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한반도에 국한된 식민사관을 언제쯤 버릴 것인가? 

 

- 언제 202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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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일정( 風輪 )


부산- 견마도(만선도)- 선창마을 -동리산 근처 가덕도 장항 유적지 - 부산

 

오늘 찾은 곳은 가덕도로 들어가는 입구인 신항 근처의 견마도입니다.현재는 섬이 아니지만 과거에는 섬이었던 곳입니다.견마도는 일제강점기 시절 바뀐 이름이고 대동여지도에는 만선도로 나와 있다고 합니다.이곳이 갑자기 눈길을 끈 것은 KNN방송의 "과학으로 본 허황옥 3일"이라는 프로그램 때문입니다.제가 문화유산 답사를 취미로 참 여러곳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유적을 보았습니다만 유적도 있고 삼국사기 삼국유사라는 기록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근본 없는 식민사관에 의한 일제강점기 논리가 아직도 그대로 강고하게 유지되는 바람에 가야사 초기기록은 믿을 수 없다는 강변이 우리나라 주류 강단사학자들의 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배운 국사교과서의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식민사관에 의한 일본이 만들어 준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살아야한다는 당위성을 위해 요동에 있었던 한사군이 지금의 북한에 있었다고 왜곡하고,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야의 역사가 42년부터 562년까지 존속했던 것을 부정하고 가야의 역사를 3세기 건국 정도로 뒤로 밀어버립니다.조선은 과거 역사를 돌아다보아도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왜곡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를 신화 혹은 설화로 조작한 것 중 대표적인 2가지는 단군과 가야의 역사입니다.   

 


▷견마도(만선도): 부산신항

이곳은 제가 여러번 자전거 라이딩을 하면서 지나쳐 간 곳입니다.자전거 전용도로가 맞은편에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으로 본 허황옥 3일"을 보면 허왕후가 가락국에 올 때 그녀를 처음 조망된 망산도(望山島)가 매립 전 진해 용원 앞바다에 있던 견마도(牽馬島)임을 비정하고 논증하였습니다.지형,지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컴퓨터 그래픽으로 2000년 전 가야의 지형을 복원하여 현재는 땅이지만 과거에는 바다였던 것을 그대로 재현하였습니다. 

 

과거 가야 시절, 해수면이 2.5m 이상 상승해 현재 망산도라 불리는 `말무섬`은 바다에 잠겨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았고 또 다른 망산도 후보지로 거론 된 전산,칠산,욕망산 등은 `가락국기`에 나오는 망산도의 조건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더불어 역사적 기록과 고지형을 바탕으로 조선 시대 "만산도(滿山島)"라 불렸던 섬이 망산도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였습니다.조선시대 만산도는 현재의 견마도입니다.견마도라는 이름도 일제강점기에 바뀐 이름이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만산도 혹은 망산도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지금의 견마도는 배가 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는 절토되어 원형이 바뀌어진 것 같습니다.

그 외 "과학으로 본 허황옥 3일"에서 거론된 파사석탑이 한국산은 아니라는 점,허황옥이 살았던 기원후 1세기 당시 최대 1,000명이 탈 수 있는 배들이 대양을 항해했고 허황옥이 타고 왔을 것으로 판단되는 50M 배 정도는 흔했다는 것, 특히 인도 철과 한국 철은 중국 철과 다르게 탄소가 들어 있다는 점 등 이었습니다. 또한 허왕후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김해 예안리 고분군의 왕족 유골을 분석한 결과 우리 민족의 기원으로 분류되는 몽골의 북방계가 아닌 인도의 남방계라는 결론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2,000년된 가야사와 가야불교만 제대로 고증해 내어도 식민사관의 절반이 바로 고쳐지게 될 것입니다. 

견마도가 망산도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에는 "녹산 견마도 유물 산포지"라고 알려졌는데 조선시대 자기편이 채집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허 황후 관련 설화 등이 전해져 온 곳입니다.

▷가덕도 장항 유적지

 

현대 부산신항 부지 조성사업으로 펜스가 쳐져있어서 쉽게 찾기는 힘들지만 "동리산"을 주소(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산189-1)로 해서 찾아가면 그나마 낫습니다.

이곳은 2011년 부산 신항공사를 위한 기반작업 중 발견 된 곳입니다.약 7000년전 신석기 초기 시대 유뮬과 유적이 나왔는데 특히 고인골 48개체가 발굴되었습니다. 장항유적지 고인골 발견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신석기 인골을 다 합쳐도 20여구 정도였다고 합니다.

 

특히 어린아기가 움크린 듯한 "굴장"이 특이했고 특히 DNA  검사 결과 유럽게 모계 유전자(지금의 독일)가 검출되었습니다. 현재 70억명의 현생인류가 20만년 전 아프리카인 할머니의 후손들입니다만 그 신석기 시대에 독일인 유전자가 한국 가덕도에 발견된 것은 실로 놀랍습니다.   

부산 가덕도에서 발견된 유럽계 모계 유전자를 가진 고인골과 서몽골의 유럽계 인골 중부유럽에서 발굴된 농경문화로 꽃피운 줄무늬토기인 그들간의 연관성을 풀어가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입니다.


역사를 볼 때 한반도로 국한하여 왜곡의 눈으로 보면 전부 신화요 전설,설화로 끝나게 됩니다.

믿을수 없는 것입니다.왜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한번도 의심의 눈으로 보지 않았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믿지 않아야합니까? 일제 강점기가 끝난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역사는 일제강점기 논리가 그대로 살아있어서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적이 있고 DNA기술이 있어서 신석기 유적도 살펴보게 됩니다만 그런 과학적인 증거가 있어도 이마니시 류(Imanishi Ryu, 今西龍)-이병도를 잇는 역사학자들은 계속 부정하겠지요. 아직 진정한 해방이 안되었습니다. 

 

[과학으로 본 허황옥 3일]

https://youtu.be/zmq_zzUBK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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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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