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후기

오늘 역사탐방 라이딩에 참여해 주신분은 다섯분입니다. 오늘은 약간의 업힐은 있었지만 대체로 무난한 코스였으며 70km를 달렸습니다.
오늘 탐방한 곳은 가락국,통일신라시기,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 유적을 둘러보았습니다.




1.탐방코스

사상 르네시떼 광장-낙동강 자전거 전용도로-웅천안골왜성-유주비각,유주암-점심(용원 김해수산 횟집)-
망산도-청룡대 각석-성산마을-녹산수문-수능엄사-녹산수문공원-둔치도-명지시장(해산)- 낙동강 자전거 전용도로-사상

2.탐방

*웅천안골왜성/소재지:경남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산 27

이젠 멀리서도 대충의 산 모습만 보아도 왜성이 들어설만한 입지조건이 느껴집니다.
안골왜성은 눌차왜성에서 가깝습니다.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입니다.
풀을 베어 왜성의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계단 나무 데크를 오르면 바로 성벽과 마주합니다.
비스듬한 모습의 일본왜성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 성의 “치”처럼 튀어나온 부분도 바로 입구에서 보입니다.

위로 오르니 천수각 자리도 뚜렷합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웅천왜성을 쌓을 때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 구키요시타카 등은
해발 100M의 동망산 꼭대기에 안골왜성을 쌓았습니다.

왜군은 안골왜성을 쌓을 때 인근에 있던 조선수군기지인 안골포진성의 성벽의 돌을 가져다 썼습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안골왜성을 고쳐 “웅천안골리성”으로 지정해 관리했으며
현재는 경남도 문화재 자료 제275호로 지정돼있습니다.
천수각 자리로 판단되는 곳에 웅천안골리성 석물이 꽂혀있습니다.



[안골왜성 제3외성]



[안골왜성 본성 입구]




* 유주각

가락국 역사는 설화로 보기에는 유적지나 흔적이 많이 남아있고 역사로 보기에는 기록이 부족합니다.
보호각에 신어(神魚)문양으로 두마리의 물고기,쌍어문양이 보입니다.
가락(karak)은 옛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삼국유사 기록에 근거하면 허태후(황옥)이 처음 내린 곳이 망산도이고
허태후 일행이 타고 온 돌배(요즘은 쇠로 만든 배도 뜹니다만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가
뒤집혀서 유주암이 되고 이를 기념하는 유주각을 세웠다고 합니다.




* 점심식사(용원 김해수산 횟집)

가장 싼 가격의 음식이 회비빔밥으로 15,000원이며 소주와 막걸리 1병에 4,000원 합니다.
5명이 식사를 하고 나니 총액 87,000원입니다. 용원은 이제 관광지로 변해서
물가가 부산보다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망산도

바닷가에 유주정 정자가 있고 바로 망산도 섬이 있습니다.
바위는 흡사 거북이 등껍질 형태처럼 금이 나 있습니다.
한자로 "망산도"라는 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가락 종친회 소속 김해허씨 아주머니 2분이 와서 합장을 하고 절을 합니다.




*청룡대 각석

풍류도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최치원의 낚시터 장소인 청룡대입니다.
"청룡대 치원서‘靑龍臺 致遠書"라고 적혀있습니다.
글씨는 행서와 초서의 중간 수준입니다.글씨가 기품이 있으며 활달합니다.

최치원은 통일신라 말기 대사상가·당대 최고 문장가로 시무책 10여조 올려 정치개혁에 노력했고,
신라 진골 체제 실망 지방관 전전하며 현재 마산합포구에 별서를 짓고 후진 양성도 했습니다.

