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갑사)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자 미래이다.

 

- 언제 : 2015.11.8  05:30~22:40
- 얼마나: 2015.11.8  06:30~22:10
- 날 씨 : 흐림과 비 반복
- 몇 명: 40여명
- 어떻게 :고적답사회 동행/인솔:최영호 교수님



 부산→국립공주박물관→공주 공산성→점심(고마나루 돌쌈밥)→공주 석장리 유적→계룡산 갑사→부산

 

오늘은 입동이다.입동이 지나면 김장을 비롯하여 겨울채비도 해야한다.가뭄 끝에 단비가 어제부터 내리고 있다.이 비가  그치면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올 것으로 보인다.입동이지만 날씨는 의외로 포근하였다.


오늘은 유네스코 백제역사지구 중 한 곳인 공주로 간다.백제는 서울(한성),공주,부여,익산에 유적이 있다. 유네스코 백제역사지구 8곳을 살펴보니 공주,부여,익산에 대부분 유적이 있다.

이번 답사길은 대부분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책을 한권 들고 갔지만 비가와서 눅룩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머리가 복잡하여 휴식을 원했기 때문이다.


교과서는 민주주의 발전 정도에 따라서 "국정 교과서->검인정 교과서->자유발행제 교과서"로 보통 진행된다. 대부분의 역사가 그렇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검인정에서 자유발행제교과서가 아닌 국정교과서로 되돌아 간 것이다. 유신 시대로 되돌아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정화를 하지 않는 국가인 아이슬란드는 고등학생수가 3만명 정도라서 검인정을 할만한 민간업체가 없기 때문이다. 수요부족으로 결국 국정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그외  터키와 그리스가 있다.


현재 OECD 국가는 34개국(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이슬랜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터키, 영국, 미국, 캐나다, 일본, 핀란드,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체코, 헝가리, 폴란드, 한국, 슬로바키아,칠레, 슬로베니아, 이스라엘, 에스토니아) 중 31개국은 검인정 혹은 자유발행제 교과서를 사용한다. 국정교과서는 한마디로 학문적 자율권 박탈제도이다.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기본으로 하는데 이 부분이 심각하게 침해를 받는 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보수의 근간인데 우리나라 보수는 어떻게 된 것인가? 그 외  국정교과서 채택국가는 공산주의 국가 혹은 전제주의 국가인데 "북한, 중국, 베트남, 이란, 이라크" 이다. 역사교과서는 학문,교육,민주주의와 관련이 깊은 문제인데  나치독일,군국주의 일본,우리나라 유신독재정권이 했던 제도이고 지금 북한이 하고 있는 제도이다. 싱가폴이 국정제를 한다고 같이 해야한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싱가폴은 투표율이 93%~94% 되는 나라로 투표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는 나라다. 어떻게 보면 세금,벌금으로 국민을 옥죄는 나라로 볼 수 있다. 이 나라는 여당의 득표율이 70% 이상으로, 단 한석도 야당에 내어주질 않으니 야당의 의견, 정책이 법안을 통과할 리 만무하고 그러다보니 여당의 독보적인 독재체제의 연속인 나라이다. 사실상 독재국가이다. 왜냐하면 "국무총리"가 "세습"되니, 독재국가 가 아니라고 말하기 힘든 나라이다. 전체 여론도 국정교과서 반대인 상황이라 정부의 국정교과서 강행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역사 내용은 바뀔수 있어야하지만 방법론에 있어서 분명 개선이 아닌 개악방향이라는 것이다.


역사와 관련이 깊은 문화유산답사길을 가면서 한국의 미래가 우려된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자 미래이다.

 



가장 먼저 간곳은 국립공주 박물관이다.미리 입장료를  무료로 관람하기 위하여
온누리공주(
 http://cyber.gongju.go.kr )에서 시민등록을 하였고 시민증을 복사한 후 지참하였다.


공주의 옛이름은 웅진(熊津)이다. "웅진"이라는 이름에 라임을 맞춘 것인지 모르겠지만 
공주시 BI 슬로건은 "흥미진진"이다. 옛이름으로 연결하면 "흥미진진 웅진"이 되겠지만
지금은 "흥미진진 공주"이다. 웅진을 순수한 우리말로 표현하면 "고마나루"이다.
"곰나루"인 것이다.


웅진 백제는 AD 475년~AD 538년 시기로 63년 동안 세명의 왕(문주왕,삼근왕,동성왕)이
유력귀족에 피살되는 정치적인 혼란기였다.

그러나 동성왕,무령왕을 거쳐 백
제의 내부적인 안정과 더불어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성왕때 사비로 천도한다.

▶ 국립공주박물관: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4(웅진동 360번지)



박물관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백제 무령왕이다.
성은 부여(
扶餘), 이름은 사마(斯摩/斯麻) 혹은 융(), 시호는 무령(武寧)이다.

시호에서 알 수 있듯이  밖으로는 강성한 국가를 상징하는 굳 셀武와
안으로는 백성의 안녕
을 추구한 왕이다.


국립공주박물관은 대부분 백제 무령왕에 대한 유적이 많았다.






무령왕릉의 전축의 28가지 벽돌을 사용하였다. 무령왕대는 중국 남조의 문화와 할발한 교류가 있었고
이 무령왕릉이 바로 중국 남조의 화려한 문화가 그대로 유입되어 만든 무덤양식이다.





다른 왕릉과는 달리 무령왕릉은 왕과 왕비의 묘지석이 있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인  석수는 국보 제162호이다.
부장문화를 엿볼 수 있는 부장품으로 몸체는 돌인데 뿔 부분은 녹슨 형태로 보아 철 종류로 보인다.



