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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산행

* 아래의 글은 경남불교대학 관련 자료를 몇개 모아 놓은 갈무리입니다. 금정산▲달빛 아래 도반과 함께하는 고모영신과의 만남- 언제 : 2008.12.11 (목) 19:00~12.12 02:00- 얼마나: 2008.12.11 20:00~12.1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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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글은 경남불교대학 관련 자료를 몇개 모아 놓은 갈무리입니다.

 
 
 
금정산▲
달빛 아래 도반과 함께하는 고모영신과의 만남


- 언제 : 2008.12.11 (목) 19:00~12.12 02:00
- 얼마나: 2008.12.11 20:00~12.12 13:00(3시간)
- 날 씨 : 맑음
- 몇 명: 성암사 경남불교대학 도반 50명과 사부 응현스님

- 어떻게 : 성암사 경남불교대학 산중기도 동행

▷청련암-고당봉 아래 샘터-청련암


- 개인산행횟수ː 2008-33[W산행기록-212P산행기록-352/T702]
- 테마: 산중기도 산행

- 산높이:금정산 801M
-가져간 책: .성암등불

- 호감도ː★★★★★
 


경남불교대학을 마친 이후 주로 경전을 위주로 공부하는 경전반 공부도 졸업시기가 다가왔다.달빛아래 야간 산중기도를 위하여 야간산행을 떠난다.기도(祈禱)라는 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어렴풋 다가온 것은 위인전을 읽으면서 위인들이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기도하는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된 이후 부터다.그렇지만 나는 별로 신앙심이 깊지 못해서였는지 그리 피부로 와닿질 못했다.
최근에 베스트셀러가 된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는 자극적인 카피라이트로 유명한 "시크릿(The)secret"도 결국 기도의 원리이다.그 책에서 주장하는 소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끌어당김의 법칙,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소원을 이루는 법칙,소원을 이루는 강력한 도구  등 저자인 잭 캔필드는 자신이 원하는 간절한 내용을 말하고,그림을 그리며 구체화하고 우주를 향하여 주파수를 날리라는 것이다.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리사 니콜스가 방청객에게 함께 따라 외치라고 한 말은 "I choose today to give myself the best life ever! (나는 오늘을 스스로를 위해 최고의 날로 만들겠다!)'였다.
기도의 의미도 이와 유사하다.기도(祈禱)의 의미는 "빌고 또 비는" 것이다.기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대화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나의 사부 응현스님은 일갈하신다.기도의 장점은 인생을 긍정적이며 진지하게 살게 만든다.우리 인생은 순간순간들은 참 소중한 시간이며 이 순간을 행복한 선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또한 어려운 시기를 긍정적인 마음으로 견디며 인내하게 만든다는 의미다.세상의 희노애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치와 경제를 아울러 흥망성쇠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며,또 좋은 시절이 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또한 종교인은 그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경외하는 대상과의 대화를 좀더 쉽게 이끌어주고 그에 관한 축적된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기도를 쉽게 하려면 우선 서원(誓願)·본원(本願)과 같은 구체적인 소원이 있어야한다.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그 서원을 위하여 경외하는 대상과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고 빌고 또 빌면되는 것이다.
도반과 함께 산중기도를 드리는 것은 진리와 자비에는 대립이 없음을 깨달아 너와 내가 한날 한시에 불도를 이루겠다는 마음(自他一時成佛道)의 성격이 강하다.다른 종교의 기도가 절대자에게 의지해서 비는데(타력신앙) 반해 불교의 기도의 특징은 타력적인 데서 그치지 않고 자력적인데 있는 점이 불교의 특징 그대로 나타난다.지금 당신의 어려움은 무엇이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대화가 필요하다.




18:00
우선 성암사 근처 내가 모시고 가야 할 중년의 보살 세분을 모시고 청련암을 향한다.
청련암은 범어사 8경중에 청련야우(靑蓮夜雨)라고 하여 밤중에 객사에서 대숲으로 내리는 밤에
빗소리의 운치가 독특하고 그 화음이 아름답다라는 다소 조용하고 정적인 풍광이 떠오른 사찰이지만
3년전 열반한 양익스님으로 유명한 불교금강영관이라는 불교무술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 청련암은 여느 사찰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청련암은 푸른 연꽃이라는 의미다.연잎을 녹색
혹은 푸른 빛으로 해석한다면 맞겠지만 연꽃이 푸른 빛이라면 이중적인 의미가 느껴지는 이름이다.

