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지금은 가을 낙엽에 묻혔으나 이곳은 변혁을 꿈꾸던 곳이다.

- 언제 : 2010년 11월7일 06:00~20:00
- 얼마나: 2010.11.7 09:25~17:00
- 날 씨 : 안개,맑음
- 몇 명: 45명
- 어떻게 : 부산고적답사회 동행
▷부산-청도역-운문사-점심(청도 추어탕)-지석묘-청도읍성-청도 석빙고-청도향교
-용강서원-척화비
- 테마: 문화유산답사여행(지도:최영호 교수님)
- 호감도ː★★★★★

 



변혁 (變革) revolution, change.급격하게 바뀌어 완전히 달라짐을 의미한다.이때 변화를 쫒아가지 못하면 크게 뒤쳐지거나 낭패를 본다.인터넷이라는 변화의 물결이 오더니 이젠 스마트폰이라는 변화의 아이콘이 우리주변을 맴돈다.증권회사도 영업환경이 급격하게 바뀌었고,생존과 확대재생산을 위하여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시대이다.

 

과거 청도엔 이서국 [伊西國]이라는 부족국가가 이었다.삼한시대 변진(弁辰) 계통의 부족국가였지만 지금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이라는 "면"의 이름으로 존재할 뿐 대한민국 사람들도 대부분 모르고 살고 있다.그러나"삼국사기 권2" 유례이사금조에 실려 있는 기록에 따르면, 이서국 사람들이 신라의 금성(金城:王城)을 공격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를 위협했던 부족국가였다.기록이 거의 없어서 이서국은 또 하나의 잃어버린 왕국이다.청도와 경주는 지근 거리이다.그러니 청도의 이서국과 신라의 전신인 경주의 사로국은 서로간 팽창하면서 서로간 충돌할 운명에 놓여있었다.결과는 삼국사기 권1,미추왕 죽엽군조에 나와있듯이 이서국이 신라군사를 압도했으나 홀연히 이상한 군사들이 모두 귀에 댓잎을 꽂고 신라군사와 힘을 합쳐 이서국 군사를 격파하여 신라의 승리로 마감된다.

 

이후 변혁의 증거로 김사미의 난을 들 수 있다.고려시대 1193년(명종 23) 김사미(金沙彌)가 농민들을 모아 경상도 운문산(雲門山)을 본거지로 일으킨 반란이다.사미는 원래 스님을 일컫는 말이므로 김씨 성을 가진 운문사의 승려가 타당 할 것이다.이후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변혁을 완성하였지만 변혁이란 원래 새로운 패러다임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본다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변혁을 꿈꾸는 자,청도 여행을 권한다.

 

 

* 버스를 타고 청도역에서 운문사로 간 다음 관람을 끝낸 후
다시 청도역으로 돌아온 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서면으로 진행 한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답사를 시작 한 곳은 운문사였다.금강송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는 시간에 답사를 시작하여 차분한 마음이 먼저 들어 앉았다.
까치 소리가 요란스럽다.원래 운문사의 원래 이름은 대작갑사였다.
여기서 작鵲은 까치를 의미한다.

 

원래 「삼국유사」권 제4 보양 이목조에 보면

 

"<보양이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오는 길에 배로 서해를 건너자니 용궁으로 청하여
금빛 비단가사 한 벌을 주면서 그의 아들 이목을 데리고 작갑(鵲岬)에 절을 지으라고
당부했다. 보양이 절을 세우려고 북쪽 산마루에 올라 살펴보니 산 아래 5층 황탑(黃塔)
이 보였다. 그래서 내려와 찾아보았는데 아무 흔적도 없었다.

 

다시 산으로 올라가 탑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니 까치들이 땅을 쪼고 있었다.
그러자 용왕이 ‘작갑(까치곶)’이라 한 말이 떠올랐다. 다시 내려와 그곳을 파보니
무수한 벽돌이 묻혀 있었고, 마침내 그 벽돌로 탑을 쌓으니 한 장도 남은 게 없었다.
그리하여 여기에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작갑사라 하였다.>

 

그러므로 운문사에서 까치는 영물에 해당된다.


 

다시 송림 속을 걷는다.모든 소나무들이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일제시대때
송진채취의 흔적이다.그래서일까? 아무렇지도 않은 들판도 여기서는 아픔이
배어있다.그 아픔을 고운 단풍과 처연한 억새가 아름답게만 덧칠하고 있어
더욱 애잔한 느낌이 든다.눈부신 아침은 점점 나의 머릿 속을 깨끗하게 치우고
있었다.