최치원崔致遠이 화랑 난랑을 위해 쓴 난랑비 서문鸞郞碑序文 중에 "나라에 현묘가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라는 글이 있습니다.위의 글로써 신라에 유불선儒佛仙의 3교 이전에
이미 고유의 풍류라는 종교적 차원의 가치관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또 풍류의 수련자들이 바로 화랑이었음을 추측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풍류도는 샤머니즘의 색채가 강했던 우리 고유의 종교적 사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영성 교수는 "풍류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유가적 가르침과
명승지를 찾아 심신수련에 임하는 무위자연의 노자사상‧선을 외치고 악의 징치를 교화의 개념으로 삼는 불가의 가르침이 모두 포함삼교와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풍류도의 범주에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또, 최 교수는 "풍류의 궁극적 목표는 접화와 군생에 있으며, 접화와 군생은 남녀의 육체와 영혼이 하나로 만나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중국의 최고 의서(醫書) 소문(素問)의 '생생화화(生生化化)'를 의미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최치원의 풍류도는 기존 천부경의 전통문양을 한문 '난랑비서문'의 76자로 표기한 것으로,
풍류에 대한 잘못된 오해로 '풍류는 중국에서 전래한 것'또는 '불가에서 전해진 것'이라는
일설들이 전해져 왔지만 ‘풍류는 유불선의 분화 이전부터 전해지고 있었다"고
풍류의 근원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목은 이색의 천부경에 대한 주석"을 제시했고
접화(接化)는 천부경의 무궤하삼(無軌下三)의 합리성과 정갈성, 영명성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으며,
이는 '논어 도덕경'의 '군자의 덕은 바람‧소인의 덕은 물'에 대한 문구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를 통해 '접화'는 유가의 '대동세계'와 불가의 '용화세계' 및 도교의 '선‧후천세계'로의 완성을
이루어 낸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영성 교수는 끝으로 "최근 풍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단순히 먹고‧마시고‧즐기는 것'이라는
해석들을 내놓고 있지만 풍류는 '우리 민족의 원초적 사상 묘맥'이라는 최남선의 '심층순례'의 기록을
그 예"로 설명한 뒤 "풍류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신묘한 사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풍류도의 도맥을 보면 책에 따라 다르게 나옵니다. 순오지,해동이적,규원사화,청학집
다양한 책에서 한번이라도 언급되는 이름을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단군·혁거세·주몽· 영랑·(술랑.안상· 남랑).보덕.호공.물계자.의상대사.원효대사.도선.대세.
구칠.참시.옥보고·이순보.우륵.김렴효· 소하대로·산시· 김소이선.장미선인.김가기· 최승우.
자혜.이청..권청.을지문덕.연개소문.최치원·김유신.강감찬· 권진인·남궁두.강감찬.김시습· 전북창.이지함.남추.정렴.전우치.윤군평.곽재우.권극중. 홍유손·정붕· 정수곤·정희량.남추.
지리선인.서경덕.정렴.한라선인.남사고.박지화. 한계노승.유형진.장한웅.남해선인.장생

특히 최치원은 대부분의 책에서 언급됩니다.

신채호 선생은 『규원사화』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 한민족 고유의 것이며
이것이 일제치하 독립운동으로까지 이어지는낭가사상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선인들은 한민족 건국과정에서 주체로 참여하였으며 국가의 위란 시마다 구국의 투혼을 보여왔습니다.
배달국의 제세핵랑군에서 시작된 선인의 맥은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사도, 신라의 화랑,
고려의 국자랑으로 이어지며,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끝으로 은둔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도 접화군생으로 우리의 가슴 면면에 남아있습니다.

이제 대신 자전거를 타고 심신수련, 무위자연을 벗삼아 노장사상과 국의 의미를 되새기는
우리는 현대판 풍월주,풍류인입니다.

범해(泛海)라는 최치원의 한구절 올립니다.

푸른 바다에 띄우니 / 바람 리를 통하였네 /뗏목을 타보니 한나라 사신 생각 /
약초 캐려던 진나라 동자 기억나네 /해와 달은 허공 밖에 있고/ 하늘과 땅은 태극 가운데일세/
봉래산이 지척에 보이고/ 나는 신선을 찾아보네 -최치원-

*녹산수문

1930년경에 낙동강 직선화 공사로 시작하여, 1934 4(쇼와 9 4)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강과 바다를 가르는 하구둑 수문입니다. 일본 서체의 흔적이 녹산1수문 가장자리에 있습니다.





녹산수문은 최근에 새만금방조제 수문의 원조라고 할 수 있으며 시설 공학적,시설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수능엄사

수능엄사는 노적봉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노적봉(露積峰)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쳐들어오기 전에 이 섬 전체를 짚으로 둘러씌워 군량미가 충분한 것처럼 위장을 해 놓아 왜군이 놀라 도망을 갔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낙동강이 마지막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어 해강일점(海江一點)이란 말이 잘 어울립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독사리목(禿沙悧木)이 이곳 일대이며 형산진(荊山津)이라고 부르는 나루터가 있었기 때문에 남도식 사투리 발음에 따라 지금은 성산(星山)으로 변했다고 합니다.("형"님을 '성"님이라고 부르듯이)



노적봉에 자리잡은 수능엄사를 둘러보는데 독성각 뒤로 산신각의 위치가 참 좋습니다. 산신각 안에는 할배산신을 모셔놓았습니다.
단 하나의 무궁화 꽃이 피어있어서 예사롭지 않습니다.






* 녹산 항일 무명용사 위령비

둔치도로 향하던 중 패달질을 멈추고 다가가보니 항일무명용사 위령비가 있습니다.
해방을 2시간 앞두고 자결한 이름 모를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그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1995년 8월 15일 녹산향토문화회관에서 건립한 위령비입니다.

이름도 모르는 무명용사를 잊지않고 정부차원이 아닌 향토문화회관에서 건립했다고 하니
의미가 더 큽니다.임진왜란시기,일제강점기 시기 무명의 의병들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고, 나랏님(선조,이승만)은 도망을 가더라도 민초들은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오늘도 라이딩에 참여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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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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