보통 푸른은 젊다.역동적이라는 의미가 느껴지고 연꽃은 불교 혹은 불제자를 의미한다면
불교무술을 하는 사찰다운 이름이다.4m가 넘는 범어사 일주문을 가볍게 올랐다는 일화가 있는가 하면,
스님에게 도전장을 내민 검도의 고수에게 썩은 나뭇가지로 응수했다는 전설을 가진 양익스님의
아우라는 직접 보지 못한 나로서는 다 믿을 순 없지만 그 분이 3년전 좌탈입망했다는 것은 사진으로 확인
하였다.

올해 시월 범어사 개산대제에서 다비식을 바라보면서 죽음 이라는 것이 밥먹고 똥사는 일과 마찬가지로
알고보면 죽어도 슬퍼 할 까닭이 없다는 의미를 느꼈고,죽음도 산자에게는 일종의 엄숙한 축제라는 것
을 느꼈었다.
 
앉아서 원적에 들으신 양익스님

선무도의 대가인 양익스님은 종인스님, 허주스님,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무승이었다. 양익 스님은
죽기 이틀 전에도 강원도 홍천에서 진행되던 시방원(十方院) 불사(佛事) 현장에 다녀왔다고 한다.
내려오다가 법흥사에 들러 초파일 등(燈)을 달았다. 범어사에 와서는 제자들에게 나머지 불사를
당부하였다. 본인이 가지고 있던 서류와 자료도 모두 넘겨주었다. 물론 이때까지 제자들은 그 의미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다. 오후에 다시 통도사 보궁(寶宮)에 가서 등을 달고, 저녁에 범어사 청련암에
돌아왔다. 저녁에는 당신 거처에서 평소와 같이 조용히 참선을 하고 있었다. 상좌가 스님 방에 들어
가서 초파일 뒤처리에 대한 질문을 했으나 아무 말도 없었다. 그 대신 “흠-흠-흠” 하고 큰 기침 3번을
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좌탈입망(앉은 채로 열반)했다. 그때가 2006년 5월 6일이다. 세수 73세, 법랍 45세.
1962년 범어사 동산스님을 스승으로 출가한 양익스님은 선무도 지도법을 개발, 71년 범어사
극락암에 연수원을 세우고 보급에 진력했다. 골굴사 적운스님, 호압사 원욱스님, 금강선원
안도스님 등 현대 선무도를 대표하는 스님들이 모두 그를 사사했으며 그분의 또 한분의 상좌
스님이 바로 나의 사부 응현스님이다.

성암사 경남불교대학 설법전의 응현스님



20:00



청련암 입구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적혀있는데  이것은 "현재의 몸 그대로 바로 부처가 됨"을 의미한다.
예전에 나는 "밀교와 한국의 문화유적(민족사 간)"을 읽으며 밀교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불교를 구별하는 방법의 가장 큰 틀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대로, 현교(顯敎)와 밀교(密敎)로의 구분
되며 현교는 겉으로 드러났다는 것은 현로불교顯露佛敎의 줄인말이다.겉으로 드러났다는 것은 역사적 존재로서
화신불化身佛인 석가모니에 의한 설법이나 문자를 통한 가르침을 의미한다.밀교는 비밀불교의 줄인말로
비밀에서 비秘는 심오深奧하다는 의미의 비오秘奧의 비秘이다.밀密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미인 은밀隱密
의 밀密로서,진리의 본체인 법신불, 즉 비로자나불의 자연실상이다.

심오하고 은밀한 뜻을 지닌 밀교는 통상의 언어.문자에 의한 설법으로는 깨달을 없고,신비적인 직관에 의해서만
체득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불교이다.한국에서는 현교는 조계종,천태종,태고종을 말하고 밀교는 진각종,총지종,
진언종으로 구별하지만 현교인 조계종에서도 진언과 다라니, 후불탱화 등을 봉안하는 의례 등 밀교의 영향은
우리불교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밀교는 “실재(實在)와 현상(現象)을 자기의 한몸에 융합하는 즉신성불(卽身性佛)을 목표로하는 불교”로 이곳 청련암
의 지장보살의 모습도 보면 머리에 관을 쓰고 있는 밀교의 영향이 강한 암자이다.

지장보살은 대지大地의 덕을 인격화한 것이다.그 덕은 자기본래의 청정심이다.이것을 여의주로 상징화한 것이다.
밀교의 지장보살은 현교의 지장보살과 성격과 형상이 다르다.현교의 지장보살은 스님의 모습인 사문형으로 손에 들고
있는 지물은 육환장과 보주이다.밀교는 보살형으로 머리에 관을 쓰고 손에 들고 있는 지물은 보주와 깃발모습의 당幢이다.
밀교든 현교든 지장보살의 상징인 보주(여의보주)는 모두 들고 있다.