전나무의 힘찬 비상은 느티나무를 휘어지게 만들었지만
결국 같이 살아가는 점에서 사로국과 이서국의 운명을 대변하는 느낌이다.
앞에 걸어가는 저 분들도 나의 머릿 속과 같은 느낌일까?

 

운문사 내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원응국사비이다.보물 제316호,높이 2.28m로 고려
인종 때 축조된 화강석제 비석으로 임진왜란 때 왜적들에 의해 잘리어 방치된 것을
수리·보존한 것이다.비면 윗부분에 방곽제액(方廓題額)을 마련하고 “圓應國師碑銘”
6자를 해자(楷字)로 종서(縱書)하였다.비문은 행서(行書)로 왕희지체로 보인다.

 

원응국사는 송(宋)나라에 가서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배우고 1114년(예종 9)에 대선사가
되었으며 1144년(인종 22) 입적 후에 국사(國師)가 되었다. 문장은 금강거사 윤언이
[尹彦頤, ?~1149]로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1135년 묘청의 난 때 김부식의 막료로 출전,
공을 세웠으나 정지상과 내통하였다는 김부식의 보고로 양주방어사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주역》에 정통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글씨는 고려왕조 최고의 명필이었던 탄연이 썼으니 금석적 가치도 대단하다.

 

운문사는 호거산에 있다.호거산虎踞山의 의미는 무얼까? 사전에 따르면 ‘踞’는
엉덩이를 높은 곳에 얹은 후 두 다리를 내려 세우고 앉기, 즉 ‘걸어앉기’를 뜻한다.
그래서 ‘虎踞’의 일차적 의미는 ‘범같이 무릎을 세우고 앉는 것’이다.

 

그러나 ‘호거’의 실제 쓰임새는 그 문자적 의미와 다르다. 주로 산 모습을 형용하는 말로
구사된다. ‘웅대한 산세’를 뜻한다. 용이 서리고 범이 걸터앉은 듯하다는 뜻의
‘龍盤虎踞’(용반호거)와 통한다. 그러면서 호거는 ‘특별하고 기이한 암괴’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로도 쓰인다.호거산은 962M봉 산등성이와 억산 바위일대를
의미한다고 한다.여하튼 운문사 경내의 그림에 호랑이가 몇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운문산 운문사가 아닌 호거산 운문사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만세루는 여름 땡볕에도 시원한 느낌이고,범종루의 북,종,목어,운판은 불교의 사물이다.
범종은 특별히 지옥중생들의 제도와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으며 법고는 축생을 제도한다.
목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물고기와 같이 항상
정진하라는 의미와 함께 물 속에 사는 중생들의 제도를 기원하는 것이다.
또한 운판은 날짐승들의 제도를 기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가을은 깊고 깊어서 만추이다.가을은 쓸쓸한 뒷모습이 제격이다.
불제자와 재가자가 경계없이 드나들고,대웅전 앞에 삼층석탑(보물 678호)․을 본다.


 

대웅전 앞의 3층석탑 2기는 대웅전이 위치한 자리의 지세가 행주형(行舟形:전복되기
쉬운 배 모양)의 흉맥으로 그 지세를 누를 목적에서 양쪽에 탑을 세운 것이라 한다.


 

불이문 안쪽의 은행나무는 일년에 단 하루 오늘 오후 3시에서 5시까지 개방한다고
하지만 답사길이 바쁘니 그냥 지나친다.드디어 작압전이 보인다.

 

이미 "보양 이목조"를 설명했지만 보양은 나말여초의 승려로 당나라 유학하였다가 귀국
했는데 그의 귀국 때 서해 용왕이 가사 한 벌을 주고 아들 이목(璃目)을 데려가도록
하였으며, 작갑(鵲岬)에 사원을 지어면, 후삼국의 혼란을 평정하는 국왕이 출현한다고
예언하였다고 한다.귀국 후 밀양의 봉성사(奉聖寺 : 보양과 왕건의 진영 봉안)에 머물 때
왕건이 청도 견성(犬城)의 저항군을 진압하는데 조언했고 이후 작갑의 땅 속에서 파낸
벽돌로 탑을 만들고 작갑사를 중창했다고 한다.고려 태조가 5갑사에 500결 시납하고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내려 대작갑사라는 절 이름은 운문선사(이후 운문사)가 된다.

이곳이 탑을 세웠을 것 으로 보이는 작압전이다.운문사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이곳은
공교롭게도 스님 한분 정도만 들어갈 공간이 있어서 스님끼리도 경쟁이 치열한
명당자리라고 한다.한마디로 기도발이 잘 받는 영험스런 곳이다.

