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북)뭔가 새로운 것을 얻지 않은 날에는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여깁니다.

 

- 언제 : 2010.4.4(일) 06:30~20:00
- 얼마나: 2010.4.4 09:00~14:30
- 날 씨 : 대체로 맑음
- 몇 명: 16명
- 어떻게 :프리즘 번개출사
원북역-채미정-청풍대-서산서원-하림-마애사-방어산 마애불-군북역
- 테마: 트레인 트레블 & 트레일
- 가져간 책:혼창통
- 호감도:
★★★★

 


경전선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한 철도라는 뜻에서 두 도의 첫글자를 따서 이름이 붙어졌다.총길이 300.6km로 삼랑진과 광주송정역 사이를 이른다.20여년전 영암 월출산으로 산행을 하기 위하여 밤차를 탔었던 이후로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노선이었다.오늘 이 선로를 따라 여유와 방랑과 풍류를 싣고 내 마음도 함께 달린다.기차여행의 장점은 무엇인가? 승용차를 운전하지 않는 자유로움,승용차 혹은 버스에서 볼 수 없는 넓은 창을 통한 풍광의 완상,상대적으로 넓은 좌석에 앉아서 독서와 수다의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근래 만들어진 300Km로 달리는 KTX 고속철의 무자비한 속도 속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의 여유는 물론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는 기회마저 박탈당한다.KTX의 길은 효율을 극대화한 나머지 강과 산을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이 아니다.

 

여유있는 여행의 진면목을 다시 체감하고 싶다면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낙동강변과 화포천을 따라 이어지는 철도 옛길을 권한다.그곳엔 잊어버렸던 과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그 실마리를 기회로 삼아 배움의 길을 떠난다.뭔가 새로운 것을 얻지 않은 날에는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여긴다.뭔가 배웠다면 그것은 오히려 시간을 찾은 것이다.

 

 

사상역에서 아침 7시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먼저 부전역에서 탄 일행과 1호차에서 조우하여
인사를 하고 김밥으로 아침을 먹으며 오늘의 일정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유장한 낙동강과 화포천의 잔물결,그리고 산에 핀 꽃들을 보니 내일이 청명임을 절감한다.

 

눈앞을 보기 때문에 멀미를 느끼는 것이나 몇 백킬로미터 앞을 보면 그곳은 잔잔한 물결처럼 평온
한 것이다.
너무 급하고 빠르게 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그런점에서 완행열차의 묘미가 있다.



3월 내내 흐리고 비내리더니 오늘의 날씨는 너무나 화창하여 꽃들이 이때다 싶었던지 꽃망울들을
사정없이 터트렸다.진달래,산벚꽃,자목련도 피었는데 이미 져버렸을 것이라 생각했던 매화꽃마저
보인다.

 

자연은 약육강식이라기 보다는 적자생존이다.환경에 맞는것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멸망하는
것이다.길가의 풀 한포기라도 살아남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며 살았을 것이다.가뭄이 와도 비가
올때까지 필사적으로 살아보고자 노력했을 것이다.추위가 와도 봄까지 살아보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삼량진역에서 낙동강~한림정~진영~덕산~창원~마산~중리~산인~함안~군북을 지나
원북역에 도착하여 내렸다.원북역에 내린 사람들은 우리 일행 뿐이다.원북 역사는 시골의
버스 정류장 크기정도로 아주 작다.이런 곳에 하차가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 할 따름이다.

 


만개한 매화가 까치집과 대조되고 철길옆 논배미 너머로 젖은 논이 햇살을 받고 반짝거린다.





원북엔 서산서원[西]이 있다.생육신인 이맹전, 조려, 원호, 김시습,
남효은, 성담수 등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향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사람은 어계이다.어계(漁溪)는 생육신의 한분인 조려를 의미한다.

 


(1420-1489) 조려(趙旅) 자(字)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 시호(諡號)는 정절(貞節)
단종시(端宗時)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함안(咸安)사람으로 태어나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인품이 출중하여 두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람마다 훌륭하게 될
그릇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글공부에 남달리 힘쓰고 그 공부의 요령이 대의를 통투
(通透)하는데 힘쓰고 헛되게 뜻모르고 암송하는 버릇을 따르지 않았으며,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따서 짓는 모방적인 습성을 배격하였다.

 

1453년(단종1년(1453)에 성균관 진사시험에 합격하였다가 당시 학계의 유종(儒宗)으로
이름높은 형조판서 김종직(金宗直)의 시험관 밑에 응시하여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簒奪)하자 그 불의(不義)에 항거하였다.