불교가 현교와 밀교를 나뉘어진 것은 "염화시중의 미소"에서도 나타난다.부처님이 말로서 설명을 하여도 제자 중에
누구는 알아듣고 누구는 듣지 못한 것이다.그래서 알아들은 사람에게는 밀교를 가르쳤을 것이다.

마하가섭존자만이 미소를 지었고,이를 본 부처님은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
미묘법문(微妙法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이 있으니 이 도리를 가섭(迦葉)에게 전(傳)하노라"고
말씀하셨다.이것이 바로 밀교가 생긴 이치이다.무명 때문에 알지 못하는 밀교의 법을 중생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깨달을 능력이 없는 중생에게 알려주면 곡해하여 비방하며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9:30
학생들이 지장전 앞에서 줄을 서서 시주하고 예경을 하는 모습이다.




청련암을 지나고 내원암을 지나 범어사 개산대제 때 다비식을 한 광장을 지나 넓은 길을 따라 곧장 올라
중간에 휴식을 취하며 약수를 마신다. 이후 금정산 정상 고당봉인데 고당봉과 양산방향 사이 철탑근처 안부에
다다른다.오늘의 목적이 금정산 정상 등정이 목적이 아니라서 고당봉 정상 100여M를 남겨두고 산능선을 돌아
샘터가 있는 샛정의 산중기도장에서 제물을 쌓고 기도를 드린다.

천수경을 합창하고 산왕경山王經과 고모영신을 제창하며 산중기도를 드린다.
산왕경은 이렇다. 

大山小山山王大神    大岳小岳山王大神   대산소산산왕대신    대악소악산왕대신
大覺小覺山王대神    大丑小丑山王大神   대각소각산왕대신    대축소축산왕대신
尾山在處山王大神    二十六丁山王大神   미산재처산왕대신    이십육정산왕대신
外岳名山山王大神    四海被髮山王大神   외악명산산왕대신    사해피발산왕대신
明堂土山山王大神    金櫃大德山王大神   명당토산산왕대신    금궤대덕산왕대신
靑龍白虎山王大神    玄武朱雀山王大神   청용백호산왕대신    현무주작산왕대신
東西南北山王大神    遠山近山山王大神   동서남북산왕대신    원산근산산왕대신
上方下方山王大神    凶山吉山山王大神   상방하방산왕대신    흉산길산 산왕대신


산왕경山王經은 산에서 도를 닦거나 간산 및 산 공부를 위해 입산할 때 옛 도인들이 독송했다고 한다.
보통 음식을 차리고 분향 후 산신께 절(총 6회), 산왕경 7회 독송한다.

"불자수지독송경’은 불가(佛家)의 법문들 가운데서 널리 독송되고 있는 것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책의 부록편에 불과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산왕경이다. ‘대산소산산왕대신’으로 시작되는
이 경(經)은 총 14명의 산왕대신의 이름이 나열된 후에 끝이 난다.

유교와의 융화에 기반을 두어 나오게 된 대표적인 경전이 [부모은중경]이며, 이로써 중국의 문화권에서
불교윤리는 중국적 보편성을 획득해 나갔다. 그러나 중국의 민간신앙과 불교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불교의 근본사상에서 상당히 벗어난 경전들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으로 산왕경, 고왕경 등을 들기도
하지만 정통불교가 토속신앙을 흡수하면서 포용한 흔적으로 보인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불교속으로 들어온 산신(山神)을 보면 이렇다.

산악 숭배와 산신을 보면 불교의 고향인 인도에서부터 인도의 토속신을 받아들인 불교는 주변의 각국으로 전래되어,
그 나라의 기층 문화를 수용하면서 토착화의 길을 걷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신중 탱화를 볼 것 같으면 인도의
토속신은 물론이거니와 중국과 한국의 토속신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그 두드러진 예가 산신(山神), 칠성(七星), 조왕(조王), 용왕(龍王), 독성(獨聖) 시왕(十王) 등이다.
이들 신들은 화엄 신중(華嚴神衆)의 세계로 들어와 신중 탱화의 중단 내지 하단에 자리잡다가 나중에는 그 기능이
강화되어 단독으로 모셔진다. 그 중에서 산신은 한국 민족 신앙의 주 대상으로서 우리의 생활 공간 속으로 바싹
다가왔던 토속신이다.

