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신라 대야성의 연호사에서 오류의 보호에 대해 생각해본다 

 

- 언제:2022-05월14일(토)~15일(일)
- 날씨:대체로 흐림
- 몇명:홀로 

 

▷답사일정( 風輪 )

 

부산-연호사 주차장(차박)-연호사-대야성-함벽루-핫들생태공원-부산

 

 

 

며칠전 자동차의 주차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려 혼비백산한 일이 있었습니다.정말 하늘이 도왔는지 결과적으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습니다만 크게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사고라는 것은 조금만 방심해도 난다는 것을 직업병처럼 느끼고 있지만 살다보면 무의식 속에서 제대로 안했기 때문입니다.대체로 평지라고 해도 자세히 보면 약간의 기울기는 존재하므로 사이드 브레이크는 제대로 당기고 앞쪽이 약간이라도 내리막이면 후진기어로, 오르막이면 전진1단으로 기어를 맞추면 됩니다.르노마스터는 수동기어이기 때문에 이렇게 합니다.자동이면 그냥 P에 맞추면 됩니다.물론 경사도가 크면 핸들을 벽쪽으로 흐르게 바퀴 방향을 꺽어두고 고임목까지 해야합니다. 

 

오늘 부산에서 합천으로 오는길에 함안 터널에서 차량정체가 되어 답답했는데 나중에 터널을 통과 할때보니 차량 사고가 발생 한 것을 목격했습니다.파손된 차량의 부속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지만 찌그러진 본체는 이미 정리가 되어 그나마 거북이 걸음으로 차량을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도로 바닥을 보니 모래로 덮어두었지만 제법 넓은 범위로 모래가 붉은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어서 보는 순간 소름이 돋으며 섬짓했습니다.

 

저승에서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이승에서 이미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최근 루나코인투자에 실패하여 지옥을 경험하는 영상을 보기도 했지만 모두 조금씩만 더 평소에 조심하고 자신을 성찰했으면 본인과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았을겁니다. 물론 저도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산지석으로 배웁니다.

 

제가 잘 못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갖는 것은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양철학자 중에서 가장 논리적이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화이트 헤드(Alfred North Whitehead:1861~1947)입니다.

그 분의 말 중에 "진리를 사랑 하는 길은 곧 오류를 보호하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실용주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류를 두고서 겁내하는 것은 진보의 종말입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길은 곧 오류를 보호하는 것입니다.”.“오류는 보다 고등 유기체의 징표이며, 상승적 진화를 촉진시키는 교사입니다."

오류는 우리가 진보를 위해 치르는 대가인 것입니다.

 

제가 기록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살아가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만 사실 궁극적인 이유는 오류를 보호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오류를 보호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면 궁극적으로는 진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2022-05-14

 

▷연호사(주차장):경남 합천군 합천읍 죽죽길 66

 

 

연호사,한벽루 앞에는 데크길이 놓여 있어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 할 수가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함벽루 연호사를 지나 계속 나아가서 위 도로로 올라보니 일해공원이 나옵니다.관리사무소 앞은 온통 꽃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 맞은편 정양레포츠공원에서 바라 본 좌측의 연호사와 우측의 함벽루입니다. 황강(黃江) 함벽루 앞을 정양호(正陽湖)라고 부릅니다.보통 정양(正陽)이라고 하면 양기만 가득하고 음기가 아직 싹트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이름이 붙은 연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함벽루에서 바라보면 황강이 남쪽에 있긴합니다.

정양레포츠공원 앞 가로수마다 간접조명이 밝혀져 야경이 멋집니다.

연호사 앞 데크를 따라 좌측으로 가면 일해공원이 나옵니다.

정양레포츠공원에서 다시 함벽루로 돌아오면 반영을 촬영했습니다.함벽루 앞의 데크길로 이길을 통해 자전거를 타고 건너편의 정양레포츠공원으로 이동했었습니다.데크 난간의 연등 불빛이 정양호에 물에 비쳐져 반영이 볼만합니다.날씨가 흐려 달(月)은 보이지 않지만 함벽루 옆 바위 이름이 망월암(望月岩)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2022-05-15

 

맞은편 정양레포츠공원오토캠핑장의 모습이 황강에 반영되어 싱그러운 아침을 맞습니다.

연호사 입구엔 전통활터인 죽죽정이 있는데 새로지어져 깨끗하고 아침부터 활(弓)을 내는 모습을 보니 같이 편사를 하고 싶어집니다.아마도 오늘 편사대회를 하는지 아침부터 분주한 모습입니다.개인적으로 3년 정도 부산 구덕정에서 3년간 활을 내어 본 경험이 있습니다.팔꿈치 엘보가 심해져 이후 자전거로 취미를 바꾸었습니다. 엘보는 테니스,골프 등 팔을 많이 사용하는 운동에서 발생하는데 활도 팔꿈치를 세우는 것을 "중궁을 세운다"고 하는데 몇년을 하다보니 엘보 증세가 와서 통증이 크게 느껴져 잠시 쉰다고 한것이 벌써 몇년째 흘렀습니다.

