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후기


성탄절입니다.
아기 예수가 마굿간에서 태어나고 구유에 뉘이셨으니
직설적으로 말하면 "축사"에서 태어나고 "말밥통"에 뉘이셨다는 말입니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축사의 말똥 냄새 가득한 곳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거룩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거룩한 의미가 바로 "성탄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의미는 사라지고
현대인에게 성탄절은 하루 쉬어서 기쁜 날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자전거로 산을 타는(산타) 라이더입니다.
날씨가 추워서 좀 늦은 시간에 출발합니다.


[만덕사지]


가장 먼저 가는 곳은 만덕사지입니다.

만덕사는 고려시대 석기왕자의 귀양지라는 설이 나오는 곳입니다.
귀양지설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가 과연 사료에 나오는 그 만덕사가 맞는가하는 것입니다.

왕자 석기는 충혜왕의 아들이었지만 그 어미가 사기장수 임신의 딸이었습니다.

속된말로 미천한 신분이었습니다.
뛰어난 미모로 충혜왕의 간택을 받은 석기의 어머니는 
은천옹주라는 명칭을 받게 됩니다.

충혜왕의 다음 왕은 충목왕으로 석기와 형제입니다.충목왕은 일찍죽고
그 다음은 충정왕으로 이어지는데 충정왕도 석기의 형제였습니다.

충정왕도 일찍 죽는데 다음 왕은 공민왕이었으며 석기의 숙부입니다.
석기가 승려가 되어 만덕사로 보낸진 것은 공민왕때 일로 여겨집니다.

개경에서 부산 만덕사까지 유배를 온 것은 석기의 의사와 상관없이
석기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반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덕사는 그 크기가 현재 범어사의 4배 규모로 추정되고 있으니 
아마도 기록에 나타나는 그 만덕사가 이곳일 가능성은 높다고 봅니다.

먼저 당간지주를 보러갑니다.

예전에 당간지주가 하나만 있었는데 이번에 가니 하나를 복원하여 짝을 맞추어 놓았습니다.
단순한 절제미가 역설적으로 장중한 멋을 보여줍니다.

기와담장 울타리가 쳐져있고 당집 크기의 집이 보입니다. 



당간지주 중간을 보며 줄 하나가 돋을새김으로 나타나있습니다.
신목하나,당집같은 집 하나,당간지주가 어우러져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당간지주는 현재 만덕사 터와는 좀 떨어진 곳에 있어서 유심히 살펴야만 찾을 수 있습니다.



만덕사가 예사스럽지 않은 것은 축대의 바위 규모때문입니다.

요즘도 쉽지 않을 공력을 들인 모습이 역력합니다.



지금은 폐사지 위에 가설 건물같이 허접한 당우에 주련조차 그냥 휘갈긴 것 같은 글씨로 씌여져 있고 
사찰에 태극기를 붙여 놓아서 뭔가 분위기가 묘합니다.



구석구석 잘 살펴보면 고려시대의 석물들이 보입니다.
석기 왕자를 보면 제행무상이요, 폐사지를 보면 성주괴공입니다.



[병풍암 석불사] 


병풍암은 암자이름이 아닌 바위 이름입니다.병풍처럼 쳐진 바위모습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도로에서 산위를 바라보니 바위들이 정상에서 아래로 병풍을 치고 있고 
자세히 보면 바위 끝에 절집들의 지붕이 보입니다.


산너머 뒤쪽 암벽군은 상계봉이고 보이고 앞쪽산의 우측 바위군들이 바로 병풍암입니다.
저기를 자전거를 타고 오른다고 생각하니 믿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거짓말같이 석불사에 도착합니다. 



산 아래에서도 크게 보였지만 석불사에 도착해보니 뒤로 보이는 병풍암의 바위 규모가 상당합니다.



석불사는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 승려 조일현이 창건했는데,
그가 주지로 있는 동안 이곳 암벽에 석불을 조성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이므로 사찰은 상당히 현대적인 불교미술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왠지 일본과 한국을 교묘히 섞어 놓은 듯한 모습도 여럿보입니다.



이곳은 단일암자로 29개의 마애불이 조성되어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단일암자 마애불 숫자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탑을 들고 있는 사천왕은 북방천왕으로 다문천왕입니다.
사진의 가장 앞쪽은 용을 든 서방 광목천왕입니다.

18나한의 모습이 보입니다.


석불사 마애불 중 가장 공력을 들인 것으로 보이는 11면관음보살이 중심에 있습니다.
부조물 위에 아치구조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깨끗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위에 미륵존불이 있습니다.


우측을 보니 칼을 든 남방천왕인 증장천왕의 모습입니다.
그 위는 비파를 든 동방천왕인 지국천왕의 모습이 보입니다.
증장천왕은 얼굴 주변의 돌을 깊게 깍아서 얼굴이 상대적으로 깨끗합니다.



11면 관음보살의 모습은 얼굴이 갸름하고 신체비율이 요즘의 미인상과 비슷해서 
1930년대는 역시 "현대" 불교미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비로자나불의 모습도 보입니다.



11면관음보살의 옆 동굴은 관음전입니다.



11면관음보살은 경주 석굴암의 십일면관음보살을 닮았습니다.
기록을 뒤져보니 "1949년 신상균이 조각한 것을 1959년 구포 사람 권정학이 11개월에 걸쳐
앞서 조각한 상을 걷어내고 그 위에 다시 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 마애불은 단 한사람의 장인이 만든 것이 아니고 "6·25 때 부산으로 피난 왔던 불교 조각 장인
김석담과 박판암이 신상균·원덕문·권정학 등의 현장감독으로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외 입구의 석등의 모습과 우측 건물의 직선의 모습을 보면 일본스럽다는 인상을 받게되는데 
석불사의 조성시기가 일제강점기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지
뭔가 한국풍과 일본풍이 섞여 있는 느낌입니다.



이제 또 세모의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트럼프의 몽니로 아주 우울한 무술년이 되었습니다만 
기해년 돼지해가 또 오고 있으니 다른 희망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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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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