웅장한 산봉우리하며 우당퉁탕거리며 흘리내리는 계곡과 그 주위에 펼쳐지는 기암 절벽을 타고 오르는 물안개가
서리는 그곳은 지상에서 하늘과 만나는 가장 높은 영역으로 하늘의 신이 내려와 머무는 신성한 공간이다.
신비롭고 청정하며 청량한데다 두려움마저 주는 경외감을 품어내는 분위기는 신의 거주 공간으로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국토의 대다수가 산으로 둘러싸인 탓인지 우리 조상들은 그 신이 머무는 산악을 숭배해 왔다.
그러기에 단군는 백두산으로 강림하여 나라를 열고 수로왕은 김해 구지봉 아래로 강림하여 가락국을 열었던가.

이렇듯 우리 민족은 산에는 신이 있고 그 신은 인간을 보호해 준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신라 시대의 오악 삼산(五岳三山) 신앙에서부터 고구려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산악 숭배는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이어내려오고 있다. 게다가 그러한 신성한 공간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영산(靈山)은 불보살이 머무는
불국토로 바뀌게 된다. 산의 그 청정한 분위기는 불교와 결합할 개연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라 때부터 명산에는 유서 깊은 사찰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교권 내에서는 불 보살과 인도나 중국에서 형성된 그 호법신들을 섬겨왔지 산신을
섬기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조선 중기에 들어와 산신을 정식으로 부처님 품 안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이유인즉
조선시대 민중들의 산신 숭배가 유행의 물결을 탔을 뿐더러 조선 시대 불교가 그만큼 민중들의 삶과 밀착된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면 산신이란 누구인가. 학자들의 여러 가지 설에 따를 것 같으면 단군 왕검이 나라를 다스린 지 1,500년이 되어
죽은 후 다시 이 땅에 돌아와서는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단군보다는 여자 산신이 그 시원을 이루며 점차 남자
산신의 모습으로 정형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사실 고대 모계 사회에서 생성과 풍요를 베푸는 산신은 모두 여성신이었다. 예를 들어 가야 왕국을 연 김수로왕의 어머니인
정견모후(正見母后)는 가야산을 거주 공간으로 삼았던 산신이었으며, 선도성모(仙桃聖母)는 경주 선도산에서, 그리고 마야고는
지리산에서 자리를 잡은 산신이었다. 뿐이랴 신라 박제상의 부인은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녀는 세 딸과
더불어 남편을 기다리던 치술령에서 산신이 되어 치술신모(치 術神母)로 섬겨지고 있다. 속리산 산신도 성모대자재신
(聖母大自在神)으로 여성 산신이다. 게다가 모악산(母岳山) 대모산(大母山) 등의 산이름에서도 그 여성 산신을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지리산(천황사,실상사), 계룡산, 속리산 등의 사찰에는 할머니 모습을 한 여자 산신 탱화나
소상이 안치되어 있다. 특히 계룡산 동학사에 안치되어 있는 산신의 모습은 인자하고 곱상한 얼굴에다가 단정하니 트레머리에
댕기를 두른 모습이 성모 마리아 상에 견줄 바가 아니다. 손에는 불로초들 들고 호랑이에 걸터 앉아 있다.

그러면 여성의 모습에서 어떻게 남성상으로 산신의 형태가 변모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이행하면서
점차 남자의 권위가 커진데다가 가부장적인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는 유교, 그리고 신선의 삶을 그리는 도교의 영향으로 남성의
모습으로 변모해 간 탓이다. 특히 대관령 산신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굴산산문을 개창한 범일(梵日) 국사를 모시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남성 산신의 모습은 도교, 유교, 불교의 영향을 각각 반영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보면 산신 하나로 세 종교를 묶어내고 있는
문화의 다양성을 읽어내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그런 모습의 산신도가 사찰의 산신각에 산신 탱화의 형식으로 현괘되어 있는
것을 보면 불교의 포용성은 문화의 다양성을 아우르고 남음이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산신의 모습은 백발에 긴 흰 수염과 흰 눈썹을 나부끼고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이다. 이러한 산신은 도교의
영향을 받은 신선의 모습으로 손에는 하얀 깃털로 만들어진 부채 백우선(白羽扇) 내지는 파초선(芭蕉扇), 또는 불로초를 들고
있으며 그 뒷 배경으로 신선이 살고 있다는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의 삼신산(三神山)이 그려져 있다.

유교적 산신탱화에는 머리에 복건(福巾)이나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의 산신 할아버지가 모습을 내민다.
그 할아버지 옆에는 책가지 대나무 등이 놓여 있으며 차를 달이는 도구들도 모두 망라되어 있다. 불교적 산신은 손에 단주나
경전을 들고 있는 삭발 수도자의 모습이다. 이 경우 산신이 차려입은 복장은 스님의 가사와는 약간 다르다. 적록색 바탕의 옷에
금박이나 노란색으로 그린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아 가사를 변형시켜 놓은 듯하다.

