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일시 : 2010.5.16 06:00~21:30
-.얼마나:2010.5.16 07:00~20:00
-.날 씨 :맑은 가운데 다소 더움
- 몇명: 40여명
-.어떻게:부산 고적답사회 동행
▷수산제-표충비각-어변당-예림서원-표충사-영남루-아랑각-박익묘-만어사
-테마:고적답사
- 호감도ː★★★★

 



고적답사를 갑니다.그동안 책을 통하여 홀로 다녔다면 오늘은 제대로 된 고적답사입니다.무엇이든 배울 때는 훌륭한 스승이 있어야합니다.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행운은 세상 살아가면서 그 무엇보다 행운다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오늘 동행하는 스승님은 최영호교수입니다.그래서 그 어느때 보다 제대로 된 답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전일 작약산 산행에서 얻은 신영복 교수의 말 중에 "‘과거’를 읽기보다 ‘현재’를 읽어야 하며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라는 훌륭한 지침도 새겨 들었으니 그 어느 때보다 신이 납니다.이틀 동안 참 많이도 걷습니다.산행을 하고 인파 속에서 미술관관람을 하고 오늘은 아침 6시에 집을 나왔는데 집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이 프로그램에 동행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역사의 교훈을 상상하면 아찔한 느낌마저 듭니다.이틀간의 강행군을 통하여 "엑서사이즈 하이Exercise high"와 "몰입의 즐거움Finding Flow"과 "깨우침의 희열"을 한꺼번에 맛 본 날이였습니다.

 

 

전일 오전엔 산을 오르내리고 오후엔 딸과 함께 미술관에서 인파에 시달리며
인공구조물의 바닥을 걸었습니다.

 


보통 문화유산답사를 하면 인공적인 도로와 산을 오르내린다는 점에서 충분히
워밍업이 된 상태로 답사에 참여하게 된것이지요.

 

전일 작약산에서 삼랑진을 굽어보며 내일은 저 일대너머를 한번 돌아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강江이 가진 큰 의미는 "생산력"과 "교통"이라는 말이
이번 답사를 통해서 확연히 느꼈습니다.범람한 강의 물을 생산력으로 만든 곳
수산제가 오늘 답사의 첫 시작입니다.



 

1. 수산제
밀양시 하남읍과 초동리에 위치한 관개(灌漑) 저수지로, 기원 전후에 축조하였으며, 둘레가
20리. 벽골제(김제)․의림지(제천)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저수지. 고려후기 김방경(金方慶)이
제방을 쌓고 관개를 하여 일본정벌을 위한 군량미를 비축.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이미 제방이
무너졌으나 고쳐 쌓지 않았다고 기록. 저수지 안에는 죽도(竹島)와 오산(鰲山)이 있고 연꽃 등
이 자생.

 


우선 수산제에 있는 오산의 오鰲가 자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한문(漢文) 소설,금오신화[金鰲新話]의 산실인 경주 남산의 금오산이
구미 금오산金烏山의 까마귀 오烏자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금오신화는 유교보다는 불교와 도교에서 더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만 자라와
도교의 관련성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수산제는 지금 규모가 많이 축소되어 과거의 흔적을
모두 상상하기 힘들지만 한개의 섬과 작은 산이 그 속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과거엔 상당히
큰 규모였던 모양입니다.

 

두번째로 찾은 곳은 표충비각이 있는 무안입니다.국난이 있을 때마다 땀흘리는 비로
유명합니다.밀양에는 기이한 몇가지가 있는데 보통 밀양의 3대 신비로 불리는
얼음골 결빙,만어사 경석과 표충비각의 한출입니다.표충비각은 나라와 겨례를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 하여 신성시하는 것을 어릴 때 부터 들었습니다.

