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제천,단양) 연말을 마감하는 기념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오다.

 



-.일시 : 2007.12.23 06:20~22:00
-.날 씨 :대체로 흐림
-.몇명:가족4명 포함 45명
-.어떻게:풍경 제34회 테마여행 동행

-.일정: 오전: "중원 고구려비", "중앙탑"(술박물과, 충주박물관), "미륵리사지"...
오후: "청풍 문화재단지", "충주호 유람선", "도담삼봉",
-.테마:가족여행





2007년 정해년(丁亥年) 한해의 막바지이다.곧 2008년 무자년(戊子年)이 될 것이다.나에게 2007년은 아쉬움도 많았지만 그런대로 무난하게 한해를 풀어 간 해가 된 것 같다.



2008년을 위한 초석을 다진 한해였다는 느낌이 강하다.무엇보다 나의 일에 대한 원칙이 생겼고,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다.정순우의 "공부의 발견"이라는 책의 광고카피를 보면 "공부는 죽었다.공부의 기술을 배우기 전에 나는 왜 공부하는가를 먼저 질문하라.그리고 공부하라"고 되어있다.



이런 질문은 어떤 일에도 모두 해당된다.나에게 있어 관심이 많은 독서,등산,여행,문화유산 답사,사진,대화 등을 비롯하여 일상적인 일까지 먼저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한다."왜"라는 질문이 많을수록 나에게 맞는 원칙이 생기고 나에게 맞는 원칙이 정해지면 그에 맞는 물품이 정해지기 때문에 효율적인 결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워크샵,연수 그리고 나의 산행을 비롯한 해외여행이 있었지만 올해는 가족과 함께한 산행이나 여행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 같다.그래서 가족여행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눈여겨 보아두었던 여행커뮤니티 "풍경"의 프로그램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와이프는 중개사 사무실을 열어 무난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고,이제 아들은 중3을 지나 고등학교 진학을 눈앞에 두고 있고,올해 중학교로 진학한 딸은 올해 처음과 마무리를 모두 가장 눈부신 성과를 내었다.



충주,제천,단양은 우리나라의 중원에 해당된다.우리나라의 중심인 이곳의 중요성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그동안 소홀했었는데 이번 기회로 다시 한번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국내 단 하나뿐인 고구려비를 만나다.

10:15
새벽 안개를 가르고 도착한 첫 여행지는 중원 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이다.고구려비는
세계적으로
단 2개가 현존하는데 하나는 그 유명한 중국 지린성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廣開土大王陵碑]이고
국내 유일한 고구려비가 바로 중원 고구려비이다.이 부분이 역사적으로나
문화재적 가치로 중요한
시사점이다.


두 번째는 이 비석이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으니 이제 30여년밖에 않았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비의 중요성을 몰랐던 동네 주민들이 우물가의 빨래판으로 사용하기도
하여 발견된 당시 비문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세 번째 느낀점은
고구려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반도의 중부지역까지 장악하여
그 영토가 충주지역에까지 확장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고구려가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는 지역적
으로도 훨씬 우리와 가깝게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중앙탑은 높이에 비해 너비의 비례가 적어 고준()한 느낌이다.

10:30

그다음 찾아간 곳이 한국의 중앙에 위치한다는 중앙탑이다.원래 이름은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
[]이다.
국보 제6호로 높이 14.5m로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큰 탑이다.이곳에는 충주박물관과 술 박물관이 있었는데 나는 술 박물관에 들러 술에
대한 역사와 붉은 적포도 와인을 마셨는데,빈속에 마셔서 그런지 빨리오르는 취기 때문에 싸늘한
아침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졌고 공원 주위 남한강 풍광도 더 아름답게 보였던 것 같다.

 

 

 

주당의 천국에 가서 "천사의 몫"을 훔치다.

 

술 박물관 입구는 스코트랜드의 거대한 증류기(distillation pot)가눈길을끈다.이것은소주를 만들때의
고리처럼
술을 만들때 불순물을없애는장치이다.술박물관 리큐리움이라고 적혀있다.
충주시 탑평리 중원탑 바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술의 역사나 탑의 역사는 오래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입구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술 박물관이 아닌 세계의 술 박물관이기 때문에 상당히
이국적인 모습이라 공간적 어울림에서 부족한 느낌이다.


오크통의 술은 휘발성 알콜성분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술의 양이 줄어드는데 이때 날아가는 술은
"천사의 몫
(Angel's share)"이라 부르며 오래된 술일수록 천사가 마신 술값까지 계산해야하니
비쌀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단원장취불원성(但願長醉不願醒~.그저 마냥 취해 깨고 싶지 않을 뿐)을 외치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지만 이리
좋은 시간이 왜 그리 빨리 흐르는지 출발시간이 다 되었다.하기야 계속 이어진 송년회
술자리에 난 이미 취해
있었다.