신중 탱화에 등장하는 산신의 모습은 흰 수염이 나부끼는 할아버지로 맨머리에 상투 관(冠)을 쓰고, 그것을 다시 투명한 두건이
덮고 있는 모습으로, 손에는 백우선을 들거나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는데, 거기에 산삼 부로초 영지 등이 매달려 있다.
이렇게 신중 탱화의 일부분으로 참여하던 산신이 나중에 그 기능이 강화되면서 산신 탱화로 어엿하게 독립하게 된 것이다.

산신 탱화에 등장하는 산신은 대부분 호랑이를 타고 있거나 호랑이를 앞뒤로 거느리고 있다. 어느 경우에는 호랑이가 산신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호랑이는 산신을 모시는 시자(侍者)요 안내자라는 인상이 짙다. 혹 산에서 가장 영험
스러운 동물이 호랑이라는 데서 산신령이 호랑이로 둔갑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산신 신앙이 불교와 습합하는 과정에서 호랑이는
나한이나 스님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확실히 바뀌게 된다. 따라서 독성 탱화에서도 산신도처럼 독성의 옆이나 무릎에 자연스럽게
호랑이가 앉은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형식이라고 한다.

지장 탱화나 시왕 탱화에 등장하는 우두(牛頭) 또는 마두(馬頭) 나찰의 머리가 호랑이로 바뀌는 것도 호랑이가 산신의 안내자
역할에서 염라대왕과 현실세계를 연결해 주는 안내자 역할로 확장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재미 있는 것이 호랑이의 모습이다. 위엄이 있으면서도 애교스럽고 친근감이 있다. 특히 밖으로 우스꽝스럽게 들어내놓고 있는
송곳니, 왕방울 만한 눈 등은 너무나 해학적이다. 눈동자의 동공은 삼각형, 사각형, 마름모꼴, 동그라미 형이 있으며. 백호, 황색
호랑이, 흑호, 표범, 줄범 등 그 등장하는 호랑이의 모습도 다양하다. 이러한 호랑이는 우리 민화 속에 등장하는 까치 호랑이의
모습 그대로이다. 산신을 보좌하는 시자로 이러한 호랑이 외에 탱화 속에는 앳띤 동자상(童子像)이 등장한다. 동자상은 산신령
에게 과일이나, 차, 꽃, 또는 불로주를 울리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녀
(童女)도 있다. 어느 탱화에서는 동자 두명이 등장하기도 하기도 하고 동자와 동녀가 짝을 이루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곳 금정산의 고모영신의 이야기는 이렇다.1902년 발간된 [궤범어사서기궤유전] 산령축에 의하면, "지금부터 40년 전에 밀양인
박씨가 결혼에 실패 하고 불가에 귀의하면서 범어사에서 화주보살이 되어 여생을 보내면서 불사로 사부대중들의 칭송이 대단했다.
어느날 스님께서는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고 저 높은 고당봉에 姑母靈神을 모시는 산신각을 지어 고당제를 지내주면 높은 곳에서
수호신으로 범어사를 지켜주겠다’고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이에 큰스님은 유언에 따라 고당봉에 산신각을 지어 1년에 두번의 제사를 지내니 아주 번창한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고당의 높은 곳에 앉아 있는 할미 당집이다. 금정산 정상은 고당봉이다.금정산의 고모영신은 할미신이므로 할미고(姑),
집 당(堂)을 사용하여 고당봉(姑堂峰)의 유래가 된 것이다.



24:00
기도를 마친 후 약간 쌀쌀한 기온을 느끼며 식사를 마친 후 자리를 옮겨 고당봉이 잘 보이는 나른 바위에 둘러 앉아
스님의 재미있는 이야기와 몇곡의 산중 아리아를 합창하고 다시 청련암으로 돌아왔다.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론이나 원리가 아니라 실천수행이다.수행의 최종목적은 부처가 되는 성불이다.밀교의 성불론은 차토입성(此土入聖:이땅에서의 성불)의 즉신성불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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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2008.3.20~20009.1 경남불교대학 및 경전반 입학 및 졸업 (보살게 수계:법명:선문)


경남불교대학 18기 야간반 졸업식

2008.7.20 성암사 설법전에서 오전 10시 부터 오후 2시까지
찜질방 같은 더위 속에서 보살게 수계식이 있었고 마지막 무렵엔
연비로 왼쪽 팔뚝에 아로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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