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거림-세석-백무동▲입을 열지 않고도 말하는 산

 

 


- 언제 : 2009.8.30 (일) 08:00~23:00
- 얼마나: 2009.8.30 10:30~17:30(7시간)
- 날 씨 : 흐린 후 비
- 몇 명: 44명

- 어떻게 : 백양산악회 동행

▷거림-세석산장-한신계곡-백무동

- 개인산행횟수ː 2009-19[w산행기록-232/T721]
- 테마: 계곡산행
- 거리:12.5 KM
- 호감도ː★★★★


가끔씩 산은 이빨을 보여준다.때로는 할퀴기도 하고 갉아 먹기도 한다.내 마음이 차분하고 정신이 맑을 때는 이빨을 보여주는 법이 없는데, 주의注意산만散漫하거나 의식이 또렷하지 못하면 갖가지 환상을 보여주며 의욕을 버리게 한다.

 

산은 이빨은 있으나 좀처럼 입을 열지는 않는다.산은 입을 열지는 않으나 많은 말을 한다.때로는 낮은 소리로 속삭이기도 하고 때로는 바위 같이 준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산은 말을 하며 꾸짖기도 하지만 소리가 없다.산길을 걷다보면 소리 없는 말들이 무수히 나온다.산의 말은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리기 때문이다.들은 적은 없지만 많이 들려오는 것, 그것이 산의 말이다.

 

 

10:36~11:10
아침 일찍 깨었으나 머리가 맑지 못하여 그대로 누워 현실과 꿈 사이를 왔다갔다반복하며
문득정신이들었을즈음시계를보니7시20분이다.

 

뻔히 오늘 산행을 가는 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깨우지 않는 집사람에게 야속한 생각이 든다.
아침부터 뭔가 일진日辰이 사나울 것 같은 느낌을 뒤로하고 부랴부랴 배낭을 챙긴다.
그 바쁜 와중에도 비가 올 확율이 높다고 하여 DSLR 대신 컴팩트 카메라를 챙긴다.

 

포리스트 카터의 저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보면
"남자란 아침이 되면 모름지기 제힘으로 일어나야 하는 거야"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흐릿한 나의 정신을 차려자세로 만들지 못한 나를 탓할 수 밖에...

 

지리산 여러 코스 중에 거림코스는 상대적으로 많이 다닌 길이다.세석대피소까지는 6KM라는
이정목을 기점으로 산행을 시작한다.날씨는 흐리고 산길은 완만하여 발걸음은 경쾌하지만
선두가 빠른 속보로 가는 바람에 초반부터 서두르게 된다.

 

시원한 물소리와 청신한 산죽山竹의 기운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키 큰 나무 아래를 걷게 되므로
거림 코스는 여름산행에 어울리는 코스다.

 

 

12:13~13:42
오늘처럼 흐린 날은 다양한 수종樹種이이루어내는숲 속의 산길은 어둑한 느낌마저 든다.
얼굴의 체온에 의한 안경의 성에는 어둑한 산길과 어우러져 이미 여러번 다녔던 길인데도
불구하고 결국 길을 잃고 엉뚱하게 산 속의 계곡으로 들어가 버렸다.바위길을 따라 약간
길이 흐릿했지만동축케이블선이이어진방향으로향한것 이었다.

 

문자메시지를알리는 휴대폰의 알림 소리를 듣고 확인해보니초등학교 동기이면서 중학교
동기인친구가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을 보는 순간 잠시 아득한 느낌이 든다.

 

불과 보름전 또 다른 초등학교 동기이면서 중학교 동기한명도 심장마비로 저 세상으로 갔는데,
그러고보니중학교남자동기의10%이상이벌써운명을달리했다.죽음의 실체가 더 가깝게
그리고 더 뚜렷해지는것을느낀다.마냥남의일만은아닌것이다.

 

그동안 거림 코스는 여러번 다닌 경험이 있고,산길도 무척 뚜렷한 편인데 어쩌다가 길을 잘 못
들었는지 다시 생각을 해보아도 허허로운 쓴느낌이든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몇 번을 좌우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되돌아 나와 올바른 길을 찾았지만
후미와도 1시간 정도 뒤처진 것 같다.길을 찾는다고 산죽을 헤맨 결과 할퀸 정강이는 따갑고
등산복 하의는 몰골이 말이 아니다.

 

이럴때 일수록 정신을 가다듬어야한다.이왕 늦은 김에 잠시 과일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13:48~14:31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에게 앞서 간 일행의 행보를 물으며 속도를 조절한다.
아마도 세석산장 쯤 가면 만날 수 있으리라는 짐작이 든다.청학동으로 가는 지리산
남부능선 코스와 세석산장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마지막 숲 터널을
관통하니세석산장이나온다.일행을따라잡았다는안도와함께운무가가득한 상태에서
비가 오고 있음을 뒤늦게 자각한다.

 

15:11~16:11
하산을 하면 할 수록 빗방울이 굵어지지만 숲이 만들어내는 자연우산은 상대적으로
비가 덜 오는 느낌이다.어치피 큰 차양의 모자를 착용했으므로 나는 준비한 우비도
입지 않고 그대로 하산한다.계속 되는 돌길을 걸은 결과 발바닥의 고통이 가중된다.

 

하산하면서 연신 성에 낀 안경을 자주 닦는다.

 

16:43~16:54
세석산장에서 출발하여 5층폭포와 가내소폭포를 지나 백무동百武洞에 도착하는 백무동계곡 코스는
6.5KM이므로 오늘은 전구간 12.5km를 걸었다.

 

백무동은 중간의 "무"자를 어떻게 사용하는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백무동이 百巫洞이면 무당이 많이
살았다는 의미가 되고,百武洞이면 무사가 많이 살았다는 의미가 되며,白霧洞이면 흰 안개가 많이 끼인다는
의미다.셋 다 어울리는 지명이다.



선배님의 설명은 무당이 많이 살았다는 의미로 알려주었고 지금 현재는 흰 안개가 가득하지만
현재의 지도와 행정구역상의 정식명칭은 百武洞이다.현재는 百武洞이지만 과거엔 百巫洞 혹은 白霧洞으로
불렸다고 한다.

 

백무동계곡엔 여러 폭포가 있지만 가장 이름있는 폭포는 가내소폭포이다.
가내소폭포는 지리산 7대폭포 중 하나다.지리산 7대폭포는 가내소폭포 이외에 불일폭포,구룡폭포,칠선폭포,
무재치기폭포,용추폭포,법천폭포가 있다.

 

역시 지리산의 물 답다.격류가 되어 흐르면 탁류가 되는 것이 정상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은 물이 맑다.
그것도 시퍼렇게 맑다.

 

돌아오는 길에 서진주에있는진주스파랜드에서목욕하고바로아래부속식당에서
하산주를 겸한 식사를 하였다. 산을 오르고 내리며 걷는 것 만큼이나 나의 의식도
높낮이를 거치며 롤러코스트를 탄 느낌이다.

아! 자연이여 그리고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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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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