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외양포)100년전 역사의 현장을 엿볼 수 있는 일본의 대륙침략 전초기지



- 언제 : 2012.12.25 10:40~14:00

- 얼마나: 2012.12.25 11:50~12:40
- 날 씨 : 맑음
- 몇 명: 2명(with D)
- 어떻게 : 자가SUV  
▷가덕도 외양포

 

 

 

김해공항 이후의 신공항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지역중에 하나가 가덕도이다.거가대교가 개통된 이후로 부산에서는 배를 타지 않고 다리를 건너 쉽게 접근 가능한 장소로 바뀐 곳이다.불과 1년전만 하더라도 대항까지 갈때는 제법 아슬아슬하게 좁은 길을 통과해야했는데 이번에 가보니 대항까지는 손쉽게 접근가능하도록 도로가 잘 정비되었다.

 

대항에서 조금 위험한 급경사길을 통과하면 가덕도 끝자락에 외양포가 있다.대마도가 일본땅이 되어 버린 지금 부산은 또다른 국경의 도시라는 것을 여기에 서면 느낄 수 있다.태평양전쟁말기 가덕도에는 일본군 사령부가 있었다.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 외양포다.바로 근처에서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폐,은폐가 잘 된 요새의 흔적이 남아있다.외양포 마을은 일본군의 막사 건물 그대로 보존된 모습이 보였는데 이는 이 지역이 군용지(국유지)로 묶여 있어 100년전 모습이 남아있는 것이다.

 

땅과 건물이 국방부 소유라서 쉽게 개발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마을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억울한 점이 있다.일제시대때 땅을 뺏기고 삶의 터전을 쫒겨나게 되는데 해방이후 다시 이곳에 들어와 살았지만 적산으로 묶인 것이 그대로 국유지로 된 것이라고 한다.

 

 

 

 

대항까지는 도로사정이 좋아서 쉽게 접근가능하다.
그래서 예전처럼 아슬아슬하게 소희네집까지 갈 필요가 없다.

 

대항에서 새바지로 가는 길에 화장터가 있었다고 한다.
일본군들은 짐승처럼 두들겨 패며 부려먹다가 죽으면 그 시신도 대충 화장을 했다고 한다.

 

대항에서 가파른 언덕하나를 넘어니 딴세상처럼 외양포가 보인다.
추운겨울에 혼란스러운 그곳에 도착해보니 싸늘한 냉기가 느껴진다.

 

그렇게 을씨년스런 분위기는 아마도 치욕의 역사.처절하게 쓰러져 갔을 넋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경색된 마음이 약간 풀린 것은 어디서 다가 온 개 한마리가 정겹게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반겼기 때문이다.

 

 

 

 

 

 

찬찬히 마을을 돌아본다.지붕은 새롭게 칠을 했지만 벽은 옛날 일본가옥의 모습 그대로이다.
군부대 막사를 이어 붙인 듯 집들이 붙어있는 듯한 집들도 눈에 띄인다.

 

 

 

 

 

페인트 칠이 없는 가옥은 100년 세월이 그대로 느껴진다.
특히 길게 창고처럼 생긴 집은 군부대 막사로 보여진다.

 

 

 

 

눈대중으로 가늠하여 올라보니 사령부 흔적이 보인다.사령부발상지지(司令部發祥之地)라고
적혀 있는 비석이 보인다.뒤는 "쇼와(소화) 11년 6월 건지(建之)"라고 하여 1936년에 세웠다는
기록이 보인다.해방되기 12년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산자락에 은폐된 요새가 나타난다.진지,탄약고,지하벙커 등
일제 침략의 역사가 고스란히 그대로 보여준다.땅엔 원형의 흔적이 보이는데
고사포가 있었을것으로 보인다.

 

토성을 쌓듯 빙 둘러쳐진 포진지는 참 잘 감추어진 시설이다.

1904년 일본군은 외양포 주민들을 소개한 후 러시아 발틱함대와의 격전을 대비하여
포대사령부를 만들었다고 한다.

 

마을엔 우물과 무기창고 같은 건물들이 남아있다. 러일전쟁 후 기능이 축소되었고
이후 1909년 마산,1912년 진해로 이전하여 해군사령부가 되었다고 한다.

 

아치형의 진지가 보인다.방공호 내부는 아주 컴컴하지만 견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크기를 보여주기 위해 딸(173cm)을 세웠다.

 

 

 

 

 

 

좁은 계단으로 올라보니 전망이 좋고 산으로는 잡풀이 무성하여 지금은 한가롭기만 하다.
일본군 포대진지는 명치37년(1904년) 8월에 착공하여 12월에 준공한 것이라고 한다.
러일전쟁 승전 후 진해만으로 들어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서 둘러본다.얼기설기 꾸며진 세간들이 이 곳의 느낌을 보여주는데
까마귀까지 날아들어 그 분위기가 참 묘하다.왠지 서늘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온다.

 

 

 

 

 

 

4개의 우물 중 아직도 사용하는 우물이 있다.우물 위로 지붕이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앞으로 이지역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외양포 포구나무집의 포구나무는 고사목이 되었고 포구나무집이라는 이름만 남았는데
이곳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가덕도의 운명처럼 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만 아직까지는 시간이 멈춰 버린 시실리이다.그러나 우리는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독도를 다케시마,동해를 일본해로 고쳐부르며 다시 압박해오는 저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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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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