 


밀양의 밀密은 "빽빽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비밀"의 뜻을 둔 심오한 의미도
있습니다.그래서 영화 "밀양密陽"의 영어명은 "시크릿 선샤인Secret Sunshine"
입니다.밀양 무안초등학교 옆에 표충비각이 있는데 그곳에서 전학을 왔던 나의
친구 Y는 몇번씩이나 표충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적이 있습니다.아마도 상당히
자랑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가 가끔 구사했었던 "고맙다"는 뜻의 "고맙구메"라는 밀양 지방어(?)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나는 오늘 밀양 곳곳을 다니며 밀양의 비밀을 캐볼까합니다.밀양은 텃세가 심한
곳이라는 것이 저의 경험입니다.그들이 가진 텃세의 이면엔 그만큼의 자부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내륙 위에서 내려오던 학맥이 점필재 김종직에서 끝나면서 밀양 아래 갯가의
배우지 못한 "쌍것들"과는 결혼도 시키지 않으려했던 자존심도 대단했습니다.

 


"아랑제"를 통해 정절의 자부심 또한 밀양여성들의 이유있는 텃세는 이해 할만합니다.

 

표충비각의 멋진 글씨는 허균의 글씨입니다.다만 비각 앞의 "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글씨를 붙여놓은 이유는 궁금합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광대(廣大) 무변한 부처가 일체(一切)의 중생(衆生)과
만물(萬物)을 포함(包含)하고 있어, 마치 향기(香氣) 높은 꽃으로 장식(裝飾)되어 있는 것과 같다"
는 뜻으로, 화엄경(華嚴經)의 정식(正式)이름입니다.아마도 탑신 아래에 "대방광불화엄경"
이 복장되어 있다는 뜻인지 궁금합니다.

 

전에 가본 강원도 금강산 건봉사에서도 석주에 "대방광불화엄경" 글귀가 있었습니다.그곳엔
사명당의승병기념관이 있습니다.그리고 건봉사 진신사리탑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불사리와
치아사리를 약탈해간 것을 사명대사가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되찾아온 뒤 세운 것으로
이로부터 석가의 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표충비각 옆 표충사 사당엔 영규,사명,서산대사의 영정이 있습니다.그리고 표충사엔
기허,사명,서산대사의 영정이 있습니다.그래서 "영규와 기허(당)"가 궁금해집니다.


 

2.영규(靈圭,? ~ 1592년)
영규는 조선 중기의 승병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활약하였다.
본관은 밀양, 호는 기허, 속성은 박으로
충남 공주 출신이다. 계룡산 갑사에 출가하여
서산대사의 고제로 공주 청련암에서 수도하였고 선장으로 무예를 익혔다.

 

알고보니 영규대사와 기허대사는 같은 분입니다.그리고 좌측 중단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육영수 여사의 영정과 위패가 있습니다.그러고 보니 오늘이 5월 16일입니다.

 

"5.16군사혁명기념일(?)"이군요.

 

사당을 나오니 사당 근처 뒷문의 소각로가 눈맛살을 찌뿌리게 합니다.담벼락은 검게 그을렸고
그것도 목재로 만들어진 문 옆에 있습니다.

 

문화재를 이렇게 소홀하게 대하는 것은 이곳을 찾는 국민 뿐 아니라 이곳에서 샐활하는
밀양지역 청소년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미칩니다.밀양고교생 여중생 집단성폭행 같은
안 좋은 기억이 되살아나는군요.정신을 고양하기는 어렵지만 무너뜨리기는 한순간입니다.





 

밀양에 오면 충효에 대한 유적이 많습니다.그 중에 또 하나 어변당으로 갑니다.
도교적 색채가 강한 충과 효를 강조하는 전설이 있는 곳 입니다.

 

3.밀양 어변당(魚變堂)

 

박곤 장군은 1417년(태종17)무과에 급제하여 초시.회시.전시.모두 장원한 인물.
1419년(세종1년)최윤덕 장군을따라 대마도 정벌에나가 큰공을 세웠으며
1440년(세종22년)한성윤판 과 의금부판사를 끝으로 낙향.