연속 5발을 쏘아 연속으로 과녁을 맞추면(관중) 몰기(몰아맞추기)에 성공하게 되고 저도 "몰기패"와 "접장"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연호사는 취적산,매봉산,비봉산등 여러가지 이름이 있지만 지금은 황우산으로 불려집니다.앞의 강 이름이 황강이니 황우산(黃牛山)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연호사 일주문 앞 우측에 의거학생위령비가 있습니다.

연호사 경내로 들어가보니 우측에 건물이 보이고 건물보다는 대야성이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유추해 볼 수 있는 시루떡 처럼 생긴 단애가 형성된 지형을 바라봅니다.

사찰 근처라서 부도전인가 싶어 다가가보니 각종 공덕비가 있습니다.여기에 대야성에 대한 안내문도 있습니다. 

특히 뒤쪽에 우국지사 강홍열은 의열단장 김원봉과 관련이 있고 부산상고 출신 선배인 박재혁의사와 오택 등의 이름이 떠오르고 오택이 전학 간 사립명진학교(현재 사상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사립명진확교 석주기념비)도 함께 그동안 발로 뛰어 배운 기억에서 소환됩니다. 특히 동산 김형기는 3.1운동당시 학생대표였고 경성의전 출신으로 동산병원을 설립했는데 부산의 독립자금이 대부분 동산병원에서 나왔고 김형기의 친구였던 최천택에 건내져 상해까지 자금이 전달됩니다.

 

 

 

합천군수 이증영유애(遺愛)비도 보입니다.안내문을 보니 비문은 남명 조식이 짓고 글씨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 고산 황기로가 썼다고 합니다.글씨를 한참 들여다봅니다.어디 하나 군더더기가 없는 단아하고 기품이 있는 글씨입니다.이증영이 극심한 흉년에 백성을 구휼하고 청렴하게 관직생활을 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유럽의 빵바구니라는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작황이 우려되고, 인도는 폭염에 의한 고온으로, 호주는 물난리로 작황이 우려되는 상황이 되다보니 인도는 밀 수출금지까지 한다고 합니다.이제 세계는 식량전쟁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세계화된 시대에 이증영 같은 인물 성향에 글로벌한 지도자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유권자와 당선인 모두 자기 자신들의 이익에 더 매진합니다.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는 티머시 스나이더의 견해처럼 트럼프,시진핑,푸틴,아베 등을 보면 자신이 가진 프레임을 상대에게 선제적이고 악의적으로 덧씌우는 행태를 정신분열적이라고 여겨 "스키조파시즘 Schizofascism"으로 부르는데 도널드 트럼프가 성공을 하여 세계를 현혹했다고 주장합니다.우리나라도 새로운 대통령도 스키조파시즘을 구사하는 성향이라서 앞날이 걱정됩니다.가장 공정하지 않는 검찰이 공정을 외치는 검찰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스키조파시즘의 사람들은 "오류를 보호"하지 않습니다.이들은 기본적으로 궤변가에 가까운 소피스트입니다.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변론술을 악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항상 사과보다는 변명이 뒤따릅니다.

 

 

 

여기 주변 단애와 흐릿한 흔적이 대야성의 흔적으로 보입니다.

연호사 앞의 죽죽정이라는 이름과 이곳의 주소를 보면 죽죽길로 나오는데 여기서 죽죽(竹竹)에 대해서 알아보아야겠습니다.

원래 연호사는 642년 대야성 전투에서 죽은 고소타와 신라 장병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648년 와우선사가 설립한 왕생기도 도량입니다.합천 삼보사찰 해인사보다 159년 앞서는 절입니다.

연호사(烟湖寺)라는 이름을 보면 연기와 호수가 합쳐진 이름인데 여기서 호수는 황강의 정양호일 것이고 여기서 연기는 대야성 전투에서 죽음을 맞은 장병들의 시신소각 연기이거나 이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향초의 연기가 가득했음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유추됩니다.

여기서 화랑 죽죽(竹竹)이 나오는데 죽죽은 신라의 화랑으로 642년 대야성 전투에서 백제군과 싸우다 전사한 충신입니다.

 

 

죽죽은 선덕여왕 때 화랑이 되어 대야성 도독이며 김춘추(훗날 태종 무열왕)의 사위인 김품석의 휘하에 있었습니다.

642년 음력 8월에 백제 장군 윤충이 군사 10000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여 왔는데, 당시 죽죽은 김품석의 보좌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라는 백제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었으나 예전에 김품석이 검일의 아내를 빼앗아서 검일에게 원한을 샀습니다.검일의 아내가 상당한 미인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부하의 아내를 거의 강제로 빼앗었다고 하니 그의 말로는 사필귀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백제군이 대야성으로 다시 쳐들어오자 검일은 백제군과 내통하여 성안의 창고에 불을 질렀고, 대야성은 큰 혼란에 빠졌으며 이에 김품석은 항복하면 살려 준다는 말을 듣고 항복하였으나 백제의 속임수에 빠진 것을 알고 김품석은 처자를 죽이고 자신도 자결하였습니다.

