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신선이 다스리는 살기좋은 곳에 오니 못된 풍류객이 처처에 탁주향을 남긴다. 

 


- 언제 : 2014.2.23  05:20~21:50

- 얼마나: 2014.2.23  09:45~18:00
- 날 씨 : 대체로 미세먼지로 연무
- 몇 명: 45명
- 어떻게 :고적답사회 동행

단양적성비-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단양읍(콩사랑 맛집421-9944)-도담 상봉-석문-향산리3층석탑-구인사

 

 

 

단양丹陽은 소백산맥을 경계로 충북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다.산지가 많고 카르스트 지형으로 석회암지대이기 때문에 시멘트산업이 발달했고 이런 지형의 특성 때문에 절경을 보여준다.석회암이 녹으면 석회암 동굴이 생기고 그 동굴은 석기시대 사람들에게 좋은 혈거지가 되기 때문이다.육로인 죽령을 지나 이곳 단양을 지나면 남한강 수로로 연결되기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이다.

 

단양의 옛이름은 적성(赤城)이니 붉다는 의미의 "적赤"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아 지금은 붉을 "단丹"에 볕"양陽"까지 붙었으니 이곳은 양기 가득한 충돌이 빚어지는 느낌으로 피비린내도 나는 곳이다.그렇지만 육로와 수로를 잇는 곳이라면 평화시에는 살기 좋은 곳이 된다.

 

사실 단양이라는 명칭은 연단조양(鍊丹調陽)에서 따 온 말이다. 연단이란 신선이 먹는 환약을 뜻하며 조양은 빛을 골고루 비춘다는 의미로, 신선이 다스리는 살기좋은 고장이란 뜻이다.실제 그곳을 가보니 인구 32,000명 정도라고 하는데 인구대비 풍부한 공연장을 비롯한 힐빙(힐링+웰빙)의 고장이었다.

 

문화재와 명승지가 많이 있지만 그 중 보물 제405호인 단양 향산리삼층석탑, 충북도 유형문화재 제80호인 우화교기사비, 국보 제198호인 단양 신라적성비, 사적 제264호인 단양 온달산성, 충북도 기념물 제135호인 사지원리 방단적석유구, 충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인 단양향교, 충북도 민속자료 제3호인 죽령 산신당, 충북도 유형문화재 제106호인 영춘향교, 충북도 유형문화재 제82호인 복도별업암각자, 충북도 유형문화재 제81호인 탁오대암각자, 충북도 기념물 제127호인 단양 각기리입석, 사적 제265호인 단양 적성 등이 있고 천연기념물과 명승으로는 제44호 단양 도담삼봉, 제47호 단양 사인암, 제46호 단양 구담봉을 비롯해 천연기념물 제261호 단양 온달동굴, 제45호 단양 석문, 제244호 소백산 주목군락이 있으며 유형문화재로는 단양 구인사청자소문발우(유형문화재 제211호), 단양 구인사아미타회상탱화(유형문화재 제210호)가 있다.

 

 

 

새벽에 일어나 단양의 기온을 스마트폰으로 체크해보니 영하5도에서 영상8도를 보여준다.
단촐하게 입었던 옷은 이것저것 챙기다보니 중무장으로 바뀌었다.여기에 읽을 책 두권과
음악을 들을 포터블 디바이스에 카메라가방 등을 들고보니 양손 가득이다.

그러나 우수를 지난 하늘의 기운은 실로 따뜻했고 버스를 30도 이상으로 데워주는
친절한 기사아저씨의 배려로 인하여 찜찔방에 온 느낌이었다.

 

가장 먼저 간곳은 단양휴게소에서 400M 떨어진 단양신라적성비였다.

 

단양신라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 3-1

 

이미 예전에 보았던 곳이라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다.허물어진 성을 복원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비는 이사부(伊史夫)를 비롯한 여러 명의 신라 장군이 왕명을 받고 출정하여, 고구려 지역이었던 적성을
공략하고 난 뒤, 그들을 도와 공을 세운 적성 출신의 야이차(也尒次)와 가족 등 주변인물을 포상하고
적성지역의 백성들을 위로할 목적에서 세웠다.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무력의 이름도 보인다.군사력으로 땅을 빼앗은 후 그 지역의 백성을 위무하기 위하여
세운비라고 한다.문장은 순수한 한문식이 아니라 신라식 이두문(吏讀文)과 한문이 섞여 있다.
서체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해서체(楷書體)이지만 예서풍(隸書風)이 강하게 남아 있다.

전반적으로 글씨는 소박한 느낌이다.

 

 

 

 

두번째로 간곳은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이다.