 

어변당은 박곤(朴坤 1370~1454)장군의 사랑채인 어변당 앞에 있는 적룡지(赤龍池)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집 앞 마당에 연못을 만드는 이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연못 안에는 돌로 섬을 만들었는데 ,이는 신선이 산다는 동해의 봉래산을 상징하는것으로
신선(神仙)사상을 반영한것이다.

 

이 연못은 어변당과 관련되어 내려온 효행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박곤장군이 어렸을때 박곤의 어머니가 물기고가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마침 겨울이라 그것을 잡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데도 어린 박곤은 마을앞 냇가로 가서 얼음을깨고 낚시를하여 잉어를 잡아 어머니께
대접을 하였다고 한다.어린 박곤은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잉어를 계속 드리기 위해서
집앞의 뜰에 연못을 파고 물고기를 길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연못에는 유별나게 비늘이 붉은 잉어가 살았는데 이 붉은 잉어를 자라가 잡아 먹어려
하자 박곤은 붉은 잉어를 구해주었다.그러자 잉어는 비늘을 남겨주었고. 박곤 장군은 그 비늘로
갑옷을 만들어 입고 전장에 나가 큰 승리를 하였다고 한다.

 

또 일설에서는 장군의 효성에 감동하여 잉어가 비늘을 남겨놓고 용으로 승천하였다고도하며
그잉어가 용으로 승천하였기 때문에 그의 호와 사랑채에 모두 어변(魚變)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슬슬 날씨가 더워집니다.이번에 예림서원입니다.서원은 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이자
대유학자인 선현들에 대해 향사하는 곳입니다.보통 앞쪽은 교육기관의 형태이고
뒤쪽 높은 곳에 사당이 있습니다(前學後廟).서원의 삼문으로 독서루가 시원스럽습니다.


 

요즘 도서관 같은 열고각閱古閣이 있고,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집인 "몽양夢養재"가
있습니다.유생들이 공부하고 거처하던 기숙사 같은 "돈선재"와 "직방재"가 있고,
예림서원 안엔 여러 글귀가 보입니다."일신日新재"의 "일신日新우又일신日新"은 대학에서
나오는 말로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뜻이고,시민재의 시민時敏은 민첩하게 움직인다는 뜻
입니다."구영求盈"은 말 그대로 "가득 참을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밀양부사였던 이몽억(李蒙億)이 쓴 8자 글귀인 "克遵條約無生過失(극준조약무생과실)"은
'이치와 규약을 지극히 잘 따르면 잘못이 생겨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점필재를 위해 쓴 글로
보입니다.

 

무오사화로 부관참시까지 당한 점필재 김종직를 생각하면 밀양에서 갯가인 이곳 부산까지
학맥이 못내려온 것이 아쉽습니다만 다행히 밀양대학과 부산대학이 2006년 통합이 되면서
부산대 "점필재연구소"가 생겼습니다.인문학을 사랑하는 저로선 뭔가 끊어진 인연이 다시
이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것 저것 하나라도 더 볼려고 기를 쓰고 있는데 이곳까지 와서 덥다고 시원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관람을 끝내고 다음 일정을 위해 막상 버스에 오르라고
독려를 하니 그때서야 사진을 찍겠다고 야단입니다.그기에 저보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합니다.이런분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한가지가 있습니다.못들은 척 "빨리 갑시다"입니다.

 


5. 김종직(金宗直 : 1431∼1492)

 

선산(善山) 김씨 김숙자(金叔滋)와 밀양 박씨(박홍신의 딸)의 아들로 호가 점필재(佔畢齋).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의 학통을 이은 아버지로에게 수학하여 사림의 조종이 됨.
제자 김일손(金馹孫)의 「조의제문(弔義帝文 : 중국의 고사를 인용, 의제와 단종을 비유하면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으로 무오사화의 피해를 입음. 그의 사상은 제자인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등에게 영향을 주고 이후 김굉필의 제자 조광조(趙光祖)에게 계승.
그의 사상은 정의와 의리를 숭상.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으며, 밀양의 예림서원(藝林書院) 등에 제향.

 



식사를 마치고 표충사로 갑니다.