 

명부전 뒤를 보니 염라대왕이 업경대를 보고 죄를 심판하는 그림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극락교는 재가자는 갈 수 없는 곳이다.저곳을 넘으면 육화당을
비롯한 17개의 전각이 있다고 한다.굳이 저곳으로 가려면 출가를 하시길..


 

다시 청도역으로 돌아왔다.청도 역 앞은 추어탕집이 몇개 있는데
청도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쓰지 않는 집이 더 많다.미꾸라지 대신 운문댐에서
잡은 몇종류의 잡어를 쓰는데 미꾸라지를 넣은 추어탕이 다소 뻑뻑한 느낌이
난다면 이곳 청도 추어탕은 매운탕처럼 시원한 맛이 나는 편이다.

 


같이 딸려 나오는 피리조림(피라미 조림)도 맛이 좋은 편이다.막걸리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버스로 향해 가던 도중 청도납닥바위에서 잠시 쉬어간다.


 

식사를 마치고 찾은 곳은 청도 범곡리 지석묘 군(群)이다.청도일대는 잊혀진 왕국
이서국이 존재했던 곳으로 몇 가지 기록 외에 이서국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은 별로 없다.표지판에 따르면 이 지석묘 군이 있어서 당시부터 넓은 평야와
인접하여 대규모 집단 취락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이는 이서국을
성립시켰던 기층 집단의 총제적 위세를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적혀있다.청도의 반시 단감이 단풍처럼 느껴진다.


 

청도읍성과 청도 석빙고는 예전에 가 보았던 곳이다.석빙고 인근의 솟대가
인상적이다.어떤 경사가 났단 말인가? 아니면 또다른 변혁을 기원하는 솟대인가?


 

청도향교로 들어가니 350여년 된 느티나무 두그루가 인상적이다.원래 향교는
교육기관과 제향을 하는 곳이라고 보았을 때 행단 [杏壇]이라고 하여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은행나무가 필수적인데
이곳은 느티나무가 더 눈에 뛴다.명륜당 뒷편에 은행나무가 보이긴 보인다만..


 

용강서원에 이르렀다.14의사비각이 있고 낮은 산등성이가 용강서원을 감싸고
있어서 이곳의 단감은 낙과도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용강서원은 밀양박씨(密陽朴氏) 일문이 그 조상인 충숙공(忠肅公) 박익(朴翊)과
임진왜란 때의 14의사를 제향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박익은 고려 말의 충신으로, 고려가 망하자 조선 태조의 출사 요구에 불응한 채 밀양에
은거하여 저술 활동에 전념하던 사람이다.지난번 답사때 그의 묘를 답사 한바가 있다.

 

임진왜란 때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와 연합하여 의병을 일으켜 청도·밀양·경산
등지에서 왜군에게 큰 타격을 준 14의사를 모신 사당이다. 이들은 왜군의 침략으로
청도가 함락되자 박경전이 맹약문과 격문을 발표하고 운문산(雲門山)을 중심으로
의병운동을 일으켜 향토를 지켰다. 14의사는 박경신(朴慶新)·경인(慶因)·경전(慶傳)·
경윤(慶胤)·경선(慶宣)·지남(智男)· 철남(哲男)·선(瑄)·찬(璨)·린(璘)·우(瑀)·근(瑾)·
숙(琡)·구(球) 등으로, 이들은 모두 부자·형제·숙질·종형제 사이이다.


 

마지막으로 둘러 본것은 청도 척화비이다.'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계아만년자손
병인작신미립( )' 즉,
'서양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하는 것이요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우리의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쓰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적혀 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치른 후 흥선대원군이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새운 것이다.
사실 1868년(고종 5) 독일의 상인 E.J.오페르트 등에 의하여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가
도굴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흥선대원군의 쇄국양이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았을때 다소 아이러니를 느낀다.

 

사실 남연군묘는 원래 가야사 자리였다.권력으로 가야사를 불태우고,승려들을 죽이고
몰아낸 점은 흥선대원군도 오랑캐 기질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동이東夷가 양이夷보고 소리 한 것 같은 기분은 항상 이 척화비를 볼때
마다 씁쓸하다.결과적으로 문을 걸어 잠근 쇄국이 쇠국으로 결말지어진 것이니...


 

변혁의 시기,뉴 패러다임의 시대...죽을 땐 죽더라도 변화에 끌려다니는 것 보다는
몸을 실어 변화를 주도해보자.

 

한때 우리는 헤이그특사로 갔으나 참석도 못하고 이준열사는 분사한 역사가 있다.
이제는 G20 의장국으로 변화를 주도하는 위치까지 왔다.

 


이 가을!
청도에서 변화에 대해서 결코 피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르고,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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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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