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아끼던 신하 이차돈의 순교로 법흥왕은 날개를 달았지만

 

- 언제:2022-08-13 토 22:00~2022-08-14 일 15:00
- 날씨:비 온 후 갬
- 몇명:홀로

 

 

▷답사일정( 風輪 ): 왕복 191km

 

부산-굴불사지-백률사-소금강산-동천동 마애삼존불-흥륜사지-서악동삼층석탑-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두대리 보호수-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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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에 나오는 誠者 不勉而中(성자 불면이중)不思而得(불사이득) 從容中道聖人也(종용중도성인야)라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성실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알맞게 이루어지고,생각하지 않아도 얻게 되어서,종용從容  즉, 성격이나 태도가 차분하고 침착함이 道도에 적합한 것이니 성인입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성(誠)은 정성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동학의 수도과정에서 강조되는 태도 또는 이념이 성경신(誠.敬.信)인데 그 중 성(誠)은 가장 먼저입니다. 정관정요 육정(六正)육사(六邪)에서 육정 중 충신이 3등이라면 성신(聖臣)이 1등입니다.성신은 미리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소멸시키는 신하를 말합니다.성신(聖臣)이 되려면 먼저 정성을 다하는 신하(誠臣)가 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나라를 잘 관리하여 충신이 나오지 않는 여건을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이 더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평소에도 정성을 다하는 고조선 사상 최고의 덕목인 성(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평소에 정성을 다했다면 이번 물난리 이전에 미리 하수구나 배수구를 뚫어 놓는 것이 우선입니다.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영화에서 나오는 수퍼맨은 그냥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뭔가 돌연변이 기형의 병든 몸(病身)일 뿐이고,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배수구,하수구를 뚫어주는 사람 혹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정성을 다해 구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수퍼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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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불사지: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412-2

 

굴불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밤11시 정도 되었는데 굴불사 주차장이 도로변이라서 가끔식 소음이 들려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습니다.아침 7시쯤 늦게 출발하여 5분정도 오르니 바로 굴불사지 석조 사면불상이 보이는데 사면석불 주위로 거푸집이 설치되었고 방충망 같은 푸른망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제대로 감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로 20여분 올라서 백률사에 도착했습니다.

 

법흥왕과 이차돈의 사전밀약으로 이차돈의 순교는 계획된 순교로 법흥왕의 절대권력을 위한 정치쇼였습니다.목에서 솟아난 우유(白乳湧出一丈:백유용출일장)와 하늘에서 내린 꽃(天雨名花천우명화,天降諸花천강제화)는 실제였다기 보다는 신화를 위해 미화했다고 봅니다.사실 "붉은 피"는 죽음을 의미한다면 "흰 우유"는 애기가 먹는 것이라서 다시 시작을 의미하는 "재생"의 모티브가 됩니다.

법흥왕은 창사(절을 세우고자 했음)를 원했으나 절대왕권이 안되었고 그당시 신라6부 촌장은 자체적인 무장도 하여 왕에 버금가는 실력자들이었습니다.신라6부는 자체적인 통치를 하는 지배구조로 신라는 신라6부와 함께 집단지도체제 국가였습니다.

모든 것이 정치적이었습니다.법흥왕은 정치 안정을 위해 불교공인을 원했으나 신라6부 귀족의 반대로 인해 결국 신하 이차돈이 자원한 순교로 돌파했습니다.신라의 역사는 상고기,중고기,통일신라 크게 3부분으로 나뉩니다.상고기는 제1대 박혁거세 부터 22대 지증왕까지 총22왕 514년 이었다면 중고기 시작은 제23대 법흥왕으로 시작됩니다.이차돈 순교사건으로 인하여 중앙집권체제로 도약과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합니다.현재 경주 남산을 비롯하여 불국사,석굴암 등 온통 불국토가 시작되는 시초가 바로 이차돈 순교부터입니다. 

 

신라6부 촌장은 아마도 기존 토착신앙을 믿었을 것이고 이차돈과 법흥왕은 신흥불교세력으로 보아야겠죠. 