 

6. 사명대사(四溟大師)

 

풍천(豊川) 임씨 임수성(任守成)의 둘째 아들로, 속명이 유정(惟政)․응규(應奎)이며,
증조부 임효곤(任孝昆) 때 밀양으로 이주. 직지사의 신묵(信默)화상에게 출가.
그의 부도와 비는 임진왜란 이후 수행하다가 입적한 홍제암(弘濟庵 : 합천해인사 옆에 위치)에
있으며, 비문은 허균(許筠)이 씀. 광해군이 시호를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 내림.
또한 그의 금란가사와 장삼은 밀양 표충사에 보존.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의 홍제弘濟가 눈에 들어옵니다.표충사로 들어가기 전 다리
이름도 홍제교입니다.

 

직지사의 신묵화상에게 출가를 하여 직지사에 가면 사명각이 있습니다.

 

표충사 앞엔 태극기와 또 하나의 깃발이 있습니다.다들 궁금해합니다.이때 제가 아는척
합니다.불교기입니다.경남불교대학에서 배운 짧은 지식이 빛을 발합니다.사실 불교기는
1950년 지금의 스리랑카인 실론에서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정식승인하여,현재 모든 불교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청,황,적,백,주황색 등 5색을 가로와 새로로 배치했습니다.

 

청색은 마음을 흐트리지 않고 불법을 구하는 정근,황색은 굳건한 마음,적색은 더운 피
색깔로열정적인 정진,백색은 깨끗한 마음의 청정,주황색은 인내를 의미합니다.

 

태극기와 불교기는 호국불교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보입니다.



 

표충사 유물관의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은 국보 75호 입니다.사명당의
금란가사와 함께 봅니다.

 

과거 표충사祠(절사寺가 아닌 사당사祠임)가 있던 팔상전 앞은 모녀로 보이는
두사람이 예경을 하고 있습니다.저 어린아이는 저 보다는 신앙심이 깊어질것
입니다.저는 신에 대한 사랑인 신학보다는 사람에 대한 사랑인 철학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그래서 때때로 신암심이 부족한 마음때문에 괴롭습니다.
어릴때 부터 모태신앙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종교가 아닌 풍류로,바람처럼
산으로 떠돌아다닌 이후 불교를 다시 보게된 늦깍이다보니 신앙심이 좀체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비로자나불이 있는 대광전 마루 위의 보주가 눈에 뜁니다.
연꽃문양의 청동으로 보입니다.



이번엔 영남루로 갑니다.영남루를 중수한 이인재 부사의 첫째 아들(이증석, 11세)과
둘째 아들(이현석, 7세)이 쓴 영남제일루와 영남루 현판은 언제보아도 대단한 필력입니다.



문익점과 이황의 시詩도 걸려 있습니다.난간에 앉으니 이황의 시 첫구절이 이해가 됩니다.


 

欄干高壓鏡中天...난간이 높다랗게 거울 속에 하늘을 누르고...

 




아래로 내려가니 아랑각이 있고 작은 옆문을 통하여 약간 오르니
아랑유지가 있습니다.아랑의 시체가 발견된 곳인가 봅니다.

 

아랑각 입구 대문인 "정절문" 현판 글씨인 곧을 정貞을 보니 여자가 긴 치마를
입고 머리를 우로 돌려 다소곳한 포즈를 형상화한 글입니다.아랑각에 어울리는
글씨체입니다.강가는 온통 석화石花가 많이 있습니다.







 

이젠 박익의 벽화묘로 갑니다.문화재청에 의해 사적으로 지정된 경남 밀양시 소재 송은(松隱)
박익(朴翊) 선생의 묘인 '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密陽古法里朴翊壁畵墓)' 내부 벽화입니다.