류시화의 "잔 없이 건네지는 술처럼"의 시처럼..세상의 어떤 술에도 나는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
당신이
부어 준 그 술에 나는 이미 취해 있기에...

이런 내 모습이 한심하다는 듯이 충주박물관 옆 불상의 모습이 안개로 흐릿한 속세를 내려다보고 있다.

 

 

 


미륵리사지에서 역사와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12:18

다시 버스를 타고 찾아 간 곳은 미륵리사지이다.가장 눈앞에 먼저 눈에 띄인 것은 우리나라 최대의
거북모양 받침돌인 "석귀부"였다.
그리고 온달장군이 적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하여 둥근돌을 들고
힘자랑했다는 공기돌은 공기라는 말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공기놀이의 다섯 개 돌 중의 하나로
전설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만약 저렇게 큰 돌을 손위에 올려 공기놀이가 가능할까?
그렇다면 다른 네 개의 돌은 어디있는가? 실제 눈으로 보면서도 말도 안되는 전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눈은 나와 다른 눈을 가졌을까?


유언비어는 아마도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와전되는 모양이다.유난히 검은 돌 위에 구슬같은
모양의 둥근 돌하나가 놓여있다.

 

 

미륵사지는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남죽향으로 펼쳐진 사지이다.
여기에 일찍이 석굴사원이 경영되었으나
오래전에 소실되어 현재는 석조물만 남아 있다.
이 미륵리사지 내에는 보물 95호인 5층 석탑과 96호인 석불입상이 있고 지방 유형문화재

19호인 석등과 33호인 3층석탑이 있다.

이곳의 석불은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이다.북쪽을 향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불상...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것을 만든이는 마의태자로
알려져있다.

역사적 사실은 아니고 나의 관점에서 보면 나라를 잃은 신라의 마지막 왕자가 볼때 이미 신라는
북망산천으로 떠났다는 의미로
북쪽을 바라보게 했을 수도 있고,마의태자가 북쪽으로 향하면서
자신의 대업에 부처님의 가피를 빌었을 수도 있다.보통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간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조작되었다는 설이 있다.하나는 금강산이 아닌 설악산에서 왕건과 맞서 싸웠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마의태자의 후손이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시조라는 설이 있다.

김행(金幸) 또는 김준(金俊)이라는 사람이 금나라의 시조인데
이들이 마의태자(김일金鎰)의 아들이나
손자라는 것이다.그래서 나라도 금(金)나라이다.그래서 금나라는 중국 역사가 아닌 잃어 버린

우리의 역사로 이제라도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어쨌던 예나 지금이나 부처님의 얼굴은 수천년 세찬 바람에도 유독 그 자리만 곱기도 하다.
불상의 하체를 보면 발이 양각으로
또렷하게 나와있다.

 

 


유람선을 타고 산과 호수를 한꺼번에 본다는 것은?
14:22

청풍문화재단지 근처 "예촌"에서 맛있는 된장찌개 중식을 먹고 난후 청풍명월로 유명한 이곳의
문화재를 둘러보았다.


나는 예전에 이미 꼼꼼하게 살펴본 바가 있어 주마간산격으로 둘러보고 바로 충주호 유람선에 올랐다.
새 모양의 바위가
있는 금수산이 보이고 옥순봉 구담봉을 바라보는데 오늘의 날씨는 쌀쌀하면서도
구름이 짙게 드리워져있어 마치 사극의
서기어린 모습을 연출한 느낌이다.

 

 

15:10

 

 

 

 

 

 

 

 

 

 

 

 

 

네 번째 도담3봉 나들이 ..오늘도 석문은 구경을 못하고..

17:37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도담3봉으로 가 보니 이미 어둠이 짙어졌다.삼각대를 안가지고
와서
ISO를 800에 놓고 조리개를 빠르게 해보지만 렌즈자체가 F3.5가 최대치라
그림이 다소 흔들린다.

 

 

 

인생의 중반 나이에 우리국토의 중심을 다녀왔으니 나름대로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중년의 여행이란 싯귀처럼 말없이 왔다가 말없이 간 것에 대해, 의미였다가 무의미로 돌려진 것에 대해, 쓸쓸함이란 언제나 그렇듯이 반쯤은 마음을 쓸고 지나간 자리인 것이다.


빈 곳의 공허함이란 색다른 풍경을 채색하기보다 남겨진 여백을 마저 그려내고 싶은

정오를 막 지난 생의 연민일지도 모른다.



고독함과 아주 가끔은 철저히 외로운것에 대해, 정체를 알 수 없는 허전함에 대해
지난 것들을 되짚어 보고 또 다른 내일이 염려되어 질 때 적당히 취한 술 기운에 기댄
용기를 빌리고 싶은 날엔 가족과 여행을 떠나자.


아마도 충분히 남겨진 여백을 채울 용기가 샘솟으리라.
아직 열어보지 않은 선물 "2008년"을 용감하게 열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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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
,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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