 

수양개垂楊介선사先史유물전시관: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산 24-19 번지

 

수양개垂楊介는 지명이다.아마도 수양버들이 강가 가장자리에 끼여(介) 있었던 모습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유추된다.이곳을 가려면 예전 기차가 다니던 굴다리 세 개를 지나야 한다.
이 굴다리를 지나면 캄캄해지고, 굴다리를 지나고 보면 다시 환해지는데 흡사 구석기 시대로 들어가는
통과문 같은 착각이 든다.이곳을 지나야 선사시대로의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1지구의 슴베찌르개가 다수 발견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낳았다고 한다.
슴베찌르개는 구석기 중에서도 후기에 속한다.작은 돌촉같은 모습이다.

제2지구는 상당한 크기의 취락터가 발견되었고 제3지구는 전기 구석기와 후기 구석기 등 2개 문화층이 확인
됐는데 주먹대패, 찍개, 긁개 등이 다량 출토됐다고 한다.이렇게 발굴된 유물들이 가득 전시관을 메우고 있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매머드 화석이 있어 눈길을 끌지만 이 화석은
이곳의 유물이 아니다.그냥 참고용으로 전시를 해 놓았는데 관심끌기는 충분하지만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놓치면 이곳의 유물로 오해하기 좋은 전시물이다.

 

 

 

 

 

 

두군데 문화유산 답사를 마친 후 단양읍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여행객이 많이 찾는지 모텔들이 연이어 보이고 규모도 호텔처럼 상당하다.

 

오늘 점심은 1급수에서 자란다는 민물 다슬기인 "올갱이국"을 먹었다.

부산에서 가져온 탁주와 함께 먹었는데 술을 마시는 것인지 올갱이로 해장을 하는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도담 삼봉嶋潭三峰:충북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195번지

 

 

단양8경의 하나이다.이곳은 이미 여러번 왔었다.사진사들이 좋아하는 명소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남한강 상류에 해당하는데 조선왕조의 개국 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이 이곳 중앙봉에 정자를 짓고
이따금 찾아와서 경치를 구경하고 풍월을 읊었다고 하며,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한 것도 도담삼봉에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고려말 충신인 정몽주도 이방원에게 피살되고,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도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다.최근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권을 읽는 중이라 이번엔 삼봉이 다르게 보인다.
그동안 가물었는지 오늘은 삼봉이 더욱 크게 보인다.

 

삼봉이 저곳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은 나 삼붕(三朋:세벗)이 이곳에서 한잔 할 생각이다.

 

 

 

 

 

단양석문:충북 단양군 매포읍 하괴리 산20-35번지

 

도담삼봉에서 정자가 보이는 쪽으로 10여분 산길을 오르면 석문이 있다.
그동안 도담상봉은 여러번 왔지만 이곳 석문까지 오른 것은 처음이다.

 

탄성을 지른다."추노"라는 사극에서 저 석문 위를 지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출입금지를 시켜 놓았는데 수십척의 높이에 무지개 모양의 돌기둥 속으로 건너편 마을이 보인다.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석문 아래쪽에 옛날 하늘나라에서 물을 길러 내려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린 마고할미가 살았다는 작은 동굴이 있다고 한다.비녀를 찾기 위하여 손으로
땅을 판 것이 99마지기의 논이 되었으며, 남한강에는 징검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다고 한다.
넓은 논에서는 선인(仙人)들이 농사를 지어 하늘나라의 양식으로 썼다고 한다."

 

 

 

 

 

 

석문을 탐방 후 공예전시관을 둘러본다.

 

단양공예전시관:도담삼봉 내에 있다.

 

 

도자기공예, 목공예, 석공예, 금속공예 등 다양한 작품들이 보이는데 특히 자석(紫石)용문벼루가 눈에 들어온다.
자석은 자주빛 돌이라는 의미다.

 

공예전시관을 관람 후 나와 근처 단고을 주막집에서 대강탁주(대강동동주)를 마셨다.
안그래도 술한잔 하고픈 마음이었는데 이심전심이었나 보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사랑한 소백산 대강막걸리를 이곳에서 마실줄이야.
도담상봉을 바라보며 대강동동주를 마시는 행운이니 내가 가는 곳이 무릉도원이다.

 

대강 막걸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단양에 와서 맛을 보고 연거푸 몇잔을 마신뒤에
나중에는 청와대에서 만찬 건배주로 사용했다는 그 막걸리다.

 

문화유산해설사는 시간이 촉박한지 눈치가 보이지만 대강막걸리에 인심좋은 주인장의 무한리필 안주는
술병이 동이 나도록 마셨다.

