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곶산▲어디가 길인가요? 가면 길입니다.



- 언제 : 2009.1.31 (토) 07:40~22:00
- 얼마나: 2009.1.31 12:00~18:00(6시간)
- 날 씨 : 변화 많은 날씨였으나 산행하기엔 좋은 날씨
- 몇 명: 48명

- 어떻게 : 부산울타리산악회 동행

▷물야저수지-생달마을-늦은목이-갈곶산-봉황산-부석사

- 개인산행횟수ː 2009-3[w산행기록-216/T706]
- 테마: 적설산행
- 가져간 책:압록강은 흐른다.죽음 이후의 삶
- 산높이:갈곶산 966M , 봉황산 819M
- 호감도ː★★★★


 

이미륵을 아시나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이국만리 독일에서 교수와 작가 생활을 한 "거룩한 한국혼",고 이미륵 박사는 카르벤델,빌더카이저 등지의 알프스 산군에서 등산활동을 하였는데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라 조선인으로서 유럽에서 활동한 인물이 지극히 드문데. 그 몇 되지 않는 인물 중 한 사람인 이미륵 작가가 등산을 취미로 가지고 있었다는 점, 또 당시 조선인으로서 등산을 취미로 한 사람 역시 많지 않은데 이국땅에서, 그것도 등산의 메카인 알프스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 산악계는 그동안 잊었던 귀중한 선배를 찾은 것이다.

 

이미륵 작가가 쓴 책 이름이 "압록강은 흐른다"이다.이책은 이미륵 박사가 소년시절부터 독일도착까지의 사실을 담담하게 회상한 소설로 이미륵 작가의 처음이자 마지막 장편이 된 소설이다.


 

그는 열렬한 반 나치스의 평화주의자였으며 히틀러 정권에 반항하여 사형당한 쿠르트 후버 교수와도 친밀한 사이었다.사실 이미륵이 일제강점기 시절 기미년 만세시위로 말미암아 독일로 가게 되는데 그의글이 독일어로 출판되었을 때 고상하고 고결한 문체 속에는 동서양을 접촉을 수행하려는 저자의 은밀하고도 겸손한 태도 때문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독일 고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된다.

 

간결하고 꾸밈이 없으면서도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이 글들은 이국에서 피운 한국문학의 탐스러운 꽃이랄 수 있다.독일어 원문이 한글로 번역된 책을 읽었는데 나의 경험상 이문구의 관촌수필과 같이 읽으면 더욱 그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이미륵이 유럽이라는 길을 가게되는 그 장도를 보면 모르는 길이라도 가면 길이된다는 것을 보여준다.오늘 이와 비슷한 등산을 하였다.반쪽의 지도 한 장 들고 이리저리로 왔다가며 헷갈리는 길을 찾아 걸었다.원래 산악회에서 기획한 산행은 "남대리=>1136m=>삼거리=>1104m=>선달산=>늦은목이재=>갈곶산=>봉황산=>부석사로 산행시간:5시간 30분" 코스였는데 남대리에서 버스가 갈 수 없는 길이었기 때문에 방향을 틀어 오전약수터를 지나 박달령으로 가는 길로 급히 코스를 바꾸었다.문제는 박달령으로 가는 도중 주실령 못미쳐 빙판길에 버스가 발목이 잡히고 다시 주실령에서 박달령으로 가는 코스로 바뀌었다.

 

여하튼 급히 예정등로가 바뀌다보니 산악회에서 나눠준 지도는 남대리와 선달산이 표시된 지도였으니 바뀐 예정등로는 지도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따라서 동물적 감각에 의존하는 길을 아는 사람이 아닌, 길을 내는 사람이 되었고,어디가 길인지를 묻게 되는 산행을 하게 되었다.결과적으로 B코스의 달인 체면은 구겨지며 갈팡질팡했지만 그 나름대로 재미있었으며 내가 가는 그길이 나의 길이 되었다.

 

 

 

11:47
12시가 다 된 시간에 버스는 주실령 못미쳐 도로에서 멈추었다.모래를 뿌리며 응급처치하고
원래 물야저수지에서 늦은목이로 가려든 B코스 등산객만 남기고 A조는 박달령으로 향한다.