흰우유가 나오고 하늘에서 꽃이 내려온다는 것은 이적을 위한 장치 일뿐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물론 기독교에도 이런 기적이 많죠."처녀가 애를 가진다,여자는 남자의 갈비뼈" 등 그 외에도 숱한 기적이나 이적이 보이는데 이러한 기적,이적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엉터리라는 반증입니다.종교라고 해서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는 것이 커지고 많아진다면 그 자체가 사이비 성향에 가깝게 됩니다.

 

 


백률사 동종을 보니 머리는 땅에 떨어져 있고 합장을 한 몸은 그대로 서 있는데 흰 피(白乳)가 위로 솟구치는 가운데 하늘에서 온갖 꽂들이 눈처럼 내려옵니다.


生無百世死千秋 생무백세사천추


이차돈은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그의 높은 희생정신 덕분에 "백 년을 못살아도 죽어 천 년을 살리라"라는 글처럼 되었습니다.

백률사를 거쳐 뒤로 난 산길을 통해 금강산(소금강산) 정상으로 갑니다.

 

기록에 의하면 (월성)궁궐에서 "이차돈의 머리를 치니 젖과 같은 흰 피가 솟아오르고 머리는 금강산으로 날아가 떨어졌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금강산은 북한의 금강산이 아닌 경주의 금강산입니다.

참고로 이차돈(異次頓)은 성씨가 이씨가 아니라 김씨 혹은 박씨이고,이사부는 이씨가 아니라 박씨이고,박제상은 김씨 혹은 박씨입니다.이 시기는 우선 성씨를 잘 사용하지 않은 때이고 또한 기록마다 다르게 기술되었습니다.

 

 

아침이지만 점점 기온이 올라가고 전일 내린 비 영향으로 습도가 높아서 177m 밖에 되지 않지만 산 정상에 오르니 땀이 솟아오릅니다.

정상에서 등산로를 따라 30여m 내려오니  동천동 마애삼존불이 보입니다.예상했던 것 보다는 큽니다.아미타삼존불이라고 하는데 흐릿해서 자세하게 보기 어렵습니다.본존불 좌측의 협시보살은 머리위에 보관이 보입니다. 

 

 

▷흥륜사지:경북 경주시 국당3길 5 흥륜사

 

흥륜사는 원래 이차돈이 창사하여 짓다 6부촌장의 방해로 이차돈이 죽은 후 법흥왕이 결국 절을 짓게 되니 신라 최초의 절입니다.이곳 위치는 천경림(天鏡林)이라고 하여 굉장히 신성시 된 곳입니다.이곳 나무를 베어 지은 절이 바로 흥륜사입니다.지금은 폐사되고 다시 지어져 고졸한 멋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구름 사이로 잠시 해가 비칠때 이차돈순교탑의 순교 모습은 백률사 동종의 모습과 같습니다.  


법흥왕은 중앙집권 체제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고 불교를 공인해 국가의 통치이념을 일원화했습니다.그러나 법흥왕도 말년에는 귀족들의 세력에 밀려 스스로 지었던 최초의 신라 국찰 흥륜사에서 승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법흥왕이 불교를 마음대로 공인하지 못하고 정말 아끼던 신하 이차돈의 목을 공개적으로 베어야 했던 것도 귀족들의 기세를 꺾기 위한 한 방편이었습니다만 말 그대로 방편일 뿐 정도(正道)는 아니었다고 봅니다.정도로 가야만 성(誠)의 첫발이 됩니다.

 

 

현재의 흥륜사는 이곳에서 출토된 영묘사명 기와 때문에 영묘사라는 주장이 있습니다.실제 흥륜사는 현재의 경주공고 자리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서악동3층석탑:삼층석탑 : 경북 경주시 서악동 705-1

 

도봉서당 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면 바로 서악동3층석탑이 보입니다.통일신라 모전석탑 계열의 불탑으로 보물입니다.아쉽게도 상륜부는 보이지 않습니다.서악동은 경주의 서쪽이니 경주의 서방정토에 해당합니다.

 

감실 옆으로 인왕상이 보이는데 왼쪽은 금강저를 잡고 있고 오른쪽은 금강저 끝 부분을 잡아 아래쪽으로 내지르려는 모습입니다.다소 해학적인 모습으로 통일신라 후기로 판단됩니다.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경주시 서악동 산 92-1

 

서악동 3층석탑에서 뒤로 난 길을 가면 문성왕릉부터 위쪽 진흥왕릉이 보이고 점점 관리가 덜 된  산길을 오릅니다.