 

 

그러자 죽죽은 남은 병졸을 모아 성문을 닫고 백제군에 대항하였지만, 결국 대야성은 백제군에게 함락되고 죽죽도 용석과 함께 전사하였습니다.대야성이 비록 함락되기는 하였지만 나라를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던 그의 충성은 신라인들에게 계승되어 결국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승화되었으며 현재 이곳에 죽죽의 이름이 여러곳에 남아있는 이유입니다.

김품석의 아내는 바로 고타소(古陁炤)이며 고타소는 김춘추의 딸이었습니다. 딸을 잃은 아비 김춘추는 물체나 사람이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는데 그 원한을 갚기 위해 고구려에 가서 군대 파견 요청하는 모험을 하기도 했지만 이루지 못하고 "토끼의 간 전략"으로 탈출했고 이후 당나라까지 가서 당나라와 손을 잡게 되고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게 됩니다. 그때 자신의 딸과 사위를 사지로 내 몬 검일(黔日)을 붙잡아 사지를 찢어 죽이고 시신은 강물에 버렸다고 합니다.

검일의 김품석에 대한 원한은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고 죽죽같은 화랑과 신라의 장병들을 죽인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김춘추는 나중애 태종 무열왕이 됩니다.그의 킹메이커는 김유신이었죠.김춘추는 딸을 잃게 된 원한과 김품석과 검일의 오류를 직시하고 고구려와 당나라와의 외교로 결국 삼국통일을 이루게 됩니다. 

 

함벽루(涵碧樓)는 글자 그대로 보면 "푸름에 젖는 누각"이라는 이름입니다.
대야성 전투에서 피빛으로 물들었을텐데 지금은 물빛에 비친 푸르름때문에 글자 그대로 "함벽" 상태입니다.

누각의 처맛물이 바로 황강에 떨어지게 배치하여 누각 난간에 서면 뱃머리에 선 느낌이 듭니다.

 

함벽루 뛰 단애에 약간 돌출된 처맛돌 아래로 함벽루라는 글씨가 보입니다.노란것은 자세히 보니 이끼의 흔적으로 보이는데 유독 함벽루 글씨 주위만 그렇습니다.우암 서(尤庵 書)로 마무리된 것을 보년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의 글씨입니다.글씨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납니다.저의 느낌으로 풀어보면 송시열의 글씨는 내려치는 삐침이 칼날처럼 날카롭고 강하며 삐침의 되돌림도 강한 것으로 유추해보면 그의 성격은 강직하고 뒷마무리도 책임감있게 일하는 스타일로 보이며 어디하나 흐트리짐이 없어보입니다.

 

 

누각 현판의 함벽루 글씨를 보면 필체가 통통하게 뭔가 담뿍 젖어있는 모습으로 보여 정말 푸름이 젖어있는 인상을 줍니다. 함벽루 누각에 어울리는 글씨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남명조식의 함벽루 한시입니다.

상비남곽자 (喪非南郭子) 남곽자 같이 무아지경에 이르지 못해도

강수묘무지 (江水渺無知) 흐르는 강물 아득하여 끝을 모르겠도다
욕학부운사 (欲學浮雲事) 얽매임 없는 뜬구름을 배우고자 하여도,
고풍유파지 (高風猶破之) 센 바람 불어와서 흩어버리는구나

역시 간결하고 강단있으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감정을 시원하게 풀어버립니다.

여기서 남곽자는 인명으로 가공의 철학자를 말하는데 열자 중니편에 "지극한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며 열자와 남곽자가 나옵니다.


맞은편에 퇴계 이황의 한시가 있는데 섬세해서 글이 남명보다는 깁니다.남명의 시는 남성적이라면 퇴계의 한시는 디테일이 강하여 여성적입니다.

퇴계 선생의 함벽루 한시입니다. 

北來山陡起[북래산두기] 북쪽으로부터 온 산들은 우뚝 솟았고
東去水漫流[동거수만류] 동쪽으로 가는 물은 질펀히 흘러가네

鴈落蘋洲外[안락빈주외] 마름풀 물가 밖 모래톱엔 기러기 내려앉고
烟生竹屋頭[연생죽옥두] 대나무 집 위로 연기 피어오르네

閒尋知意遠[한심지의원] 한가로이 찾다가 뜻이 원대함을 알았고
高倚覺身浮[고의각신부] 높이 기대서니 몸이 둥실 떠오르네

幸未名韁絆[행미명강반] 다행히 벼슬길에 아직 걸지 않아 
猶能任去留[유능임거유] 가거나 머무는 것이 자유롭구나

퇴계의 시에서 공감가는 것은 가거나 머무름이 자유로운 것은 내 신세와 비슷합니다.

 


모서리 난간에 서니 정말 뱃머리에 있는 느낌입니다.


 

 


전면에 보면 제일강산이라고 되어 있는데 함벽루에 서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운치 있는 강변 옆으로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자전거 탈 맛이 납니다.

핫들생태공원 끝부분엔 이렇게 작약꽃이 한창입니다.

 

함벽루에 오시면 제가 좋아하는 것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누각,글씨,스토리,전통 활터 죽죽정,자전거 전용도로와 제일강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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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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