 보아 일부는 공사 중인 모양이다.

 


분성산성 내에 해은사가 있다.제법 고즈녁한 티가 흐르고 해은사 아담한 담벽 아래 코스모스가 피어 운치를
더 하는데 의아스럽게 벽안의 흰 피부 외국인 남녀 다섯분이 관광을 하고 있다.해은사 공양주 보살이
"나이스 밑 츄"라고 살갑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해은사에 가거든 꼭 대왕전을 눈여겨 보길 바란다.외국인의 눈에 저 대왕전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까?
그저 신기한 듯 카메라를 찰칵 거리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우리마저 저들과 같은 시각으로 보아 넘겨선 안된다.


 

분산성을 빠져나오는 자리에 보이는 견고한 성축이 든든해 보인다.날씨가 흐리더니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분산성을 나와 고도를 높이자 분성산 정상석이 보이고 바로 김해천문대가 나타난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지만 김해천문대를 지나 임도와 산길을 따르니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좋다.
중간중간 정자가 있어서 휴식공간도 자주 나타난다.다만 자주 임도와 산길이 교차하는데
임도를 따돌릴 수가 없다.비오는 날 정자 안에서 하얀 옷을 입은 장년의 남자 한사람이
책을 읽고 있는데 너무나 보기가 좋다.빗소리를 들으며 비내리는 것을 느끼며
책을 읽는 모습이 흡사 신선의 모습같다.


 

빗방울이 점점 커져 산길은 숲에 묻어있는 빗방울들이 옷에 스쳐 옷이 흠뻑젖는다.
그래서 임도를 따라 뒤집은 U자를 그리며 내려오니 한국의 아름다운 펜션으로 이름난 천문대 펜션이
나오는데 생림의 안금마을이다.

 


안금마을에서 가까스로 택시를 타고 차를 수배한다음 김해 시내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잠시 휴식을 취 한후 모임에 참석한다.

〈미혹과 깨침이 둘이 아님〉

미혹할 땐 空을 色으로 알고
깨달을 땐 色을 空으로 알도다
미혹과 깨침은 본래 차별이 없고
色과 空은 결국엔 같은 것이니
어리석은 이는 남쪽과 북쪽을 따지지만
지혜있는 자는 東西가 없음을 아네
여래의 묘한 이치를 찾고자 하는가
늘 '한 생각' 안에 있다네
아지랑이는 본시 물이 아닌데
목마른 노루는 공연히 설치도다
자기 몸이 허망하여 실다움이 없건만
空을 가지고 또 空을 찾는구나
세상사람들 미혹이 얼마나 심한지
개가 천둥소리에 컹컹 짖는 듯 하네.

- 지공화상(誌公和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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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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