 

어느 날 문생(文生)과 작별하고 함안(咸安)에 돌아온 후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말았는데 그의 시문(詩文)에도 김시습의 시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은둔생활(隱遁生活)을 하겠다는 의미의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단종3년(1455)에 왕위선양이 있은 후로는 스스로 어계처사(漁溪處士)라 하고
자연과 더불어 책을 벗 삼아 지내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엔 어계생가가 있고 가까운 곳에 청풍대淸風臺가 있다.
그리고 원북리 뒷산인 서산(西山)을 백이산(伯夷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깨끗한 바람 속에서 살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곳이다.이곳에 채미정採薇亭이 있는데
채미는 고사리를 캐어먹는 것을 의미한다.

 

성삼문은 사육신이 되었으니 채미조차 먹지 않겠다고 읊은 그대로 되었다.
그러나 생육신들은 푸새엣(푸새,남새,풋것)이든 채미라도 먹어야했을 것이다.

 


채미를 먹을 망정 깨끗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곳곳에 보인다.

 

정자의 편액을 보면 채미정이라고 해서로 멋지게 씌여있고,
백세와 청풍(百世淸風)이라는 더 큰 글씨가 보인다.



백세(百世)는 일백 세대이니 30년 곱하기 100 하면 3,000년이 되지만
구체적 숫자가 아니라 ‘오랜 세월 또는 영원’을 뜻한다.

 


청풍(淸風)의 청(淸)은 매섭도록 맑고 높다는 뜻이고,풍(風)은 바람이 아니라
군자(君子)의 덕(德)이요 절개다.따라서 백세청풍이란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매운
선비의 절개요,대표적으로 은나라가 망하자 의롭지 못한 주나라 곡식을 먹을 수 없다며
중국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 먹다 굶어 죽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한술 더 뜬다.사육신 성삼문은 고사리마저 주나라 것이니 그냥
굶어 죽지 않은 백이와 숙제 조차 나무란다.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죽을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것인들 긔 뉘 따헤 났나니.

 

세조의 왕위찬탈을 보며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의 절의가인데
백세(百世)까지 외친다면 나의 후손에게 짐을 지우는 일이니
나는 그냥 청풍으로 만족하련다.그래서 나의 서예 두인은 청풍(淸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항심恒心을 유지했던 선조들의 정신이 부럽다.



청풍대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문풍루(聞風樓)에 서면 뒤로 서산서원이 보인다.
이 즈음해서 조려가 어계처사가 된 후의 시를 읊어본다.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망선대(望仙臺)에 붙인 시(詩).

 

濯足淸流坐草茵 탁족청류좌초인
寒梅疎竹倍精神 한매소죽배정신
門迎天地知心月 문영천지지심월
樽放湖山得意春 준방호산득의춘
啼鳥是非嫌近俗 제조시비혐근속
落花飜覆愧猶人 낙화번복괴유인

 

맑은 물에 발을 씻고 방석에 앉았으니,
한매(寒梅)와 드문 대나무에 정신이 배나 맑아지네.
문을 열어 천지에서 내마음 아는 달을 맞고,
호산(湖山) 술잔 드니 뜻을 이룬 봄이로세.
새도 울며 시비하여 세속을 싫어하고,
번복하는 낙화도 사람처럼 부끄러워 하네

 





기차가 문풍루(聞風樓)를 비켜나간 S라인 철길을 따라 돌아갈때 한매寒梅를
노래한 어계처사의 원력덕분인지 아직도 이곳 매화는 깨끗하기만 하다.
그 아래서 밭을 손질하는 촌로를 보니 봄을 완상하며 걷는 것 조차 미안해진다.

 




도로를 따라 걷고 마을길로 들어서며 한껏 트레일의 기분을 내는데,
돌담을 감아도는 아직 움츠리고 있는 석단풍 줄기가 실핏줄처럼 엉겨있다.

 


따스한 봄 햇살이 마냥 걷고 싶은 충동을 부채질하는데 사광으로 들어오는
봄볕이 씨앗을 뿌려야 할 촌로를 더 바쁘게 만든다.



한참을 걸어 소류지를 지나 마애사에 당도해보니 이곳은 나무조차 득도한 듯하고
봄볕에 배를 깔고 누운 개는 배부르고 등따신 모습이 평화로움의 극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 하나가 다가가 앉아보지만 이미 세상사는 잊었노라는 대답이 들리는 듯하다.
견공처사는 눈은 감았으되 그의 후각과 청각으로 이미 위험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아픈 것은 통하지 않기 때문이요,
아프지 않은 것은 통하기 때문이다."



通卽不痛 不通卽痛

 


이미 어린아이의 맑음과 개의 적의없음이 서로간 통通했기 때문이다.
무언으로 통했기 때문이다.통했다면 아픔은 없다.평화만 있을 뿐이다.






방어산 정상아래 9부능선에 있는 방어산 마애불을 관람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군북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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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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