 

생뚱맞게도 천태종 중창조이신 상월원각대조사님의 법어 중

 "일심이 상청정하면 처처에 연화개니라(一心이 常淸淨하면 處處에 蓮華開니라=풀이:
우리의 근원인 본래
청정한 한 마음으로 돌아가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생사에 물들지 않는 연꽃이 만개할 것입니다.)"라는
어록의 끝부분이 떠오르는데 "처처에 연화개(=모든곳에 연꽃이 핀다)" 대신 이번 답사는 어찌 "가는 곳마다
막걸리 향기가 꽃처럼 피어난다."

 

거나하게 마신 후 다시 차를 올라 찾아 간 곳은 향산리3층석탑이다.

 

 

단양향산리3층석탑丹陽香山里三層石塔: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향산리

 

한눈에 보아도 비례와 통일감을 느낄 수 있다.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정제미가 돋보인다.


이 석탑에서 특기할 것은 죽령(竹嶺) 북쪽에 위치한 신라석탑이라는 점과 석탑 자체의 구성에서
상층기단의 면석이 8매석으로 조립된 점, 초층옥신 남쪽면에 문비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 등이다.

입구에 보니 묵호자의 사리탑 가능성도 언급되어 있다.

묵호자는 신라에 불교를 전한 인물인데, 일반적으로는 아도와 동일한 인물로 파악된다.
그러나 서역계통의 승려 또는 신라 전도승의 대명사로 파악한 견해도 있다.

 

나는 풍류도맥에서 나오는 물계자와 헛갈렸지만 묵호자이다.

이곳은 향산사의 폐사지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들런 곳은 구인사이다.

 

구인사: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132-1

 

주차를 하고 보니 "불교천태중앙박물관"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구인사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국보를 비롯한 유물이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이곳 구인사는 천태종의 총본산이다.
부산의 삼광사를 비롯하여 말사 300개를 거느린 곳이니 볼거리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입장불가이다.이렇게 아쉬울수가....

 

 

 

 

이곳에서 일주문 방향으로 바라보니 여기가 연화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꽃잎이 포개어져 있는 듯한 봉우리 형상의 윗 부분이 여기서도 보인다.

 

그러나 구봉팔문(九峰八門을 제대로 보려면 온달산성에 올라야 하는데 이법 답사코스에서는 빠졌다.

덕평문봉 중심으로 八字 모형인데 구봉팔문은 봉우리 9개와 그 사이에 형성된 골짜기 8개를
법문에 비유해 부르는 이름이다.

 

 

그 구봉팔문의 아홉봉우리가 마치 연꽃잎처럼 포개어져있기 때문에 연화지蓮花地라는 것이다.

구봉선문(九峰禪門)중 제4봉에 속하는 곳에 현대 한국불교의 기적을 일궈낸 구인사가 자리하고 있다.

救人寺가 아닌 救仁寺이니 이름에서 약간 유교적 분위기도 느껴진다. 

 

천태종은 천태종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지금부터 약 1400년 전인 594년 수나라 개황 14년 중국의 지자대사(智者大師)가 법화경을 중심으로
5시 8교 교관과 일심삼관의 수행법으로선(禪)과 교(敎)를 통합하여 만든 종파(宗派)입니다.

 

지자대사가 계시던 산이 천태산이므로 그 이름을 따서 천태종이라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천태교학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초기 백제 현광법사로 부터 비롯되었으며,
정식으로 천태종이 개립된 것은 고려 숙종 2년 대각국사 의천 스님에 의하여 국청사에서 천태종이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조선조 억불정책에 따라 5백여년 동안 역사 속으로 은몰되었던 천태종(天台宗)은
근세에 이르러 상월원각 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에 의해 중창되어 일천한 역사에
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발전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현재 천태종은 불교 종파 중 조계종 다음으로 사세가 커졌다.
예전에는 태고종이 2등이었는데 지금은 천태종이 2등이다.

 

 

 

 

 

 

무수한 전각이 이어진다.일주문을 지나 사리탑을 지나고 관음전을 지나니 향적당이다.
이곳을 지나니 산사면의 길을 따라 스님 한분이 걸어가고 있다.

 

 

 

 

 

광명당의 7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니 큰 광장이 나오고 대조사전이 나온다.


신응수 대목장이 고품질의 자재만 사용하여 못하나 쓰지 않고 9년 걸려 만들었다는 곳이다.

예전에 보았지만 이번에 다시 보아도 그 화려함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뒷편에서 약수한잔먹고 정신 차리고 다시 보아도 대단한 건물이다.

 


 

 

 

사찰을 내려오니 해가 저문다.

 

 

 

 

부산으로 돌아 오는길에 안동휴게소에서 들러 남은 막거리를 마시니 답사길 처처에 탁주향을 남긴다.

다시 차를 타니 가슴 속 술의 기운과 차량의 히이터 열기가 안밖으로 더하여 줄탁동시로
이 몸을 두드리니 처처에 탁주향을 남긴 죄값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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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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