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후기




2018.9.30 


여행은 먼 곳에만 있지 않습니다. 여행은 더러 먼 곳을 향하여 뻗어간 시선을 자기 안으로 거두어들일 때 비로소 예상치 못한 진경을 보여줍니다. 여행이 공간의 확장을 통한 자기 내면의 성찰에 있는 것이라면, 그 역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공간의 축소를 통한 자기 내면의 확대에 있습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땅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무심히 스쳐지나갔던 일상의 자잘한 풍경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 공간의 확장 이전에 내가 우선 할일이라고 봅니다.


 필자는 로드를 따라가기에는 속도에서 밀리고 MTB를 따라가기에는
높이에서 밀리는 여행용 자전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입장에서 유유자적하게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으며
음악을 듣고 싶은 욕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제3의 길을 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여
문화유산답사, 테마여행, 자전거 캠핑으로 카테고리를 찾아 보았습니다만
제 주위엔 잘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내가 주동을 하면 내 취향대로 갈 수 있겠다는 판단 아래
처음으로 주말번개를 발동하였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오늘 4명이 50km를 유유하게 라이딩하며
왜성 2곳, 부산 근대구조물 포함 적산가옥 2곳을 탐방하였으며
점심식사는 대동 할매국수집에서 했습니다.





 왜 왜성을 돌아보려고 했는지 먼저 안내를 해봅니다.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국민들 사이엔 왜성을
“왜군이 조선을 침략해 쌓은 민족 치욕의 상징물”로 보는 시각이 만연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16세기 말 우리조상이 절체절명의 국난을 마침내 극복하고
얻은 전리품으로 왜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제 비가 약간 흩날리지만 전리품을 탐방하러 길을 나섭니다.


 노량해전이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이자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전투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조.명 연합수군과 왜군 수군 사이 최후의 전투가
임진왜란 당시 왜군 본거지였던 부산 앞바다가 아니라
부산에서 300리나 떨어진 경남 하동군과 남해군 사이 좁은 바닷길인
노량해협에서 벌어진 이유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 노량해협에서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는지,
왜 부산 동래에서 임진왜란 때 희생된 이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발굴됐는지를 알려면
먼저 “왜성”을 알아야만 합니다.


 왜군은 조.명 연합군의 반격, 의병 봉기, 조선 수군의 활약 등으로
1593년 4월 한양 이남으로 후퇴했습니다.
이후 명나라와 강화교섭을 진행하면서 부산을 중심으로 동남해안에
집중적으로 왜성을 쌓았습니다.
왜성을 쌓은 이유는 조.명 연합군의 공격을 최대한 버티다가 여의치 않으면
바닷길을 통해 안전하게 일본으로 철수하려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이라는 절체절명의 국난을 극복한 우리조상들이
자손들에게 당당하게 물려 준 전리품이라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축성술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남한산성. 수원화성 등 전쟁 이후 건설한 성의 성벽 각도는
예전처럼 수직이 아니라 왜성처럼 비스듬합니다.
성벽 각도가 비스듬하면 수직보다 튼튼하며 방어하기도 좋습니다.
이렇게 문화란 싫어하는 상대의 것이라고 해도 좋은 점은 본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군이 우리나라에서 배운 축성술을 바로 "치"입니다.


현재 왜성의 위치를 행정구역으로 보면 부산 11개, 울산 2개, 경남 17개, 전남 1개 등 모두 31개입니다.
대부분 왜성은 강이나 바다 근처 독립된 구릉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구릉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우선 왜군들은 언제든 배를 타고 후퇴 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했기 때문에
높은 산에 성벽을 쌓은 우리나라 성터와는 위치가 달랐습니다.
전략적 요충지는 본성을 쌓고, 본성 근처에 방어를 돕는 요새격의 자성을 배치한 것도 돋보였습니다.


 김해죽도왜성이 본성이라면 구포왜성은 김해죽도왜성의 자성(지성)입니다.
조선의 읍성은 한군데라도 뚫리면 쏟아져 들어오는 적군을 막는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만 왜성은 각이 진 골뱅이처럼
여러 단계의 성곽을 겹겹이 두른 모양새로 산꼭대기는
전투지휘소에 해당하는 천수각을 두었다고 합니다.
방어하기에 좋은 구조의 왜성은 실제로 임진왜란 7년 동안 조.명 연합군에 의해
점령된 왜성은 단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1.구포왜성




 구포의 조선시대 이름은 감동포였습니다.
구포왜성은 왜군 제6군 수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와 휘하 장수
다치바나 무네시게등이 임진왜란 발발 1여년 뒤인 1593년 7월 낙동강 수로 확보와
인근 김해 양산 지역 왜성과의 연락 및 지원을 위해 쌓았습니다.