 


프레스코기법으로 그려진 이 벽화는 조선초 생활풍습의 연구 등 고고학적 또는 회화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또한 고구려 기법을 계승한 고려시대 고관의 무덤을
영남에서 본다는 것은 상당히 귀하다고 합니다.무덤도 방형으로 사각형이었으며 버스에서 내려
제법 많이 걸었습니다.한눈에도 조산에서 세번 굽이쳐 내려온 곳에 선산을 두었는데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명당자리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7.박익(朴翊 : 1332∼1398)

 

밀양 박씨 판도판서(版圖判書) 박영균(朴永均)의 아들로, 처음 이름이 천익(天翊).
고려왕조에서 예부시랑(禮部侍郎)․중서령(中書令) 등을 역임하고 문신으로 왜구 격퇴 등에
전공을 세움.

 

조선의 개국 이후 두문동(杜門洞)의 귀은제(歸隱第)에 은거하였으며, 집 뒤의 산을
송악(松岳), 마을을 송계(松溪), 호를 송은(松隱), 집을 송암(松庵)이라 하여
고려의 수도 송경(松京)의 ‘송(松)자’와 연계.


 

한눈에도 희귀한 축조방식으로 사각형(방형)이고 석인상,갑석,호석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래벽화는 무덤에서는 불 수 없고,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았습니다.
고적답사에 동행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 중 하나입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급속으로 내려오니 그 모습이 우스운지 연신
보리가 고개를 흔들고 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은 만어산의 종석입니다.

 

8. 만어사(萬魚寺)

 

밀양시 삼랑진에 위치한 사원으로, 금관가야 수로왕 때 창건으로 짐작하기도 함.
수로왕이나 동해 용왕의 아들과 관련된 전설을 가짐. 현재 미륵전 안에는 용왕의 아들이
변했다는 미륵바위(득남의 기원처)가 있고 그 앞에는 그를 따르던 물고기들이 변한
만어석(萬魚石 : 두들기면 맑은 쇳소리가 나기므로 鐘石이라고도 함)이 분포.
신라의 국왕들과 관련되며, 고려 중종 때 중창.

 

○ 수로왕 때 가락국의 옥지(玉池)에 살던 독룡(毒龍)과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羅刹女)가 서로
사귀면서 뇌우(雷雨)와 우박을 내려 4년 동안 오곡이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되자, 수로왕이
주술로 이를 막지 못하고 인도 쪽의 부처에게 요청. 부처가 6비구와 1만의 천인(天人)들을
데리고 와서 독룡과 나찰녀의 항복을 받고 설법수계(說法授戒) 이후 재앙을 물리쳤으며,
이로써 수로왕이 창건하였다고 함.

 

○동해 용왕의 아들이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無隻山)의
신승(神僧)을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터
라고 일러줌. 왕자가 길을 떠나니 수많은 종류의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머물러 쉰 곳
이 이 사원.

 

이곳은 해가 뜰 때 혹은 해가 질때 아름다운 곳인데 시간 상으로는 아름다움을 보여 줄 수
있는 시간에 오릅니다.과거 보다는 길이 많이 좋아졌으나 결국 버스는 길이 좁아져 6부능선에서
멈춥니다.부득불 도보로 오릅니다.교수님과 함께 일착으로 올라 보니 이미 어둠이 몰려옵니다.

 

대웅전 벽면에 그려진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은 과거보다는 다소 얌전해졌지만
노출 수위가 여전히 좀 높은 편입니다.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는
부처님이 그려진 비람강생상의 마야부인의 몸매도 눈에 띄게 요염한 편입니다.

 




 

미륵전으로 가보니 교수님이 안내글을 읽고 있습니다.키가 크고 다소 구부정한 모습이
미륵전 앞의 소나무와 닮았습니다.어두워지면서 물고기들도 잠을 자는 듯 조용합니다.
그 위로 예쁜 초승달과 샛별이 마치 터키 국기인 월성기 모습으로 환하게 떠 있습니다.

 


초승달 위의 별은 금성(샛별)입니다.저렇게 크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저는 샛별을 사랑합니다.그래서 저의 딸 이름도 샛별입니다.가장 위에서 두번째 보이는
사진의 딸 이름은 "김金빛별"입니다.금성金星인 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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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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