왕복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날씨가 9시30분을 지나니 체감온도 39도로 인해 온몸은 물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땀이 흐릅니다.점점 수풀의 키가 커져 걷기 성가시고 무엇보다 모기와 날파리가 얼굴 주위로 도는 바람에 고행이 되었습니다.

 

포기하려는 마음이 가득한 상태에서 휴대폰 지도를 검색해보니 1분정도 거리로 나와 다시 힘을 내어 오르니 300m 남았다는 이정목이 나옵니다.삼존입상 옆 성모사(박혁거세 모후를 기리는 사당) 사당에 도착하여 보니 여기서는 식수가 보이지 않아 갈증을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안산암으로 조성된 본존불의 머리 절반이 부수어졌고 협시 보살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는데 본존불 이후 나중에 추가 조성 한것으로 보입니다.이곳 선도산은 서악(西岳)으로 신성시 된 곳으로 보입니다.


사당에서 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가 올라온 곳에서 가까운 무열왕릉이 보입니다.김춘추는 신라 태종 무열왕으로 신라 제29대 왕입니다.그의 아들 문무왕은 신라 제30대 왕으로 백제,고구려를 통합한 삼국통일을 한 실질적인 왕입니다.삼국통일을 한 업적이 있지만 그의 무덤은 봉분이 크고 12지상을 두른 화려한 능이 아닙니다.그의 무덤은 바로 동해의 대왕암으로 수중해릉입니다.백성의 노고가 거의 없는 무덤입니다.그래서 백제와 고구려를 실질적으로 정서적으로 통합할 수 있었을겁니다.문무왕의 아들은 신문왕으로 감은사와 이견대를 세운 효성 지극한 왕입니다.문무왕은 문무(文武)를 갖춘 왕이고 그의 아버지 무열왕은 무(武)를 갖춘 왕이고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신라 31대 왕으로 문(文)을 갖추었습니다.태종 무열왕 이래 신문왕까지 이어지는 모습이 아름다우며 특히 문무왕은 복이 많은 왕이었습니다.무열왕 같은 잘난 아버지와 신문왕같은 똑똑한 아들을 두었습니다.

 

본존불 조각은 비록 얼굴부분이 상당부분 떨어져나갔지만 여전히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산에서 내려와 무열왕릉과 새골못(보희연못)을 둘러보았습니다.


문성왕릉 근처엔 "서악동 바위 구멍 유적"이라고 하여 선사시대의 성혈바위가 보입니다.

▷경주 두대리 마애석불입상 주차장:경상북도 경주시 율동 산60-6

두대리 율동 마애석불을 보려고 갔으나 주차장에서 너무 많은 모기와 날파리의 공격으로 도저히 탐방을 할 수가 없어서 철수하여 근처의 수령 350년의 당산나무 보호수만 보고 왔습니다.이 당산나무는 회화나무로 작은 꽃들이 바닥에 융단처럼 떨어져 있었습니다.

 


일은 정성스럽게 성(誠)으로 하고, 행복은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우영우의 정명석 변호사는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긴 이후에 변화를 보입니다.평소에는 일에만 빠져 식사도 대충 햄버거로 때워 결국 위암3기로 나오죠. 나이들어서 뭔가 하려고, 현재의 행복을 뒤로 미루지 마세요.하고 싶을때 하세요.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작게 시작하면 됩니다.

10여년전 40대말 젊은 나이에 나의 고등학교 동기 정운 변호사가 별세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심근경색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과도한 업무와 잦은 흡연 등이 중첩된 결과로 보이는데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저는 돈 벌면서 일할때는 당연히 열심히 해야겠지만 그렇게 어렵게 번 돈을 쓰면서 놀때는 더 열심히 해야한다고 믿고 또한 실천합니다.


장자의 ‘소요유’는 ‘멀리 소풍가서 노는" 이야기입니다.

유(遊)는 그냥 "놀 유"가 아니라 인생은 제대로 놀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인생은 잘 놀다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제대로 안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큰사람(自大人)"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는 것에도 성(誠)으로 대해야한다.정성을 다하는 것이 곧 성(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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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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