 외성은 2005년 북구 문화빙상센터가 들어서면서 없어지고
본성부만 보존되어 부산시 기년물 제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엔 감동포성이었고 지역주민들에겐 구포의성이라고 불리는데
의성이라는 이름은 신라시대 때 이곳에 성이 있었는데 성을 지키던 황룡장군과
500여명의 군사들이 낙동강을 따라 물밀 듯이 쳐들어오는 왜구들을 죽음으로 막아냈다는 전설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래서 이산 이름도 의성산이라고 합니다.
역사란 이렇게 시대를 따라 땅에 덧칠하게 됩니다.



의성산의 모습




구룡사 약사대불




(왜성의 특징인 본곽 외벽의 모서리 부분을 보면 돌을 한단씩 쌓아 올릴 때마다
긴 면과 짧은 면을 서로 엇갈리게 쌓으면서 모서리 세로줄을
일직선으로 맞춘 모습이 있으면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2.화명대교를 지나 대동시장 오랜전통의 할매국수집에서 식사를 한 후
편의점에서 커피 한잔하고 바로 부산근대구조물 (구)낙동강칠백리식당에 갑니다.
이제 약간의 비조차 그칩니다.





 2012년에 부산시 근대건조물로 지정되었는데 불과 5~6년만에 폐가로 바뀌는 느낌입니다.
2~3년전 낙동강 칠백리 식당에 가서 대나무 통에 넣은 돼지 바비큐를 맛 본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도 식당 주인 어르신이 연세가 많아서 조만간 식당을 접는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인수를 하여 식당을 계속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오늘 가보니 짧은 시간에 대부분의 것들이 관리가 안되어 퇴색되고 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우선 구조물의 특징을 보면 지상 1층의 목구조 건물로 지붕은 팔작 혹은 맛배지붕이
혼용된 형태를 하고 있고 벽체는 토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옥의 내부에 장식적 요소가 강한 여러 가지 문양들과 그림들이 목재로 조각되어 나타나 있고
당시 제작되어진 현관 등이 일식 가옥의 느낌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 가옥의 건축자재인 기와 목재 등은 당시 일본에서 직접 수송하여 건축 한 것이며
강서지역의 일식가옥 중에서 가장 잘 보존 된 건물 중 하나입니다.


 건조물 연혁을 보면 일제는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토지 약탈을 위하여
일본농민에게 이민 장려정책을 시행하였고 김해평야 중에서
대저지역이 속한 서 낙동강 층적지대는 점성의 사질 토양으로 기름진 농사를 지을 수 있었기에
일본인 이주농가가 형성되면서 일본농민에 의해 1926년 신축되었으며,
1989년 행적구역 변경으로 북구에서 강서구로 변경되었고,
1991년 주택에서 일반음식점 용도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폐업 한 것으로 보입니다.



3.강서고등학교 후문에 위치하여 실제 거주하는 잘 꾸며진
또 다른 적산가옥(양덕운 가옥)을 탐방합니다.




4.다시 낙동강 자전거 전용도로로 나와 핑크뮬리 감상을 합니다.





5.거북이는 올라왔다는 등구(登龜)에서 칠점산이 있었던 칠점을 지납니다.




 칠점산의 담시선인이었던 물계자는 그의 제자 원광법사에게
세속5계를 만들라고 했다고 합니다.
물계자는 김해의 초선대와 이곳 칠점산과 관련이 깊은 인물입니다. 


 "‘옛 말에 이르기를, 가락국 거등왕께서 칠점산의 담시선인을 부르시면
담시선인은 배를 타고 거문고를 안고 와서 이곳에서 바둑을 두며 함께 즐겼다.
이로 인하여 초선대(招仙臺)라고 하였다. 그때 왕과 선인이 앉았던
연화 대석과 바둑판 돌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칠점산(七點山)은 양산군 남쪽 44리 바닷가에 있으며 산이 칠봉(七峰)인데,
칠점(七點)과 같으므로 칠점산이라고 이름 하였다.’



 현재 칠점산의 6.5개는 모두 대포를 쏘아 산을 부수어
제5전투비행부대 건물과 기초로 사용되고 지금은 0.5개만 남아있는데
위 사진은 이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6.김해죽도왜성


 죽도왜성은 서낙동강의 전략적 요충지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했던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만든 왜성입니다.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임진왜란에서 100여명이 넘는 조선도공을 납치하여
자신이 다스렸던 일본 규슈의 아리타 지역을 가장 유명한 도자기 생산지로 만들었습니다.


 죽도왜성은 동.서로 길게 늘어선 모습으로 북쪽으로는 김해시,
동쪽으로는 낙동강과 부산 구포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구포에는 자성인 구포왜성이 있습니다.





7.죽도왜성 북동쪽에는 문수암이 다시 중건되고 있고 길을 따라 내려오면
이곳 출신으로 6.25전쟁 참전용사 39명의 유해가 묻혀있는 국군묘지가 있습니다.





오늘 탐방을 함께한 3분 고맙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


━━━━━━━━━━━━━━━━━━━━━━━━━━━━━━━━━


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 Recent posts