 

12:08
지도가 없는 상황에서 시간 안배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조금 꺼림칙한 느낌을 갖고 주실령에 도착하여
입구의 안내판을 보니 느낌적으로 다소 빠른 걸음걸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일단 박달령으로 향한다.
어느정도 오르다가 나름의 결단을 내리고 다시 주실령으로 내려온다.

 

주실령에서 오전 약수터로 내려가는 사이 이미 버스는 출발했음을 알게 되는데 다행스럽게도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는 것을 히치하이킹하여 물야저수지까지 이동하였다.

 

13:04~46

물야저수지 우측 산길로 붙었는데 얼마안가서 길이 없어진다.그래서 잡목을 거스려며 급상승하며 초반에 땀깨나 흘렸다.
산등성이 올라 산세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산을 횡단하여 일단 마을로 내려가 보니 생달마을이다.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밭에서 일하는 촌로에게 물어서 늦은목이로 가는 길을 알게되어 도로를 따라 일단 용운사 절 방향
으로 향한다.

 

13:54~14:24

길은 점차 굴곡이 심해지고 좁아지며 산으로 향한다.그러던 중 산골쉼터 입구에 도착하니 커피 자판기가 있다.
동전을 넣으려고 보니 동전을 넣는 곳이 없다.무료였다.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휴식을 하고 보니

 

그곳에 이런 글이 적혀있다.

 

"당신이 오심은 우연이지만
마음을 나눔은 영원입니다."

 

이곳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추운 겨울 입이 얼얼할 때 커피한잔 보시로 백두 대간꾼들에게 보시하며
공덕을 쌓는 이곳이 선달산 자락이다.좀더 진행을 하니 용운사와 늦은목이 갈림길이 나타난다.

 

14:28~15:49

늦은목이로 가는길은 계곡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응달이 져서 여기에서 아이젠을 착용한다.
조금 더 진행하니 늦은목이로 가는 산길에 돌로 다듬은 계단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아마도
과거에는 제법 이길이 많이 이용된 모양이다.늦은 목이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다 되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갈곶산으로 향하는데 수많은 나무들 때문에 조망은 별로이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백두 대간 길 느낌이 더 난다.

 

15:52~16:29

갈곶산 정상은 별다는 정상석은 없고 이정목 기둥에 표시가 있다.갈곶산 정상도 조망이 별로여서
좀더 진행하니 헬기장이 보인다.여기서 보니 선달산과 지나온 갈곶산이 보인다.

 

16:42~49

드디어 A코스를 선택한 선두와 마주쳐 물어보니 이미 봉황산을 지났다고 한다.아마도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무심결에 지났던 그곳이 봉황산 정상이였나 보다.

 

16:52~17:09
거의 다내려왔다는 안도감에 조망을 즐기며 천천히 직진하여 내려오고 보니 부석사가 보이지 않는다.
내려오다 우측으로 방향을 잡았어야했는데 나는 그냥 직진하는 바람에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부석사 뒤 봉황산은 별다른 이정표가 없고 산길도 여러길이라 정말 헷갈리는 곳이다.

 

또한 특산물(아마도 장뇌삼으로 추정)을 재배하는 곳이어서 산길이 여러곳으로 갈라져있고, 영역표시(?)
를 위하여 쳐 놓은 흰 노끈이 쳐져있어서 주위를 산만하게 만든다.

 

여하튼 어떤 마을로 내려와 알아보니 다시 산을 올라 넘어가라고 한다.산 능선길로 오르니 약간 어둑
해지더니 부석사에 도착하니 완전히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왜 사나면, 웃지요.

 

 

"너는 겁쟁이가 아니다.너는 자주 낙심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충실히 너의 길을 걸어갔다.나는 너를 무척 믿고 있단다.용기를 내라! 너는 쉽사리 국경을 넘을 것이고,또 결국에는 유럽에 갈 것이다.이 에미 걱정은 말아라.나는 네가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리겠다.세월은 그처럼 빨리가니,비록 우리가 다시 못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슬퍼마라.너는 나의 생활에 많고도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자! 아들아 ,이젠 너 혼자 가거라."

-이미륵의 어머니가 중국 국경을 넘어가라고 종용하며 남긴 말
("압록강은 흐른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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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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