 


왕과 왕비의 목재관은 일본의 금송이다.일본과 빈번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꽃문양의 전축 벽이 품위가 있어 보인다.



 


금동신발의 크기에 놀란다.


 


▶ 공주 공산성: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로 1


○공주 공산성(公山城)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위치. 백제의 도읍지 웅진(熊津 : 지금의 공주)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 1963년 사적 제12호로 지정.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략으로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이 함락되자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 웅진은 이후 성왕 16년(538)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으로 역할. 백제 때에는 웅진성이라 하다가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 등으로 불림. 금강 옆의 야산(해발 110m)인 공산(公山)의 정상에서 서쪽의 봉우리까지 에워싼 포곡식(包谷式) 산성. 원래는 토성이었다가 조선중기에 석성으로 개축. 성벽 안에 있는 남문터(현재 鎭南樓) 앞의 넓은 터는 웅진시대의 궁터.

백제의 멸망 직후에는 사비 도성의 함락으로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당나라의 웅진도독부가 설치되기도 함.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영은사, 인조가 파천하면서 지은 쌍수정도 있음. 한편 "택리지"에는 공산성이 ‘성안에 군량과 군기를 저장하여, 강화․광주와 함께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 기록.

 


금강과 맞 닺은 쪽에 문이 있는데 진남루이다.진남루 안쪽으로 한창 발굴 중이었다.

추정 왕궁터로 올라가보니 왕궁터라고 하기엔 상당히 좁았다.
그래서 아직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하여 "추정" 왕궁터이다.

역사는 이렇게 여지를 두어야 한다.어떻게 단 하나의 의견만 있을 수 있는가? 



 


비는 내리고 점심시간 예약 때문에 바삐 성밖으로 나왔다.


 

 


고마나루 돌쌈밥집에서 쌈밥으로 식사를 하였다.
공주는 밤이 유명하고 그래서 막걸리도 밤막걸리가 눈에 띄었다.
밤 때문에 막걸리가 좀  단편이다.


▶ 공주 송산리고분: 충남 공주시 금성동 산5-1


○공주 송산리고분(宋山里古墳群)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송산리)에 위치한 백제 때의 고분군. 1963년 사적 제13호로 지정. 이 고분군의 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20․30년대부터 시작하였으며, 1971년 5․6호분의 배수로 공사과정에서 무령왕릉이 발견. 무령왕릉은 피장자와 축조 연대가 확인되며, 상당수의 중요 유물도 출토되어 백제의 역사․문화 연구에 중요 계기를 확보. 무녕왕릉의 벽돌무덤(塼築墳)을 비롯하여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 등이 확인. 벽돌무덤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백제시대의 것으로, 중국 남조의 무덤양식을 받아들이면서도 벽화의 경우는 고구려와의 문화교류의 흔적을 짐작.



모형전시관은 이미 공주박물관에서 본 모습과 흡사하였다.

백제 무령왕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무령왕은 백제를 다시 강국이 되게 한 분이다.(更爲强國갱위강국)


무령왕릉 모형전시관을 나와 뒤로 난 길로 올라가면 무령왕릉을 비롯하여 송산리고분군이 나온다.
실제 묘 입구는 모두 막아놨기 때문에 이것은 그냥 산책을 하는 장소로 보면 된다.
산 뒤로 올라가면 제사를 지낸 정지산유적지가  나온다.

 

 

▶ 공주 석장리 유적:충남 공주시 석장리동 98

 

○공주 석장리유적(石壯里遺蹟)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의 금강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적. 1990년 사적 제334호로 지정되었으며, 석장리 박물관도 운영.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 1964년 미국인 대학원생이 뗀석기를 발견한 이후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12차례에 걸쳐 발굴․조사. 전기구석기에서 후기구석기까지의 석기가 출토되었으며, 후기구석기시대의 집 자리도 확인.

 


근대적의 의미의 고고학으로 손보기 교수를 중심으로 첫 번째 유적발굴지라고 한다.
여기서 한국 구석기의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파른 손보기 선생은 공주 석장리 유적발굴 이후 제천 점말용굴,청원 두루봉 9굴,
단양 도담 금굴유적도 발굴 하였다.



 



▶ 계룡산 갑사: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 567-3    지번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

 

○계룡산 갑사(甲寺)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의 계룡산에 있는 사원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 계룡갑사(鷄龍甲寺)․갑사(岬寺)․갑사사(甲士寺)․계룡사(鷄龍寺) 등과 같이 사원 이름이 다양하며, 창건 시기와 주체도 다양. 문무왕 9년(679)의상(義湘)이 중수하여 화엄대학지소(華嚴大學之所)로 삼았으면서 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가 기능. 세종 6년(1424) 4월에는 기존 소유 토지 100결에다가 50결을 더해 지급.

중요문화재로는 갑사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256호), 갑사부도(보물 제257호), 갑사동종(보물 제478호), 선조 2년(1569) 조성하여 논산 쌍계사에 소장하다가 옮겨 온 "월인석보(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쳐 엮은 것으로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공덕을 칭송)" 목판본(보물 제582호) 등.



춘동학 추갑사 혹은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있다.
봄은 동학사나 마곡사로 의견이 갈리지만 가을은 갑사이다.
그 만큼 가을 갑사의 단풍은 유명하다.
비 내리는 갑사의 만상홍엽으로 올해 가을의 끝자락에 취한다.







 



단풍에 취해 막걸리 한잔을 안 할 수 없었다.
그 분위기에 취해 금주 한지 6개월만에 딱 막걸리 한사발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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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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